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55)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89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55)
“······.”
“그러니까, 내 말 들어. 나도 자네가 아까워서 그래. 일이 잘못되고 나서 우리 부사관이 다치면 남아 있는 부사관들의 의욕이 떨어지면 어떻게 일을 해. 그래, 안 그래?”
“그런데 중대장님도 육사 출신이신데······. 그냥 넘어가지 않겠습니까. 괜히 저 혼자 피 보면······.”
“어허, 이 친구. 아직도 중대장님을 모르네. 아무리 같은 육사 출신이라고 해도 중대장님은 달라. 지금까지 하는 것을 보고도 몰라.”
“그래도 위에서 압력이 내려오고, 그러다 보면······.”
“핫, 이 친구 진짜. 정말 답답한 소리만 하네. 자네가 지금부터라도 위에서 움직여 줘야 중대장님께서 끝까지 보호를 할 것 아니야. 자네는 이런 식으로 대충 되는대로 있다가 나중에 불똥 튀면 그때 중대장님 찾아갈 거야. 찾아가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면 받아주실 것 같아? 자네가 뭔 예쁜 짓을 했다고.”
“아······. 그런 것입니까?”
“하아, 진짜 답답한 놈. 내가 이런 것까지 하나하나 알려줘야 해?”
“죄송합니다. 제가 그런 것도 모르고······.”
“이 하사.”
“네.”
“부탁인데, 제발 정신 똑바로 차려!”
“그럼 전 어떻게 합니까?”
“뭘?”
“2소대장이 소대 관리 잘하라고 했는데 말입니다.”
“당연히 소대 관리 잘해야지. 내 얘기 못 들었어? 소대 관리 잘하는 것은 기본이잖아. 윤태민 2소대장이 지시를 내린 것 중에 정상적인 것은 따르란 말이야. 개인적인 것을 따르지 말고. 너 말이야, 솔직하게 말해봐. 2소대장이 또 무슨 지시를 내렸어?”
김태호 상사가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 그러자 이기상 하사가 눈치를 슬슬 살피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에 말한 것은 아니지만 평소에 무슨 일이 생기면 즉각 자신에게 보고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 만약 중대장님께서 중대를 바로잡으려고 어떤 일을 했어. 근데 그것이 2소대와 관련된 일이야. 그럼 그것을 보고해야겠어, 안 해야겠어?”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 그럼 그 일은 누구를 위해서야? 자네 스스로를 위해서야? 아니면 중대를 위해서야.”
그 얘기를 하니까, 이기상 하사의 눈이 제대로 떠졌다.
“중대를 위해서입니다.”
“맞아! 군인이 소속된 중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데 무슨 문제야. 당연한 거 아니야!”
“맞습니다.”
“내가 자네에게 배신하라고 하는 말이 아니야. 절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 내가 자네에게 하는 말은 이제는 참 군인이 되라는 말이야. 중대를 위해서 헌신하고, 국가를 위해서 헌신하고. 알겠어!”
“네, 알겠습니다.”
“그래, 그래. 난 이만 가 볼 테니까. 편안하게 담배 피우고.”
“네.”
김태호 상사가 이기상 하사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라졌다. 그리고 이기상 하사의 표정이 한결 홀가분해진 상태였다.
김태호 상사는 걸어가며 피식 웃었다.
“아이고, 아직 어리다. 어려······. 그보다 이 하사는 2소대장이 뭐가 좋다고 꽁무니를 쫓아다녔던 거지? 일이 이렇게 될 줄도 모르고 말이지.”
김태호 상사가 혀를 쯧쯧 찼고, 그렇게 윤태민 2소대장의 중대 고립 작전이 천천히 진행되었다.
윤태민 2소대장은 육군본부로 올라가기 전 주변정리를 깨끗하게(?) 정리를 했다.
“룰루랄라······.”
절로 콧노래까지 나왔다. 책상을 말끔히 정리하는 것에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였다.
‘왠지 말이야. 어쩌면······.’
육군본부에 정착을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냥 문득 그런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렇듯 책상 정리도 깔끔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쓰지 않은 수첩을 발견했다.
“으음······.”
그냥 버리기에는 아까워서 앞자리에 앉아 있는 홍일동 4소대장을 봤다.
“4소대장, 여기 내가 쓰지 않은 수첩 많은데 필요하면 가져가서 사용하시죠.”
“수첩 말입니까?”
홍일동 4소대장이 힐끔 봤다. 윤태민 2소대장이 수첩을 들어 흔들었다. 제법 깔끔해 보였다. 홍일동 4소대장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주시면 감사하죠.”
“오케이. 받아요.”
홍일동 4소대장도 흔쾌히 받았다. 윤태민 2소대장은 이번에는 박윤지 3소대장을 봤다.
“3소대장도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해.”
“저는 괜찮습니다.”
박윤지 3소대장은 아직 윤태민 2소대장이 거북스러웠다. 그래서 고개를 가로저어 거절 의사를 보냈다. 그런 윤태민 2소대장의 행동을 보던 김진수 1소대장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
“2소대장.”
“네.”
“자네 전출 가?”
“하하하, 아뇨.”
“그런데 지금 자네 행동이 꼭 전출 가는 사람처럼 유난스러워.”
“제가 말입니까? 아닌데······. 아니, 제가 육본에 교육받으러 가지 않습니까. 당분간은 자리에 없을 텐데 그래도 정리는 하고 가야죠. 옛말에 사람이 떠나간 뒷자리는 깨끗이 정리하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정리를 좀 하는 겁니다. 그리고 제가 너무 정리를 안 하고 산 것 같기도 하고 말이죠.”
윤태민 2소대장은 말을 하고는 있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잔잔하게 맺혔다.
‘크크크, 왜? 부럽냐? 그럼 금수저로 태어나지 그랬어, 인마.’
윤태민 2소대장은 아직까지 외할아버지인 신범규 예비역 중장이 힘을 쓴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괜히 육군본부에 올라가지는 않으니까.
‘아무튼 할아버지도 참······. 이럴 거면서 왜 전에는 그런 말씀을 했는지······.’
얼마 전 외할아버지와 전화를 했었다. 그때 심범규 예비역 중장이 윤태민 2소대장에게 말했다.
“딴생각하지 말고, 군 생활만 열심히 해.”
윤태민 2소대장은 그 말투가 왠지 모르게 따뜻하고 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는 별다른 일이 없어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아무튼 외할아버지도 외지에서 고생하는 내가 안쓰러웠던 것이 분명해. 그래서 힘을 쓴 것이겠지. 아무리 그래도 외할아버지는 진짜······. 이러실 거면 미리 말씀을 해주시지. 꼭 이렇게 서프라이즈를 해주셔야 합니까.’
윤태민 2소대장이 속으로 웃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결심을 했다.
‘만약에 말이야. 외할아버지가 진짜로 육군본부에 교육을 핑계로 날 부른 것이라면 이번 기회에 제대로 말뚝을 박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드네.’
윤태민 2소대장은 정말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진짜 육본에 올라가면 말이다.
물론 이번엔 교육을 받으러 가는 거니 당장 전출이 될 것 같지는 않겠지만 육본에 머물면서 상황에 맞게 있다 보면 처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것은 순전히 윤태민 2소대장 본인 생각이었지만······.
똑똑.
그때 행정반 문이 열리며 황익호 병장이 들어왔다.
“충성, 병장 황익호 행정실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그 소리에 윤태민 2소대장은 책상 정리를 그만두고 고개를 돌렸다. 홍일동 4소대장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들어 황익호 병장을 봤다.
‘어 저 녀석이 왜?’
윤태민 2소대장은 밝은 얼굴로 황익호 병장에게 말했다.
“익호 무슨 일이야?”
“저어, 소대장님.”
“말해.”
“잠시 밖에서 대화를 좀······.”
황익호 병장이 머뭇거리며 말을 하자, 윤태민 2소대장이 바로 눈치를 챘다. 고개를 끄덕인 윤태민 2소대장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커피 한잔하면서 얘기할까?”
“네.”
“그래, 나가자.”
윤태민 2소대장이 자연스럽게 황익호 병장을 이끌고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흡연실로 데리고 간 윤태민 2소대장이 담배를 꺼내 입에 물며 말했다.
“왜? 또 뭐가 필요해.”
“저어, 잡지랑 담배가 떨어졌습니다.”
“담배가 벌써 떨어졌어? 내가 담배전해준 지 얼마 안 되었잖아.”
“지난번에는 평소보다 많이 주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랬나?”
윤태민 2소대장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바로 떠올랐다.
“아아, 이놈의 정신머리 좀 봐. 참, 내가 그랬지.”
정확하게는 오상진 뒤꽁무니만 쫓아다닌다고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했다. 어쨌든 그 당시는 오상진만 없어진다면 괜찮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공급을 살짝 줄였다. 그러다가 송윤태 상병에게 소주를 팔다 보니 이게 또 생각이 달라졌다.
‘그래 윤태 그 녀석······,’
윤태민 2소대장은 그동안 양심적으로 2배 정도만 받고 팔았다. 그런데 이제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군대라는 것이 사제 물건은 부족하고, 살 사람들은 많고 그랬다. 한 마디로 공급보다 수요가 많았다.
그렇다 보니 가격을 올려도 팔린다는 것이었다. 윤태민 2소대장이 가격을 3배로 팔지, 4배로 팔지는 자신 마음이었다.
그래서 윤태민 2소대장이 생각을 했다. 물건을 조금 가져와서 애들을 애달프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 뒤로 가격을 올려 본격적으로 장사를 할 생각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오상진의 꼬리를 잡았다는 것이 잘못 잡게 되었고, 지금까지 깜빡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쨌든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해야지. 그런데 또 육본이 걸리네.’
윤태민 2소대장은 잠깐 고민을 하다가 황익호 병장을 봤다.
“야, 황익호. 장사 잘되냐?”
“병장 황익호. 잘되는 편입니다.”
“잘돼? 아직도 애들이 많이 찾고?”
“그렇습니다.”
“그래? 으음······. 이것 참 곤란하네.”
윤태민 2소대장이 살짝 인상을 썼다. 그러다가 힐끔 고개를 돌려 황익호 병장을 노려봤다.
“너 인마. 혹시 딴 곳에서 장사하고 그렇지는 않지? 뒷주머니를 찬다거나······.”
윤태민 2소대장이 눈을 가늘게 하며 물었다. 황익호 병장이 바로 두 손을 흔들었다.
“아닙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전부다 저를 통해서만 판매를 하고 일체 다른 주머니는 차지 않았습니다.”
“정말이지?”
“네!”
“당연히 그래야지, 암. 그렇게만 해. 알았지?”
“네, 소대장님.”
윤태민 2소대장이 갑자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익호야.”
“네.”
“아무래도 당분간은 장사를 접고 있어야겠다.”
“네에? 갑자기 왜······.”
황익호 병장은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했다. 윤태민 2소대장이 설명을 해줬다.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해줄게. 그리고 필요한 것이 있다고 해도 당분간은 안 된다고, 참고 기다리라고 말해놔. 알았어.”
“어······ 그러면 안 되는데 말입니다.”
“뭐가 안 돼?”
“그게 아니라 소대장님께 받아서 팔기로 약속한 것이 있습니다.”
“뭐 인마? 주는 사람은 생각도 하고 있지 않는데, 그걸 왜 네 맘대로 약속을 하고 그래. 설마 너 선금 받았냐?”
“아, 아닙니다.”
“너! 소대장이 뭘 가장 싫어하는지 알지? 돈 가지고 장난치는 녀석을 무척이나 싫어해. 이민균 그 새끼도 특별히 많이 먹은 것도 아니야. 몇만 원 정도? 하지만 내 돈을 해 먹었다는 것이 문제야. 그래서 손 떼게 한 것이고 알겠어?”
“네.”
황익호 병장 자신도 잘 알고 있는 일이었다. 윤태민 2소대장의 경고가 다시 이어졌다.
“황익호 소대장이 경고하는데 불시에 확인해서 10원짜리라도 비면 너 진짜 가만 안 둔다.”
“절대 그럴 리 없습니다.”
“그래, 너만 믿는다.”
윤태민 2소대장이 담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황익호 병장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잘해, 알았지.”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