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49)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83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49)
김호동 하사는 환한 표정으로 경례를 한 후 중대장실을 나갔다. 오상진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잠깐 생각을 하다가 수화기를 들었다.
“어, 난데. 4소대장 내 방으로 오라고 해.”
잠시 후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홍일동 4소대장이 들어왔다.
“충성. 중대장님 저 찾으셨습니까?”
“4소대장. 다름이 아니고 이것 좀 보겠나.”
“무슨······.”
오상진이 휴대폰을 꺼내 김호동 하사가 보내준 사진을 보내줬다. 홍일동 4소대장의 휴대폰이 지잉지잉 하고 울렸다. 오상진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말했다.
“자네 휴대폰을 확인해 봐.”
홍일동 4소대장은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꺼내 문자 내용을 확인했다. 사진이 날아왔는데 확인을 한 순간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이, 이건······.”
오상진의 시선은 홍일동 4소대장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홍일동 4소대장은 흠칫 놀라기는 했지만 왠지 모르게 많이 놀란 것 같지는 않았다.
일반적으로 전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느끼는 당혹감과 충격, 그런 것이 아니라, 뭔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 홍 소위도 어느 정도는 어떤 상황인지 알고는 있었구나. 다만 제대로 말을 하지는 못했네.’
오상진은 바로 그 사실을 깨달았다. 홍일동 4소대장은 그런 오상진의 눈빛을 느끼고, 다급히 정신을 차렸다.
“죄송합니다, 중대장님.”
“뭘 죄송해?”
“저희 소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 것이라고는 몰랐습니다. 제가 저희 소대를 단속하지 못한 제 잘못입니다.”
“그래? 정말 몰랐단 말이지?”
“어, 예!”
“정말 몰랐다고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알지? 이게 4소대장 관리하에 일어난 일이니까.”
“네, 제가 달게 책임을 지겠습니다.”
홍일동 4소대장이 바로 말했다. 오상진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래? 그 책임이 옷을 벗는 거라고 해도 괜찮은 거지?”
“네? 아, 그게······.”
홍일동 4소대장의 눈이 커졌다.
“왜? 모든 책임을 지겠다면서.”
“주, 중대장님 그것이······.”
홍일동 4소대장은 3사 출신이었다. 육군사관학교에 시험을 쳤다가 떨어지고, 어렵게 3사에 지원해서 들어갔다. 그래서 육사생도 못지않게 군 생활에 대한 열의가 남달랐다.
그런데 고작 이런 일 때문에 책임지고 군복을 벗어야 하는 생각에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오상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홍 소위.”
“네.”
“내가 자네에게 실망한 것이 뭔 줄 알겠나?”
“죄송합니다.”
홍일동 4소대장은 이유를 듣지 않고 바로 사과를 했다. 오상진의 얼굴이 또 한 번 일그러졌다.
“죄송하다고 하지 말고 뭔지 알겠냐고.”
“저, 그게······.”
“자네 말이야. 정말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몰랐나?”
“네?”
홍일동 4소대장의 눈이 커졌다.
“정말 몰랐냐 말이야!”
오상진은 언성에 좀 더 힘을 주며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중대장님.”
“뭔가 부대에 부조리가 생겼을 때,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했다는 것은 공범이나 마찬가지야. 물론 이해는 해. 상명하복인 군대에서 모두가 쉬쉬하고 있는데, 자네가 그 일을 들추기에는 어려웠을 거야. 행보관님도 부조리를 들추었다가 좌천되기도 했고 말이지. 그런 모습들을 봐 왔기 때문에 이해는 한다고. 하지만 자네! 아무리 그래도 이런 말도 안 되는 부조리가 일어나는데 어떻게든 개선해 볼 노력은 했었나?”
“······죄송합니다.”
홍일동 4소대장은 딱히 할 말은 없었다. 그저 죄송하다고만 할 뿐이었다. 물론 부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초반에는 소대 관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점을 눈치채긴 했지만 다른 소대장들도 쉬쉬하는 분위기라 혼자 나서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자신도 쉬쉬하면서 문제 삼지 않았다. 하지만 오상진의 말처럼 부조리가 있음에도 소대장으로서 간과하고 애써 모른 척한 것은 분명한 잘못이고, 실책이었다. 게다가 방금 전에는 오상진에게 몰랐다고까지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오상진은 그런 행동을 보이는 홍일동 4소대장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홍일동 4소대장의 행동이 잘못이라는 것은 알았다.
그렇다고 전체로 보면 홍일동 4소대장 잘못이라고도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회귀 전 자신도 소대장 시절에도 홍일동 4소대장처럼 그랬으니까.
‘하긴 저 때는 윗사람들 눈치 보기도 바쁘지. 이해는 해, 이해는 하지만······.’
그럼에도 오상진이 책임지는 중대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 바꿔야지. 다시는 이런 부조리가 내 부대에서는 없도록 말이야.’
오상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지금 면담실에 송윤태 상병이 있을 거야. 내가 할까? 아니면 4소대장 자네가 할래.”
홍일동 4소대장이 잠깐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중대장님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널 믿고 맡겨도 괜찮겠어?”
“네!”
“정말 제대로 조사할 수 있겠어?”
“그렇습니다.”
“좋아, 한 번 더 기회를 주지. 이 썩어빠진 중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철저히 자세하게 조사를 해와.”
오상진이 무거운 얼굴로 단호히 말했다. 홍일동 4소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나가봐.”
“충성.”
홍일동 4소대장이 경례를 하고 중대장실을 나갔다. 그런 홍일동 4소대장을 보면서 살짝 고민이 되었다.
홍일동 4소대장이 잘할지, 못할지 걱정도 되었고, 막말로 화도 났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음에도 모른 척했다는 것이 괘씸했다.
게다가 처음 오상진이 4중대를 바꾸겠다고 말을 했을 때, 가장 두드러지게 공감을 했던 소대장이 바로 홍일동 4소대장이었다.
“하아, 설마 그 행동들 다 형식적이었던 거야?”
그랬다고 생각을 하니 좀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랬다고 해서 마음에 들지 않은 모든 사람들을 쳐내고 그럴 수는 없었다.
“정말 썩은 뿌리는 잘라내야 하지만 나머지는 어떻게든 보듬고 가야지.”
오상진은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중대장실을 나온 홍일동 4소대장은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잠깐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있던 홍일동 소위가 몸을 돌려 복도를 걸어갔다. 그러다가 얼마 걷지 않고, 창가에 서서 심호흡을 했다. 아직까지 찬바람이 쌀쌀하게 불어오고 있었다.
“후욱, 후욱······.”
찬바람을 폐 속으로 한참이나 들이마셨지만 좀처럼 속이 시원해지지 않았다.
“내가 진짜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거지?”
오상진이 그 사진을 보여줬을 때 홍일동 4소대장은 뜨끔했다. 소대에서 가장 문제라는 송윤태 상병이 언제나 신경이 쓰이고, 조인범이 지난번 일로 처벌을 받았을 때도 말이다.
그 뒤로 송윤태 상병을 볼 때마다 사고 치지 말라고 당부도 했었다.
그 이면에는 송윤태 상병이 이런 불법적인 일들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저 무작정의 감은 아니었다.
홍일동 4소대장도 보는 눈이 있고, 듣는 귀가 있었다. 송윤태 상병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아예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 4소대를 맡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무실을 살펴봤을 때 음란서적을 발견했었다. 딱 봐도 밖에서 누가 몰래 들여온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정도면 웃고 넘길 수 있는 문제라 모른 척했다.
“야이, 자식들아. 이런 것을 볼 거면 몰래 볼 것이지. 이런 것은 어디서 구한 거야? 누가 사 왔어?”
그렇게 홍일동 4소대장은 주의만 줬다. 빼앗지도 않고 말이다.
“이것까지 소대장이 인정을 해줄게. 하지만 다음번에 다른 잡지가 눈에 띄면 그때는 안 봐준다.”
“네, 알겠습니다!”
소대원들이 힘차게 대답을 했다. 홍일동 4소대장은 그런 소대원들을 믿었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난 후 또 성인 잡지를 발견했다. 그래서 가장 최근에 다녀온 병장을 다그쳤다.
“이거 네가 사온 거야? 네가 샀어?”
“아닙니다. 저 아닙니다.”
“그럼 뭐야?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소대장님, 그냥 모른 척 해주시면 안 됩니까?”
“야, 부대에서 이런 잡지 보게 되어 있어? 눈을 감아주는 것도 한 번이라고 저번에 분명 말했지.”
“소대장님. 이곳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남자들뿐입니다. 젊은 혈기의 남자들이 모여 있는데 그것을 해소할 방도는 없고······. 안 그렇습니까?”
오히려 병장이 당당하게 나왔다. 순간 홍일동 4소대장이 할 말을 잃었다.
“이 자식이, 소대장이 지난번에는 그냥 넘어가 줬잖아. 그런데 또 나와. 게다가 저번 것과는 다른 거잖아. 정말 네가 사 온 것이 아니야?”
“아닙니다.”
“너 저번에 휴가 갔다 왔잖아. 네가 아니면 누구야?”
“안에서 도는 겁니다.”
“뭐? 안에서 돌아?”
처음에 무슨 소리인지 몰랐던 홍일동 4소대장이었다. 나중에 따른 공급책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공급책이 2소대장인 것까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홍일동 4소대장이 윤태민 2소대장을 찾아갔었다.
“2소대장님.”
“왜요?”
“2소대에서 자꾸만 잡지가 우리 소대로 넘어온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윤태민 2소대장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하아, 진짜······ 4소대장.”
“네?”
“4소대장은 남자 아닙니까? 애들이 욕구불만이 되지 않게 신경을 써 줘야지. 게다가 자기네들이 알아서 하겠다는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통제당하고 있는 병사들을 생각해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윤태민 2소대장의 궤변이었다.
“2소대장님, 그런 얘기가 아니지 않습니까.”
“좋습니다. 그래서 4소대장은 그렇게 원칙을 잘 지켰습니까?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어김없이 원칙을 지키며 살았습니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았냐 말입니다. 아니면 매분 매초마다 완벽한 사람이었습니까?”
윤태민 2소대장의 다그침에 홍일동 4소대장은 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
윤태민 2소대장이 기분 나쁘다는 얼굴로 말했다.
“4소대장, 적당히 합시다. 적당히······. 그렇게 막 애들을 통제한다고 해서 좋은 소대장이 아닙니다. 잡을 때는 확 잡더라도, 풀어줄 때는 또 풀어주고 그럽시다. 아, 진짜······ 내가 이런 소릴 안 하려고 했는데. 이러니까, 3사 출신이라는 소리를 듣는 겁니다. 융통성 없이 움직이니 말입니다. 4소대장은 자신이 군 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만약 그랬다면 정말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갑자기 그다음 날부터 이민식 중대장이 홍일동 4소대장을 갈구기 시작했다.
“4소대장.”
“네?”
“일 처리 자꾸 이런 식으로 할 거야?”
“뭐가······ 말씀입니까?”
“뭐가? 아니, 이 사람 말 참 이상하게 하네. 중대장이 잘못했다고 지적을 하면 반성의 기미가 보여야지 뭐가?”
“죄송합니다. 중대장님.”
“어허, 내가 4소대장을 좋게 봤는데 안 되겠어.”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윤태민 2소대장이 나섰다.
“중대장님. 이해하십시오. 3사 출신이지 않습니까.”
“아, 그런가?”
그때부터 3사 출신이라는 이유로 노골적으로 무시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무시당하는 홍일동 4소대장에게 김진수 1소대장과 박윤지 3소대장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