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30)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64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30)
“오늘 오게요?”
-왜요? 안 돼요?
“아뇨, 너무 좋아서 그러죠.”
-집 청소했어요?
“아마 했을걸요.”
-봐봐, 집 또 엉망으로 만들어 놨지. 내가 내려가서 또 다 청소해야겠네.
“그러지 마요. 괜히 내려와서 집 청소만 하고 가는 것 같아요. 내가 청소해 놓을게요.”
-저 집 청소하러 가는 거 맞거든요? 내가 없으면 맨날 집 엉망이잖아요.
“저 그렇게 지저분하게 살고 있지는 않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맨날 앉은자리만 치우잖아요. 다른 곳에 먼지도 쌓이고 그러는데 그곳도 청소하고 해야 하잖아요. 며칠만 지나도 먼지가 쌓이는데요.
“미안해요.”
아무리 오상진이 청소를 한다고 해도 남자였다. 그래도 남자치고는 나름 치우고 산다지만 어디 여자의 눈에는 성에 찰까.
한소희는 옷을 잘 정리해서 걸어 놓는 반면, 오상진은 내일 다시 입을 거니까 의자나 소파 쪽에 그냥 던져놓곤 한다. 그 버릇은 회귀를 했는데도 고치지 못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내가 내려가서 청소를 해놓을게요. 퇴근하고 봐요.
“그럼 우리 영화 봐요. 영화!”
-영화요? 거기 영화 볼 데가 있어요?
“시내 쪽으로 나가면 있어요.”
-좋아요, 알겠어요. 아, 그리고 상진 씨!
“네?”
-오늘 이벤트 있으니까, 기대해요.
“이벤트? 뭔데요?”
-히힛, 비밀이에요.
한소희가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오상진은 자신의 휴대폰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벤트? 무슨 이벤트지.”
오상진은 이벤트라는 말에 절로 기대가 되었다. 사실 한소희가 가끔 이벤트란 말로 자신의 깜짝 놀라게 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래서 잔뜩 차오른 기대감을 숨길 수가 없었다.
“이거 참······ 빨리 퇴근하게 만드네.”
오상진은 오늘따라 유난히 시간이 늦게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오후가 되었고,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 왔다. 오상진은 시계를 보며 중얼거렸다.
“이야, 오늘따라 시간 진짜 안 가네.”
이미 퇴근할 준비를 다 마친 상태였다. 시간 되면 가방만 챙겨서 나가면 끝이었다. 그때 김태호 상사가 문을 두드리며 들어왔다.
“중대장님.”
“네?”
김태호 상사는 들어와 오상진을 바라봤다. 오상진도 눈을 끔벅이며 봤다.
“······주셔야죠.”
“네? 뭘······.”
“아까 결산보고 사인 말입니다. 그거 주셔야죠.”
“아, 맞다. 내 정신 좀 봐.”
오상진은 바로 책상 한쪽에 있는 서류철에서 결산보고서를 꺼냈다.
“사인은 하신 거 맞죠.”
“그럼요. 했죠.”
김태호 상사가 서류를 건네받고 확인했다. 사인한 것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중대장님.”
“네?”
“벌써 퇴근하시는 겁니까?”
“네?”
“아니, 책상 위에 가방······.”
“아······ 네에.”
“보통 퇴근을 좀 늦게 하지 않으십니까? 아니면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김태호 상사가 물었다. 오상진은 살짝 민망한 얼굴로 말했다.
“네, 집에 여자친구가······.”
“아, 바로 이해했습니다. 그럼 가셔야죠. 네네.”
김태호 상사가 웃으며 서류철을 들고 나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문을 열고 말했다.
“참, 결혼은 언제 하십까?”
“결혼요? 글쎄요.”
“그렇게 좋으시면 빨리하십시오.”
“그, 그래야죠.”
“여기 중대장으로 부임하고 계실 때 하십시오. 아니지, 다른 곳에서 하셔도 전 초대해 주셔야 합니다.”
“물론이죠.”
“네, 그럼 퇴근 잘하십시오.”
김태호 상사가 웃으며 사무실을 나갔다.
오상진도 절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가방을 챙겨서 일어났다.
“퇴근하자!”
오상진은 부랴부랴 퇴근해서 집에 도착을 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청소기 소리가 들려왔다.
위이이이잉!
거실에서 앞치마를 걸친 상태로 청소를 하고 있는 한소희가 보였다.
“어멋! 퇴근했어요?”
한소희가 밝은 표정으로 오상진을 맞이했다. 오상진도 환한 얼굴로 한소희에게 다가가 그녀를 안았다.
“언제 왔어요?”
“음, 한 시간 전에요?”
“그보다 청소 아직 안 끝났어요?”
“거의 끝나가요.”
“그러지 말고, 우리 나가요.”
오상진의 말에 한소희가 눈을 살짝 흘기며 말했다.
“아니, 집 안을 이 꼴로 만들어 놓고 그 말이 나와요?”
오상진은 당황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후, 별로 안 지저분한 것 같은데······.”
“안 지저분해요? 그리고 그 뭐냐, 음식을 먹고 그랬으면 버리고 해야지. 음식물 찌꺼기를 언제 버리려고 그대로 두고 있어요, 냄새나게.”
“아, 미안해요.”
다시 안으려고 하자, 한소희가 막았다.
“또또또, 이런 식으로 대충 넘어가려고 한다.”
“소희 씨······.”
“그러지 말고, 자요! 이거 어서 버리고 와요.”
한소희가 음식물쓰레기 봉투를 내밀었다. 그것을 본 오상진은 바로 받았다.
“네, 알겠어요.”
오상진이 후다닥 1층에 음식물쓰레기를 버리고 온 후 다시 말했다.
“다음은 또 뭐 할까요?”
“저 설거지 좀 마무리 지을 테니까, 저기 대걸레로 바닥 좀 닦아요.”
“알겠어요.”
오상진은 대걸레를 가져와 한소희가 설거지하는 옆에서 바닥을 스윽스윽 닦았다. 한소희가 그것을 보며 인상을 썼다.
“아니, 왜 여기 와서 닦아요. 저기 거실 닦으라고요.”
“다른 곳은 다 닦았어요.”
“정말요?”
“진짜라니까요.”
한소희가 피식 웃으며 다시 설거지를 했다.
“내가 그렇게 좋아요?”
“그럼요. 당연히 좋죠.”
“으구······. 그래도 매일 안 보고 가끔 보니까, 내가 이뻐 보이기는 하나 봐요.”
“무슨 소리예요. 나는 항상 소희 씨가 예뻐 보이고, 항상 함께하고 싶어요. 솔직히 빨리 결혼했으면 좋겠어요.”
“상진 씨, 미안해요. 저도 빨리 결혼하고 싶은데, 학교 졸업하고 대학원까지 들어갔는데 좀 더 공부를 하고 싶어요. 경영학과 나왔는데 여기서 공부를 더 못 한다는 것이 좀 그래요. 일단 박사 학위까지만 딸게요.”
“알았어요. 걱정 마요. 저도 충분히 기다릴 수 있으니까요. 우리 아직 젊어요!”
“정말 기다릴 수 있는 거죠?”
“그럼요.”
“미안해요. 나도 진짜 고민 많이 했는데, 공부할 때는 공부해야죠. 결혼하면 아기도 나아야 하고, 이것저것 공부하기 힘들어지니까. 이해해 줄 수 있죠?”
“네네, 알았어요. 그런데 소희 씨.”
“네?”
“결혼하면 바로 아기 갖는 거예요?”
한소희는 살짝 생각을 하더니 말했다.
“뭐,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을까요?”
“그렇구나.”
오상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한소희가 눈으로 흘겼다.
“이봐, 이봐. 틈을 주면 안 돼요. 또 응큼한 생각 하고!”
오상진은 대걸레를 한 곳으로 치우고 한소희에게 갔다.
“소희 씨, 설거지 다 했으면 우리······.”
“어후, 진짜······. 그동안 어떻게 참았는지 몰라요.”
“그러니까요. 저 진짜 많이 참았잖아요. 그러니까, 어서 상 줘요.”
“으구, 잠깐만 기다려요.”
한소희는 오상진을 가볍게 툭 치고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오상진은 눈을 끔뻑이고는 피식 웃었다. 순간 준비했던 이벤트를 해줄 것이라 생각했다. 오상진은 거실로 자리를 옮겼다.
“소희 씨 아직 멀었어요?”
“다 되었어요. 기다려요.”
“네네.”
그로부터 약 10여 분이 흐른 후 한소희가 말했다.
“저 이제 나가요.”
“네.”
한소희가 안방 문을 열고 나오자 오상진의 입이 쩌억 하고 벌어졌다. 그 앞에 선 한소희는 수줍은 미소로 오상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 어때요?”
“······.”
오상진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 한소희는 예전 자신이 고등학교 때 입었던 교복을 입고 서 있었던 것이다.
“제, 제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죠? 여, 여신을 보고 있나요?”
오상진은 심장이 쿵쾅, 쿵쾅거리며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와이씨, 심장 뛰는 거 봐.”
오상진은 자신의 손을 심장에 가져갔다. 심장이 진짜 말도 안 되게 뛰고 있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오상진이 한소희에게 다가갔다.
“그, 그런데 이게 뭐예요?”
“교복 한번 입어봐 달라면서요.”
“그, 그렇죠. 그런데······. 와, 할 말을 잊게 만드네요.”
오상진은 한소희를 위아래로 훑었다. 오상진의 끈적끈적한 시선을 받으면서도 한소희는 그 시선이 싫지가 않았다.
“이거, 좀 갑자기 좀······ 그런데······.”
“왜요?”
한소희가 고개를 갸웃했다. 오상진이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왜 그래요.”
“그, 그게요. 지금 소희 씨가 고등학생인 것 같은 착각이 들어서, 뭔가 죄를 짓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뭐래······.”
한소희가 피식 웃었다. 오상진은 그런 한소희에게 아직 다가가지 못했다.
“뭐 해요. 그래서 이런 제 모습이 싫어요?”
“싫은 것은 아니죠. 좋아요, 너무 좋아요!”
“그런데요?”
“아까도 말했지만······.”
“칫, 그럼 그냥 평소 옷으로 갈아입을게요.”
한소희가 몸을 홱 돌리려고 하자, 오상진이 바로 소리쳤다.
“안 돼요!”
오상진의 말에 한소희가 손을 내밀었다.
“이리 와요.”
오상진은 마치 뭐에 홀린 듯 손을 내밀어 한소희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한소희가 오상진을 데리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오상진은 뭔가 많이 어색했다. 딱 봐도 한소희는 그냥 한소희였다. 그런데 교복을 입고 있으니 뭔가 느낌이 묘했다. 아니, 죄를 짓는 것만 같았다.
‘와놔. 이거 진짜 돌아버리겠네.’
오상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한소희는 이미 성인인데 교복이 그 모든 것을 상쇄시키고 있었다. 반면 한소희는 그런 오상진의 모습이 너무도 귀여웠다.
‘귀여워.’
한소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우리 상진 씨 뭐야. 이런 거 좋아했어요?”
“어, 그게. 나도 지금 깜짝 놀랐어요. 나에게 이런 취미가 있었을 줄은······.”
“네에? 으구······.”
그러자 오상진이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한소희를 확 끌어안았다.
“어멋! 교복 구겨지는데······.”
“제가 못 참겠어요. 너무 예뻐요. 아니, 귀여워요. 섹시하고. 세상에 이런 이벤트를 받는 남자는 저밖에 없을 거예요.”
“그럼요. 당연하죠.”
한소희도 오상진에게 안긴 채 미소를 지었다. 그녀 역시도 고등학교 이후 처음으로 교복을 입어봤다. 물론 내려오기 전에 미리 한번 입어봤지만 딱 맞았다.
지금도 고등학교의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에 행복했고, 이 모습을 보고 기뻐할 오상진의 모습에 기분이 좋았다.
오상진이 한소희를 떼어내고 말했다.
“우리 저녁 먹어야죠.”
“그래야죠.”
“나가서 먹죠!”
오상진이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한소희가 말했다.
“이대로요?”
“그럼요. 예쁜데.”
“싫어요. 그러지 말고 여기 있어봐요. 제가 차려줄게요.”
한소희가 부엌으로 가려고 하자 오상진이 팔을 붙잡았다.
“그러지 말고, 우리 나가서 저녁 먹어요. 영화도 보고. 우리 오늘 영화 보기로 했잖아요.”
“그렇긴 한데······.”
“왜요? 싫어요?”
“싫은 것은 아닌데······. 상진 씨 피곤하지 않아요?”
“전혀요.”
“저는 청소하고 그러느라 좀 힘들어요. 그래서 지금 영화 볼 생각이 좀 없는데······.”
한소희가 미안하단 얼굴로 말했다. 오상진은 바로 서운한 얼굴이 되었다.
“알겠어요.”
한소희도 미안했던지 오상진에게 다가가 뽀뽀를 쪽 해줬다.
“상진 씨, 그러지 말고, 마트 가서 장을 보고 들어와서 먹어요. 네?”
한소희의 애교 가득한 말에 오상진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