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36)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70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36)
“그런데 나에게 긴히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저, 그게 말입니다.”
윤태민 2소대장은 살짝 고민을 했다. 왜냐하면 이민식 대위하고 기분 좋게 술을 마실 생각은 없었다. 어쩌다 오상진을 두고 씹다 보니 둘 다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윤태민 2소대장이 일단 잠깐 멈칫했다.
‘말하지 말까? 아니야, 아니야. 또 만나는 것은 별로야.’
윤태민 2소대장이 결론을 내리고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한 장의 사진을 보여줬다.
“이것 좀 보시겠습니까?”
“뭐야, 이거······. 박윤지야?”
“어? 한 번에 알아보십니다.”
“흐흠, 박 소위가 왜? 모텔을 갔어? 누구랑?”
“그 옆에 남자 누군지 모르겠습니까?”
“누군데?”
이민식 대위가 집중해서 사진을 확인했다. 그러다가 점점 눈이 커지며 말했다.
“나야?”
“네.”
이민식 대위의 표정이 바로 싸늘하게 변했다.
“이 친구가······. 이 사진은 왜?”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그때는 밤길에 잘 안 보여서 호기심에 찍은 것입니다.”
“그럼 지워야지 왜 가지고 있는 거야. 게다가 왜 나에게 보여줘?”
“그것이······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박 소위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이걸로 박 소위를 어떻게 해보려고?”
“네. 맘대로 하라고 하던데 말입니다.”
이민식 대위가 피식 웃었다. 만약에 박윤지 3소대장이 이 사진 하나 때문에 넘어가 윤태민 2소대장에 휘둘렸다면 짜증이 났을 것이다. 오히려 쿨하게 가버렸다고 하니 기분이 좋았다.
“요즘 새로 온 중대장이 박 소위에게 엄청 잘해줍니다.”
“뭐? 왜?”
“뭐겠습니까. 뻔하지 않습니까.”
“박 소위가 그쪽으로 갈아탔다는 말이야?”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윤태민 2소대장이 웃으며 말했다. 이민식 대위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뭐야, 박 소위. 언제는 나밖에 없다면서.”
이민식 대위의 중얼거림에 윤태민 2소대장이 대답했다.
“네?”
“아, 아니야. 그래서 자네가 원하는 것이 뭐야?”
이민식 대위도 눈치는 있었다. 윤태민 2소대장의 씨익 하고 웃었다.
“역시 중대장님······. 얘기가 한결 편해집니다.”
“잡소리 말고, 말해. 뭘 원해?”
“솔직히 중대장님도 박 소위하고 정식으로 사귈 생각은 없지 않습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네. 나 결혼할 사람 있는 거 몰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네도 약혼한 상대가 있는 걸로 아는데······.”
“어험, 네······.”
“그래서 뭐야? 어차피 가질 수 없으니까. 같이 즐기자? 이런 뜻이야?”
이민식 대위의 눈빛이 더욱 싸늘하게 바뀌었다. 윤태민 2소대장은 그 눈빛에 전혀 주눅이 들지 않았다.
“저는 중대장님께서 그리 해주신다면 따르겠습니다.”
그 말에 이민식 대위가 어이없어했다.
“이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가 구멍 동서는 아니지 않나?”
“뭐 어떻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단순히 그 정도면 괜찮지 않습니까.”
“뭐, 그렇긴 하지만······.”
“그럼 저희가 공동전선을 연합해야 하지 않습니까. 지금 중대장에게 넘어가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그건 그렇지.”
이민식 대위각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다시 술잔을 비웠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나?”
“박 소위에게 잘 좀 말씀해 주십시오. 중대장님 말씀이라면 끔뻑 죽지 않습니까.”
이민식 대위가 젓가락으로 잘 구워진 돼지 껍데기를 휙휙 저으며 말했다.
“뭐, 그렇긴 하지. 그럼 자네는 뭘 해줄 건데?”
“필요한 거 말씀해 보십시오.”
“필요한 거? 오상진 날려 버릴 만한 거 없어?”
윤태민 2소대장이 눈을 번쩍였다.
“아! 있습니다.”
“있어? 그게 뭔데?”
“아, 바로 말씀은 드릴 수가 없습니다.”
“자네 말이야. 나에게 거짓말하고 있는 거 아니야?”
“확실한 것이 있습니다. 이거 터지면 난리 납니다.”
윤태민 2소대장은 뭔가 확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 이민식 대위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그래? 오케이. 내가 먼저 박 소위 설득할 테니까. 자네도 설득해.”
“네.”
“자네 말이야. 나중에 딴소리 하지 마.”
“물론입니다.”
윤태민 2소대장의 표정이 밝아지며 술잔을 들었다. 이민식 대위 역시 술잔을 들어 서로 공중에서 부딪쳤다. 그렇게 두 사람이 은밀한 거래가 이루어졌다.
윤태민 2소대장은 어제 이민식 대위와의 술자리를 가지고 눈을 떴다. 어제 과음을 했는지 머리가 너무 아팠다.
“으윽, 젠장······.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네.”
하지만 윤태민 2소대장은 출근은 해야 했다. 전에 술 먹고 늦게 출근을 하는 바람에 경고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가야지. 출근해야지.”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고 대충 얼굴을 세수한 후 지내고 있던 군인관사를 나섰다. 그때 저만치 출근을 하는 박윤지 3소대장이 보였다.
그런데 오늘따라 발걸음이 가벼운지 출근하는 박윤지 3소대장의 모습이 좀 섹시해 보였다.
“뭐지? 갑자기 왜 저렇게 섹시해 보여.”
윤태민 2소대장이 피식 웃으며 입 꼬리를 올렸다.
“점점 더 흥미가 도네. 언제 한번 잡아먹지?”
윤태민 2소대장이 군침을 흘리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출근을 한 윤태민 2소대장이 자리에 앉았다. 홍일동 4소대장이 바로 인사를 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4소대장도 좋은 아침입니다. 다들 일찍들 오셨습니다.”
윤태민 2소대장도 각 소대장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러고 있는데 슬쩍 김진수 1소대장 자리를 확인했다.
“어? 1소대장님은 출근 아직 안 하셨습니까?”
“아뇨, 출근했습니다.”
“그렇습니까?”
윤태민 2소대장이 고개를 갸웃하고는 자신의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렸다. 그러다가 슬쩍 박윤지 3소대장을 봤다.
때마침 박윤지 3소대장도 정리를 하다가 윤태민 2소대장과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박윤지 3소대장이 본체만체했다. 그 모습이 윤태민 2소대장을 짜증 나게 만들었다.
‘뭐야! 아, 진짜 마음에 안 드네. 조만간 한번 잡아야겠네.’
윤태민 2소대장이 혼자 인상을 쓰며 음흉한 상상을 했다. 그때 행정반 문이 열리며 오상진이 들어왔다. 김진수 1소대장이 없어서 윤태민 2소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했다.
“충성.”
“충성.”
오상진도 바로 경례를 받아줬다.
“오셨습니까, 중대장님.”
“다들 출근을 했네. 오늘도 활기찬 하루를 보내자고.”
오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한 후 김진수 1소대장 자리를 봤다.
“1소대장은?”
“출근하자마자 자리를 비웠습니다.”
“그래? 알았어. 1소대장 오면 내 방으로 오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뭐, 다들 별일은 없지?”
“없습니다.”
오상진의 시선이 윤태민 2소대장에게 향했다. 윤태민 2소대장 근처로 간 오상진이 코를 벌렁거렸다.
“응? 2소대장. 어제 술 마셨나?”
“아, 네에······. 한잔했습니다.”
“이 친구가. 술을 마시는 것은 좋은데, 일상에 지장이 없도록 마셔야지. 이렇듯 술 냄새 풀풀 풍기고, 술 취한 얼굴로 애들을 통솔할 생각이었어?”
“조금 있다가 해장할 생각이었습니다.”
윤태민 2소대장이 습관적으로 말했다. 그러자 오상진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뭐? 해장? 무슨 소리야.”
“네?”
“아니, 방금 그것이 무슨 소리냐고.”
“아, 그것이······. 점심 때 나가서 해장하려고 했습니다.”
“그렇지? 밤새 술 마셨다고 근무시간에 이탈하고 그러려고 한 말은 아니지?”
“물론입니다.”
“미리미리 말하는데 예전에 우리 선배들이 그랬다고. 그런 안 좋은 것들은 빨리빨리 벗어나자고. 아니,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그런 안 좋은 것을 이어갈 필요는 없잖아. 안 그런가?”
“네, 맞습니다.”
대답을 하는 윤태민 2소대장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그러고 있다가 오상진은 박윤지 3소대장을 봤다. 오늘따라 그녀의 표정이 좀 밝아 보였다.
“3소대장.”
“네.”
“오늘 무슨 좋은 일 있어?”
“아닙니다. 별일 없습니다.”
“그래? 표정이 밝아 보여서 물어봤네. 아무 일 없으면 된 거지. 아무튼 다들 오늘 하루도 열심히 해보자고.”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행정반을 나갔다. 박윤지 3소대장은 오상진에게 관심을 받자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 모습을 보는 윤태민 2소대장은 짜증이 났다.
“3소대장.”
“네?”
“뭔 좋은 일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런데 왜 실실 웃습니까? 내가 깨지는 것이 재미있는 겁니까?”
윤태민 2소대장은 괜히 짜증이 나는지 박윤지 3소대장에게 시비를 걸었다. 박윤지 3소대장이 살짝 당황했다.
“아닙니다. 제가 왜 그럽니까.”
“아니. 지금도 실실 쪼개고 있지 않습니까.”
박윤지 3소대장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홍일동 4소대장이 나섰다.
“2소대장님. 갑자기 아침부터 왜 그러십니까? 3소대장 아침 출근 할 때부터 기분이 좋았습니다.”
“4소대장 내가 항상 말했죠. 낄 때 끼라고 말입니다. 지금 이 상황이 4소대장이 두둔할 상황인가?”
“그건 아닙니다만, 지금 제가 보기에는 2소대장님이 억지를 부리는 것 같습니다.”
“뭐? 억지? 지금 내가 억지를 부린다는 말씀입니까?”
윤태민 2소대장의 얼굴에 일그러졌다. 홍일동 4소대장 역시 얼굴이 굳어졌다. 그때 행정반으로 김진수 1소대장이 들어왔다.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그가 물었다.
“왜 그럽니까. 무슨 일 있습니까?”
김진수 1소대장의 물음에 윤태민 2소대장이 나섰다.
“아니, 제가 중대장님께 한 소리 듣고 있는데 3소대장이 그걸 보고 웃고 있지 뭡니까.”
박윤지 3소대장 억울한 얼굴로 두 손을 흔들었다.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김진수 1소대장은 옛날이었다면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좀 달랐다. 이 행정반에서 맑은 물을 흐리고 있는 썩은 미꾸라지 한 마리를 그냥 두고 볼 생각은 없었다.
“2소대장.”
“네?”
“3소대장이 그럴 사람이야?”
“네?”
“괜히 트집 잡지 말고, 자네나 잘해.”
“네에?”
윤태민 2소대장이 살짝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김진수 1소대장이 표정을 굳히며 코를 벌렁거렸다.
“뭐지, 이 냄새는? 혹시 자네 술 마셨나?”
윤태민 2소대장이 바로 손으로 입을 가렸다.
“아, 네에. 어제 한잔했습니다.”
“어후······ 설마 아까 중대장님께 혼 난 것이 이것 때문입니까?”
“······.”
윤태민 2소대장은 바로 말을 하지 못했다. 그 모습만 봐도 알 것 같았다.
“어후, 잘하는 짓입니다. 잘하는 짓이야······.”
김진수 1소대장이 한심한 눈빛으로 윤태민 2소대장을 바라봤다. 그때 홍일동 4소대장이 불렀다.
“1소대장님.”
“네?”
“중대장님께서 찾으십니다.”
“알겠습니다.”
김진수 1소대장은 다시 한번 2소대장을 바라보고는 다이어리를 챙겨 행정반을 나섰다. 윤태민 2소대장이 자리에 털썩 앉았다.
“시발! 다들 왜 나만 가지고 지랄이야.”
윤태민 2소대장은 괜히 성질을 부리며 행정반을 나가 건물 뒤편 흡연실로 갔다. 그곳에서 담배 한 대를 피우며 배를 어루만졌다.
“아, 젠장할. 속 쓰려······.”
윤태민 2소대장은 평소 같으면 밖에서 해장을 하고 들어왔을 것이다. 아니, 아예 출근도 하지 않고, 사우나에서 땀을 뺀 후 출근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일도 중대장이 바뀐 지금은 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을 하면 다들 4중대로 간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간부들은 싫어했다.
그러나 윤태민 2소대장만은 크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오히려 4중대에서 자신에게 눈치를 줄 사람이 없었기 조금은 괜찮게 생각했다.
게다가 어차피 위로 가려면 소대장 생활은 해야 했다. 그래서 자유분방한 성격의 윤태민 2소대장이어서 4중대 생활이 맞을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