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24)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58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24)
“부사관들에게도 문제 되는 애들 몇몇 파악해 보라고 말은 해뒀는데. 솔직히 부사관들도 귀찮아 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나마 김호동 하사가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다른 부사관들은 얘기를 해도, 소대장들이 알아서 하는데 괜히 자신들이 나서봤자 싸움밖에 안 난다며 꺼려 하더라고요.”
“하아, 참······.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중대장님. 아예 소원수리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소원수리요?”
“그냥 중대장님께서 직접 한곳에 모아서 소원수리를 쓰게 하는 겁니다. 그러면 가끔씩 하나 정도는 나오는 것 같더란 말입니다.”
“쓰읍, 그런 걸로 한번 해봅니까?”
“네. 그리고 말입니다.”
“네!”
“중대장님께서 직접 그 자리에서 받아보는 겁니다. 그걸 소대장에게 맡기지 말고 말입니다. 아무래도 생선을 고양이에게 맡기는 경우인 것 같아서 말이죠.”
“네, 그렇게 할게요. 고맙습니다.”
“네. 그럼 수고하십시오.”
김태호 행보관이 자신의 볼일을 마치고 나갔다. 그날 오후 오상진은 다시 소대장들을 싹 불렀다.
“네? 소원수리 말입니까?”
“그래. 다들 고생을 했는데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병사들이 아직도 소대장들에게 다 터놓고 말을 못하는 것 같아서 말이지. 아, 그렇다고 자네들을 탓하려고 그러는 것은 아니야. 소대장들이 열심히 하는 것은 알겠어. 그렇지만 병사들 입장에서는 계속해서 부대에 남아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2년 잠깐 복무하고 끝나는 것인데. 소대장에게 터놓고 말하는 것이 불편할 수 있는 것도 있을 거야.”
그 말을 들은 김진수 1소대장이 살짝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김진수 1소대장 본인도 오상진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해서 보고서에 좋은 얘기만 잔뜩 써서 올렸다.
막말로 오상진이 정말로 4중대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라면 자신이라도 나서서 뭔가 도움이 되게끔 면담을 했을 것이었다.
‘하아······. 실수했네.’
김진수 1소대장이 아쉬움을 가지고 있는 반면, 윤태민 2소대장은 짜증이 마구 치솟았다.
‘하아, 진짜 면담 때문에 괴롭히더니, 무슨 뜬금없이 소원수리야!’
박윤지 3소대장도 표정이 굳어져 있었다. 분위기를 살피던 홍일동 4소대장이 한마디 했다.
“저기 중대장님. 소원수리도 좋지만 면담을 바로 하고 소원수리를 하는 것보다는 조금 시일을 두고 천천히 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홍일동 4소대장의 말이 아예 틀린 말도 아니었다. 막말로 현재 중대 분위기도 있고, 연달아 이러는 것은 중대에 많은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오상진이 원하는 것은 정확히 문제점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4소대장 말도 일리가 있는데······. 무엇보다 내가 병사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 보니까. 혹시 모르지 않을까? 새로 온 중대장에게 병사들이 직접 할 말이 있을지도 말이야. 그러니까, 이번만은 내 말대로 따라줬으면 좋겠네.”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신임 중대장이 저리 말하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홍일도 4소대장이 꼬리를 말고 슬그머니 물러났다.
행정반으로 돌아온 각 소대장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물론 각자가 다른 생각이겠지만 특히 윤태민 2소대장의 불만은 최고조였다.
“아, 진짜 중대장님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막말로 중대장님께서는 중대에서 뭔가 하나라도 나오길 바라시는 겁니까? 별일 없다고 하는데 왜 저렇게 난리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윤태민 2소대장을 보며 김진수 1소대장이 한마디 했다.
“그러니까 적당히 했어야지. 2소대 지난번에 면담하는 것 보니까, 쓸데없는 것만 물어보더만. 게다가 문제가 될 것 같으면 그냥 싹 다 넘어가려고 하던데. 아닌가?”
윤태민 2소대장이 살짝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1소대장님도 별로 나온 것이 없지 않습니까.”
“우리는 진짜 별게 없으니까 안 나온 것이지.”
“이상하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소대는 뭐, 문제 있는 소대라는 겁니까? 그렇게 따지면 3소대는 어떻습니까? 조인범 상병이 그리 난리를 쳤는데 지금 보십시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박윤지 3소대장이 바로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저도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김진수 1소대장이 바로 입을 열었다.
“3소대장도 그래. 중대장님께서 그렇게 도와주셔서 일이 잘 넘어갔는데 거기다 대고 또 그렇게 해야 해?”
박윤지 3소대장을 좋아하는 홍일동 4소대장이 변호하듯 말했다.
“그만들 좀 하십시오. 그래서 소원수리 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는 김진수 1소대장이 홍일동 4소대장에게 말했다.
“말 잘했네. 4소대장도 그래. 중대장님께서 말씀하시면 네, 알겠습니다 하면 될 것이지. 거기다 대놓고, 다짜고짜 말이 많아.”
홍일동 4소대장이 바로 표정을 굳혔다. 사실 김진수 1소대장은 쪽팔렸다. 오상진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말이다.
오상진은 진심으로 중대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면담을 요청한 것이었다. 그런데 다들 책잡히지 않으려고만 노력했고, 그 선두에 김진수 1소대장 자신이 있다는 것이 스스로 민망했던 것이었다.
윤태민 2소대장이 입을 열었다.
“다들 그만 하십시오. 뭡니까, 우리끼리······.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윤태민 2소대장이 그 말을 하고는 행정실을 빠져나갔다. 홍일동 4소대장도 눈치를 보며 다이어리를 챙겼다.
“저도 소대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그러면서 행정실을 빠져나갔다. 박윤지 3소대장은 김진수 1소대장을 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1소대장님.”
“하아, 3소대장이 뭔 잘못을 했겠습니까. 그냥 저 스스로 창피해서 그랬던 겁니다.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저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아는데······. 솔직히 모든 것을 다 사실대로 말씀드리기가 쉽지가 않았습니다.”
“이해합니다.”
김진수 1소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이 나서 고개를 들어 박윤지 3소대장을 봤다.
“참! 아직도 전 중대장님과 연락하십니까?”
“네? 아, 저어······. 가끔씩 안부 연락을 합니다.”
박윤지 3소대장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김진수 1소대장이 말했다.
“하지 마십시오.”
“네?”
“제가 얘기를 들어봤는데 전 중대장 지금 조인범 상병 사건 때문에 많이 곤란한 상황이라고 들었습니다. 괜히 3소대장 엮여 봤자 좋을 것 없습니다.”
“아, 네에. 감사합니다. 신경 써주셔서······.”
그리 대답한 박윤지 3소대장도 다이어리를 챙겨서 행정반을 나갔다. 그런 박윤지 3소대장을 보면서 김진수 1소대장이 뭔가를 떠올렸다. 얼마 전에 박윤지 3소대장이 이민식 대위에게 뭔가를 보고하는 듯한 통화를 하는 것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중얼거렸다.
“3소대장하고, 전 중대장하고 가깝게 지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둘이 남녀 사이인 것은 아니겠지?”
김진수 1소대장은 뭔가 모를 찝찝함을 드러내며 다시 업무를 시작했다.
윤태민 2소대장은 밖으로 나와 인상을 썼다.
“아, 진짜 왜 자꾸 이런 일이 일어나지.”
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잠깐 생각에 잠겨 있던 윤태민 2소대장이 휴대폰을 꺼냈다. 주위를 한번 두리번거린 후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네, 과장님. 윤 소위입니다.”
-그래, 무슨 일이야.
전화를 받는 이는 약간 딱딱한 말투였지만 윤태민 2소대장은 신경 쓰지 않고 말했다.
“저어, 중대장님이 소원수리를 하시겠답니다.”
-소원수리? 갑자기 소원수리는 왜?
“그것이 말입니다. 저번에 면담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제대로 답이 나오지 않았는지 소원수리를 하는 것 같습니다.”
윤태민 2소대장은 숨김없이 보고를 했다. 홍민우 작전과장이 잠깐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흠! 알았어. 특이사항 있으면 보고하고.
윤태민 2소대장은 끊어진 휴대폰을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자기 일 아니라고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거야?”
솔직히 윤태민 2소대장 똥줄이 탔다. 면담이었을 때는 조금 안 좋은 말도 자신의 손에서 컷을 했었다.
병사들을 일일이 불러서 얼굴을 마주 보고 얘기하면 그동안 안 좋았던 것도 적당히 풀 수 있었다.
또 소대장과 얼굴 마주 보면서 얘기를 하면 불만도 쉽게 얘기하지 못하니까.
하지만 소원수리는 달랐다. 소원수리를 통해 누군가의 쓸데없는 말이 적혀 있다면 군 생활이 완전히 꼬여버리는 상황이었다.
사실 윤태민 2소대장 입장에서 홍민우 작전과장에게 전화를 한 이유는 혹시라도 오상진을 말려줄 수 있을까 해서였다.
하지만 정작 홍민우 작전과장은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하아, 시발······. 도대체 어떻게 입단속을 시켜야 하지?”
윤태민 2소대장이 고민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이기상 부소대장이 걸어가고 있었다.
“부소대장. 부소대장.”
2소대장 부소대장인 이기상 하사가 고개를 돌렸다.
“아, 네에. 소대장님. 무슨 일입니까?”
이기상 하사가 다가갔다. 윤태민이 잔뜩 인상을 쓰며 말했다.
“중대장님께서 4중대 전체 소원수리를 한다고 하네.”
“네에? 소원수리요? 갑자기 중대장님 왜 그러십니까?”
이기상 하사도 뭔가 이해가 되지 않는 눈치였다. 윤태민 2소대장이 바로 말했다.
“딱 보면 모르겠어? 조인범 상병 때문에 뭔가 하나라도 걸려야 하는데 면담에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잖아.”
“헐! 아무것도 안 나왔습니까? 3소대에서 몇 개 나와야 하지 않습니까? 지금 3소대도 조용합니까?”
“내 말이 그 말이야. 3소대장도 참 개념이 없어. 조인범 때문에 중대가 난리가 났으면 본인이 알아서 총대를 메야 할 것 아니야. 진짜 ROTC 출신 주제에 어디까지 올라갈 거라고 아주 그냥······.”
“저도 3소대장님 그리 안 봤는데 의외입니다.”
“내가 말했잖아. 전 중대장님 앞에서 꼬리칠 때 말이야. 그때 내가 장난 아니라고 말이야.”
“저도 처음에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몰랐는데 이제 생각해 보니까, 소름 끼칩니다.”
“아무튼 부 소대장이 애들 입단속 좀 시켜.”
“네. 알겠습니다. 애들이 헛된 소리 하지 않게 잘 말하겠습니다.”
“그냥 고참들 불러 놓고 대충 때우지 말고! 애들 하나하나씩 챙기라고.”
“네. 알겠습니다.”
“난 부소대장을 믿으니까.”
그러면서 이기상 하사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고는 걸어갔다. 순간 이기상 하사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니, 저 새끼는 지가 사고를 쳐 놓고 나보고 수습하래. 지난번에 비너스 가자는 것도 넘어가놓고.”
솔직히 이기상 하사가 윤태민 2소대장과 잘 지내려고 하는 이유는 주기적으로 비너스와 같은 그런 술집에 데리고 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윤태민 2소대장이 쪼들리는지 이기상 하사와 가는 것이 뜸해졌다. 그래서 윤태민 2소대장이 뭘 하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는 것이 만에 하나 일이 생기면 자신의 발목을 잡고 늘어질 것이 분명했다.
“하아, 이러다가 나까지 X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아니지, 아니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애들 입단속 시켜야겠다.”
이기상 하사가 몸을 돌려 서둘러 2소대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