<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56)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90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56)
윤태민 2소대장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돌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윤태민 2소대장을 보던 황익호 병장이 바로 인상을 쓰며 중얼거렸다.
“아이씨, 뭐야. 언제는 장사 열심히 하라면서. 그런데 물건이 없잖아. 물건을 줘야 열심히 하든가 하지. 젠장!”
황익호 병장이 투덜거리며 소대로 돌아갔다. 그런데 2소대 앞에서 홍인규 병장이 서 있었다.
“야, 황익호.”
“아, 왜요.”
“어떻게 됐어? 왜 빈손이야.”
“왜 빈손이겠습니까? 소대장님께서 준비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에이씨, 뭐야! 그럼 언제 된대?”
“모르겠습니다. 오늘 소대장님께서 말씀하시길, 당분간 대기하고 기다리라고 합니다.”
“기다려? 언제까지?”
“몰라요, 나도.”
황익호 병장은 차마 당분간 장사하지 말라는 소리는 하지 못했다.
자신이 그래도 윤태민 2소대장 밑에서 장사를 하면서 실권을 물려받았다. 그런 과정에서 나름 병장들 중에서는 잘나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들 역시 황익호 병장에게 함부로 하지 못하고 그래왔다.
황익호 병장은 그동안 윤태민 2소대장의 밑에서 장사를 하면서 사실상 실권을 물려받은 상태였다. 그런 과정에서 병장들 사이에선 나름 잘나갔고 말이다.
덕분에 다른 병장들은 자연스럽게 황익호 병장에게 함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한데 이제 와서 윤태민 2소대장이 물건을 팔지 말라고 했다는 것을 말하면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았다.
“아, 진짜! 뭐야. 이럴 줄 알았으면 지난번에 휴가 나갔을 때 사 왔지.”
황익호 병장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오오, 그렇게 나오시겠다 이거죠.”
“야, 인마, 농담이야. 농담. 그리고 나도 좀 있으면 제대인데. 그 정도는 좀 봐줘야 하는 거 아니냐.”
“말씀 잘하셨네. 좀 있으면 제대인데 그냥 좀 참으면 안 됩니까.”
“볼 게 없어서 그런다. 볼 게 없어! 아니, 하도 봤더니 이제 상딸이 안 돼. 상딸이! 서질 않아!”
“아, 진짜! 홍 병장님은 군대에 무슨 딸 치러 왔습니까?”
“야, 인마! 사내로 태어나서 일일 일딸은 기본 상식 아니냐! 내가 인마 병장이 되고 제일 먼저 한 것이 바로 그것인데. 네가 말이야, 억압된 나의 성욕을 알아? 아냐고, 새끼야!”
홍인규 병장은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울분을 토해냈다. 황익호 병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짜, 할 말이 없습니다. 할 말이 없어요.”
사실 조금 어이가 없긴 했다. 막말로 얼마 전 조인범 상병이 있을 때까진 선임 대접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고작 한다는 짓이 잡지를 사서 화장실에서 성욕을 해결하는 그것이 다였다. 게다가 조인범이 없으니 저렇게 허세를 부린다는 것이 웃기기까지 했다.
“아무튼 당분간 기다리십시오. 때가 되면 바로 알려드릴 테니까.”
“시발, 너 이렇게 말을 하고 지난번처럼 딴 소대에 팔고 그래 봐라.”
“아, 진짜. 안 그럽니다. 그보다 담배 있습니까?”
“담배? 자!”
“잘 피울게요.”
황익호 병장이 손을 흔들고는 소대로 들어가 버렸다. 그 모습을 보며 홍인규 병장이 바로 인상을 찡그렸다.
“아, 저 새끼. 지가 무슨 2소대장인 줄 알아. 어깨에 잔뜩 힘만 들어가서는······. 에이씨.”
홍인규 병장이 몸을 돌려 3소대로 걸어갔다.
황익호 병장이 내무실에 들어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박형욱 병장이 입을 열었다.
“야, 익호야.”
“네?”
“가져온 거 있으면 줘봐라.”
“네? 아······. 없습니다.”
황익호 병장이 말을 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박형욱 병장은 황익호 병장이 윤태민 2소대장에게 다녀온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새로 따끈한 것이 있으면 자신이 먼저 보고 싶어서 물은 것이다. 물론 팔아야 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진짜 없습니다.”
“왜? 왜 없어?”
“말하면 안 되는데······.”
“뭔데!”
“소대장님이 당분간 장사를 중단하라고 그랬습니다.”
“소대장이 왜? 왜 장사를 중단하라고그래?”
“저도 잘 모르겠지 말입니다.”
그러고 있는데 근처에 앉아 있던 이민균 병장이 피식 웃었다.
“흥! 소대장 또 시작이구만. 또 시작이야.”
박형욱 병장의 시선이 이민균 병장에게 향했다.
“뭔 소리야. 넌 뭐 알고 있는 거야?”
“딱 보면 모릅니까? 소대장님이 또 애를 바꾸려고 그러죠.”
“애를 바꿔?”
박형욱 병장의 시선이 이번에는 황익호 병장에게 향했다. 그는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아, 아닙니다. 저에게 그런 말씀 없으셨습니다.”
“야! 익호야. 나 때도 그랬어. 나 때도······. 뜬금없이 당분간 장사 중단하라고 하고, 일주일 동안 사람 피를 말리다가 얼마 빼돌렸는지 내놓으라고 나에게 지랄했거든.”
“와, 소대장이 그랬어?”
박형욱 병장이 놀라며 말했다.
“말도 마십시오. 물론 내가 꼼꼼한 편은 아니라 계산을 잘못할 수도 있습니다. 천 원, 이천 원 빠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10만 원이 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나보고 채워넣든지 영창 갈 각오를 하든지 하라고 해서 진짜 어이가 없었지 말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합니까.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서 줬지 말입니다.”
“얼마나?”
“그때 아마 3만 원인가?”
“그랬더니?”
“그랬더니 이걸로 용서는 해주겠는데, 더 이상 날 믿지 못한다고 얘한테 넘겨준 거 아닙니까.”
이민균 병장이 말을 하는 사이 황익호 병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만에 하나 이민균 병장의 말처럼 사람을 교체하기 위해 이러는 것이라면 기분이 더러울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불현듯 그런 소리까지 하지 않았나. 너는 이민균처럼 돈 떼먹지 말라는 소리를 말이다. 그 소리를 들은 직후라 머릿속이 복잡했다.
‘하, 시발. 내가 뭐 돈 계산을 잘못한 것이 있나? 그때 천 원인가? 이천 원 빠진 것 같기도 하고······. 진짜 그걸로 지랄하는 거 아니야?’
그러고 있는데 이민균 병장이 피식 웃으며 황익호 병장을 불렀다.
“야, 황익호.”
“네?”
“새끼, 불안하냐?”
“······.”
“그러니까, 평소에 잘하지 그랬어. 너 다음이 누굴까? 다음에는 최헌일이? 아니면 송중규?”
이민균 병장이 실실 쪼개며 말을 하자, 황익호 병장이 버럭했다.
“아, 진짜! 재수 없는 소리 좀 하지 마십시오.”
이민균 병장의 얼굴이 바로 일그러졌다.
“이 새끼 봐라. 황익호, 너 오냐오냐해 줬더니. 병장 달았다고 이제 막 나가자 이거지.”
“아이, 진짜! 그만하라고 했지 않습니까.”
박형욱 병장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야이씨, 너희들 내 앞에서 지금 싸우냐? 그냥 싸우려면 새끼들아, 여기서 말고 나가서 싸워. 왜 내가 있는 곳에서 싸워, 사람 짜증 나게.”
이민균 병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갔다.
“야, 새끼야. 너 따라나와.”
“그렇게 말하면 제가 못 나갈 것 같습니까.”
황익호 병장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뒤따라나갔다. 그러자 밑의 후임병들이 놀란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뭡니까? 두 분 싸우는 겁니까?”
“야이씨, 미친놈의 새끼들아. 병장들 싸운다고 동네방네 소문낼 거야? 다들 자리에 안 앉아!”
왕고참인 박형욱 병장의 한마디에 후임병들이 도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민균 병장과 황익호 병장 두 사람은 창고 구석으로 갔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대치했다. 막말로 황익호 병장도 자신이 조금 친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시절 누구에게 맞고 다닌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민균 병장은 4중대에 온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전 중대에서의 폭력 때문이었다.
“시발, 네가 내 상대가 된다고 생각하냐?”
이민균 병장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막말로 이민균 병장은 말도 하지 않고, 원래 주먹부터 나갔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전 중대에서 폭력을 휘둘렀고, 여기서 마저 그런 문제가 있으면 안 되어서 참았다.
왜냐하면 이제 제대도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참고 있는 것이었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알죠. 저도 고등학교 때 맞고 다니지는 않았습니다.”
“핫! 시발새끼! 진짜 뒤질라고······. 야, 쓸데없는 오기 부리지 말고, 그냥 잘못했다고 해라.”
“제가 잘못한 것이 뭐가 있습니까.”
“이 새끼가 끝까지······.”
주먹을 휙 들던 이민균 병장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좋아, 서로 한 대씩 주고받자.”
“좋습니다. 나중에 딴소리하지 마십시오.”
“새끼······. 너나 한 대 맞았다고 소대장에게 쪼르르 달려가 꼰지르지나 마라.”
“제가 할 말입니다.”
“자! 어떻게 할래? 네가 먼저 칠래? 자, 쳐봐!”
이민균 병장이 얼굴을 가져다댔다. 그러자 황익호 병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주먹을 휘둘렀다.
“이이, 씨발!”
퍽!
황익호 병장의 주먹에 제대로 힘이 실렸다. 황익호 병장은 때리면서도 씨익 웃었다. 그런데 이민균 병장이 뒤로 휘청거리며 고개가 돌아갔다. 그럼에도 넘어지지 않았다.
퇫!
이민균 병장이 고개를 천천히 돌리며 침을 뱉었다. 침 속에 붉은 피가 섞여 있었다.
“훗, 좀 치네.”
이민균 병장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황익호 병장이 말했다.
‘뭐야, 내 주먹에 안 쓰러진다고?’
물론 황익호 병장도 평범한 애들보다는 나름 센 주먹이었다. 그런 주먹에 단지 휘청할 정도인 이민균 병장이 대단했다. 이민균 병장이 팔을 휘둘렀다.
“이제 내 차례지?”
황익호 병장에게 가서 씨익 웃으며 말했다.
“어금니 꽉 깨물어라.”
이민균 병장이 주먹을 들어 때리려고 하자, 황익호 병장이 움찔하며 손을 들었다.
“아, 새끼. 치지도 않았는데 쫄아서는······. 인마, 치지도 않았다. 손 내려.”
순간 자존심이 상항 황익호 병장이 호기롭게 말했다.
“자, 쳐! 치라고. 쳐!”
“그럼 새끼야. 한 대 맞았는데. 치야지! 눈 딱 감아라.”
그런 다음에 황익호 병장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사이 몸이 부들부들 떨었다. 이민균 병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주먹을 크게 휘둘렀다.
퍼억!
엄청난 소리가 들리며 황익호 병장이 뒤로 벌러덩 드러누웠다.
“으악!”
순간 황익호 병장의 머리에 별이 번쩍였다. 어마어마한 충격에 할 말을 잃은 정도였다. 황익호 병장은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그런 황익호 병장에게 다가간 이민균 병장이 입을 열었다.
“황익호. 시발, 그동안 네가 무서워서 가만히 있은 줄 알아? 윤태민이 있으니까 가만히 있었던 거야. 그리고 윤태민에게 버림받을 것 같으면 알아서 정신을 차려야지. 언제까지 널 봐줄 것이라 생각했어.”
쫙쫙.
이민균 병장이 쓰러진 황익호 병장의 뺨을 두 대 때렸다. 그러곤 한마디를 더 했다.
“쓸데없이 기어오르지 마라.”
그렇게 말을 하고는 속시원한 얼굴로 그곳을 떠났다. 황익호 병장이 상체를 일으키고는 매서운 눈길로 중얼거렸다.
“시발새끼, 내가 가만 안 둬.”
그 시각 오상진은 심도윤 소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충성, 오상진 대위입니다.”
-그래, 오 대위. 내가 힘 좀 썼는데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나?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바로 교육이 있었습니까?”
-교육? 에이, 그런 것이 어디 있나. 그냥 교육이라는 명목하에 애들 불러서 일시키는 거지. 대단한 거 아니야, 정신교육도 아니고, 별거 아니야.
“아, 그런 겁니까?”
-그렇지. 뭐 원래는 싹수 좀 보이는 애들을 불러서 이래저래 교육을 시키는 건데 뭐. 어쨌든 이번에 윤태민 소위 올라오면 제대로 한번 굴려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