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34)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68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34)
“저어, 그걸······.”
“이것 봐. 지금 당황했지? 그래서 내가 아까 말했잖아. 이 얘기는 술 한잔하면서 해야 하는 거라고 말이야. 뭐, 괜찮아. 3소대장도 성인인데 남자 친구랑 술 마시고 그런 곳에 갈 수도 있는 거지. 안 그래?”
“아, 예에······.”
박윤지 3소대장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런데 윤태민 2소대장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런데 3소대장. 남자 친구가 있었던가? 그 남자를 내가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한데······.”
박윤지 3소대장의 얼굴은 점점 더 핏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윤태민 2소대장이 속으로 피식 웃었다.
‘그럼 그렇지. 넌 딱 걸렸어, 이년아.’
윤태민 2소대장이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을 때 오상진이 창고에서 내려오다가 그런 두 사람을 발견했다.
“두 사람 거기서 뭐 해?”
“아, 중대장님.”
윤태민 2소대장은 오상진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박윤지 3소대장도 마찬가지였다. 오상진이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물었다.
“여기서 뭐 하고 있지? 뭐 하고 있는데 두 사람만 따로 나와 있지? 그것도 이렇게 구석진 곳에?”
오상진은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윤태민 2소대장을 바라봤다. 윤태민 2소대장은 눈빛을 받자 바로 변명을 했다.
“아, 예에. 다름이 아니라 3소대장하고 긴히 얘기를 할 것이 있어서 말입니다.”
윤태민 2소대장이 멋쩍게 웃으며 얘기를 했다. 그런데 박윤지 3소대장은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전에 오상진은 윤태민 2소대장이 박윤지 3소대장의 어깨를 주무르듯 추행을 하고 있었던 것을 이미 본 상태였다.
“2소대장.”
“네.”
“지난번에 내가 얘기를 한 것으로 아는데. 3소대장을 여자로 보지 말고, 한 명의 군인으로 대하라고 말이야.”
“저, 그러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러고 있어? 그럼 내가 조금 전에 봤던 것은 뭐지?”
“네?”
“내 두 눈으로 직접 봤다고. 3소대장 어깨에 손을 왜 올리나. 게다가 왜 주무르고 난리야. 그것이 3소대장을 군인으로서 대하는 자세인가?”
오상진의 말에 윤태민 2소대장이 당황했다.
“어, 그것이······. 저는 좀 반가운 마음에······.”
“2소대장.”
“네.”
“자네는 공과 사 구분을 못 하나?”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도대체 간부라는 사람이 죄송할 짓을 왜 하는 거지? 자네 이렇게 안 봤는데 정말 실망이야.”
“주, 중대장님······.”
“됐고!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야. 다음에 또 한 번 이런 일이 내 눈에 띈다면 그때는 말로는 안 끝나.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3소대장에게 사과해.”
“네?”
사과를 하라는 오상진의 말에 윤태민 2소대장이 고개를 홱 들어 올리곤 약간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오상진을 바라봤다.
“이제 귀까지 막혔나. 3소대장에게 사과하라고!”
“······.”
윤태민 2소대장은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박윤지 3소대장이 바로 나섰다.
“아닙니다. 전 괜찮습니다.”
오상진의 시선이 이번에는 박윤지 3소대장에게 향했다.
“3소대장!”
“네?”
“자네도 똑같아. 그런 불합리한 일을 겪었으면 거절을 했어야지. 그런 거 다 받아주고, 자기 스스로도 여자라고 인식하고 그러니 이런 일을 겪게 되는 거잖아.”
“······.”
“2소대장은 빨리 사과해!”
“미,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윤태민 2소대장의 어색하게 사과를 했다. 박윤지 3소대장이 사과를 받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윤태민 2소대장도 오상진의 눈치를 살피고는 박윤지 3소대장과 반대 방향으로 갔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오상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고 참······.”
오상진은 막말로 예전에 대대장까지 했었다. 그랬기 때문에 군인 신분을 망각하고 저런 철딱서니 없는 행동을 하는 간부들을 보면 화가 났다.
물론 중대장이 되고, 관리해야 할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윤태민 2소대장은 그런 오상진이 아니꼬울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중대장이라고 해도 자신과 나이도 크게 차이 나지도 않았다.
“하아, 시발······. 중대장이라고······.”
윤태민 2소대장이 욕을 내뱉었다. 그런데 그보다 박윤지 3소대장에게 화가 더 났다.
“3소대장 감히 날 무시해! 안 되겠네······. 네가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알았어, 이거 보고도 그냥 있을 수 있는지 어디 보자.”
윤태민 2소대장은 곧장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뭔가를 열심히 찾았다.
한편, 박윤지 3소대장은 자신의 자리로 와서 3소대 훈련에 관한 내용을 정리했다. 그때 책상 위에 놨던 휴대폰이 지잉 하고 울렸다.
“응?”
박윤지 3소대장의 시선이 휴대폰으로 향했다. 누군가에게 문자가 날아온 것이었다.
문자를 확인해 본 박윤지 3소대장이 흠칫 놀라며 재빨리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자리에 없는 윤태민 2소대장 빼고 모든 소대장은 자신의 자리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아, 아니, 이게 어떻게······.’
박윤지 3소대장은 다시 한번 문자를 확인했다. 그곳에는 자신의 모습과 이민식 대위의 뒷모습이 찍혀 있었다.
-건물 뒤쪽 창고로
문자를 확인한 박윤지 3소대장이 또다시 흠칫 놀랐다. 옆에 있던 홍일동 4소대장이 그 모습을 봤다.
“3소대장 무슨 일 있습니까?”
“아닙니다, 별일······. 저 잠깐 나갔다가 오겠습니다.”
박윤지 3소대장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행정실을 나갔다.
“뭐지?”
그 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홍일동 4소대장이었다. 박윤지 3소대장은 건물 뒤편에 몇 개의 창고가 있는 곳으로 갔다.
건물과 건물 사이, 사각지대에서 윤태민 2소대장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지금 뭐 하시는 거죠?”
“뭐긴 뭡니까. 아까 하던 얘기 마저 해야지. 왜? 선물은 잘 받았어?”
윤태민 2소대장은 이제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듯 서슴없이 반말까지 해가며 말했다. 박윤지 3소대장은 기분 나쁘다는 얼굴로 말했다.
“진짜, 저에게 왜 그러시는 거죠? 제가 2소대장에게 뭘 그리 잘못했죠?”
박윤지 3소대장은 그나마 아까보다는 좀 세게 나갔다. 윤태민 2소대장이 어이없어하며 웃었다.
‘어쭈, 이년 봐라. 아까 중대장님이 그런 말을 했다고 세게 나가는 거야?’
윤태민 2소대장은 재미난 표정을 지었다.
“이봐, 3소대장.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나는 3소대장을 동료로서 항상 좋게 봤고······. 그런데 알고 보니 뒤에서 이런 짓을 하고 있었던 거야? 중대장님이 바뀐 지 얼마나 되었다고. 아직까지 전 중대장에게 미련이 남았던 거야? 아니면 전 중대장님과 사귀어? 내가 알기론 전 중대장님 약혼자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 말을 들은 박윤지 3소대장은 할 말이 없었지만 어쨌든 변명은 해야 했다.
“아니, 그때는 이 대위님이 너무 술이 취해서······.”
“아, 술이 취해서 그렇게 모텔로 끌고 가셨어? 그럼 3소대장은 전 중대장님에게 흑심을 품었다는 거네.”
“어떻게 말이 그렇게 됩니까. 그런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박윤지 3소대장의 언성이 조금 올라갔다. 윤태민 2소대장이 빠르게 손가락으로 입을 가렸다.
“쉿! 목소리가 높네.”
그 말에 박윤지 3소대장이 바로 자신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빠르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윤태민 2소대장이 피식 웃었다.
“뭐, 큰 소리로 말하고 싶으면 말해. 나야 상관없으니까. 그보다 내가 왜 그러겠어. 3소대장이랑 술 한잔하면서 좋게좋게 풀려고 그러는 거잖아. 그런데 3소대장이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는 어떻게 해? 뭐, 짓궂게 나가는 수밖에.”
그런데 얘기를 하는 윤태민 2소대장의 표정에서 박윤지 3소대장을 어떻게 해보려는 속셈이 엿보였다.
아니, 박윤지 3소대장은 확실하게 그런 느낌이 들었다.
박윤지 3소대장이 갑자기 4중대로 보직 변경되었을 때, 한참 적응에 힘들어하던 자신을 이민식 대위가 잘 보듬어줬다. 그래서 그런 일이 생겼던 건데.
하지만 그런 박윤지 3소대장도, 아무리 의지가 박약하다 해도 윤태민 2소대장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다. 어차피 이 인간하고 친하게 지내봤자 원하는 것은 자신의 몸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가지고 놀려고밖에 안 할 것이 분명했다.
‘이 인간하고 어울려 봤자 좋을 것은 하나도 없어. 그런데······.’
박윤지 3소대장에게 보내진 사진 때문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대로 끌려다니면 더욱더 안 될 것 같았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맘대로 하십시오.”
박윤지 3소대장은 어디서 이런 용기가 났는지 몰랐다. 그냥 약점을 잡혀서 계속해서 끌려다니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박윤지 3소대장이 몸을 홱 돌려 빠르게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윤태민 2소대장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헐······. 박윤지, 세게 나가는데······. 네가 그렇게 나오니 더 매력적이야. 그래, 그래. 네가 그렇게 세게 나온다고 해서 내가 멈출 줄 알아? 어디 한번 두고 봐.”
윤태민 2소대장은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봤다. 모텔 들어가는 사진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그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 사진을 어떻게 써먹는담.”
윤태민 2소대장은 가만히 고민을 하다가 미소를 지었다. 그는 빠르게 전화 목록을 켜 이민식 대위라고 적힌 곳을 눌렀다.
이민식 대위는 오늘도 별일 없이 자리에만 앉아 있었다.
“젠장! 언제까지 자리에만 앉아 있어야 하는 거야!”
이민식 대위는 솔직히 답답했다. 뭔가 지시가 내려와야 하는데 아직까지 그 어떤 통보도 없었다. 그냥 며칠째 계속해서 중대장실에만 있었다.
사실 윗선에서도 자신을 다른 부대로 전출을 보내겠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했다. 당연히 그럴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다.
“하아, 미치겠네. 도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이민식 대위는 솔직히 이 대대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가능하면 이곳에 남고 싶었다.
“아니면 그냥 계속해서 2중대를 맡게 두면 좋은데.”
물론 그것은 쉽지 않다는 것은 알았다. 이미 도마뱀 꼬리를 자르기에 들어갔기에 가망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다른 부대로 보내는 것도 아니고, 이렇듯 멍하니 자리만 차지하고 있으니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내가 이러려고 군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닌데······.”
어딘지 모르게 회의감마저 들었다. 애꿎은 책상만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그러기를 잠깐 한쪽 책상 위에 올려놨던 휴대폰이 지잉 하고 울렸다.
“응?”
이민식 대위가 재빨리 휴대폰을 들었다. 발신자는 윤태민 2소대장이었다.
“윤 소위가?”
이민식 대위는 잠깐 동안 휴대폰을 바라보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래, 윤 소위. 무슨 일이야?”
-중대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중대장은 무슨······. 자네 나 놀리나?”
-제가 놀리다니, 전혀 아닙니다.
“됐고, 무슨 일인데?”
-괜찮으시면 저녁에 소주 한잔하시죠.
“소주? 갑자기 왜?”
-오랜만에 술 한잔하고 싶어서 그럽니다.
하지만 이민식 대위도 바보는 아니었다. 윤태민 2소대장은 뭔가 있지 않으면 저런 말을 꺼낼 위인이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자신이 중대장일 때 뒤에서 엄청 아부를 떨었지만······.
그러나 자신이 이 일이 터졌을 때는 뒤로 물러나 입도 뻥긋하지 않았던 녀석이었다. 들리는 소문에는 오히려 잘되었다며 자신을 뒷담화 깠다던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갑자기 술을 마시자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