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27)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61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27)
그 시각 이민식 대위와 박윤지 3소대장도 근처 호프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민식 대위는 반쯤 취한 상태로 고개를 푹 박은 채 중얼거렸다.
“후우, 박 소위. 나 힘들어. 진짜 너무 힘들어.”
“중대장님 힘내십시오.”
“중대장은 무슨······. 박 소위도 나를 동정하나? 아니면, 놀리는 건가?”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중대장님을 놀립니까.”
“그럼 말이야. 나를 중대장이라고 하지 말고 다르게 불러봐.”
“어떻게······.”
“오빠라고 해. 오빠! 박 소위랑 나랑 나이 차이가 얼마나 난다고 그래.”
박윤지 3소대장이 당황했다.
“제가 중대장님께 어떻게 오빠라고 합니까.”
“어허, 뭐가 어려워. 그냥 오빠라고 해. 어서! 오빠!”
박윤지 3소대장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렸다. 이민식 대위는 잔뜩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박윤지 3소대장을 바라봤다. 박윤지 3소대장은 잠깐 망설이다가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오, 오빠······.”
“그래. 얼마나 좋아. 그거 알아, 박 소위?”
“네?”
“박 소위는 말이야. 내 첫 사랑 닮았다.”
순간 박윤지 3소대장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이민식 대위가 슬쩍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 두드렸다.
“박 소위, 여기로 와 봐.”
“네?”
“여기로 와 보라니까.”
툭툭!
“주, 중대장님······.”
박윤지 3소대장이 주위를 황급히 두리번거리며 당황스러워했다.
이민식 대위가 다시 한번 부드러운 어투로 말했다.
“어허, 오라니까. 어때!”
박윤지 3소대장이 잠깐 망설이더니 슬그머니 옆자리로 가서 앉았다. 이민식 대위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는 슬쩍 박윤지 3소대장의 허리를 감쌌다.
“중대장님 이러지 마십시오.”
박윤지 3소대장이 이민식 대위의 손을 밀었다. 이민식 대위가 바로 정색했다.
“어? 박 소위 너무하네. 내가 박 소위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면서 이러기야?”
“아, 알고 있지만······.”
“그럼 이러면 안 되는 거지.”
이민식 대위가 말을 하면서 다시 허리를 감쌌다. 박윤지 3소대장은 거부를 했지만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민식 대위는 박윤지 3소대장을 자신의 몸에 바짝 밀착을 시켰다. 그리고 약간 취기가 오른 이민식 대위가 박윤지 3소대장에게 말했다.
“박 소위.”
“네?”
“나 안 보고 싶었어?”
“중대장님······.”
“왜? 예전에 내가 박 소위 마음 받아주지 않았다고 이러는 거야? 아니면 내가 꼴이 이래서 그러는 거야?”
“아니에요. 그런 거······.”
박윤지 3소대장이 강하게 말했다. 사실 일전에 이민식 대위가 4중대부임하고 나서 곧이어 박윤지 3소대장이 왔다. 그때 이민식 대위가 박윤지 3소대장을 많이 챙겨줬다. 물론 여자라서 좀 더 신경을 쓴 경향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런 시기에 박윤지 3소대장은 이민식 대위에게 호감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그런 사실을 안 이민식 대위는 술자리를 가졌고, 단둘이 술을 마시며 결국 관계까지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 하룻밤 이후 박윤지 3소대장은 이민식 대위와 연인 관계를 꿈꿨다. 하지만 정작 이민식 대위는 약혼자가 있다는 이유로 박윤지 3소대장을 밀어냈다.
그런데도 이민식 대위는 군 생활하는 내내 박윤지 3소대장을 치근대고, 관심을 뒀다. 그러면서 박윤지 3소대장을 많이 헷갈리게 했다.
그런데 오늘도 뜬금없이 불러서는 이러고 있으니 박윤지 3소대장의 마음도 싱숭생숭했다.
“박 소위······.”
이민식 대위가 박윤지 3소대장을 친근하게 불렀다.
“네?”
“오늘······ 나랑 같이 있어 주면 안 돼?”
“중대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 솔직히 박 소위 생각 많이 한다. 내가 지난번에 말했지? 결혼할 여자 있다고.”
“그, 그렇죠.”
박윤지 3소대장은 갑자기 왜 이런 뜬금없는 말을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민식 대위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나, 그 여자랑 잘 안돼.”
“왜 그러십니까?”
“몰라, 내가 꼴이 이래서 그런 건지. 다른 남자가 생겨서 그러는 것인지······. 요새 연락도 잘 안 되고 그래. 나 요새 너무 힘들다.”
“······.”
“박 소위. 그래서 말인데 오늘 나랑 함께 있어 주면 안 될까?”
이민식 대위는 무척이나 슬픈 눈빛으로 박윤지 3소대장을 바라봤다. 그 눈빛을 보자 박윤지 3소대장이 흔들렸다. 그런 박윤지 3소대장을 보며 이민식 대위가 속으로 씨익 웃었다.
‘그래, 박윤지 네가 어떻게 날 거절하겠어.’
그러고 있는데 이민식 대위가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박 소위. 나 너무 어지럽다. 좀 취한 것 같은데 어디 들어가서 쉬어야 할 것 같은데······.”
“일어나세요.”
이민식 대위가 박윤지 3소대장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다. 그렇게 비틀비틀 걸어가다가 택시를 잡으려고 하는데 한적한 이곳에서는 잘 없었다. 그러자 이민식 대위가 슬쩍 말했다.
“박 소위, 우리 그러지 말고 잠깐 쉬었다가 가자.”
“네?”
“아니······ 저쪽으로 가서 좀 쉬었다가 갔으면 하는데.”
이민식 대위가 가리킨 방향으로 박윤지 3소대장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은 붉은 네온사인으로 환하게 밝혀져 있는 모텔이었다.
박윤지 3소대장이 바로 표정이 어두워졌다.
“중대장님 저에게 왜 그러십니까.”
“박 소위. 자네는 전우애도 없어? 내 밑에서 자네를 얼마나 챙겨줬나. 그런데 이러기야. 아니면 박 소위도 나 지금 끈 떨어진 연 신세라고 우스워?”
“그런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럼 좀 쉬었다가 가. 우리 예전에 좋았잖아.”
이민식 대위가 박윤지 3소대장의 어깨를 꽉 끌어안았다. 박윤지 3소대장은 순간 당황했다. 손에 힘을 주어 떨쳐내려고 했지만 이민식 대위의 힘이 워낙에 강했다. 한편으로는 뭔가 이민식 대위가 불쌍해 보이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좋아······.’
박윤지 3소대장의 눈빛이 크게 흔들리며 갈등했다. 지금 이민식 대위가 취하기도 했고, 지금 상태에서 떨어지려고 하지도 않을 것 같았다.
‘그래, 일단 모텔에 데려다주기만 하자. 데려다주고 나오면 돼.’
박윤지 3소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알겠습니다. 제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박윤지 3소대장의 말에 이민식 대위의 입가가 올라갔다. 그러곤 꽉 끌어안고 있던 팔에 힘을 풀었다.
“그, 그래. 조금만 쉬었다가 가자. 나 진짜 너무 어지러워서 그래.”
“네, 알겠습니다.”
이민식 대위가 씨익 웃었다.
‘그래, 박윤지. 넌 어쩔 수 없다니까.’
이민식 대위가 속으로 말을 한 후 박윤지 3소대장에게 부축을 받으며 모텔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때마침 윤태민 2소대장도 비너스에서 나와 같은 모텔로 이동하고 있었다.
“어? 자, 잠깐만······.”
윤태민 2소대장은 멈춰서서 이민식 대위와 박윤지 3소대장을 봤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아가씨가 말했다.
“왜요?”
“아, 아니······. 내가 아는 사람 같아서.”
“아는 사람?”
“응. 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그러자 옆에 있던 아가씨가 살짝 질투 난 표정으로 말했다.
“뭐야, 오빠. 나 말고 딴 여자 만나고 있었어?”
“뭔 소리야. 우리 부대 사람 같아서 그래. 너 잠깐 여기 있어 봐.”
윤태민 2소대장이 아가씨를 그곳에 두고 슬그머니 먼 곳을 돌아서 다가갔다. 어둠속에 몸을 숨긴 후 두 사람을 확인했다.
‘헉, 이 대위님하고, 박 소위?’
두 사람을 확인한 윤태민 2소대장은 처음에는 놀랐지만 이내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어쭈, 이것들 봐라.’
윤태민 2소대장은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를 켜 모텔로 들어가는 두 사람의 사진을 찍었다.
“그래, 박윤지. 네가 이러고 다니고 있을 줄 알았다. 이거 완전 빼박이네. 딱 걸렸어!”
윤태민 2소대장은 잘 찍힌 사진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다음 날 아침 부대별로 소원수리를 시작했다. 각 소대별로 식당에 모여 종이와 볼펜을 나눠주며 쓰라고 했다.
그사이 윤태민 2소대장은 한쪽 구석에서 병사들이 쓰는 것을 지켜봤다. 그런데 한쪽에서 애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야, 눈 돌리지 말고 너희들 것만 써!”
윤태민 2소대장은 그중 한 녀석에게 눈이 갔다. 뭔가 적을 것이 있는지 심각한 얼굴로 열심히 볼펜을 긁적이고 있었다.
“어험······.”
윤태민 2소대장은 헛기침을 한 후 슬쩍 그 녀석에게 다가갔다.
“야, 요한일.”
“일병 요한일.”
요한일 일병은 황급히 자신이 쓰고 있던 종이를 가리며 관등성명을 댔다.
“너 뭘 그렇게 열심히 적냐.”
“네?”
“뭐야, 너. 소원수리를 적으라고 했는데 뭘 그렇게 열심히 적고 있냐고.”
원래 소원수리는 익명이었다. 아무리 간부라도 보면 안 되었다. 하지만 윤태민 2소대장이 슬쩍 보려고 했다. 그때 가리지 못했던 앞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존경하는 중대장님. 저는 아무 불편함 없이 군 생활을 잘 하고 있습니다.
그 문장을 보면서 윤태민 2소대장이 씨익 웃었다.
“야, 요한일.”
“일병 요한일.”
“잘하고 있어. 그대로 적으면 돼.”
“네.”
요한일 일병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다시 적기 시작했다. 윤태민 2소대장이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적으면서 듣는다. 다 작성한 인원은 안 보이게 잘 접어서 앞에 보이는 상자 안에 넣고 나가면 된다.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힘찬 대답을 한 병사들 중 몇 몇 일어나 상자 안에 종이를 넣었다.
“다 적었냐?”
“네.”
“빨리도 적었네.”
“뭐, 적을 것이 있어야 말이죠.”
윤태민 2소대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알았다. 나가서 볼일 봐라.”
“넵!”
저렇게 말하는 병사들 대부분이 병장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병장들이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저 좀 기다리다가 자연스럽게 제대하면 끝 아닌가.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하나 둘 소원수리를 다 적은 병사들이 상장에 종이를 넣었다.
“다 넣었네.”
이기상 하사가 식당 안에 있는 인원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상자의 뚜껑을 닫고 자물쇠로 잠갔다. 그리고 윤태민 2소대장을 보며 말했다.
“2소대장님. 이거 제가 중대장님께 제출하겠습니다.”
“아, 아니야. 나 줘. 내가 가는 길이니까. 내가 낼게. 이리 줘.”
“네, 알겠습니다.”
이기상 하사가 윤태민 2소대장에게 건넸다. 그렇게 식당을 나가 복도를 걸어가던 윤태민 2소대장이 중대장실이 아닌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곤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상담실로 들어갔다.
상담실 안에서 문을 잠근 후 탁자 위에 상자를 올렸다.
“후후후, 내가 만약을 위해서 열쇠 하나를 카피해 뒀지.”
윤태민 2소대장이 실실 웃으며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원래 자물쇠 열쇠는 오상진이 들고 있었다. 그런데 윤태민 2소대장이 몰래 열쇠 하나를 따로 복사를 해뒀던 것이다.
물론 이 자물쇠 역시 윤태민 2소대장이 직접 구매한 것이었다.
찰칵!
열쇠로 자물쇠를 열어 상자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 수북이 쌓인 종이들이 보였다.
“이 새끼들 소원수리 쓰라고 했더니 건수 잡은 것처럼 실실 거리더니. 뭘 적었는지 봐야겠어.”
윤태민 2소대장이 하나하나 펼쳐서 확인을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