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22)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56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22)
“네. 그래요.”
한만식이 거실로 나가 앉았다. 한소희가 살짝 뾰로통한 얼굴로 말했다.
“뭐야. 지금 우리 상진 씨 무시 하는 거야?”
“그게 뭔 소리야?”
“아니, 사람 불러놓고 지금 뭐 하는 건데. 지금 인사하겠다고 하는 사람 계속 이대로 붙잡아 놓을 거야?”
“어험. 그, 그렇군.”
“아, 미안.”
한중만이 미안한 표정이 되었다. 오상진이 한소희에게 말했다.
“저 괜찮아요.”
“뭐가 괜찮아요. 제가 안 괜찮아요.”
한소희의 말에 오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희 씨······.”
한소희가 오상진을 보며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알겠어요.”
한소희가 대답을 하자 그제야 오상진이 한만식을 바라봤다.
“아버님, 어머님. 우선 절부터 받으시죠.”
이선주가 두 손을 저었다.
“아니에요. 그냥 앉아요. 무슨 절이에요.”
그러자 한만식이 말했다.
“아니지. 받을 것 받아야지. 이 사람아, 어서 이리와 앉아.”
“괜찮은데······.”
“어허.”
“알았어요.”
이선주가 살짝 부끄러워하며 소파에 앉았다. 오상진이 두 사람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어이구, 그래. 이렇게라도 얼굴을 보니 반가워.”
한만식이 절을 받은 후 손을 내밀었다. 오상진도 자리에서 일어나 한만식의 손을 꽉 잡았다.
“아버님 정말 뵙고 싶었습니다.”
“그래?”
그러다 오상진의 뒤편에 있던 것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건 뭔가?”
“아, 별것은 아니고요. 아버님께서 양주 좋아하신다고 해서 하나 준비했습니다.”
“어이구, 우리 소희가 또 하나는 잘 가르쳤네. 별 이상한 것을 사 오는 것보다는 양주가 훨씬 낫지.”
“네.”
오상진이 보따리에 싼 것을 건넸다. 한만식이 그것을 받아 들며 물었다.
“그런데 이건 뭔가?”
한만식이 딱 봐도 평범하지 않은 보자기에 싸여 있었다. 게다가 만져보니 항아리 비슷한 느낌도 있었다.
“별거 아니고······. 양주 이름이 로얄 샬롯드라고 합니다.”
“뭐? 로, 로얄 샬롯드? 어험, 별것이 아닌 게 아니구만.”
한만식이 살짝 놀란 얼굴로 보자기 입구를 풀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보자기를 걷어냈다. 푸른색 호리병의 모습이 그 영롱한 자태를 뽐내며 드러났다.
“오오······.”
게다가 숫자는 38이라고 찍혀 있었다. 그 숫자를 확인한 한만식이 더욱 놀랐다.
“38년산이라니······. 게다가 700㎖면······.”
얼추 계산해도 60만 원이 넘어가는 가격이었다. 한대만의 눈도 크게 떠졌다.
“헉! 38년산? 이거 우리나라에도 잘 없는 것인데······.”
“오 서방······.”
한중만도 놀랐다. 셋 다 놀라자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에이, 왜 그러십니까.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말입니다.”
오상진이 슬쩍 한소희 눈치를 봤다. 한소희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왜? 로얄 살롯드 38년산이 그렇게 좋은 거야?”
“당연히 좋고말고!”
양주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한중만이 입을 열었다.
“로얄 샬롯드가 한때 영국 왕실에서 취급했다는 술이야. 원래는 여기에 왕실 마크도 찍혀 있었는데······.”
그런데 진짜 병에 영국 왕실 마크가 찍혀 있었다.
“헉! 진짜 있네.”
“네. 그래서 좀 구하기 힘들었습니다.”
오상진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로얄 샬롯드 38년산의 가격이 60만 원이 좀 넘었다. 하지만 병에 왕실 마크가 찍혀 있는 것이라면 가격은 배 이상이라고 봐야 했다.
“자, 자네, 오 서방······.”
한중만이 경이로운 눈빛으로 오상진을 바라봤다. 한만식 역시 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오상진이 가져 온 로얄 샬롯드 38년산이 엄청 귀하다는 것을 알았다.
“어험. 이리 줘.”
한만식이 냉큼 뺏은 후 다시 조심스럽게 보자기를 씌웠다. 그러고는 마치 신줏단지 모시듯 조심스럽게 들고 양주 컬렉션이 있는 찬장을 열었다.
“아, 아버지. 좀 더 구경이라도······.”
한중만이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한만식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 귀한 술을 흰 장갑을 끼지 않은 손으로 만진다는 것을 영국 왕실에 대한 모독이야. 어험.”
한만식이 조심스럽게 창장을 닫은 후 흐뭇하게 한 번 바라본 후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어험, 그래. 군인이라서 그런지 듬직하고 좋구만.”
한만식이 오상진을 보며 말했다.
“철딱서니 없는 우리 막내딸 소희. 예쁘기만 해서 만나는 줄 알았더니. 그런 것 같지는 않고.”
한만식이 얘기를 하고 있는데 한중만이 슬쩍 말했다.
“그런데 오 서방. 저 귀한 것을 어떻게 구했어?”
“네?”
“아니, 이거 말이야. 영국 왕실 문양이 찍힌 술은 정말 구하기 힘든 거거든. 더군다나 38년산이라니······.”
“특별한 날 아닙니까. 아버님도 처음 뵙는 자리에 특별한 것을 선물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게다가 아버님께서 술을 좋아하신다고 해서 겸사겸사 구해봤습니다.”
“그러니까, 그 겸사겸사가 어떻게 겸사겸사냐니까.”
오상진이 살짝 난감해하다가 입을 열었다.
“사실 제 밑에 있던 병사 한 명이 선진그룹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 친구를 통해서 얻었습니다.”
“선진그룹?”
한만식의 표정이 확 달라졌다. 선진그룹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그룹이었다.
‘그래, 선진그룹을 통해서라면 저 정도 양주는 구할 수 있을 거야. 그런데 문제는 말이지······.’
한만식이 생각을 하며 오상진을 바라봤다.
‘저 정도 양주를 구하려면 보통 빽으로 구하기는 힘들어. 나름 본부장이나 이사급? 그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한만식의 머릿속이 빠르게 굴러갔다. 그런데 오상진이 너무도 쉽게 얘기를 하고 있었다.
‘으음, 그러니까. 우리 오 서방이 선진그룹하고 아는 사이라 이거지?’
한만식이 속으로 껄껄 웃었다. 오상진에 대해서 아내인 이선주에게서 들은 것이 많았다. 군인이지만 돈도 많고, 빌딩도 몇 채 가지고 있고, 한소희에게 엄청 잘한다는 얘기들을 말이다.
그래도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군인이라는 것이었다. 뭐, 장군이라면 군말 없이 좋아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오상진은 단지 현직 군인, 그것도 대위라고 들었다. 게다가 군인이라면 큰 며느리인 김소희도 있지 않은가. 그것 하나로 족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전역하고 그저 평범한 주부로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또 군인을 집안에 들인다는 것이 솔직히 탐탁지 않았다. 하지만 오상진이 그냥 군인도 아니고, 선진그룹하고 알고 지내고 있는 군인이었다.
나중에 뭐라도 큰일을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 저 정도라면 우리 소희와 짝이 맞지. 껄껄껄.’
한만식이 속으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조금 전과 다른 태도를 보였다.
“그래, 어서와. 우리 집에 온 것을 환영하네. 오 서방.”
이선주가 놀란 눈으로 한만식을 바라봤다.
“어이구, 언제 봤다고 오 서방이라고 해요.”
“이 사람아.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그리고 이렇게 봤으면 오 서방이 맞지. 소희랑 결혼 안 할 건가?”
한만식이 바로 오상진에게 물었다. 오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할 겁니다.”
“봐봐, 한다잖아. 그럼 오 서방이 맞지.”
“쯧쯧, 당신 주책이야.”
“이 사람이, 지금 하늘 같은 남편에게 주책이라니!”
“알아서 해요. 난 주방이나 가 볼 테니까.”
이선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주방으로 갔다.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한만식이 다시 오상진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자네 장모 되는 사람이 질투가 좀 많아.”
“아, 네에······.”
“그보다 오 서방 밥은 먹었나?”
“아니요. 어머님께서 요리를 너무 잘하신다고 들어서 아침부터 위를 비우고 있었습니다.”
“하하하, 그런가? 그럼 우리 식탁으로 가지. 우선 밥부터 먹고 천천히 얘기를 나누도록 하자고.”
“네. 아버님.”
한만식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 핀 채로 오상진을 데리고 주방으로 향했다.
이선주가 오랜만에 실력 발휘를 했다. 식탁에는 한가득 음식들이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다.
“오오, 음식을 잔뜩 차렸네.”
한중만의 말에 이선주가 눈치를 줬다.
“중만아 왜 그러니. 평소에도 이렇게 먹잖아.”
“와, 언제? 우리가 언제 이렇게 먹었지? 그보다 엄마, 이거 일하시는 아주머니가 만드신 거 아니야?”
“아니거든.”
어머니는 한중만을 슬쩍 흘겨보고는 오상진을 바라봤다.
“오 서방. 많이 먹어요.”
“네, 어머니. 잘 먹겠습니다.”
그러자 한중만이 또 나섰다.
“에헤이. 엄마!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무슨 오 서방이야. 오 서방 불편하게.”
이선주가 바로 말했다.
“너는 오 서방이라고 하면서 왜 나는 오 서방이라고 하면 안 돼?”
“나야. 편하게 부르려고 하는 거고, 엄마가 그러면 뭔가 족쇄같은 느낌이지. 안 그래? 오 서방.”
오상진이 바로 미소를 지었다.
“하하하, 저는 괜찮습니다.”
오상진은 말을 하고는 슬쩍 한만식의 눈치를 살폈다. 한소희에게 듣기로는 아직 자신에게 마음을 완벽하게 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한만식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먹자.”
한만식이 수저를 들었다. 그런 한만식을 빤히 바라보는 한소희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한만식이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바라보는 한소희와 눈이 마주쳤다.
“딸, 왜 그렇게 봐?”
“아니. 아빠가 우리 상진 씨를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으응? 내가 언제?”
“아니긴, 표정에 다 써져 있는데······.”
“어험. 그보다 자네.”
“네. 아버님.”
“바둑은 좀 둘 줄 아나?”
“잘은 못 두지만 적당히 둘 줄은 압니다.”
“그래? 그럼 오늘······.”
한만식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 이선주가 말을 잘랐다.
“당신 모처럼 인사하러 온 사람과 그러고 싶어요?”
“아니, 내가 뭐······ 시간이 나면 두자고 하려고 했던 거지.”
한만식이 슬쩍 말을 돌렸다. 그사이 오상진은 한만식이 바둑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런데 왜 소희 씨는 얘기를 안 해줬지?’
오상진이 의문을 가지다가 바로 한만식을 보며 말했다.
“오늘 안 되면 다음에 하면 되는 거죠. 제가 따로 시간을 내겠습니다.”
“으음, 그래, 기다리고 있겠네.”
“네.”
오상진은 그렇게 식사를 하고 다시 거실로 나가 차를 마실 타이밍이었다. 그사이 한소희는 자신의 방으로 오상진을 데리고 왔다.
“왜 그래요?”
오상진이 의문을 가지며 물었다. 한소희가 살짝 인상을 쓰며 말했다.
“상진 씨는 눈치도 없이 왜 바둑을 둔다고 그래요.”
“네? 왜요? 그러면 안 돼요?”
“우리 아빠, 바둑을 두면 한도 끝도 없어요. 엄마가 아빠에게 질색하는 것이 3가지가 있어요.”
“뭔데요?”
“술, 바둑, 낚시.”
오상진이 생각해 보니 조금씩은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오호라, 아버님이 그런 것을 좋아하시는구나.”
“뭐예요, 그 표정은? 마치 우리 아빠 취미를 맞춰주겠다는 것처럼······.”
“아니, 뭐. 이렇게 예쁜 딸을 데리고 가려면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이, 진짜! 그러지 마요. 나 엄마처럼 독수공방하게 만들 일 있어요?”
“아, 아버님 그것 때문에 집에 잘 안 들어와요?”
“말도 마요. 요즘은 좀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진짜 한번 낚시를 가면 며칠을 집에 안 들어오고 그랬어요. 술 마신다고 그러면 연락두절이고. 주말만 되면 기원 가서 날 새우며 바둑두고 그랬어요.”
“후후후, 아버님이 참······.”
오상진은 한만식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