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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729화 (729/1,018)

<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25)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59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25)

그 시각 홍민우 작전과장은 대대장실에 들어가 있었다. 송일중 대대장이 볼펜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그래서 이번에는 소원수리라고?”

“네.”

“허어, 그 친구 속을 알 수가 없네. 도대체 원하는 것이 뭐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에 면담했다고 하지 않아? 그것은 어떻게 되었어?”

“윤태민 소위 말로는 별것 나온 것이 없습니다.”

“당연히 나올 것이 없지. 면담이라고 하는 것은 알아서 잘 수습하라고 하는 것이지. 정말로 보고할 사람이 누가 있어. 바보가 아니고서는.”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면담 같은 경우는 형식적으로 진행을 하는 곳이 많았다. 추후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면피성으로 행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어떤 병사가 사고를 쳤는데 그전에 면담을 했다는 사실이 남아 있으면 그 병사를 아예 방치한 것이 아니라 도움을 주기 위해 우리도 나름 노력을 했다는 걸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식이다 보니 오상진의 손에 중대의 부조리나 문제가 들어갈 일이 없었고, 오상진도 거기서 끝을 낼 줄 알았다. 그런데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오상진은 바로 소원수리를 진행하겠다고 한다.

“쓰읍, 4중대장 말이야.”

“네, 대대장님.”

“4중대에서 뭔가 하나가 터져주기를 바라는 것인가?”

“스읍,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데 조인범 상병 건도 있어서 여기서 더 시끄러워지면 본인에게도 좋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홍민우 작전과장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러자 송일중 대대장이 손을 흔들었다.

“아니지, 아니야. 조인범 상병 건을 이대로 묻힌 것 때문에 이러는 것이라면?”

“······?”

“설마 그 녀석 날 노리는 건가?”

“에이, 그건 아닐 겁니다. 이미 그 건은 윗선에서 잘 풀지 않았습니까.”

“그건 아닌데. 일이 또 생기면 모르지 않나.”

송일중 대대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만약에 4중대에서 또 문제가 터진다면 그 일의 일차적인 책임은 오상진이 져야 했다.

하지만 크게 봤을 때는 4중대에서 조인범 사건을 비롯해 또 다른 사건이 터졌다. 그러면 대대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송일중 대대장에게 넘어갈지도 몰랐다.

만약에 오상진이 거기까지 내다보고 4중대를 시끄럽게 만드는 것이라면 송일중 대대장이 골치 아파지는 것이었다.

“작전과장.”

“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자네가 어떻게 해봐.”

“제가 말입니까?”

홍민우 작전과장이 살짝 당황한 눈빛이 되었다.

“그럼! 자네가 해야지. 예전에 말하지 않았나. 오상진을 구워삶을 것처럼 말하더니······.”

“아, 죄송합니다.”

솔직히 홍민우 작전과장도 오상진을 어떻게 해보려고 했었는데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송일중 대대장은 일심회 들어갔다는 것 때문에 잔뜩 들떠 있어서는 중간에 낀 자기만 골치 아파졌다.

그렇다고 홍민우 작전과장이 송일중 대대장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었다. 송일중 대대장이 올라가서 자기를 끌어줘야 했다.

이제 자신의 짬이 중대장, 대위 그런 애들하고 부대끼고 그럴 짬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대대장이 까라며 까야 했다.

“작전과장.”

송일중 대대장이 근엄한 얼굴로 불렀다.

“네, 대대장님.”

“내 이번 한 번만 더 자네를 믿어볼 거야. 이번 일 제대로 처리해.”

“네, 알겠습니다. 제가 큰 문제 생기지 않도록 4중대장 한번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렇고 좀 적극적으로 하라고. 작전과장이 되어서 뭐 하는 거야. 자네가 이래서 내 오른팔을 할 수 있겠나?”

“죄송합니다. 더 신경 쓰겠습니다.”

“그래, 그래. 자네만 믿겠네.”

홍민우 작전과장이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 송일중 대대장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어후, 저놈도 저거······. 작전과장이 되더니 설렁설렁······. 이래서는 안 되겠어. 나도 다른 대안을 찾아야지.”

송일중 대령이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다.

그날 저녁 3소대에도 소원수리와 관련된 얘기가 전해졌다.

“아, 그리고 조만간에 소원수리를 할 예정이니까. 다들 알고 있도록.”

박윤지 3소대장이 전달을 마치고 나왔다. 그러자 갑자기 3소대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김성민 병장이 일어서서 말했다.

“야야, 다들 소대장님 말씀 들었지? 소원수리 한다고 하니까. 다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써라.”

김성민 병장은 그 말만 하고 내무실을 나갔다. 그가 나가고 홍인규 병장이 고개를 삐딱하게 했다.

“와, 김 병장님 너무 하시네. 안 그래?”

홍인규 병장은 괜히 옆에 있는 박민태 병장에게 말했다.

“뭐가 말입니까?”

“김 병장님 곧 있음 제대라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뭐? 소원수리로 부대가 난리가 나든 말든 신경 안 쓰겠다는 말 아니야.”

“또 그런 겁니까?”

“박민태 넌 그런 것도 모르고······. 어떻게 병장을 달았냐?”

“에헤이! 어쨌든 국방부 시계는 잘 돌아간다는 말 아닙니까.”

“야, 내가 보기에는 네가 말년 갔다. 너 아직 제대하려면 멀었어. 정신 차려.”

“저도 금방이지 말입니다.”

“야 이 시발. 군대 진짜 좋아졌다. 좋아졌어. 라떼는 말이야 감히 고참에게 그런 소리 절대 뱉지 못했다.”

“에헤이. 진짜 왜 그러십니까. 같은 병장끼리!”

“야! 병장이라도 급이 달라. 급이!”

홍인규 병장의 투덜거림을 들은 공대익 상병이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핫! 어이가 없네. 홍인규 저 새끼, 조인범 있을 때는 찍소리도 못했으면서. 조인범이 없으니까, 살판이 났네. 살판이 났어! 그건 그렇고 갑자기 소원수리라니? 갑자기 애새끼들 내가 돈 빌린 것 가지고 지랄하면 어떻게 하지?’

공대익 상병은 괜히 찔리는지 슬쩍 내무실을 둘러봤다. 후임들은 각자 휴식을 취하든지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공대익 상병은 전 부대에서도 돈을 빌리고는 갚지 않았다. 때론 몰래 돈을 훔치기도 했다. 그런 문제들 때문에 이곳 4중대에 왔다.

군대에 오기 전에도 친구들에게 몰래 카드를 만들라고 해놓고, 현금서비스를 받아 챙기고 나중에 갚겠다고 하고 안 준 적도 있었다.

그랬던 사람이 군대에 온다고 그 성격이 어디 가겠는가? 아니, 전 부대에서 이 문제로 4중대에 왔는데 그 버릇이 어딜 가겠냐는 말이다.

이곳에서도 후임들에게 여전히 돈을 빌렸다. 갚겠다는 말만 하고 한 번도 갚지 않았다. 그 돈이 적잖이 많았다.

사실 누구누구에게 돈을 얼마 빌린 것을 잊지도 않았다. 다 알고 있으면서도 갚지를 않고 있었다.

왜? 자신이 고참인데 후임들이 돈 갚으라고 차마 말을 못 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만약에 이번 소원수리 때 공대익 상병이 돈을 빌리고 안 갚는다고 써 버리면 자신은 완전 X 되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실세였던 조인범 상병도 새로 중대장이 오고 나서 어디 모르는 부대로 쫓겨나지 않았나. 그러니 자신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공대익 상병이 괜히 쫄려서 그동안 많이 돈을 뜯었던 황현준 일병을 불렀다.

“황현준.”

“일병 황현준.”

“너, 잠깐 나 좀 보자.”

“아, 알겠습니다.”

순간 황현준 일병의 표정이 굳어졌다. 부대를 나가 흡현실에서 나란히 담배를 피웠다.

“야.”

“일병 황현준.”

“내가 너에게 돈을 얼마 빌렸지?”

순간 황현준 일병이 당황했다.

‘어? 이 새끼가 왜 갑자기 그걸 물어보고 그러지?’

그러다가 오늘 저녁 소대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 소원수리 때문에 그러는 구나. 찌질한 새끼.’

황현준이 멋쩍게 웃었다.

“많이 안 빌렸습니다.”

“그러니까, 얼마인데?”

“한 5만 원 정도 됩니다.”

“5만 원? 시발, X나 많이도 빌렸다. 현준아.”

“일병 황현준.”

“미안하다, 지금 가진 돈이 없고, 나중에 휴가 나갔다 오면 집에서 돈 좀 얻어서 그때 갚을게.”

그러자 황현준 일병이 말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나중에 갚으셔도 됩니다.”

“어? 진짜?”

“네.”

“너 나중에 딴말하기 없기다. 방금 네 입으로 말했다.”

“네.”

막말로 황현준 일병도 알고 있었다. 공대익 상병이 왜 저런 말을 하는지 말이다. 그리고 왜 지금 저런 식인지 말이다. 지금 저렇게 말해놓고, 잊어버릴 것이 분명했다.

한마디로 지금 입만 살았다는 것을 아는 것이었다. 게다가 저런 식으로 차일피일 미룬 것이 한두 번도 아니고 말이다.

공대익 상병이 소원수리 때문에 슬쩍 마음을 떠보는 것이 뻔히 보였다. 그렇다고 여기서 넙죽 네, 감사합니다. 언제쯤 갚으시겠습니까. 이러면 나중에 공대익 상병에게 두고두고 갈굼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황현준 일병도 곧 있으면 상병을 달았다. 그런 것쯤은 뻔했다.

그 정도 5만 원보다는 그저 군 생활을 편안하게 지내는 것이 좋다는 판단이었다.

공대익 상병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너 그러다가 내가 안 갚으면 어쩌려고 그러냐?”

“뭐, 못 갚으시면 어쩔 수 없죠.”

황현준 일병이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공대익 상병이 살짝 놀란 듯 말했다.

“오오, 황현준. 많이 컸네. 너 상병 달려면 얼마 남았냐?”

“2개월 남았습니다.”

“어? 얼마 안 남았네. 좋아, 너 상병만 달아라. 내가 너 확실하게 풀어줄 테니까.”

“정말이십니까?”

“그래!”

“감사합니다.”

황현준 일병이 바로 인사를 했다. 솔직히 공대익 상병이 얼마나 파워가 있으려는지 모르겠지만 곧 병장이 되니까. 지금 잘 보여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황현준 일병을 돌려보내고, 잠시 후 안세호 일병이 나타났다.

“공 상병님, 저 부르셨습니까?”

“어, 세호야. 담배 피울래?”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안세호 일병은 전 부대에서 적성검사를 실시했는데 결과가 조금 안 좋게 나와서 4중대로 보낸 케이스였다.

사실 안세호 일병은 완전 순둥이였다. 그래서 누구보다 괴롭히기 당하기 딱 좋은 스타일이었다. 공대익 상병이 그걸 알고 야금야금 안세호 일병에게 돈을 뜯었다.

“야, 세호야.”

“일병 안세호.”

“넌 내가 너에게 얼마나 빌렸더라?”

안세호 일병이 잠깐 멈칫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생각했다. 그러다가 슬쩍 말했다.

“시, 십만 원 빌린 것 같습니다.”

“십만 원? 확실해?”

“네, 맞습니다.”

“어후야, 내가 그렇게나 빌리지 않았던 것 같은데······.”

공대익 상병이 고개를 갸웃했다. 안세호 일병이 입을 열었다.

“제가 적어 놨는데 말입니다.”

“그래? 어디 봐봐.”

안세호 일병이 상의 위쪽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냈다. 몇 장을 넘기더니 그곳에 빼곡하게 날짜와 함께 비린 금액까지 적혀 있었다.

“야, 너 이걸 일일이 다 적어놨어?”

“······네. 이래야 얼마 빌려준 것인지 알고. 나중에 받을 때도······.”

안세호 일병이 우물쭈물 하며 말했다. 공대익 상병이 그런 안세호 일병을 봤다.

‘와, 이 새끼. 그렇게 안 봤는데 완전 꼼꼼한 새끼잖아!’

공대익 상병은 안세호 일병을 황당한 표정으로 위아래로 훑었다.

“대단하다, 대단해. 그걸 다 적고 있었다니.”

“지난번에 주신다고 하셔서 적었습니다. 적지 맙니까?”

“아니야, 아니야. 적어! 적어놔. 대신에 너 다 적어놨으니까, 나중에 뭐라고 하지 마라.”

“네?”

“딴 사람에게 뭐라고 하지 말란 말이야. 내가 안 주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진짜 없어서 그러는 것이니까. 알겠냐?”

“······네에.”

안세호 일병도 바보가 아니고서야 공대익 상병이 왜 이러는지 알고 있었다.

‘하아, 소원수리를 쓰지 말라는 소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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