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38)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72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38)
“2주 안에 조사를 마치겠습니다.”
-2주? 알았어. 시간 너무 지체하지 말고.
“네. 과장님.”
그리고 윤태민 2소대장이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휴대폰을 본 윤태민 2소대장이 피식 웃었다.
“똥줄이 타셨나 보네. 그보다 너무하네. 나에게 해준 것이 뭐가 있어. 이거 뭐 날로 먹으려고 해. 어림도 없지.”
윤태민 2소대장은 사진 속의 오상진을 찾아서 확인했다.
“하아, 이걸 어떻게 한다? 마음 같아서는 중대장 면전에 대고 망신을 주고 싶은데 말이야.”
만약 윤태민 2소대장이 이 사진을 가지고 두 사람에게 딜을 하면 아마도 비싼 값에 팔아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나야, 비싼 값에 팔아먹으면 되는 거지. 흐흐흐. 그보다 이 대위님은 제대로 하고 계시는 건가?”
윤태민 2소대장이 이민식 대위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 대위님 어떻게 되었습니까?
-오늘 만나기로 했으니까, 걱정 마.
-네,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윤태민 2소대장이 피식 웃었다.
“후후, 박윤지. 너 얼마나 맛있나 보자”
윤태민 2소대장은 입꼬리를 올리며 휴대폰은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그날 오후 일과가 끝난 시간. 각 장병들은 모든 일과가 끝이 나고 자유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4중대 임정규 이병이 뭔가 두리번거리며 이상한 곳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김호동 하사가 들켰다.
“뭐야, 저 자식······. 저쪽은 창고 쪽인데······.”
그것도 이등병이 혼자서 갈 만한 장소는 아니었다. 김호동 하사는 곧바로 담배를 끄고는 쫓아갔다. 창고 뒤쪽을 멀리 돌아서 움직였다.
“아니, 가려면 직진하면 될 것을 왜 돌아서 가는 거야.”
김호동 하사는 의심이 들었다. 그래서 몰래 숨어서 임정규 이병의 행동을 지켜봤다. 비탈길을 올라가 뒤쪽 수풀이 우거진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저 새끼 뭐야? 혹시 탈영?”
김호동 하사의 눈이 커졌다. 사실 저 수풀을 지나면 그곳에는 철책이 있었다. 물론 철책 위에 함부로 넘지 못하도록 2중으로 철책선이 휘감겨 있었다. 하지만 만약에 김호동 하사가 모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아니면 혹시 자살?”
4중대가 워낙에 꼴통 부대다 보니, 간혹 자살소동을 일으키는 장병들도 있었다. 흔한 일은 아니고, 간혹 아주 가끔 말이다.
그것을 막는 것 역시 간부가 해야 할 역할이었다. 김호동 하사는 조심스럽게 임정규 이병의 뒤를 밟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멈추더니 빠르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김호동 하사는 재빨리 수풀에 몸을 숨긴 후 임정규 이병의 동태를 살폈다.
“저 자식 저기서 뭐하는 거야?”
다행히 자살소동을 일으키려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냥 준비해 온 야삽으로 땅을 파기 시작하는 게 보였다.
“땅을 파?”
땅을 파더니 반대편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걸 땅을 판 곳에 묻기 시작했다. 이에 김호동 하사는 더는 참지 못하고 수풀에서 몸을 드러냈다.
“야!”
순간 임정규 이병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너, 거기서 뭐 하냐?”
“이, 이병 임정규······.”
임정규 이병은 들키지 말아야 할 것을 들킨 것처럼 몹시 놀라고 있었다.
“거기서 뭐 하냐고!”
“어어, 그것이······.”
“야. 임정규.”
“이병 임정규.”
“너 인마. 여기에 함부로 와도 되는 거야? 그리고 그 야삽은 또 뭐야. 뭘 하기에 야삽까지 챙겨서 온 거냐.”
“······.”
임정규 이병은 입을 꾹 다물었다.
“야, 말 안 해?”
김호동 하사가 소리를 질렀다. 임정규 이병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김호동 하사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
“야, 너 야삽 이리 내놔!”
임정규 이병이 야삽을 건넸고, 김호동 하사가 직접 그곳을 팠다. 그러자 쨍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응?”
김호동 하사는 바로 손으로 흙을 드러내자 녹색의 병이 나왔다.
“뭐야. 이거 소주병이잖아.”
“······.”
임정규 이병은 제대로 답도 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거 어디서 났어?”
“네?”
“이 소주병 어디서 났냐 말이야!”
김호동 하사가 강하게 물었다. 임정규 이병의 눈알이 빠르게 굴러갔다.
“저, 그게······. 제가 주워서 여기다가 버리려고 했습니다.”
“주웠다고?”
“네.”
“잘 말해라. 군 부대에 이 소주병이 돌아다닌다는 것이 말이 돼?”
“지, 진짜입니다.”
“임정규. 부소대장이 다시 묻는다. 이 소주병 어디서 났어!”
김호동 하사가 무서운 얼굴로 물었다. 임정규 이병이 시선을 피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솔직히 말해라.”
“저, 저쪽에서······.”
임정규 이병이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은 그냥 아무것도 없었다. 김호동 하사가 더욱 인상을 썼다.
“이 새끼 봐라. 이등병 새끼가 거짓말을 하네. 야! 임정규.”
“이병 임정규!”
“내가 널 어디서 보고 쫓아왔다고 생각하는 거냐?”
“어, 그게······.”
임정규 이병은 당황하며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너 이 소주병에 담긴 술. 네가 마셨냐?”
“아,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임정규 이병이 두 손을 빠르게 흔들었다.
“아니면 뭐야? 이 소주병이 네 주머니에서 나온 것을 봤고, 그것을 직접 묻으려고 하는 것까지 봤어. 그런데도 거짓말이야?”
“······.”
솔직히 김호동 하사도 이등병인 임정규가 이런 짓을 벌였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아무리 4중대에 꼴통들이 들어오는 곳이라고 해도 말이다. 김호동 하사가 계속해서 다그쳤다. 그러자 임정규 이병이 울먹이기 시작했다.
“제가 안 그랬습니다. 진짜 제가 그러지 않았습니다.”
“네가 안 그랬으면 누구야! 누가 이런 짓을 시켰냐 말이야.”
“제가 아닙니다. 진짜입니다.”
“그러니까, 새끼야. 누구냐고!”
“그, 그것이······.”
임정규 이병은 끝까지 말을 하지 않았다. 김호동 하사는 고개를 흔들었다.
“너 끝까지 말 안 하지? 안 되겠다. 나랑 함께 중대장님께 가자. 너 조인범 상병 얘기 들었지?”
“네?”
임정규 이병의 눈이 엄청나게 커졌다. 김호동 하사가 곧바로 임정규 이병의 팔을 잡고 끌었다.
“저,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임정규 이병이 벌벌 떨며 살려달라고 했다.
“뭐, 인마. 도대체 뭘 살려달라는 거야. 내가 널 죽인다고 했어? 중대장님께 가자 말이야.”
“부소대장님 제가 아닙니다. 저 진짜 아닙니다. 송윤태 상병님이······.”
임정규 이병이 화들짝 놀라며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았다. 김호동 하사의 눈이 번쩍 떠졌다.
“뭐? 송윤태 상병? 확실해?”
임정규 이병은 더 이상 숨길 수 없었다.
“네, 그렇습니다.”
그제야 김호동 하사의 입가로 씨익 지어졌다.
내무실로 돌아간 임정규 이병은 박기식 일병을 힐끔 바라봤다.
“임정규.”
“이병 임정규.”
임정규 이병은 관등성명을 대며 박기식 일병에게 뛰어갔다.
“야, 너 어디 갔다가 이제 와!”
“아, 그것이······.”
임정규 이병은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차마 김호동 하사에게 걸려 추궁을 당하고 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송윤태 상병님 심부름 다녀왔습니다.”
“송 상병님 심부름? 뭐? 뭔데?”
송윤태 상병님의 술병을 버리고 오는 심부름이라고 대놓고 말을 할 수 없었다. 부대 내에서 송윤태 상병이 몰래몰래 술을 먹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는 사람 역시 없었다.
“그게 저기, 뭐······.”
임정규 이병이 말을 얼버무리고 있는데 송윤태 상병이 들어왔다. 박기식 일병이 바로 송윤태 상병을 봤다.
“송 상병님.”
“왜?”
“정규에게 심부름 시켰습니까?”
“심부름?”
송윤태 상병이 임정규 이병을 쓰윽 바라봤다. 임정규 이병이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뭐라도 한마디 두둔해 주기를 말이다. 그러나 송윤태 상병이 속으로 생각했다.
‘뭐야. 이 새끼. 내가 술병 버리라고 보낸 지가 언제인데 이제 와 지랄이야.’
“나 시킨 거 없는데.”
송윤태 상병이 신경 쓰지 않는 듯 한 마디 툭 내뱉고는 자신의 자리로 가버렸다. 임정규 이병의 애처로운 눈빛을 뒤로 하고 말이다. 곧바로 박기식 일병의 호통이 이어졌다.
“야, 임정규.”
“이병 임정규.”
“시발, 장난해!”
“저, 정말 송 상병님이 시켰습니다.”
“야이, 새끼야. 송 상병님이 시킨 것이 없다고 하잖아. 그런데 뭘 시켰는데? 말해봐! 뭘 시켰어!”
“그것이, 뭘 좀 치우라고······.”
박기식 일병은 그 말만 들어도 뭘 치우라고 한 것인지 대번에 눈치챘다.
“임정규.”
“이병 임정규.”
“그래서 그거 치우는 게 오래 걸리는 일이야?”
“그건 아닙니다.”
“네가 새끼야. 밖에서 놀다가 와 놓구선. 어디서 고참 핑계를 대!”
“······.”
임정규 이병은 차마 얘기를 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하아, 새끼. 무슨 애가 이렇게 어리바리해. 완전 폐급이 들어왔네. 짜증 나게······.”
박기식 일병은 임정규 이병을 세워놓고 계속해서 구박을 했다.
“됐다, 됐어! 내가 널 데리고 뭘 하겠냐. 이게 다 널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고참 책임이겠지. 안 그러냐?”
“······.”
임정규 이병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저 말의 의미를 임정규 이병은 자대배치 받고 이틀 만에 깨달았다.
“내 밑으로 너 위로 다 집합시켜!”
이 순간 임정규 이병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야, 새끼야. 대답 안 해? 개기냐!”
“아, 아닙니다.”
“집합!”
“네, 알겠습니다.”
그때 박기식 일병 바로 밑 군번의 최원희 일병이 나타났다.
“박 일병님 왜 그러십니까?”
박기식 일병이 딱 걸렸다는 듯 말했다.
“야, 최원희. 너 내가 만만하냐?”
“네? 무슨 말씀입니까?”
“시발, 이등병 교육을 도대체 어떻게 시켰으면 지 혼자 놀다가 와 놓고선, 고참 핑계를 댄다.”
최원희 일병의 시선이 임정규 이병에게 향했다. 임정규 이병은 죽을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최원희 일병이 물었다.
“정규야.”
“이병 임정규.”
“사실이야?”
“저어······.”
임정규 이병은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최원희 일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야, 새끼야. 내가 그렇게 가르쳤어!”
최원희 일병이 임정규 이병에게 버럭 한 후 곧바로 박기식 일병을 봤다.
“박 일병님 죄송합니다. 제가 다시 교육시키겠습니다.”
“최원희. 제발 한 번에 끝내자. 한 번에······. 알겠냐?”
박기식 일병이 최원희 일병의 어깨를 손가락을 꾸욱 밀었다. 최원희 일병이 움찔움찔했다. 박기식 일병은 몇 번 그렇게 한 후 빠졌다. 최원희 일병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곧바로 눈을 임정규 이병에게 뒀다.
“임정규.”
“이병 임정규.”
“너 시발. 생각이 없구나. 뇌를 얻다가 놓고 왔냐? 아니면 삶아 먹은 거야? 네 밑에 후임 들어왔다고 네가 뭐라도 된 줄 알지? 어디 핑계댈 것이 없어서 고참 핑계를 대!”
최원희 일병은 임정규 이병을 엄청나게 몰아붙였다. 임정규 이병은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최원희 일병뿐만이 아니었다. 그 밑에 김준식 일병도 한마디 했다.
“이래서 이등병이 잘 들어와야 해. 그래야 고참들이 욕을 안 먹지.”
배종욱 일병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한심한 얼굴로 바라봤다. 이럴수록 임정규 이병은 왜 자신이 이런 모욕을 당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몰랐다. 자신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