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48)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82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48)
“박 일병님.”
“왜?”
“내일 말입니다. 구막사 청소한다고 하는데 저희도 합니까?”
“구막사? 시발, 뜬금없이 뭔 소리야. 구막사를 왜 청소해.”
“아니, 3소대 구막사 청소를 한다고 합니다.”
“3소대가? 진짜야?”
“네. 여기 정규가 조금 전에 3소대 애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박기식 일병이 잠깐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3소대에서? 일단 기다려 봐.”
박기시 일병이 후다닥 내무실을 나가 3소대로 뛰어갔다. 그로부터 약 5분이 흐른 후 박기식 일병이 인상을 쓰며 들어왔다.
“와, 시발. 갑자기 무슨 구막사 청소를 한다고 그러지?”
박기식 일병이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듣고 한진태 이병이 바로 물었다.
“그럼 저희도 하는 겁니까?”
“아니, 몰라······. 그리고 혹시라도 우리에게도 그 지시가 떨어질 수 있으니까. 조용히 있어. 아니, 훈련한다고 그래.”
“네, 알겠습니다.”
송윤태 상병이 뒤늦게 나타났다.
“야, 기식이! 뭐가 훈련이야?”
“어? 송 상병님. 아니, 그게 말입니다. 내일 구막사 청소한다고 그러지 뭡니까?”
“뭐? 청소?”
갑자기 송윤태 상병의 눈이 엄청 커졌다.
“누가? 왜?”
“아니, 3소대 애들이 한다고 하는데 중대장님 지시라고 합니다. 창고로 다시 사용하겠다고 말입니다.”
“다시 창고로 사용한다고?”
“네. 그럼 우리도 해야 하는 겁니까?”
“지시 내려왔어?”
“그건 아닙니다.”
“그럼 아니겠지. 아무튼 알았어.”
송윤태 상병이 잔뜩 인상을 구기며 자신의 자리로 갔다. 자리에 털썩 앉으며 고민했다.
‘시발, 갑자기 왜 청소야. 빨리 처리해야 하는데······.’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기회라면 내일 아침 점호가 끝나고 아침 식사를 할 때였다.
‘내일이다. 내일 처리해야지.’
송윤태 상병이 생각을 정리했다. 그렇게 다음 날 아침이 밝아오고, 송윤태 상병은 똥 마려운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했다.
‘하아, 시발. 설마 아직 들키지는 않았겠지?’
그렇게 초초한 시간이 흐르고, 아침식사를 위해 다들 움직였다. 송윤태 상병이 그대로 앉아 있자 박기식 일병이 물었다.
“식사하러 안 가십니까?”
“어, 나는 됐어. 그냥 애들보고 우유나 하나 챙겨서 가지고 올라오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박기식 일병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침을 먹으러 식당으로 이동했다. 혼자 남은 송윤태 상병은 내무실을 빠져나와 서둘러 구막사 쪽으로 향했다.
“어? 송 상병님 어디로 갑니까?”
“아, 나 뭐 좀 가지러······.”
“송 상병님. 식사 안 하십니까?”
“다른 볼일이 있었어······.”
복도를 지나가다가 다른 소대 애들을 만나고 인사를 나눴다. 그럴 때마다 송윤태 상병은 불안한 눈빛으로 대꾸했다.
“아침부터 군 생활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닙니까? 아침을 거를 정도로 말입니다.”
“야이씨, 나도 곧 있음 병장인데 그래도 열심히 해야지.”
“와, 대박. 송 상병님 입에서 그런 말이······.”
“이야, 송윤태. 너 진짜 너냐?”
“무슨 말입니까?”
“아니, 무슨 윤태 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됐습니다. 어서 식사나 하러 가십시오.”
“그래, 아무튼 너 다시 봤다.”
다른 소대 고참이 피식 웃으며 식당으로 이동했다. 그들이 식당으로 다 갈 때까지 기다린 송윤태 상병이 서둘러 건물을 빠져나갔다. 주위를 잔뜩 경계하며 구막사에 도착을 했다.
“아무도 없지?”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송윤태 상병이 구막사로 들어갔다. 그리고 재빨리 쇼핑백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 안에 든 소주를 꺼냈다.
“다행히 그대로 있네. 빨리 가지고 나가서 다른 곳에 숨겨야 해.”
송윤태 상병이 소주를 챙겨서 나가려다 잠시 멈칫했다.
“아이씨, 이대로 가면 들키려나?”
잠깐 고민을 하던 송윤태 상병은 소주를 건빵주머니에 욱여넣고 구막사를 빠져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옆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여기서 뭐 하냐?”
송윤태 상병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그 옆에는 김호동 하사가 서 있었다.
“추, 충성······.”
“너 아침부터 여기서 뭐 하냐고.”
“저, 그게······.”
송윤태 상병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렸다. 손이 자연스럽게 소주가 든 오른쪽 건빵주머니로 향했다. 김호동 하사의 시선도 오른쪽 건빵주머니로 향했다. 그곳이 생각보다 불룩하게 나와 있었다.
“너, 거기 주머니에 든 것은 뭐지?”
“아, 이게 말입니다.”
송윤태 상병이 뭔가 변명을 하려고 하는데 김호동 하사가 피식 웃었다.
“야, 송윤태.”
“상병 송윤태.”
“너 그거, 소주지?”
“아, 아닙니다.”
“아니긴, 볼록한 것으로 보아 딱 봐도 병 같은데. 그것도 소주병!”
“······.”
“꺼내봐.”
“그, 그것이······. 안 됩니다.”
“안 돼? 왜 안 돼?”
“······.”
송윤태 상병은 무슨 변명이라도 할 요량으로 눈알을 굴렸다. 하지만 딱히 여기서 벗어날 변명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꺼내봐.”
“아, 안 됩니다.”
“이 새끼가, 지금 장난하나! 꺼내라!”
“아, 안 되는데······.”
송윤태 상병이 거의 울먹이며 몸을 떨었다. 김호동 하사가 다시 한번 소리쳤다.
“송윤태!”
“기, 김 하사님······.”
“송. 윤. 태!”
“······하아.”
송윤태 상병은 끝났다는 표정으로 건빵주머니에서 소주를 꺼냈다. 그것을 발견한 김호동 하사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야, 너 미쳤구나. 부대에 소주를 가지고 들어와? 너 아주 재미있는 놈이구나.”
“김 하사님. 이거 제가 그런 것이 아니라······.”
딱 현장을 걸렸는데도 송윤태 상병은 발뺌을 하고 있었다. 김호동 하사가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좋아, 네가 그런 것이 아니야. 그런데 네 손에 들린 것은 뭐지?”
“······.”
“봐봐, 소주병이잖아. 그것도 뚜껑을 따지도 않았네. 설마 물이라고는 하지 않겠지?”
“그, 그게 말입니다.”
송윤태 상병이 바로 돌발행동을 했다. 그는 한쪽 수풀이 우거진 쪽으로 병을 던져 버렸다.
“제 것이 아니지 말입니다.”
그런데 김호동 하사는 당황하지도 않고, 피식 웃었다.
“오오, 송윤태. 네가 아니야? 잔머리 좀 썼나 본데······.”
김호동 하사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흔들었다.
“그런데 말이야. 미안해서 어떻게 하냐. 너 여기 들어가서 쇼핑백 안에 있는 소주병을 꺼내는 장면과 나오는 장면까지 다 찍었는데.”
그 순간 송윤태 상병의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아, 시발······.’
빼도 박도 못할 증거에 송윤태 상병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김호동 하사는 송윤태 상병을 면담실로 데려가 앉혔다.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
김호동 하사가 면담실을 나가자 송윤태 상병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시발, 미치겠네. 도대체 거기를 어떻게 알고 왔지?”
송윤태 상병은 진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도대체 그곳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몰랐다.
비록 구막사이지만 이미 허름한 곳이고, 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 때문에 병사들의 접근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한 송윤태 상병이었다. 또한 병장들이 짱박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 곳이라는 것을 알기에 어지간해서는 간부들은 오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곳에 숨겨둔 것이었는데······.”
물론 원래부터 그곳에 숨겨둔 것은 아니었다. 송윤태 상병도 다른 곳에 숨겨뒀다. 그런데 앞서 조인범이 걸리면서 혹시나 자신에게 불똥이 튈 까 봐, 발견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곳을 찾다 보니 그곳이었다.
때마침 상황도 맞았던 것이 새로운 중대장이 오면서 훈련이 빡세졌고, 그런 와중에 괜히 책 잡히지 않으려고 구막사로 병사들이 가지 않은 것도 한몫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정말 완벽하게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걸리고 나니, 답이 없었다.
“아이씨, 사진이라도 안 찍혔으면 어떻게든 발뺌을 하는 건데······. 뭐라고 얘기하지? 말해야 하나?”
송윤태 상병이 잔뜩 인상을 구기며 생각했다. 그러다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안 돼, 말하면 큰일 나. 2소대장이 절대 날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렇게 홀로 중얼거리다가 또 지금 상황에 침묵이 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가만, 내가 또 입을 꾹 다물고 말을 하지 않으면 또 어떻게 되지? 이걸 누구 거라고 해? 그냥 후임 거라고 둘러대? 하아, 아니야. 괜히 말 잘못했다간 조인범 상병처럼 엿 될 수 있는데······.”
송윤태 상병은 제 머리를 벅벅 긁어댔다.
그 시각 김호동 하사는 오상진을 만나서 사진 찍은 것을 보여줬다.
“증거는 확실히 확보했네.”
“네.”
오상진은 사진을 다시 한번 훑었다. 적당히 봐도 확실한 증거에 엮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정도 증거라면 송윤태 상병이 확실하게 발뺌을 하지 못할 것이다.
“송윤태 상병은 뭐라고 해?”
“아니라고 발뺌을 하더니, 사진을 보여주니까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 자신이 가져온 것이라고 시인을 하지는 않았지?”
“네. 그런데 이건 시간 문제지 않습니까?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제가 확실하게 이실직고하게 만들어내겠습니다.”
오상진은 김호동 하사의 의지 넘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병원에 있을 때 의기소침한 모습에 군 생활을 접을 생각까지 하자 많이 안타까웠다.
그런데 확실히 뭔가 의욕이 생기니 사람이 확 달라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일을 김호동 하사에게 바로 맡길 수는 없었다.
“김 하사.”
“네.”
“미안한데. 이 일은 우리 4소대장에게 먼저 맡겼으면 하는데.”
“4소대장이라면······ 홍일동 소위 말씀입니까?”
“그래.”
“아, 홍 소위가 제대로 할지 모르겠습니다. 병사들에게는 좋은 소대장인 것 같은데······.”
그 말인즉, 좀 물렁물렁하고 야무지지 못하다는 뜻이었다. 오상진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자네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어. 그래도 절차라는 것이 있잖아. 4소대에서 벌어진 일을 4소대장을 건너뛰고 자네에게 맡길 수는 없잖아. 아무리 자네가 이걸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그렇지?”
“아, 예에. 저는······.”
김호동 하사는 의욕이 앞서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았다.
“알아, 알고 있어. 만약 4소대장이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으면 내가 직접 나설 거야. 그때는 중대장인 내가 직접 자네에게 맡길 테니까. 그 점은 걱정하지 마. 중대장인 날 믿어.”
“네, 알겠습니다. 중대장님.”
“아무튼 김호동 하사 정말 고생 많았어.”
김호동 하사가 씨익 웃었다.
“중대장님, 혹시 말로만······ 입니까?”
“뭐? 원하는 거라도 있어?”
“다름이 아니라, 지난번에 부대 복귀하면 중대장님께서 거하게 소주 한잔 사 주시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그랬나?”
오상진이 짐짓 모르는 척 말을 했다. 그러자 김호동 하사가 바로 서운한 얼굴이 되었다.
“어? 잊으셨습니까? 너무 하십니다.”
“미안해. 이번 일도 있고 그러니까, 행보관하고 같이 소주 한잔하자고.”
“네에? 행보관님하고 같이 말입니까?”
“왜?”
“에이, 행보관님은 빼고, 저희 둘만 하시죠.”
그런 김호동 하사의 말에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알았어, 단둘이 술 한잔하자고.”
“약속하신 겁니다.”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