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35)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69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35)
“뭐야? 무슨 일이야? 네가 무슨 일 없이 그런 말을 할 놈이 아니잖아.”
이민식 대위는 약간의 적의가 들어간 말투로 말했다. 그래서 윤태민 2소대장도 굳이 말을 돌리지 않았다.
-박윤지 소위 때문에 그럽니다.
“3소대장 박 소위?”
-네.
“뭔데?”
-자세한 것은 만나서 얘기를 나누시죠.
“하아······. 알았어. 저녁에 보지.”
이민식 대위가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른 후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이 녀석 도대체 뭐지? 뭘 알고 있는 거야. 옛날부터 박 소위를 노리고 있었던 것 같은데······. 혹시 그것 때문인가? 아니면 다리라도 놔 달라는 건가?”
갑자기 기분이 확 나빠진 이민식 대위였다.
그날 오후 송윤태 상병이 돈을 가지고 왔다.
“여기 있습니다.”
윤태민 2소대장은 바로 돈을 받아서 셌다.
“어디 보자, 하나, 둘, 셋······ 아홉, 열. 십만 원? 야, 인마. 그래도 반은 가져와야 하는 거 아니냐?”
“죄송합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이 그것뿐입니다.”
“에효······. 야! 안에 들어가서 가져가.”
송윤태 상병이 창고 안으로 들어가자, 그곳에는 소주병이 들어있는 검은색 봉지가 있었다. 송윤태 상병이 자신의 몸 안으로 소주병을 하나씩 집어넣었다. 다 옷에다 넣고 창고에서 나왔다.
“다 가져 나왔어?”
“네.”
“미리 말하는데 들키면 안 돼.”
“네, 걱정 마십시오.”
“빈 병도 잘 처리하고.”
“알겠습니다.”
송윤태 상병은 무척이나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윤태민 2소대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너 일주일 안에 잔금 다 갚아라.”
“알겠습니다.”
송윤태 상병이 저 멀리 사라지고 그 모습을 보며 윤태민 2소대장이 말했다.
“하아, 시발······. 그래도 술값은 벌었네. 그런데 이걸로 이민식이랑 마셔야 해? 술을 얻어 마셔도 시원찮을 판에.”
윤태민 2소대장은 잔뜩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박윤지를 먹으려면 말이야.”
그렇게 중얼거리며 창고에서 벗어났다.
한편, 그 시각 오상진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
-상진 씨. 뭐해요?
“지금 저 일하고 있죠?”
-저 지금 방해한 거예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러자 한소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중대장이 되니, 이거 하나는 편하네요. 눈치 안 보고 통화를 할 수 있어서 말이에요.
원래 소대장 시절과 사단에 있을 때는 낮에 함부로 전화를 하지 못했다. 급한 일 때문에 전화를 하면 잠깐 기다리라는 말이나, 아니면 나중에 전화한다고 말을 해야 했다. 바로바로 통화가 되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그래서 한소희도 눈치가 보여 아무 때나 전화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오상진이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서 전화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한소희도 그냥 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중대장이 된 오상진에게 바로 전화를 할 수 있어, 뭔가 여유로워진 기분이었다.
-남편이 승진하면은 와이프들이 왜 기분이 좋은지, 조금은 그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후후후, 그래요.”
-아, 맞다. 아빠가요. 또 언제 오는지 물어보던데요.
“네? 아버님이요? 어이구······. 제가 맘에 드셨나 봐요.”
-상진 씨도 상진 씨인데······. 지난번에 가져온 술이요.
“아, 그거요.”
-참! 맞다. 깜빡하고 있었네. 안 그래도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요. 어떻게 저하고 한마디 상의도 없이 그렇게 비싼 술을 가지고 와요.
뒤늦게 말을 하는 한소희였다. 그동안 잠깐 잊고 있었던 것이다. 오상진이 허허 웃었다.
“원래 마누라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에 절이라도 하는 겁니다. 그 정도는 해야 욕을 안 먹는 법입니다.”
-칫, 그래서 제가 예쁘다는 말이죠.
“그럼요. 마음 같아서는 더 하고 싶은데 그때는 그것이 제 한계였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짓 하지 마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어떤 술을······.”
-또또, 그런다. 자꾸 그렇게 버릇 들이면 아버지가 상진 씨를 술로밖에 안 보실 거예요.
“어? 그러면 안 되죠.”
-네, 그러지 말고. 집에 오면 바둑이나 둬요. 아버지 바둑 좋아하시잖아요.
“아, 그러면 되겠네요.”
-대신에 낚시는 절대 안 돼요!
한소희가 다짐을 시키듯 경고했다. 오상진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어요.”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박윤지 3소대장이 들어왔다. 오상진이 바로 말했다.
“소희 씨, 나중에 통화해야겠어요.”
-네네, 알겠어요.
오상진이 바로 전화를 끊었다. 박윤지 3소대장이 난감한 얼굴로 오상진에게 다가갔다.
“3소대장 무슨 일이지?”
오상진은 다소 근엄하게 물었다. 박윤지 3소대장은 쭈뼛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저 중대장님과 면담을 하고 싶습니다.”
“면담? 그래, 좋아. 저쪽으로 가서 앉지.”
“네.”
박윤지 3소대장이 자리로 가서 앉았다. 오상진은 책상에 있는 서류를 대충 정리해 놓고 앞에 놓인 테이블로 가서 앉았다.
“말해봐.”
“저어······ 이런 말씀을 어떻게 드려야 할지. 솔직히 저 군 생활을 잘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습니다.”
그 얘기를 들은 오상진이 잠깐 생각을 했다. 박윤지 3소대장은 ROTC 출신이고, 그런 상태에서 2년이라는 군 생활을 뭔가 억지로 채우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박 소위 얼마나 남았지?”
“내년 말까지는 해야 합니다.”
“으음······. 연장할 생각은 없고?”
“네, 솔직히 제 아버지가 직업군인이셔서 그때는 정말 멋있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군인이 되고 싶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제 스스로도 많이 부족한 것 같고, 무엇보다 저와 너무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자 오상진이 말했다.
“오, 아버님이 군인이셨어? 어디서 근무하셨는데?”
“저희 아버지는 부사관이셨습니다.”
“정년 퇴임하셨고?”
“네.”
“이야, 그러면 주임원사까지 하셨겠네.”
“네, 그렇습니다.”
“훌륭한 아버님을 두셨네. 아무리 그래도 주임원사까지 하셨으면 말이야. 쉽지 않을 텐데······.”
“······네에.”
박윤지 3소대장은 솔직히 지금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버지와 달리 지금의 자신은······. 그러는 사이 오상진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자네와 나같이 부족한 장교들을 뒷바라지 해주는 부사관 아닌가. 솔직히 부대에 부사관이 없다면 잘 돌아가지도 않아.”
오상진은 박윤지 3소대장의 아버지를 칭찬해 주듯이 말했다. 박윤지 3소대장이 멋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좋게 봐주셔서······.”
“뭐가? 난 지금 자네 흉을 봤는데.”
“네?”
박윤지 3소대장이 눈을 크게 떴다. 오상진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 그래서 전역하고 나면 무슨 일 할 거야?”
“저도 확실히 잘 모르겠습니다. 공부를 할 것인지······.”
박윤지 3소대장은 아직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상태는 이도 저도 아닌 상태였다.
“3소대장. 지금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라면 지금 당장 남은 군 생활을 열심히 하겠다는 것에 집중을 한번 해봐. 내가 3소대장을 오래 본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섣불리 말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중대장은 3소대장이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서 군 생활을 한 것 같지는 않아. 좀 더 잘할 수 있는데 노력이 부족하거나, 열정이 부족해서 못했을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환경이 받쳐주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고. 어쨌든 입관은 했으면 그동안 고생한 것이 많을 거 아니야. 그걸 다 미련 없이 포기하려면 일단 한번 열심히 해보고 난 후에 해도 늦지 않아. 중대장은 그리 생각을 하는데.”
오상진은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다.
“네에······.”
“중대장은 박윤지 3소대장이 포기를 하지 않는다면 최선을 다해서 도울 것이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도와줄 의향도 있어. 기죽지 말고 열심히 좀 더 노력을 했으면 좋겠는데. 무엇보다 군인답게 당당하게 말이야.”
“······.”
“항상 하는 말이지만 무슨 일이 있으면 중대장에게 먼저 말해. 완벽한 도움을 주지 못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방패막이는 이 중대장이 되어줄 수 있어.”
“네, 중대장님······.”
박윤지 3소대장이 대답을 하고 그제야 고개를 들어 오상진을 바라봤다. 오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중대장은 3소대장이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소대원들도 더 잘 이끌 수 있을 것 같고 말이야.”
“감사합니다, 중대장님. 그래서 말입니다.”
박윤지 3소대장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오상진은 그런 박윤지 3소대장을 봤다.
“중대장에게 말할 거라도 있어?”
“실은 말입니다. 오늘 저녁에 술 한 잔 가능하십니까?”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으음······ 이게 또 비겁한 변명일 수 있는데. 오해 말고 들어. 내가 결혼을 할 여자가 있어.”
“아, 네에······.”
“혹여라도 여자 친구가 오해할 수 있으니까, 3소대장하고는 단둘이 술은 좀 못 마실 것 같은데······.”
“아, 그렇습니까. 죄송합니다.”
“아니야, 대신에 밥은 괜찮아.”
오상진이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박윤지 3소대장이 눈을 크게 했다.
“네?”
“밥은 괜찮다고. 술은 안 되지만······.”
그제야 박윤지 3소대장의 표정이 밝아졌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번에 밥 한 끼 사주십시오.”
“그래, 언제든지 밥 한 끼 먹자고.”
“네. 중대장님.”
박윤지 3소대장이 한결 밝은 얼굴로 중대장실을 나섰다. 그런 박윤지 3소대장을 보며 오상진이 생각했다.
‘으음, 내가 별소리를 다 했나?’
하지만 중대장실을 나온 박윤지 3소대장의 표정은 밝았다. 아니, 사실 그 말이 너무도 좋았다.
솔직히 이민식 대위에게 그 말을 했을 때 술을 먹고 자신에게 엄청 치근거렸다. 그러다 어쩌다 보니 하룻밤을 함께하게 되었다.
그런데 오상진은 철저히 선을 지키면서 중대장으로서 자신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얘기를 했다.
‘그래, 윤지야. 한번 해보자.’
박윤지 3소대장은 다시 한번 다짐을 하듯 주먹을 꾹 움켜쥐었다.
그날 저녁 윤태민 2소대장은 이민식 대위와 근처 돼지 껍데기 집에서 만났다.
“오랜만입니다. 중대장님. 요즘 어떠십니까?”
“말도 마라. 지금 나 완전······. 아니다. 그보다 4중대는 어때?”
“좋을 리 있겠습니까? 중대장이 바뀌고 나서 완전 죽겠습니다.”
“야, 오상진이라고 했지? 그 새끼 뭐 하는 새끼야!”
“저도 모르겠습니다. 살다 살다 뭐 그런 똘아이가 다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다가 윤태민 2소대장이 흠칫하며 바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아니야, 아니야. 뭐가 죄송해. 뭐 없는 곳에서는 무슨 욕을 못 해. 편하게 해. 편하게.”
“아, 그래도 되겠습니까?”
“해해.”
“네,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번에는 뜬금없이 면담을 하지 않나. 그러다가 뭔가 마음에 안 드는지. 전 병력을 한곳에 모아서 소원수리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뭐 하나만 걸려라 이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주 4중대를 풍비박산 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아후, 어디서 그런 놈이 굴러들어와서는······.”
“그러게 말입니다.”
윤태민 2소대장이 잔뜩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그러다가 이민식 대위가 술을 입에 털어 넣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