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54)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88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54)
“하아, 진짜······. 좋아, 다른 것이 아니라. 어제 무슨 일이 있었어?”
“어제 말입니까? 무슨······.”
박윤지 3소대장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아니, 송윤태 상병 말이야.”
“아, 윤태 말입니까.”
“그래.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혹시 알고 있는 것이 있어?”
박윤지 3소대장도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는 눈은 아직 있었다.
그래도 여태까지 보고 들은 것이 있는 박윤지 3소대장이었다.
‘가만, 어제 김호동 하사가 송윤태 상병을 데리고 왔고, 그다음에 홍일동 4소대장이 중대장실에 불려갔어. 그 뒤로 4소대장이 윤태를 상담했고······.’
박윤지 3소대장이 거기까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딱 돌아가는 분위기로 봐서 뭔가 일이 생겼고, 그와 관련해 홍일동 4소대장과 오상진이 무슨 사건을 파헤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을 곧이곧대로 말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느낌상 윤태민 2소대장이 이 사건의 중심에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야, 저도 모르죠. 제가 어떻게 알아요.”
“정말 몰라?”
“저도 궁금합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4소대장이랑 얘기를 안 해봤어? 박 소위랑 4소대장이랑 친하잖아.”
“친하죠.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자기 소대 일을 함부로 말할 사람도 아니잖아요. 게다가 어제 저도 바빠서 4소대장 만날 시간도 없었습니다.”
박윤지 3소대장이 딱 부러지게 말을 했다. 그러자 윤태민 2소대장이 실망한 얼굴이 되었다.
“뭐야, 엄청 친한 줄 알았더니······. 아니었나 보네. 알았어.”
윤태민 2소대장이 이제 볼일 없다는 듯 가버렸다. 그 모습을 보며 박윤지 3소대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후, 저 인간 진짜 언제 철이 들지. 저 인간 때문에 일 그만두려고까지 했는데······. 이제는 좀 할 맛이 나네.”
박윤지 3소대장은 사실 요즘은 군 생활 할 맛이 났다. 물론 아직은 3소대를 이끄는 데 부족함이 있지만 나름 자신의 방식으로 조금씩 변화를 주고 있었다.
아직은 좀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어쨌든 변화는 일어나고 있었다.
“그래, 지금은 이것으로 됐어. 지금은······.”
박윤지 3소대장이 낮게 중얼거리고는 행정반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점심시간에 행정실로 전화가 왔다.
따르릉, 따르릉.
“통신보안 17연대 3대대 4중대 행정실입니다. 네, 네. 지금 계십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행정병이 바로 고개를 돌려 윤태민 2소대장을 불렀다.
“2소대장님, 전화 왔지 말입니다.”
“어디서?”
“육군본부라고 합니다.”
“육본?”
윤태민 2소대장은 살짝 고개를 갸웃하고는 행정병근처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통신보안, 전화 바꿨습니다. 4중대 2소대장 윤태민 소위입니다.”
수화기 너머 젊은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태민 소위입니까?
“네, 맞습니다.”
-여기는 육군본부 작전부입니다. 교육 관련해서······.
윤태민 2소대장은 수화기 너머 내용을 듣고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모든 얘기를 듣고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제, 제가 말입니까?”
-네, 혹시 시간 괜찮으십니까?
“물론입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공문이 직접 내려옵니까?”
-물론이죠. 윤태민 소위가 교육을 받겠다면 공문은 당연히 보내는 겁니다.
“그럼 당연히 받겠습니다.”
윤태민 2소대장은 기분이 좋은지 주먹을 쥐었다. 그 모습을 보던 김진수 1소대장이 물었다.
“육본에서 4박 5일 교육을 한다는데 받을 생각이 있냐고 연락이 왔습니다.”
“교육? 2소대장에게?”
“네.”
“······좋겠네.”
김진수 1소대장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하지만 그런 표정을 보는 윤태민 2소대장은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하이고, 왜 그러십니까. 어쩌다 보니 저에게 연락이 온 것이죠. 다음번에는 1소대장님께서 가실 겁니다.”
“뭐······. 어쨌든 잘됐네.”
김진수 1소대장이 말을 하고는 다이어리를 챙겨서 행정실을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윤태민 2소대장이 콧방귀를 꼈다.
“칫, 그러니까. 계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니까.”
윤태민 2소대장이 실실거렸다. 그렇게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 윤태민 2소대장은 일이 쉽게 잡히지 않았다.
‘이야, 이러다가 내가 진짜 육본으로 진출하는 거 아니야?’
육군본부는 출세의 지름길이었다. 그곳에는 모든 장성들이, 스타들이 응집해 있는 곳이었다. 그들과 친분만 있더라도 자신의 진급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정도였다.
‘하, 이거 어쩌면 기회일지도 모르겠어. 기회!’
그렇게 윤태민 2소대장은 육본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하루 종일 들떠 있었다. 뜬금없이 4중대로 내려오기는 했지만 너무 4중대가 꼴통 중대고, 자신을 이끌어 주기로 했던 중대장은 사라졌다.
그래서 다시 4중대를 탈출하려고 홍민우 소령에게 열심히 줄을 대고 그랬던 것인데, 그것이 틀어져 버리니 인생 꼬였나 싶었다.
그랬는데······.
‘킥킥킥, 크크크, 역시 하늘은 날 버리지 않았어. 이런 운도 좋은 놈.’
윤태민 2소대장의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가만, 그보다 솔직히 궁금하기는 하네. 내가 왜? 그것도 4중대로? 설마 할아버지가 힘써 주셨나? 에이, 알 게 뭐야.”
그러고 있는데 부소대장인 이기상 하사가 나타났다.
“이 하사.”
“네.”
“잠깐 이쪽으로······.”
윤태민 2소대장이 손짓으로 불렀다. 이기상 하사가 그의 곁으로 갔다.
“네. 부르셨습니까?”
“어!”
“아마 다음 주 월요일부터 5일간 육본에 교육을 받으러 갈지도 몰라.”
“오? 육본 말입니까?”
이기상 하사가 놀란 눈이 되었다. 그 눈빛을 보는 윤태민 2소대장의 어깨가 으쓱했다.
“그렇지. 내가 말했지. 내가 계속 여기 4중대에 있을 사람이 아니라고.”
“와, 육본 가시면 이제 아예 안 내려오시는 거 아닙니까?”
“에이, 설마 그러겠어. 뭐, 모르지 육본으로 옮기게 될지도.”
“와, 부럽습니다.”
“이 하사. 내가 말했잖아. 줄 잘 서 있으라고. 어떻게, 내 줄 잘 잡고 있는 거야?”
“물론입니다. 저야 항상 줄을 탄탄히 잡고 있습니다. 아니, 아예 허리에 묶어서 절대 떨어지지 않게 해놨습니다.”
“그래? 요새 좀······ 제대로 안 잡고 있던 것 같던데.”
“왜 그러십니까. 아! 혹시 뭐가 필요하십니까?”
이기상 하사는 눈치 빠르게 바로 물었다.
“아니, 뭐, 무엇이 필요한 것은 아니고······. 지난번 그 술집 괜찮더라. 다음번에 한번 거기나 가지.”
“아, 그때 제가 모시고 갔던 그 술집 말입니까?”
“그래. 내가 어디 이 하사를 데리고 강남을 가겠어, 어딜 가겠어. 그 정도로 만족을 해야지. 그러니까, 내 줄 놓지 말고, 꽉 잡고 있어. 알았어.”
“넵!”
“아, 그리고.”
“네.”
“나 없는 동안 애들 단속 좀 잘해라.”
“애들 말입니까?”
“그래. 이 하사, 어제 송윤태 일 못들었어?”
“4소대 송 상병 말입니까?”
“그래. 그 녀석이 들킨 모양이더라고······.”
“아, 듣긴 했는데······.”
이기상 하사의 말투로 보아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듣긴 했다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혹시라도 일이 잘못되면 어떻게 할 거야. 그러니, 애들 단속 잘해. 내가 없는 동안 함부로 움직이지도 말고. 애들 사고 안 치게 철저히 감시하고.”
“네. 알겠습니다.”
“나, 진짜 이 하사 믿고 가도 되지?”
“네. 저만 믿으십시오.”
“그래. 자네만 믿고 가.”
윤태민 2소대장이 이기상 하사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이기상 하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 시발. 뭐라는 거야. 무슨 줄을 꽉 잡아? 완전 또라이 아니야? 미친 새끼······. 그리고 말은 바로 해야지. 그게 어디 네 줄이냐? 할아버지 줄이지. 무슨 현역 장군도 아니고, 예비역 장군을 아직까지 우려먹고 있네. 찡하다, 찡해.”
이기상 하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곤 주머니에서 담배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 순간 누군가 자신의 엉덩이를 툭 쳤다.
“왜? 성질나?”
고개를 홱 돌리니, 김태호 상사가 싱긋 웃고 있었다.
“아, 오셨습니까.”
“그래, 나도 담배나 줘.”
이기상 하사가 담배를 건넸다. 김태호 상사는 담배에 불을 붙인 후 말했다.
“왜? 기분 나빴어?”
이기상 하사가 슬쩍 김태호 상사를 보고는 입을 열었다.
“언제부터 보셨습니까?”
“뭐, 처음부터 보진 않았고. 이 하사에게 할 말이 있어서 찾았거든. 그런데 2소대장이랑 얘기를 하고 있더라고. 그래서 슬쩍 자리를 피해줬지. 그런데 2소대장이 뭐래?”
“다음 주 월요일 날 자기 교육을 간다는데 소대 관리 잘하라고 했습니다.”
“무슨 교육을 간데?”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교육이 잡혔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다음 주면 고작 3일 후잖아. 너무 급하게 잡혔는데······.”
김태호 상사가 담배를 피면서 생각했다. 그때 머릿속으로 오상진이 떠올랐다.
“설마 중대장님께서······.”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라면 잘 모르겠지만 오상진의 과거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만약 오상진이 뒷배를 통해서 윤태민 2소대장을 육본으로 빼돌렸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건 그렇고······. 내가 지난번에 말했던 일은 생각해 봤어?”
“아, 그거 말입니까?”
“뭐야, 아직까지 고민하고 있어. 이 친구 안되겠네.”
“김 상사님. 저에게 왜 그러십니까.”
이기상 하사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 친구야. 내가 자네에게 왜 이러는 것이 아니라, 자네가 윤태민 소위와 엮이고 있잖아. 그걸 내가 끊어주려고 하는데······. 잘 생각해. 2소대장이 하는 것들 자네 알아, 몰라!”
“······진짜 저 모릅니다.”
이기상 하사가 시선을 슬쩍 돌렸다. 김태호 상사는 그걸 또 놓치지 않았다.
“봐봐. 아예 모르지는 않지. 알기는 알잖아.”
“김 상사님······.”
“내가 진짜 이런 일까지 안 하려고 했는데. 2소대장이 지금까지 자신이 한 일이 발각돼 봐. 그럼 그 일을 누구에게 뒤집어씌울 것 같아? 아니, 자기 혼자 죽기 싫어서 누굴 끌어들일 것 같냐 말이야.”
“저란 말입니까?”
“당연하지. 난 2소대장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양반인 것 같은데.”
“말도 안 됩니다. 저 진짜······. 모르는 일입니다.”
“물론 모르는 일이긴 하지. 그런데 알게 모르게 윤태민 2소대장 지시대로 움직인 적이 있잖아.”
“저는 2소대 부소대장입니다. 상관이 지시를 내리는데 모른 척합니까.”
“부소대장인 것을 떠나서 있어, 없어?”
“있긴 한데······.”
“그것 보라고! 만약 일이 커지면 자네도 무사하지 못해. 지금 내가 충고할 때 일찌감치 손을 떼! 줄을 끊으란 말이야. 자네 정말 계속 이런 식으로 2소대장 따라다닐 거야?”
“하아······.”
“내가 어려운 부탁을 하는 것이 아니야. 뒷일은 중대장님께서 모두 봐주신다고 했으니까. 그냥 조용히 못 본 척하고, 중대장님 지시에 따라. 막말로 여기 중대에서 누구 지시를 따라야 해? 2소대장이야, 중대장님이야?”
“그건······.”
“그렇지? 아무리 세상이 거꾸로 돌아간다고 해도, 세상이 요지경이라고 해도 중대장 지시를 따라야지. 안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