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40)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74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40)
‘쓰읍, 이것 봐라. 날 떠보는 건가?’
사실 윤태민 2소대장은 박윤지 3소대장을 얕잡아 봤다. 그렇다고 박윤지 3소대장이 여우과는 아니었다. 그랬다면 이민식 대위에게 휘둘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으음, 이건 좀 고민이 되는데······.’
윤태민 2소대장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말했다.
“에이, 이건 안 보여주려고 했는데······.”
휴대폰을 눌러 사진첩을 끄집어냈다. 그곳을 보던 박윤지 3소대장. 사진 속에는 교복을 입은 누군가를 오상진이 환한 미소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걸 보면서 박윤지 3소대장이 눈을 동그렇게 떴다.
“이게 뭡니까?”
“보면 몰라? 감이 안 와?”
“그러니까, 중대장님이 이 여고생하고······.”
“그래. 이제 감이 좀 와?”
“정말 사실입니까?”
“당연하지. 그리고 내가 설마 이것만 가지고 있을 것 같아? 이 뒤에는 수위가 더 센 건데······. 감당할 수 있겠어?”
물론 그다음 것은 없다. 윤태민 2소대장이 박윤지 3소대장을 누르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윤태민 2소대장이 쓰윽 박윤지 3소대장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감쌌다.
“어떻게? 3소대장 이제 마음의 결정을 내리는 것에 도움이 되었어?”
그때 뒤에서 윤태민 2소대장을 강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윤태민!”
그 소리에 깜짝 놀란 윤태민 2소대장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눈을 부라린 오상진이 서 있었다.
‘하아, 시발! 또 너야?’
윤태민 2소대장이 다급하게 손을 내리고는 경례를 했다.
“충성.”
자신의 코앞까지 온 오상진이 강하게 말했다.
“지금 뭐 하는 거지?”
“네?”
“지금 뭐 하고 있냐고!”
“아, 저기 그게······ 박 소위랑 얘기를 하다가 좀······.”
“내가 이런 짓 하지 말라고 그랬지. 네가 지금 무슨 짓 하는 건 줄 몰라?”
“아, 저기 친해서······.”
“정신 나간 놈! 윤태민! 네가 3소대장이랑 뭐가 친해. 도대체 뭘 얼마나 친하기에 어깨에 손을 처 올리고 있어!”
오상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죄송합니다.”
“넌 장교란 놈이 사병들이 쳐다보고 있는데 뭔 짓거리를 하고 있어. 그러고도 네가 간부야! 소대장이냐고!”
오상진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지나가던 병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곳으로 향했다. 오상진의 언성에 윤태민 2소대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오상진의 날카로운 시선이 박윤지 3소대장에게 향했다.
“3소대장도 내가 분명히 말했지. 중대장이······.”
오상진이 막 호통을 치려고 하는데 박윤지 3소대장은 거의 울먹이는 듯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오상진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일단 3소대장은 중대장실로 따라와. 그리고 윤태민! 너 마지막 경고야. 한 번만 더 이런 짓을 하다가 걸리면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너 옷 벗기고 군사재판에 넘겨 버린다. 알겠어!”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몸을 홱 돌렸다. 그 뒤를 박윤지 3소대장이 따라갔다. 그 모습을 보며 윤태민 2소대장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뭐? 네가 내 옷을 벗겨? 시발, 누구 옷을 벗기는지 두고 보자.”
윤태민 2소대장이 바로 휴대폰을 꺼내 홍민우 작전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과장님 혹시 언제 시간이 되십니까?”
-시간? 갑자기 시간은 왜?
“4중대장에 관해서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으음, 그럼 오늘 내일은 바쁘니까. 모레쯤 만나지.
“모레 말입니까?”
-왜? 바쁜 일이야?
“아, 아닙니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윤태민 2소대장이 전화를 끊었다.
“그래, 오상진. 봐줬다. 어디 이틀간 중대장 노릇 잘하고 있어라.”
윤태민 2소대장이 꽈득 이를 깨물었다.
오상진은 중대장실로 들어왔다. 전투모를 벗어서 책상위에 올려놓고 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 박윤지 3소대장을 보며 말했다.
“저쪽에 앉아.”
“아, 아닙니다. 차는 제가 타겠습니다.”
“됐어. 그냥 앉아 있어.”
박윤지 3소대장이 우물쭈물하다가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오상진은 녹차 티백을 종이컵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그것을 들고, 박윤지 3소대장에게 건넸다.
“3소대장.”
“네.”
“요즘도 많이 힘드나?”
“네에······.”
“하아······. 솔직히 말이야. 난 그런 말들을 안 좋아해. 남자는 어떻고, 여자는 어떻고 그런 얘기 말이야. 그래, 막말로 군대가 여자들에게 있어서 힘든 조직이라는 것은 나도 이해를 해. 하지만 군대에도 좋은 선배들도 많고, 중대장은 박 소위가, 아니 3소대장이 어떻게든 군 생활 열심히 해서 여자들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으면 좋겠어.”
“네에······.”
박윤지 3소대장은 오상진이 저런 말을 해주니 좀 민망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상쾌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저런 윤태민 2소대장엑 휘둘리고, 이민식 대위에게 휘둘리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3소대장.”
“네.”
“솔직히 말해봐. 무슨 일 있어?”
“······.”
박윤지 3소대장은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 오상진은 천천히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
“중대장이 보기에 충분히 자기의 주장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 그런데 윤 소위에게 꼼짝을 못한다는 것은 뭔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 그러니 중대장에게 말해 줄래? 중대장이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충분히 힘이 되어 줄 테니까. 사실 지금 3소대장을 보면 뭔가 아슬아슬하고, 불안해 보인다 말이야. 이런 식으로 군 생활하다가 뭔가 문제가 생길 것 같단 말이지. 중대장인 내가 불안해서 안 되겠어. 중대장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착각이야?”
오상진이 박윤지 3소대장을 달래며 물었다.
“아닙니다.”
“정 말하기 곤란하면 안 해도 돼. 다만, 그 문제를 질질 끌고 가지 마.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빨리 해결했으면 좋겠어. 이 일을 질질 끌면 나중에 문제가 눈덩이처럼 엄청 커진다.”
오상진의 말에 박윤지 3소대장이 가만히 듣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중대장님.”
“응?”
“혹시 원조교제 하십니까?”
박윤지 3소대장의 뜬금없는 질문에 오상진의 눈이 커졌다.
“뭐? 내가 뭘 한다고?”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박윤지 3소대장이 곧바로 두 팔을 흔들었다. 오상진이 재차 물었다.
“뭐? 아니야. 말 돌리지 말고. 원조? 방금 원조 교제라고 했어?”
“······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갑자기 그것을 물어보는 이유가 뭐야?”
“그것이 중대장님께서 어느 여고생하고 같이 있는 사진을 봤습니다.”
“나하고 여고생하고? 여고생? 내가?”
오상진은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 봤다. 최근 여고생을 만난 기억이 전혀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오상진은 곧바로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확인하며 자신의 여자 친구인 한소희가 교복을 입고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혹시 말이야. 이 사진을 말하는 거야?”
그 사진을 본 박윤지 3소대장이 눈을 크게 했다. 얼핏 봤지만 워낙에 예쁘게 생겨서 기억은 하고 있었다.
“어? 혹시 동생분 이십니까?”
“동생은 아닌데. 내 여자 친구인데.”
“네?”
박윤지 3소대장의 얼굴이 커졌다.
“아! 오해를 했나 본데. 내 여자 친구 대학원생이야.”
“아, 그렇습니까?”
“그래. 최근에 교복 데이트를 한다고 해서. 이번에 내려와서 자신이 고등학교 때 입은 교복을 입고 나와서 이벤트를 해줬지. 내가 설마하니 여고생을 만날까. 대한민국 군인이 말이야. 큰일 나려고······.”
“그, 그렇습니까?”
“당연하지.”
“그런데 여자 친구분하고 만난 지 오래되셨습니까?”
“우리? 만난 지 몇 년 되었더라? 아는 사람은 다 아는데······. 아, 내가 여기 와서는 알리지 않았구나. 안 그래도 때가 되면 소개시켜 주려고 했는데······.”
오상진의 말에 박윤지 3소대장은 안도하면서도 살짝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오상진이 여자 친구가 있을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당당히 말을 하고, 교복 데이트까지 할 수 있는 그런 여자 친구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 두 사람이 많이 부럽기도 하고 조금 아쉽기도 했다. 왜냐하면 박윤지 3소대장은 오상진을 동경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얘기는 왜 하는 거지? 그 사진은 누가 보여줬어?”
오상진이 물었다.
“······.”
박윤지 3소대장이 눈을 크게 하며 입을 다물었다.
“확실하게 말해봐. 가만 혹시······, 윤 소위?”
“네? 아, 그것이······.”
“하아, 하다 하다 윤 소위 그걸 가지고······. 3소대장, 그래서 그걸로 자네에게 뭐라고 한 거야?”
박윤지 3소대장이 답을 하지 않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니 그랬던 것 같았다. 오상진은 답답한 얼굴이 되었다.
“아니, 그런 일이 있었다면 나에게 말을 했어야지. 답답하게 그러고 있어? 당사자인 내가 이렇게 있는데?”
“시, 실은 중대장님, 저도 사진이 찍힌 것이 있습니다.”
박윤지 3소대장이 어렵게 얘기를 꺼냈다.
“자네가? 자넨 무슨 사진이 찍혔어?”
박윤지 3소대장이 진짜 어렵게 얘기를 꺼냈다. 이민식 대위와의 관계를 말이다. 그 얘기를 쭉 듣던 오상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전임 중대장인 이민식 대위하고 가깝게 지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모텔로 향하던 사진이 찍혔을 당시 술에 취한 이민식 대위를 데려다 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지?”
“네.”
“그걸 가지고 윤 소위가 협박을 한 것이고?”
“네. 그렇습니다.”
“그걸 가지고 나까지 팔아서 자네를 더욱 곤란하게 만들었단 이 말이지?”
“네······.”
오상진의 끓어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조절했다.
“하아, 이런 미친 새끼······.”
그런 윤태민 2소대장을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할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오상진의 머릿속에는 지금 상황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분노로 일을 그르칠 수는 없었다.
‘진정하자, 진정하자.’
오상진은 스스로를 다독였다. 어느 정도 분노를 진정시킨 후 물었다.
“그래서 그 사실을 누가 알고 있는 거야?”
“일단 저하고, 전 중대장님만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윤태민 이 새끼, 정말 가지가지 하네.”
오상진이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다가 박윤지 3소대장에게 물었다.
“그래서 3소대장은 중대장이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어?”
“네?”
“자네가 바라는 것이 있을 거 아니야.”
“저는······.”
박윤지 3소대장은 당황하며 답을 하지 못했다. 어쨌거나 이민식 대위랑은 약간의 썸은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했다.
“일단 내가 좀 더 고민을 해볼 테니까. 그 문제에 대해서는 걱정 하지 마. 그나저나 이민식 대위도 재미있는 사람이네. 이런 일이 있다면 3소대장을 보호해 줘야지. 어떻게 일을 이렇게 키워?”
오상진은 얘기를 듣고 그 부분에서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물론 이민식 대위의 입장이 아주 조금 이해가 되었다. 자신 때문에 2중대에 갔다가, 또 자신 때문에 쫓겨났고 말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 오상진에게 어느 정도 억하심정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어쨌든. 내가 이 일은 처리할 테니까. 3소대장은 조금만 참고 기다리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