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43) >
인생 리셋 오 소위! 077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43)
다음 날 홍민우 작전과장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채로 출근을 했다.
“아, 머리 아파.”
홍민우 작전과장은 원래 윤태민 소위와 그렇게까지 술을 마실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윤태민 소위가 자꾸만 속을 긁었다. 그 짜증을 참아내기 위해 술을 한 잔 두 잔 먹다 보니 주체할 수 없이 마시게 된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윤태민 소위가 먼저 쓰러진 것이었다.
“내가 다시는 그 녀석과 술을 마시나 봐라.”
홍민우 작전과장이 자리에 앉았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들어왔다. 바로 C.P병이었다.
“과장님 출근하셨습니까?”
“어. 왜?”
“대대장님께서 찾으십니다.”
“그래? 알았다.”
홍민우 작전과장이 대답을 한 후 손바닥에 대고 후 하고 입김을 불었다. 살짝 술 냄새가 나는 듯했다. 하지만 그리 심한 편은 아니었다.
“괜찮겠지.”
홍민우 작전과장은 다이어리를 챙겨서 대대장실로 갔다. C.P실을 통해 대대장실로 들어간 홍민우 작전과장은 송일중 대대장이 아침부터 난을 손질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대대장님.”
송일중 대대장이 고개를 돌려 홍민우 작전과장을 확인했다.
“어, 왔나? 자리에 앉지.”
“네.”
“이놈의 난은 매일같이 손질을 해줘야 해. 귀찮아 죽겠네.”
“매일 닦아주는 만큼 예쁘게 잘 크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래서 내가 귀찮아도 하고 있잖아.”
송일중 중령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 웃음의 의미는 조만간 좋은 소식이 올 거라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저렇게 들떠 있었다. 송일중 대대장은 홍민우 작전과장을 앉혀놓고 10분이 넘도록 난을 닦았다.
“후우······.”
한숨을 내쉰 송일중 중령은 마른 수건을 한쪽에 내려놓은 후 자리에 앉았다.
“요새 뭐, 별일 없지?”
“네. 별일 없습니다.”
“그래. 그런데······.”
송일중 대대장이 코로 냄새를 맡았다. 살짝 인상을 쓰며 말했다.
“이거 뭔 냄새야? 혹시 어제 술 마셨나?”
“아, 네에······.”
“이야, 작전과장 팔자 좋아. 술 퍼마실 여유도 있고 말이지.”
“죄송합니다.”
“죄송할 필요가 있나. 자네가 이유도 없이 술을 마셨을 리 없고 말이지. 뭔가? 무슨 일 있어?”
홍민우 작전과장은 좀 더 알아본 후 대대장에게 보고를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리니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제 윤태민 소위와 마셨습니다.”
“윤 소위? 그 녀석과 마셨어?”
“네. 오 대위에 관한 얘기를 나눴습니다.”
“오 대위에 관한 얘기? 무슨 얘기지?”
“아무래도 오 대위에 대한 건수를 잡은 것 같습니다.”
“건수라······.”
송일중 대대장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의 눈빛은 빨리 말을 하라는 듯 재촉했다.
“아, 네에. 그것이 개인사라서 정확히 말씀을 드릴 수 없지만, 잘하면 오 대위가 제 발로 4중대를 나가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호, 그래?”
“네. 하지만 좀 더 확인이 필요합니다.”
“어쨌거나, 그런 건수를 잡았다는 거 아니야. 그걸로 오상진 대위를 엮을 수 있고 말이지.”
“일단은 그렇습니다.”
“음, 좋아. 진즉에 이렇게 나왔어야지. 이렇듯 알아서 척척 하니 얼마나 좋아. 난 작전과장을 믿고 있었어. 하하하.”
송일중 대대장이 크게 웃었다. 사실 오늘 홍민우 작전과장을 따로 부른 것은 자신이 조만간 이곳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래도 홍민우 작전과장을 함께 데리고 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 넌지시 타일러서 잘 얘기할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홍민우 작전과장과 평생 안 볼 사이도 아니었다. 자신이 먼저 올라가 기반을 잡은 후 홍민우 작전과장을 불러들일 생각이었다. 어쨌든 홍민우 작전과장만 한 사람은 자기 밑에 아직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말을 미리 얘기해 주지 않고, 닥쳐서 말을 해주면 홍민우 작전과장 입장에서는 버림받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미리 따로 불러서 얘기를 해줄 심산이었다.
그런데 오상진 얘기를 하니 송일중 대대장의 생각이 좀 달라졌다.
‘그래. 오상진 오고 나서 좀 마음에 안 들기는 했지만 작전과장만 한 사람도 없지. 그래, 내가 데려가야지.’
홍민우 작전과장을 보는 송일중 대대장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 눈빛을 읽은 홍민우 작전과장은 대대장실을 나오자마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후우······. 이제 됐다!”
홍민우 작전과장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송일중 대대장이 어쩌면 자신과 손절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말이다.
그런데 방금 눈빛을 보고 알았다. 언제가 자신을 신뢰하던 그 시절의 눈빛을 본 것 같았다.
지금 상황이라면 자신을 버리지는 못할 것 같았다. 홍민우 작전과장도 송일중 대대장 덕분에 위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상진을 확실하게 내칠 필요가 있었다.
“좋아.”
홍민우 작전과장의 표정이 확 바뀌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수화기를 들어 4중대장 오상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신보안 4중대장 오상진 대위입니다.
수화기 너머 오상진의 음성이 들려왔다. 홍민우 작전과장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4중대장, 작전과장이네.”
-충성. 네, 과장님.
“혹시 자네 오늘 시간 괜찮나?”
-혹시 무슨 일인지 여쭤봐도 됩니까?
“긴히 할 말이 있어서 그러네. 긴히!
-아, 네에. 알겠습니다.
“내가 문자로 장소를 보내줄 테니까. 거기로 오게, 꼭!”
그렇게 홍민우 작전과장이 얘기를 하는데 오상진이 입을 열었다.
-과장님. 약속 장소는 제가 정하면 안 됩니까?
“자네가? 그래. 알았네. 장소 정하면 문자로 보내주게.”
-알겠습니다.
홍민우 작전과장이 피식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오늘 무슨 얘기를 할 줄 알고 약속 장소를 자기가 정한다고 그래. 내가 뭐, 팔자 좋게 술이라도 마시려고 그러는 줄 아나. 재미있는 친구일세.”
그 시각 오상진도 전화를 끊고 생각에 잠겼다.
“으음, 분위기상 아무래도 그 얘기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한다?”
오상진이 살짝 고민을 하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확인을 해보니 장석태 대위에게 온 전화였다.
“장 대위님이네.”
오상진이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장 대위님 무슨 일이십니까?”
-자네도 참 너무하는군. 아니, 거기에 내려가면 아침저녁으로 연락을 해주기로 하지 않았나.
“네? 제가 말입니까?”
-아니, 최소한으로 말이지. 우리가 함께한 세월이 있는데 그 정도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왜 그러십니까. 저 바빠서 소희 씨에게도 그 정도로 연락 못 합니다.”
-그래? 아무튼 그래도 그렇지. 내려가서는 깜깜무소식이야.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희소식은 무슨! 내가 적지에 던져놓고 얼마나 노심초사인줄 알아!
“그래도 장 대위님께서 주신 자료 때문에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뭐, 도움이 되었다고 하니. 다행이네. 그건 그렇고 오늘 시간 좀 내!
“오늘 말입니까?”
-그래. 오늘 은지 씨하고 오 대위 보기로 했거든.
“어······. 오늘 저 약속 잡혀 있는데 말입니다.”
-에이, 중요한 것이 아니면 캔슬해. 지난번에 조인범 상병과 수향옥 관련해서 인터뷰 할 것이 있다고 했단 말이야.
“하하하. 결론은 운전기사입니까.”
-야! 겸사겸사 얼굴보는 것이지. 너 자꾸 나에게 이럴 거야? 난 이미 될 거라고 얘기를 했는데.
아직도 장석태 대위는 박은지에게 꽉 잡혀 있었다. 그리고 박은지가 수향옥과 관련해서 물어볼 것이 있다고 하니 취재에 대해 보충이 필요할 것만 같았다. 오상진은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오실 때 우리 소희 씨도 데리고 오십시오.”
-오, 그거 괜찮네. 알았어. 그렇게 할게. 그럼 우리 오랜만에 술 한잔하는 거야?
“아, 그전에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뭐? 설마 술은 안 된다는 거야?
“그건 아닙니다. 다만, 중간에 잠깐 불청객이 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불청객? 무슨 일인데?
“그것이······.”
오상진은 본인이 생각했던 얘기를 쭉 했다. 모든 얘기를 들은 장석태 대위가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와, 우리 오 대위. 참 대단해.
“네?”
-아니, 그게 말이야. 솔직히 아니라고 해명할 수 있잖아.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어?
“제가 너무한 겁니까?”
-그건 아니고. 그냥 대단하다고······. 이래서 내가 오 대위가 맘에 든다니까. 눈에는 눈이고, 이에는 이지. 어디 같은 군인들끼리 치사하게 그렇게 나와. 우리도 치사하게 똑같이 엿 먹여 줘야지. 알았어, 걱정하지 말고 때 되면 불러.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은 통화를 마치고 곧바로 한소희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한참 후에 전화를 받았다.
-네, 상진 씨.
“오늘 장 대위하고 은지 씨 만나기로 했어요.”
-오, 그래요? 그런데 갑자기 왜요?
“은지 씨가 인터뷰 할 것이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겸사겸사 장 대위님도 함께하고요.”
-으음, 그럼 술 한잔하겠네요.
“네.”
-이잉, 나도 끼면 안 돼요?
“그렇지. 않아도 소희 씨 데리고 오라고 했어요.”
-어멋! 역시······. 알았어요. 저도 준비하고 있을게요.
“그 준비 말인데요. 은지 씨······.”
-네?
“그거 있잖아요.”
-그것이 뭔데요?
“교복 말이에요. 그거 한 번 더 가져오면 안 돼요?”
-어머! 미쳤나 봐. 넷이 만나는데 그거 입고 있으라고요?
“아니, 그게 아니라요. 아무튼 한 번 딱 입어줘요. 소희 씨가 내 여자 친구라는 것을 증명해야 해서요.”
-어머나 웃긴다. 그걸 꼭 증명해야 한대요?
“미안해요. 자세한 것은 장 대위님 만나서 들어요.”
-일단 알았어요. 그럼 조금 이따가 봐요.
“그래요.”
오상진이 환하게 웃으며 말을 한 후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길게 한 숨을 내쉬었다.
“후우······.”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잠깐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문이 열리며 김진수 1소대장이 들어왔다.
“어, 1소대장. 어쩐 일이야?”
“충성! 오늘 훈련과 그 외 보고할 일이 있습니다.”
“그래. 보고해 봐.”
“네!”
김진수 1소대장은 각 소대 오늘 근무와 부대 주변 작업에 관한 것 등을 보고했다.
“······이렇게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래, 알았어. 그렇게 진행하도록 해.”
“네.”
“그보다 2소대장은 지금 뭐 해?”
오상진은 무심한 듯 슬쩍 물었다. 김진수 1소대장이 바로 말했다.
“2소대장 말입니까? 잠깐 자리를 비운 것 같습니다.”
“그래? 3소대장은?”
“3소대장은 자리에 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오상진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러다가 김진수 1소대장을 보며 말했다.
“1소대장.”
“네. 중대장님.”
“다른 것은 아니고 2소대장하고 3소대장 둘만 같이 있지 않도록 자네가 좀 신경을 써줘.”
“네?”
김진수 1소대장은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아니, 2소대장이 3소대장에게 자꾸 치근대는 것 같아서 말이지. 그래서 1소대장이 조금 신경을 써 달라는 것이지.”
“아, 예에. 알겠습니다.”
“1소대장도 솔직히 느끼고는 있지?”
오상진의 물음에 김진수 1소대장이 잠깐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