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41)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75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41)
“네.”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거지만. 절대 두 사람에게 휘둘리지 마. 이민식 대위랑 잠깐 만났던 부분은 아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 부분은 담담하게 이겨 는 것이 가장 좋아. 그걸 덮기 위해서 다른 실수를 반복하면 또 다른 일로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거야.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또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을 하고.”
“네, 중대장님.”
“그래. 이만 나가봐.”
박윤지 3소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중대장실을 나가려고 했다. 오상진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가 몸을 돌려 막 나가려는 박윤지 3소대장을 불렀다.
“3소대장.”
“네?”
“중대장이 미리 못 도와줘서 미안해.”
“아닙니다, 중대장님.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충성.”
중대장실을 나온 박윤지 3소대장이 문을 닫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솔직히 오상진이 딱히 해준 것은 없었다. 하지만 최소한 박윤지 3소대장이 힘들었던 군 생활을 이해해 주고, 감싸주는 오상진을 보며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울지마. 할 수 있어. 박윤지 힘내자. 좀 더 버텨보자.”
애써 눈물을 훔치고는 주먹을 쥐어 파이팅 자세를 취했다. 그때 눈치 없이 이민식 대위의 문자가 날아왔다.
지잉.
-박 소위. 어떻게 마음의 준비는 내렸어?
그런 이민식 대위의 문자를 보면서 의례적으로 답 문자를 보냈다.
-조금 더 생각을 시간을 주십시오.
-오래는 못 기다려. 빨리 결정하라고.
마치 자신을 걱정하는 듯한 이민식 대위가 마치 악마처럼 느껴지는 박윤지 3소대장이었다.
지잉, 지잉.
박윤지 3소대장의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그녀는 문자를 확인하고는 돌로 내려놨다.
-박 소위 결정 내렸어?
-왜 이렇게 답이 없어? 어떻게 할 거야?
-박 소위 시간 끌면 자네만 점점 불리해져.
이민식 대위가 거의 매일 문자를 보내며 박윤지 3소대장을 닦달했다. 그러나 박윤지 3소대장은 끝까지 버텨냈다. 왜냐하면 오상진이 조금만 버텨보라고 했으니까. 박윤지 3소대장은 그 말을 믿었다.
그리고 윤태민 2소대장은 그 모습을 실시간으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박윤지 3소대장이 이민식 대위에게 계속 압박을 받고 있다면 이미 무너져야 하는데 아랫입술을 꼭 깨물며 버티고 있었다.
‘뭐지? 박 소위 쟤는 오상진과 벌써 만리장성을 쌓은 거야?’
윤태민 2소대장은 박윤지 3소대장을 유심히 살펴보며 의심을 했다.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어.’
윤태민 2소대장이 뭔가 결심을 할 때 휴대폰이 울렸다. 홍민우 작전과장이었다.
“네, 과장님.”
-어, 내일 보기로 한 거 말이야. 내일 말고 오늘 시간 되나?
“네, 가능합니다.”
-그럼 오늘 저녁에 술이나 한잔하지.
“알겠습니다, 과장님.”
전화를 끊은 윤태민 2소대장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후후후, 아이고, 중대장님 이제 끝났습니다.’
그렇게 기쁨을 느끼고 있을 때 김진우 1소대장이 불렀다.
“2소대장.”
“네?”
“요새 무슨 일 있습니까? 왜 이렇게 자리를 비웁니까?”
“아닙니다. 이리저리 연락 오는 곳이 많아서 말입니다.”
“연락 오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근무시간에는 자리를 지켰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2소대장 자네 소대는 제대로 관리는 하고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당연하죠.”
“알겠습니다. 그럼 전 소대에 일이 있어서······.”
김진우 1소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행정반을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윤태민 2소대장이 낮게 중얼거렸다.
“뭐야, 전화 온 거 가지고도 뭐라 하네.”
윤태민 2소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건너편에 있는 홍일동 4소대장을 봤다.
“4소대장.”
“네?”
“담배 한 대 피우러 가시죠.”
“아, 네에······.”
홍일동 4소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은 흡연실로 나갔다. 각자 담배를 입에 물었다. 윤태민 2소대장이 연기를 내뿜으며 물었다.
“1소대장 왜 그럽니까?”
“얼마 전에 중대장님 왔다 가셨지 말입니다.”
“중대장님?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니, 2소대장 어디 있냐고 물어보고 가셨습니다.”
“네? 그리고······.”
“그 한마디만 물어보시고 더 이상 다른 말씀은 없으셨습니다.”
물론 홍일동 4소대장의 입장에서는 그저 물어본 것뿐이지만 윤태민 2소대장은 아니었다. 그 한마디가 정말 신경이 쓰였다.
‘하아, 진짜 시발, 이참에 다 터뜨리고 깔끔하게 정리하자.’
윤태민 2소대장이 어금니를 까득 깨물었다.
한편, 그 시각.
행보관 김태호 상사가 김호동 하사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김 하사.”
“충성.”
“너 요새 얼굴 보기 힘들다? 뭐 하고 다니냐.”
“뭐 하고 다니겠습니까. 이리저리 알아보고 다니고 있습니다.”
“그 일이 일과까지 땡땡이치고 해야 할 정도야?”
김호동 하사는 잔뜩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김 상사님 너무 하십니다. 중대장님께서 우리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겼는데 일을 설렁설렁할 수 있습니까. 행보관님은 그러고 싶습니까?”
그 말에 김태호 상사가 피식 웃었다.
“야야, 내가 너랑 같냐.”
“뭐가 다르지 말입니까?”
“나야, 여기저기서 뻐꾸기들이 알아서 날아오지. 이게 다 짬 아니겠냐.”
“와, 서러워서 빨리 행보관이 되든가 해야지.”
“후후후, 행보관은 어디 뭐. 주십시오. 하면 주는 줄 아냐. 그래서 뭐 좀 알아낸 거 있어?”
“아, 맞다.”
김호동 하사가 잠시 주위를 확인했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소주병 말입니다.”
“아, 임정규?”
“네.”
“그래서 그 녀석에게서 무슨 얘기가 또 나왔어?”
“아직까지 얘기는 없는데 말입니다. 아무튼 지금 4소대 분위가 좀 이상합니다.”
“그래?”
“네. 뭐, 이리 깨지고, 저리 깨지고 이등병이야 원래 동네북 아닙니까. 스읍, 그런데 뭔가 확실히 찍힌 것이 틀림없습니다. 제 촉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김호동 하사가 눈을 가늘게 하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김태호 상사가 담배를 후 하고 품었다. 그때 김태호 상사 시야에 누군가가 보였다.
“야, 김 하사. 저기 쟤 임정규 아니냐?”
“네? 어디 말입니까?”
김호동 하사가 고개를 돌렸다. 진짜 저쪽에서 임정규 이병이 뭔가 잔뜩 풀이 죽은 얼굴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서 고참들이 임정규 이병을 괴롭히고 있었다.
“아, 새끼들. 유치하게 왜 저러는 거야.”
김태호 상사가 담배를 끄며 말했다.
“김 하사.”
“네?”
“뭐 하냐? 저 모습을 봤으면 가서 한마디 해야지.”
“애들 일이지 않습니까.”
“저걸 그냥 둔다고? 저러다가 쟤 군대 생활 완전 꼬여.”
그 말에 김호동 하사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행보관님. 제가 나서서 임정규 군 생활이 꼬일 것이었으면, 진즉에 꼬인 겁니다. 그리고 우리 4중대 바꾸자고 이러는 거 아닙니까? 언제까지 몸 사릴 겁니까?”
김호동 하사가 한마디 하고는 임정규 이병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런 뒷모습을 보며 김태호 상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인마. 나라고 가만히 있고 싶겠냐.”
김호동 하사가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최원희 일병과 한진태 이병이 임정규 이병을 툭툭 건드렸다.
“야, 임정규.”
“이병 임정규.”
“임정규.”
“이병 임정규.”
“야, 새끼야. 누가 괴롭히냐?”
“아닙니다.”
“아니지? 우리는 너랑 놀아주는 거지?”
“네. 그렇습니다.”
“그래, 새끼야. 이건 놀아주는 거야.”
그렇게 말을 하며 임정규 이병을 툭툭 건드렸다. 그때 김호동 하사의 음성이 들렸다.
“야, 너희들 거기서 뭐 하냐?”
최원희 일병이 바로 멈칫하며 김호동 하사를 봤다.
“충성.”
김호동 하사가 최원희 일병 앞으로 갔다.
“최원희.”
“일병 최원희.”
“너, 지금 뭐 하고 있냐고.”
“저, 그냥 있었지 말입니다.”
“그냥 있어? 내가 저 멀리서 보고 왔는데. 너 이등병 지금 잡고 있더만.”
김호동 하사가 눈을 강하게 뜨며 말했다. 하지만 최원희 일병은 전혀 모르겠다는 듯 말했다.
“제가 말입니까? 아닙니다. 저는 정규랑 놀고 있었습니다.”
“하, 이 새끼 봐라. 최원희.”
“일병 최원희.”
“너는 내 눈이 무슨 옹이구멍인 줄 아냐? 아니면 썩은 동태 눈깔인 줄 알아?”
“······.”
“내가 인마. 저쪽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거든. 그냥 웬만하면 상관하지 않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말이지. 신병에게 왜 이래? 이유가 뭐야?”
“······.”
최원희 일병은 힐끔 임정규 이병을 보았다. 그러곤 입을 또 다물었다.
“대답 안 해? 이유가 뭐야?”
“저, 정규가 군기가 좀 빠진 것 같아서 교육 좀 하고 있었습니다.”
김호동 하사가 어이없어하며 웃었다.
“교육? 네가 누굴 교육한다고?”
“네?”
“아니 누가 누굴 가르치냐고. 너 인마, 엊그제만 해도 아주 그냥 송 병장에게 욕 듣고 있더만. 이제 일병 달았다고 유세 떠냐?”
최원희 일병의 얼굴이 확 굳어졌다. 사실 임정규 이병이 들어오기 전에 배종욱 일병이 들어오기 전까지, 송윤태 상병에게 처맞고 있던 것이 최원희 일병이었다.
그런데 몇 개월 지났다고, 아니, 후임이 들어왔다고 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이 웃겼다.
“한진태.”
“이병 한진태.”
한진태 이병은 군기가 바짝 들어간 상태로 관등성명을 댔다.
“넌 새끼야. 같은 이등병끼리 그러고 싶냐!”
“······.”
한진태 이병이 고개를 푹 숙이며 말을 하지 못했다. 김호동 하사의 시선이 이번에는 임정규 이병에게 향했다.
“임정규!”
“이병 임정규.”
“너도 새끼야. 뭔가 불합리한 일이 있다면 말을 해야지. 언제까지 계속 처맞고 있을 거야. 그러고 있다가 최원희처럼, 한진태처럼 네 밑에 애들 들어오면 내리갈굼할 거야?”
“······.”
“군대 꼴 잘 돌아간다. 잘 돌아가! 그렇게 서로 갈구고 또 내리 갈구면 군 생활 중에 좋은 기억이 있겠냐. 너희들 그러려고 군대 온 거냐?”
김호동 하사가 혀를 쯧쯧 찼다. 그러고는 최원희 일병을 봤다.
“최원희.”
“일병 최원희.”
“내가 너 이제부터 지켜본다. 한 번만 더 후임 괴롭히다가 걸리면 두 번 봐주지 않아. 바로 중대장님에게 보고 올린다. 알았어!”
최원희 일병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
“네, 알겠습니다.”
“한진태.”
“이병 한진태.”
“너도 마찬가지야. 새끼가, 군 생활이나 열심히 할 것이지. 어디서 이등병 새끼가······.”
“죄송합니다.”
“임정규.”
“이병 임정규.”
“너도 똑같아. 사내새끼가 네 몸은 네가 챙기는 거야.”
물론 김호동 하사가 할 말은 아니었다. 게다가 군대라는 것이 자기 뜻대로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계급 사회고, 하극상은 있어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김호동 하사의 입장에서는 그냥 답답해서 한 소리였다.
“아무튼 이런 것에 힘 낭비하지 말고, 군 생활이나 똑바로 해.”
“네, 알겠습니다.”
“가 봐.”
최원희 일병과 한진태 이병, 그리고 임정규 이병이 슬쩍 건물로 들어갔다. 어쨌든 김호동 하사는 티를 내지 않고, 임정규 이병에게 도움을 준 것이다. 하지만 가는 길에 최원희 일병이 중얼거렸다.
“와, 시발. 김호동 왜 저러냐.”
한진태 이병이 잔뜩 겁먹은 얼굴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