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39)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73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39)
‘하아, 젠장······. 단지 내가 이등병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런 욕을 먹어야 해? 내가 뭘 잘못한 것이 있다고?’
임정규 이병은 욕을 먹으면서도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다가 이제 곧 일병을 다는 한진태 이병이 다가왔다.
“야, 잘 좀 하자. 너 때문에 우리까지 피해를 보잖아.”
“그냥 하라는 것만 해. 하라는 것만. 아니, 이등병은 생각 자체를 하지 마. 알겠어?”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내리갈굼을 당하는 동안 송윤태 상병은 구석에 앉아서 킥킥 웃기만 할 뿐 자신을 위해서 한마디도 해주지 않았다. 자기가 심부름을 시켜놓고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 대번에 모른 척을 하는 것이었다.
‘너무하네. 진짜 너무 해.’
임정규 이병이 속에서 불이 활활 타올랐다. 그때 김호동 하사와 만나서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임정규.
-이병 임정규.
-너 이거 진짜 송윤태가 시킨 거 맞아?
-그, 그렇습니다.
-확실해? 이게 송윤태 것이라는 거?
-맞습니다.
-그럼 송윤태는 어디서 났는데?
-그것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야, 장난해? 네가 그걸 몰라? 아니면 네가 전부 뒤집어쓸 수 있어. 그러니 확실하게 말해. 송윤태 어디서 구입한 거야?
-전 듣기만 했습니다.
-그래. 그 들은 것을 얘기하란 말이야.
-2, 2소대장님에게 샀다고 들었습니다.
-2소대장? 윤태민 소위?
-네, 뭐······.
-정규야. 이제부터 부소대장이 하는 말을 잘 들어. 3소대에서 조인범이 영창 간 것을 알고 있지. 게다가 다른 곳으로 전출 간 것도!
-아, 네에. 알고 있습니다.
-너, 그 녀석처럼 되고 싶냐?
-아, 아닙니다.
-좋아. 그럼 누군가 영창을 가야 된다면 당연히 송윤태여야겠지?
-어, 그게······.
-왜? 싫어? 그럼 네가 가겠다는 거네.
-절대 아닙니다.
-그럼 누가 가야겠어?
-······.
-야, 인마. 여기에 송윤태가 있어? 부소대장인 나하고, 너밖에 없어. 그런데 뭘 그리 지랄을 떨어! 네가 이런다고 송윤태가 알아줄 것 같아? 좋아, 막말로 네가 송윤태에게 가서 나에게 들켰다고 해봐. 송윤태가 어떻게 나오는지 한번 봐라. 아마 모르긴 몰라도 너 죽이려고 들걸?
-저, 전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말입니다.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야. 송윤태는 절대 널 믿지 않아. 그리고 송윤태 같은 놈들은 혹시라도 자기가 피해를 볼 것 같으면 모든 것을 너에게 다 떠넘길걸. 잘 생각해. 왜 송윤태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만만한 너에게 술병을 치우라고 시켰겠냐?
임정규 이병이 슬쩍 송윤태 상병을 봤다. 솔직히 그때 그 얘기를 들었을 때 김호동 하사가 자신을 구워삶고 회유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더 정확히 말을 하면 그런 식으로 압박을 해서 자신을 흔들려고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지금 상황을 겪고 보니, 임정규 이병은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에 내 편은 없어.’
송윤태 상병만 봐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절대 도와줄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지키려고 했으면 했지 말이다.
‘개새끼······. 그래. 나를 지킬 사람은 나뿐이야.’
임정규 이병이 꽈드득 이를 갈았다.
그날 저녁 송윤태 상병을 잠을 자다가 몸을 일으켰다.
“와, 시발. 잠이 안 오네.”
송윤태 상병이 침상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뭔가 부스럭부스럭거렸다.
그사이 문 입구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던 임정규 이병이 눈을 떴다. 임정규 이병 역시 잠을 자고 있지 않았다. 그의 귀가 움찔거리며 송윤태 상병의 행동에 귀를 기울였다.
이민식 대위는 불빛이 은은한 어느 술집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며 박윤지 3소대장이 들어섰다. 이민식 대위가 손을 들었다.
“어, 박 소위 여기야.”
“네.”
박윤지 3소대장이 그곳으로 가서 반대편에 앉았다. 이민식 대위가 밝은 얼굴로 말했다.
“저녁은?”
“먹고 왔습니다.”
“먹고 왔어? 나랑 약속 잡혔으면 같이 먹어야지. 먹고 오면 어떻게 해?”
“······.”
솔직히 박윤지 3소대장은 이제 더 이상 이민식 대위와의 만나지 않으려고 했다. 혹시라도 밥을 안 먹고 나왔다가 같이 먹으면 시간이 길어질 것 같아서 간단하게 먹고 나왔다.
그러나 이민식 대위는 그런 박윤지 3소대장이 못마땅했다.
“박 소위 너무한 거 아니야? 이제 나는 중대장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건가?”
“그건 아닙니다.”
“뭐야? 육사가 아니라서 그런가? 우리 육사는 그런 건 없는데 말이지. 아, 그렇다고 내가 우리 박 소위를 무시하고 그런 것은 아니야.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하니까, 조금 서운하네.”
“죄송합니다.”
“내가 왜 오라고 한 줄은 알지?”
“네.”
“그래. 윤 소위에게는 들었어. 우리 둘이 뭐, 그때 같이 들어가는 사진이 찍혔다면서.”
박윤지 3소대장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네에.”
“아니, 도대체 자네는 어떻게 했기에 사진을 찍히고 그래?”
“네?”
박윤지 3소대장의 눈이 커졌다. 솔직히 그날은 이민식 대위가 과하게 취했고, 어쩔 수 없이 모텔로 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모텔에 가서도 별일은 없었다. 이민식 대위가 붙잡고 같이 있어달라고는 했지만 과하게 취해 그 정도 선에서 끝이 났다.
간신히 이민식 대위를 재우고 박윤지 3소대장은 그냥 나왔다. 원인 제공자가 이민식 대위인데 사진 찍혔다고 자신을 몰아세우는 모습에 살짝 어이가 없었다.
“중대장님 저도 너무 힘듭니다.”
“뭐?”
“솔직히 중대장님 다른 곳에 계시지만 저는 계속 윤 소위와 마주쳐야 합니다. 매일 같이 저를 그런 식으로 바라보는데 저 솔직히 너무 불편하고 그렇습니다.”
그런 박윤지 3소대장을 향해 이민식 대위가 혀를 찼다.
“쯧쯧쯧, 어이구······. 자네는 그렇게 멘탈이 약해서 어떻게 군 생활을 하겠다는 거야.”
이민식 대위는 한숨을 내쉬다가 슬쩍 얘기를 꺼냈다.
“내가 방법을 알려줘?”
“방법 말입니까?”
“그래. 어떻게 내가 시키는 대로 한번 따라 해볼래?”
“······.”
이민식 대위의 제안에 박윤지 3소대장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바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날 믿고 따라 할 수 있냐 말이야.”
“어, 어떻게 말입니까?”
“별거 없어. 그냥 윤 소위가 원하는 것을 해줘.”
“네에?”
박윤지 3소대장은 방금 이민식 대위에게 들은 말이 잘못 들은 것이라 여겼다.
“방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아니, 윤 소위가 자네를 좋아하더라고. 그러니 한번 만나줘. 남녀 사이에 그게 뭐 어려운 일인가?”
“중대장님!”
“왜? 박 소위 혹시 남자 친구라도 있어?”
“아뇨, 없습니다.”
“윤 소위도 여자 친구 없데. 그럼 청춘 남녀끼리 밥도 먹고 그러는 것이지. 뭐 어때?”
이민식 대위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하지만 윤태민 2소대장이 자신의 몸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박윤지 3소대장이 아니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을 지켜주겠다고, 자신만 믿고 따라오라던 그 사람이 이런 말을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박윤지 3소대장의 믿음이 한 순간에 와장창 깨지는 순간이었다. 아니, 수치심을 넘어 모멸감마저 들었다.
“······.”
박윤지 3소대장은 고개를 살짝 숙인 채 감정을 억눌렀다.
그 모습을 보며 이민식 대위는 아직도 박윤지 3소대장이 자신이 알고 있는, 자신의 말에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옛날 그 박윤지 3소대장으로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박 소위. 잘 생각해서 행동해. 그 사진이 유출돼 봐. 나도 그렇지만 자네는 아주 치명적이야. 그러니, 살살 비위를 맞춰 줘봐. 그리고 자네에게만 말하는 건데. 나 잘하면 4중대로 복귀할지도 몰라?”
이민식 대위의 말에 박윤지 3소대장이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네? 복귀 말입니까?”
“윤 소위가 그런 말은 안 했나? 지금 중대장 말이야. 오상진 대위. 그 녀석 사진도 들고 있더라고.”
“네? 무슨 말씀입니까?”
“그것까지는 몰라도 돼. 그거 터지고 나면 오 대위 거기 못 있어. 그럼 어떻게 될 것 같나? 4중대 자리비면 내가 그 자리로 갈 수 있다는 거지. 그러니까, 그때 가서 서로 얼굴 붉히지 않게 잘 지내자. 언제 우리 4중대가 이렇게 되었어.”
이민식 대위는 마치 당장에라도 4중대로 복귀할 것처럼 말을 했다. 그런 이민식 대위를 보며 박윤지 3소대장이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거의 뜬 눈으로 지샌 박윤지 3소대장은 피곤한 얼굴로 출근을 했다. 자리에 앉아마자 윤태민 2소대장이 불렀다.
“3소대장.”
“네?”
“나 좀 잠깐 보지.”
박윤지 3소대장은 피곤함과 짜증이 확 올라왔다. 그렇다고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밖으로 나간 박윤지 3소대장은 피곤한 얼굴로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어제 이 대위님은 잘 만났습니까?”
“네. 만났습니다.”
“이 대위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
박윤지 3소대장은 말없이 윤태민 2소대장을 빤히 바라봤다. 윤태민 2소대장이 피식 웃었다.
“왜? 그 눈빛은 뭐지? 분위기 파악이 안 되나? 아니면 아직 상황 판단이 안 돼?”
박윤지 3소대장이 강하게 말했다.
“도대체 저에게 왜 그러십니까?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건 3소대장이 더 잘 알 텐데······. 내가 왜 이러는지 말이야.”
“······.”
박윤지 3소대장은 다시 입을 막았다. 윤태민 2소대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3소대장. 내가 3소대장을 좋아하는 것을 압니까, 모릅니까?”
“······.”
박윤지 3소대장은 또다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윤태민 2소대장이 피식 웃었다.
“봐봐. 알고 있네. 내가 남자로서 좋아한다고, 3소대장을. 몸매도 그 정도면 좋고, 얼굴도 예쁘고. 3소대장도 나 정도면 괜찮지 않아? 안 그래? 그래서 서로 좀 친하게 지내자는데 싫은 표정을 지어야겠어? 아니, 이 대위님하고는 만날 그렇게 모텔도 들어가고 그러면서 나는? 내가 너무 소외당하는 기분이잖아. 안 그래?”
“그런 거 아닙니다.”
“그래. 그런 거 아니라고 칩시다. 그런데 약혼자가 있는 중대장하고 어울리는 것보다 나하고 어울리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난 여자 친구도 없고, 미혼인데 만약에 무슨 일이 생겨도 나랑 어울리면 소문으로 끝나는 거잖아. 그런데 이 대위님하고 그러다가 소문나면 어떻게 할 거야?”
“······.”
박윤지 3소대장이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 이민식 대위랑 썸을 탈 적에는 여자가 없다고 했었다. 그래서 호감을 가졌는데······. 어쨌거나 지금 이민식 대위랑 모텔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발각될 경우에는 박윤지 3소대장에게는 좋을 것이 없었다.
하지만 박윤지 3소대장은 그런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리 박윤지 3소대장이 우유부단하고 군 생활을 적응 못 한다고 해도, 군대에서 평생 말뚝 박고 살 것도 아니었다. 의무복무기간만 끝나면 제대를 할 생각이었다.
얼마 되지 않은 군 복무기간 때문에 윤태민 2소대장, 이 쓰레기 같은 놈과 몸을 섞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이 자리에 나온 것은 윤태민 2소대장이 가지고 있는 카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보다 우리 중대장님과 관련된 일은 뭡니까?”
“뭐? 중대장님? 그걸 말해주면 쪼르르 가서 이르게?”
“저도 그것이 뭔지 알아야 마음의 결정을 할 것이 아닙니까.”
박윤지 3소대장의 그 말에 윤태민 2소대장의 눈빛이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