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47)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81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47)
“이병 임정규.”
“너, 인마, 이번에는 제대로 버려라.”
“네?”
임정규 이병이 놀란 눈이 되었다. 송윤태 상병이 바로 인상을 찡그렸다.
“뭐야. 한 번도 안 해본 새끼처럼 놀라고 지랄이야.”
“아, 아닙니다.”
“너, 이거 똑바로 버려라. 지난번처럼 돌아다니다가, 창고 가서 짱박히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임정규 이병이 슬쩍 소주병을 받아서 건빵 주머니에 넣었다. 그 모습을 보며 송윤태 상병이 말했다.
“야!”
“이병 임정규.”
“너 그거 들고 다니다가 괜히 걸리지 말고, 그거 버리고 밥 먹으러 가. 알았어?”
“어······.”
“새끼야, 알았냐고!”
“아, 알겠습니다.”
송윤태 상병이 나갔다. 그런데 임정규 이병은 뭔가 촉이 왔다. 그의 시선이 빈 소주병으로 향했다.
‘빈 소주병은 나에게 있고, 점심시간에 술이 댕기겠지. 그렇다면······.’
임정규 이병의 고개가 바로 올려졌다. 느낌상 새로운 소주를 찾을 것 같았다.
‘어디로 갈까? 어디로 가지?’
임정규 이병은 잠깐 고민을 하다가 재빨리 내무실을 나가 두리번거렸다. 그때 저 멀리 건물을 빠져나가는 송윤태 상병 뒷모습이 보였다.
임정규 이병은 송윤태 상병이 빠져나간 곳으로 뛰어갔다.
송윤태 상병은 주위를 확인하며 천천히 수풀 쪽으로 이동했다. 그곳에 들어서자 저 멀리 허물어져 가는 막사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
예전 이곳에 건물을 짓기 전에 잠깐 머물렀던 막사였다.
“아무도 없지?”
송윤태 상병은 몇 번이고 확인을 하며 인적이 드문 곳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을 몰래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 바로 임정규 이병이었다.
‘어? 저쪽은 구 막사가 있는 곳인데······.’
임정규 이병이 자대 배치를 받고 한 달 후쯤, 바로 위 고참인 최진우 이병으로부터 구 막사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구 막사가 한동안 창고로 쓰이다가 1년 전부터 그냥 폐막사가 되어버렸다고 했지.’
임정규 이병이 잠깐 생각을 하다가 어느새 송윤태 상병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크, 빨리 쫓아가야겠다.”
임정규 이병이 서둘러 송윤태 상병의 뒤를 쫓아갔다. 구 막사가 보이고 임정규 이병이 어느 수풀에 몸을 숨겼다.
일단 구 막사 근처까지는 왔지만 안까지는 들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일단 숨어서 나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잠시 후 구 막사에서 송윤태 상병이 나왔다. 그의 손에는 소주병이 들려 있었다.
‘역시······. 저 안에 소주가 있다.’
임정규 이병의 눈이 번쩍하고 떠졌다. 일단 송윤태 상병이 지나가고 난 후 임정규 이병이 조심스럽게 구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으, 냄새야.”
창고가 버려진 지 오래되어서 그런지 여기저기 썩은 냄새며 뭔가 구리구리한 냄새가 났다. 창문은 이미 깨져 있고, 밤이면 꼭 귀신이 나올 것같이 적막했다.
솔직히 여기서 뭔가를 찾는다는 것이 께름칙했다. 그런데 정말 웃기게도 구석에 여기와 어울리지 않은 쇼핑백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에이 설마 저기에 두지는 않았겠지.”
일단 임정규 이병은 의심부터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렇게 눈에 딱 보이는 곳에 놨다는 것이 조금 이상했다.
“그래도······.”
임정규 이병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가가 쇼핑백을 열어 확인했다. 진짜 어이없게도 그 안에 아직 까지 않은 소주병이 하나 들어 있었다.
“와, 진짜······. 여기다가 숨겨 둔 거야?”
임정규 이병은 한 병 남은 그 소주를 어떻게 할까 고민을 했다.
“그냥 김호동 하사님께 보고하는 것이 낫겠다. 괜히 들고 나갔다가 내가 오히려 뒤집어쓸 수 있으니까.”
임정규 이병은 다시 원위치를 만들어 놓은 후 허겁지겁 김호동 하사를 찾아갔다.
김호동 하사는 오상진을 만나고 있었다.
“그래서 소주병은 확인했어?”
“네. 여기······.”
김호동 하사가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구 막사 안에 있던 소주와 쇼핑백을 확인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했어.”
“아닙니다. 그보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말씀하시면 제가 지금 가서 잡아 오겠습니다.”
오상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지금 이거 가지고 송윤태 상병을 닦달해 봤자 인정하지 않을 거야.”
“네? 아니, 왜 그러십니까? 이미 사진도 있는데 말입니다. 증거가 명확하지 않습니까.”
“증거가 명확하긴 하지만 무슨 수로 증명할 거지? 아니면 지문 감식할 거야?”
“안 됩니까?”
“지문 감식을 어디에다가 요청하려고? 헌병대에게? 아니면 외부 경찰에게? 아마 난리가 날걸.”
“아, 맞다. 그렇다고 술 먹을 때 들이닥칠 수도 없고 말이죠. 그냥 몰래 지켜봅니까?”
“지난번 조인범 상병 사건도 있는데 송윤태 상병이 대놓고 마시겠어? 몰래몰래 마시겠지. 그것도 24시간 감시하는 것도 웃기지 않아.”
오상진의 말에 김호동 하사는 인상을 쓰며 머리를 긁적였다.
“어떻게 하죠?”
“으음······. 방법이 하나 있긴 한데.”
“방법이 있습니까?”
“일단은 송윤태 상병이 현장을 다시 찾게 만들어야지.”
“네? 무슨 수로 말입니까? 술을 다 마실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그것도 방법이긴 한데······. 그냥 소문 하나 내지.”
“소문······ 말입니까?”
“그래, 이번에 구 막사를 정리해서 다시 창고로 활용한다는 소문 말이야. 일 년 전에 창고로 이용했다고 들었는데.”
“아하, 그거 괜찮은 방법입니다. 내가 애들 동원에서 구 막사 정리한다고 하면 송윤태 상병이 뛰어오겠죠.”
“그렇지. 가능하면 다른 소대를 동원해서 청소해.”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다른 소대에서 청소하다가 소주를 발견하면 난리 나겠습니다.”
“그렇지.”
“네. 그럼 제가 애들 동원에서 잘 정리하겠습니다.”
김호동 하사가 경례를 하고는 중대장실을 나섰다. 그리고 그날 저녁 김호동 하사는 3소대로 찾아갔다.
“어이, 송찬우.”
“상병 송찬우.”
“너 내일 할 일 있냐?”
“내일 딱히 할 일 없지 말입니다.”
“그래? 그럼 내일 3소대 애들 데리고 저기 구 막사 정리 좀 해라.”
“구 막사 말입니까?”
“그래. 중대장님께서 지금 구 막사를 창고로 다시 사용하실 모양이야. 그러니 그쪽으로 가는 길 풀들 정리하고, 길도 새롭게 다져놔.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송찬우 상병의 얼굴은 못마땅했다. 괜히 일을 시키는 것 같아, 맘에 들지 않았다.
“왜? 하기 싫어?”
“아닙니다.”
송찬우 상병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렇지만 거부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행보관님께는 말씀해 놓을 테니까. 알았지! 그리고 참고로 이 일은 중대장님의 지시다.”
“네.”
“그래, 가 봐.”
“충성.”
송찬우 상병이 경례를 하고는 3소대로 갔다. 3소대 내무실로 들어간 송찬우 상병이 잔뜩 인상을 구겼다.
“하아, 시발······.”
지나가던 홍인규 병장이 송찬우 상병을 봤다.
“야, 송찬우.”
“상병 송찬우.”
“왜 그래? 무슨 일인데?”
“내일 구 막사 정리하라고 합니다.”
“갑자기? 거기 1년이나 사용하지 않았잖아.”
“그러니까, 말입니다. 에이씨, 아무튼 노는 꼴을 못 봅니다. 진짜!”
“킥킥킥, 행보관님이 항상 말씀하시잖아. 군인이 노는 것은 전투력 손실이라고 말이야. 어떻게든 간부들은 우리들이 노는 꼴을 못 봐. 아무튼 내일 애들 잘 데리고 정리해.”
“송 병장님?”
“나? 에이, 굳이 나까지 해야 되나? 그러지 않아도 되잖아.”
“하긴 원래부터 하실 생각조차 없으셨지 말입니다.”
“그렇지. 역시 우리 송찬우! 내 맘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있지?”
송찬우 상병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네네. 내일 애들 데리고 잘 정리하겠습니다.”
“야, 삐졌냐?”
“아닙니다.”
“삐졌네.”
“진짜 아닙니다.”
“아니긴······. 야, 그러지 말고, 나 좀 봐주라. 너까지 이러면 나는 어떻게 하냐? 말년이다, 말년! 이제는 작업은 빠질 때도 되지 않았냐?”
“누가 뭐라고 합니까. 그렇게 하시란 말입니다.”
막말로 홍인규 병장은 조인범 상병이 있을 때 솔직히 고참 대우를 받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조인범 상병이 없으니, 지금이라도 고참 대우를 받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그래, 그래. 그럼 부탁해.”
“네.”
송찬우 상병이 내무실로 들어가고, 대기하고 있던 소대원들에게 말했다.
“야, 내일 구 막사 정리해야 하니까, 다들 준비하고 알았냐!”
“정리? 그러니까, 내일 구 막사를 청소한다는 말입니까?”
강인호 상병이 바로 말했다.
“······.”
송찬우 상병은 대꾸 없이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내일 좀 편히 쉬나 했더니······.”
“간부들이 우리를 편히 쉬게 두겠습니까. 다 그렇지 말입니다.”
그렇게 3소대원들이 내무실에서 구시렁거리고 있을 때 김호동 하사는 임정규 이병을 몰래 따로 불렀다.
“정규야.”
“이병 임정규.”
“음, 내일 말이야. 구 막사 정리 들어갈 거다.”
“네?”
“중대장님께서 내린 지시야. 그러니까, 너는 너희 내무실 4소대로 가서 슬쩍 얘기를 꺼내란 말이야. 알겠어?”
“송 상병에게 말입니까?”
“아니, 직접 말고. 그냥 3소대에서 하는 말을 들었다고 하면서 얘기를 슬쩍 하란 말이지.”
“······.”
임정규 이병이 살짝 꺼리는 눈치였다.
“왜? 못하겠어?”
“그걸 제가 말해도 되는 겁니까? 그렇다가 들키면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내가 아까 말했잖아. 3소대에서 들었다고 말을 하고 슬쩍 얘기를 꺼내놓으라고 말이야.”
“그래도······.”
“야, 그럼 됐고, 너희 소대에서 제일 입이 싼 녀석이 누구냐?”
“박기식 일병입니다.”
“그래. 박기식 일병 귀에 살짝 들어가게 말하면 되잖아.”
“아, 네에.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임정규 이병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그 모습을 보고 김호동 하사가 혀를 찼다.
“쯧쯧, 저래 가지고 시키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임정규 이병이 내무실로 들어갔다. 뭔가 잔뜩 긴장한 얼굴이 티가 났다. 박기식 일병이 나타난 임정규 이병을 보고 바로 입을 털었다.
“야, 임정규.”
“이, 이병 임정규.”
“너 어디 갔다 와. 이등병 새끼가 보고도 없이 혼자 다녀도 되는 거야?”
“화장실에 다녀왔습니다.”
“화장실을 가더라도 보고를 하고 가란 말이야. 알겠어!”
“네, 알겠습니다.”
임정규 이병이 힘차게 말했다. 임정규 이병이 바로 자리에 앉았다. 그러다가 옆에 있던 한진태 이병에게 슬쩍 말했다.
“저기 한 이병님.”
“왜?”
“내일 저희도 구 막사 청소합니까?”
“그게 뭔 소리야?”
“아니, 화장실 다녀오는데 옆 소대에서 내일 구 막사 정리한다고 잔뜩 짜증을 내고 있었습니다.”
“3소대에서? 구 막사 청소를?”
“네.”
그때 박기식 일병이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들어왔다. 담배 냄새가 확 풍겼다. 그런데 박기식 일병이 임정규 이병과 한진태 이병이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박기식 일병이 참지 못하고 버럭했다.
“야, 임정규, 한진태.”
“이병 임정규!”
“이병 한진태.”
“야 이 새끼야. 이등병 찌끄래기들이 어디서 잡담을 하고 그러래.”
“······.”
임정규 이병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때 한진태 이병이 용기를 내서 박기식 일병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