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26)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60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26)
안세호 일병 역시도 소원수리는 쓰고 싶지 않았다.
만에 하나 공대익 상병이 돈을 빌려 간 뒤 갚지 않았다는 내용을 쓴다면 후임 중 하나가 썼다는 것을 알아챌 것이다.
그것이 자신이라고 들켜 버리면 공대익 상병이 지랄하는 것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았다. 안세호 일병은 그저 편안하게 군 생활을 끝내기 바랐다.
“아무튼 세호야.”
“일병 안세호.”
“내가 그거 갚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그래, 들어가고 너 다음에 누구더라?”
“해명입니다.”
“그래, 해명이 오라고 해라.”
“네, 알겠습니다. 충성.”
안세호 일병이 경례를 하고 그곳을 벗어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공대익 상병은 이런 식으로 후임들 입막음을 했다. 또한 공대익 상병처럼 다른 소대에서도 소원수리에 대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날 저녁 오상진은 홍민우 작전과장과 부대 근처 돼지껍데기 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홍민우 작전과장은 송일중 대대장이 어떻게든 해보라고 닦달하는 탓에 어쩔 수 없이 술 한잔하자는 약속을 잡은 것이었다.
“제가 좀 늦었습니다.”
오상진이 조심스럽게 인사를 하며 나타났다. 홍민우 작전과장이 손을 흔들었다.
“아니야, 나도 방금 왔어.”
홍민우 작전과장이 얘기를 했지만 이미 빈 소주병 하나가 테이블이 올라와 있었다. 게다가 얼굴에는 약간 취기가 오른 듯 붉어져 있었다.
“앉아.”
“아, 네에.”
오상진이 자리에 앉자, 곧바로 소주병을 든 홍민우 작전과장이 오상진의 잔에 소주를 따랐다.
“자, 한잔하자고.”
“네.”
두 사람이 잔을 부딪친 후 바로 들이켰다. 오상진은 잔을 내린 후 바로 소주병을 들어 홍민우 작전과장의 잔에 술을 따랐다. 홍민우 작전과장도 말없이 소주병을 건네받아 다시 오상진의 잔에 따라줬다.
홍민우 작전과장이 젓가락으로 잘 구워진 돼지 껍데기를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오 대위는 술을 좀 한다고 했던가?”
“잘하지는 못합니다.”
“그래? 그래도 한 잔, 한 잔 하다 보면 술이 늘지 않나?”
“전임 중대장님께서 술을 좋아하셔서 같이 많이 마시긴 했습니다. 그런데 한동안 마시지 않아서 그런지 주량이 좀 줄어든 것 같습니다.”
“하하, 그래?”
홍민우 작전과장이 웃었다.
“나는 대대장님 시중드느라, 술이 많이 늘긴 했지. 원래 내가 술을 좀 못하거든. 대대장님 대신해서 술을 먹다 보니, 아후······. 어떤 때는 말이지, 거의 한 달 동안 쉬지도 않고 술을 마셨던 것 같다. 그때 속이, 내 속이 아니었지.”
홍민우 작전과장이 너스레를 떨었다. 그 장단에 맞춰 오상진이 대답을 했다.
“아, 네에. 그러셨습니까?”
홍민우 작전과장이 처연하게 미소를 지었다. 한마디로 나 이렇게 매일매일 힘들게 살고 있다. 푸념하듯이 얘기를 했다. 그런데 오상진은 그저 듣는 것밖에 할 것이 없었다. 그러고 있다가 홍민우 작전과장이 슬쩍 물었다.
“오 대위는 어때?”
“저야 뭐 4중대에서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그래? 소대장들은? 사고 안 치고 말 잘듣나?”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들 열심히 하려고 해서 보기 좋습니다.”
홍민우 작전과장이 피식 웃었다.
“그래?”
원래 4중대 자체가 꼴통부대이기도 했고, 4중대로 보낸 소대장들도 솔직히 정상적인 사람들은 없었다. 김진수 1소대장은 꽉 막힌 스타일이고, 윤태민 2소대장은 까불까불하며 너무 출세 지향적인 사람이어서 밉보인 것도 있었다.
박윤지 3소대장은 왜 군인이 되었는지 모를 정도로 의지가 없었다. 홍일동 4소대장은 약간 인맥이 없었다.
그나마 고생을 해보라는 식으로 4중대로 보낸 소대장이었다. 만약에 자신이 중대장이라면 별로 중대를 위해 딱히 희생하는 그런 소대장들 조합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소대장은 보면 맥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오상진은 나쁘지 않다고 말을 하니 홍민우 작전과장은 그저 피식 웃기만 했다.
“괜찮다라······. 참! 얘기 들어보니 면담을 했다고 그러던데?”
“네. 제가 4중대로 부임을 하고, 솔직히 병사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습니다. 지난번에 조인범 상병 사건도 있고······.”
홍민우 작전과장은 조인범 얘기가 나오니 쓴웃음을 지으며 소주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오상진이 소주를 따라주며 말했다.
“불편하시면 다른 얘기를 하겠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그게 자네 잘못은 아니지. 솔직히 말하자면 전임 중대장이 문제였지. 대대장님이라고 해서 그런 일이 벌어지도록 방관을 했겠나. 자네는 모르겠지만 진짜 대대장님을 모르셨어. 나도 몰랐고······.”
“아, 그렇습니까?”
“4중대야 원래 독립적인 중대가 아닌가. 자네도 이제 알겠지만 각 중대에서 관리하기 까다로운 애들만 모아 놓은 곳이기도 하고 말이지. 또한 그 애들이 다른 중대에 물들일 것 같아 따로 독립적으로 편성한 것도 사실인 건 맞지.”
“아, 네에······.”
“그렇다고 해서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를 모른 척 넘어가려고 했던 것은 아니야. 그 일이 있을 때쯤 자네가 온다고 하고, 또한 전임 중대장은 2중대로 자리를 옮긴다고 하니 그것 때문에 정신도 없고 해서 제대로 파악을 못 한 것 같아.”
홍민우 작전과장이 2중대장인 이민식 대위를 두둔했다.
물론 이민식 대위를 두둔하기보다는 그런 식으로 말을 하면서 자신들의 입장을 말하는 것이라 보면 되었다.
“아, 예에······.”
오상진은 대답을 하면서 그냥 넘어갔다. 물론 자신이 김호동 하사에게 들었던 얘기하고는 전혀 다른 얘기였다.
이민식 대위가 자리보전을 위해서 아무 말 안 했던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아예 이 사건을 덮으려고 했던 것이다.
문제는 그 사실이 이미 윗선에 보고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윗선의 재가를 통해서 덮으려고 했는데 이 일이 커지면서 조인범 상병이 다른 곳으로 전출을 가면서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이제야 마치 자신들은 몰랐다고 발뺌을 하는 것이 군대의 악습을 보는 것 같아 오상진은 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면담 기록은 잘 나왔나?”
“아뇨.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병사들이 절 많이 어려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말이 있지 않나. 병사의 주적은 간부들이라고······. 당연히 간부들과 병사들 간의 거리감이 있으니까. 뭐, 병사들이 그러는 것은 무리는 아니지. 솔직히 말해서, 전임 중대장이 못하는 것이 없지 않아 있을 테고 말이지. 아무튼 자네가 고생이 많아.”
“아닙니다. 기왕 이렇게 4중대를 저에게 맡겨 주셔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데 제가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자, 한 잔 받게.”
“네.”
홍민우 작전과장이 얘기를 하며 다시 소주병을 들어 빈 잔에 따라줬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
홍민우 작전과장은 어떻게 할 것인지 미리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슬쩍 떠보는 것이었다.
“솔직히 다시 한 번 더 병사들이 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아서 전 중대원들 상대로 소원수리를 하려고 합니다.”
“음, 소원수리······. 그래 뭐, 그것도 나쁜 것은 아닌 것 같아. 병사들이 하고 싶은 말이 나올 수 있으니까.”
홍민우 작전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그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으음······. 그런데 말이야. 오 대위. 소원수리도 했는데 별다른 얘기가 없어. 그다음에는 뭘 할 건가?”
“그다음이라니······. 무슨 말씀입니까?”
“아니, 뭐······.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리 생각을 하더라고. 4중대에서 무슨 큰 오점이라도 나오게끔 하는 것 같다고 말이지.”
오상진이 멋쩍게 웃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다. 제가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4중대에 문제가 생기면 저도 역시 중대장으로서 책임을 져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자네 그런 사람 아니지.”
“그렇습니다. 다만 전 제가 앞으로 책임지고 이끌어갈 4중대를 정확하게 알고 싶을 뿐입니다.”
“그래.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어. 그런데 좀 시간을 두고 조용히 지켜볼 방법은 없었나?”
“저도 그러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제가 처음 중대장을 하다 보니 많이 부족하고, 경험도 없다 보니 마음만 앞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오상진이 오히려 이런 식으로 나오니 홍민우 작전과장도 할 말이 없었다.
막말로 오상진이 그냥 의지만 앞서는 젊은 장교였다면 홍민우 작전과장이 계급으로 밟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렇듯 단둘이 얘기를 할 때 오상진은 마치 오랜 경험을 한 능구렁이처럼 말을 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오상진은 이미 회귀 전 대대장까지 올라갔었다. 그러니 홍민우 작전과장이 그리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도대체 저 녀석 나이가 몇 살이야? 20대 중반인 것이 구라 아니야?’
홍민우 작전과장이 고개를 갸웃하며 술을 마셨다. 그러던 중 홍민우 작전과장이 슬쩍 말했다.
“우리 여기서 적당히 술을 마신 것 같은데······. 어떻게, 자리를 다른 곳으로 옮길까?”
“자리를 옮긴다면 어느 곳으로······.”
오상진은 의문이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홍민우 작전과장이 말했다.
“부대마다 그런 술집이 있잖아.”
“네?”
“요기 부대 앞에 비너스라고······. 괜찮은 술집이 있어. 거기 한번 가지 않겠나?”
“비너스요? 아, 언제 한번 본 것 같긴 합니다.”
“그래? 아무튼 거기 아가씨들이 젊은 중대장님께서 새로 왔다고 하니, 얼굴 한번 보여주지 않는다고 어찌나 성화든지······.”
홍민우 작전과장을 말을 하면서 오상진의 눈치를 살폈다.
“어떻게 오늘 한번 가 볼 텐가?”
홍민우 작전과장이 오상진의 답변을 기다렸다. 오상진은 조금 전 비너스라는 말을 듣고 바로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가만······ 장석태 대위님께서 보내 주신 자료에서 비너스가 있었던 것 같은데······.’
오상진은 살짝 아미를 찡그리며 기억을 더듬어봤다. 부대 주변에 있는 중요한 시설에 관해서 적힌 부분을 떠올렸다.
‘맞아, 비너스······.’
오상진은 비너스의 관해 봤던 것을 떠올렸다. 비너스 술집은 17보병 연대 간부들이 주로 2차 회식을 할 때 그쪽으로 간다는 것을 떠올렸다. 오상진 입장에서는 거기에 가면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과장님. 저 지금 술이 좀 취한 것 같습니다. 게다가 내일 병사들과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 실수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죄송하지만 오늘은 여기서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런가? 허, 알았네. 다음에 또 보지.”
“네. 과장님께서는?”
오상진이 물었다. 홍민우 작전과장이 손을 흔들었다.
“됐네. 난 내가 알아서 가겠네. 먼저 가 보게.”
“알겠습니다, 그럼.”
오상진이 경례를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 그런 오상진을 보며 홍민우 작전과장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새끼, 저만 잘난 줄 알지. 저만!’
홍민우 작전과장이 소주가 반쯤 남아 있는 병을 들고 그대로 입으로 가져가 털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