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16)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50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16)
윤태민 2소대장이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박윤지 3소대장의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지잉, 지잉.
박윤지 3소대장이 발신자를 확인했다. 이민식 대위였다. 그녀는 순간 당황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도 화장실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박윤지 3소대장이 화장실 쪽으로 가고, 슬쩍 회식 상황을 확인하던 그녀가 휴대폰을 꺼내 받았다.
“네.”
-어! 지금 회식 중이지? 분위기 어때?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상진은 어때?
“네?”
-술 취했냐 말이야.
“몇 잔 드신 것 같았는데, 저도 잘······.”
-그러면 술 취하게 만들어.
“네?”
-술 취하게 만들라고!
“제, 제가 말입니까?”
-그럼! 박 소위가 취하게 만들어야지. 그 회식 자리에서 여자는 박 소위뿐이잖아!
“네. 그렇긴 한데······.”
-박 소위가 따라주는 술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다 마실 거야. 열심히 술을 따라주란 말이야. 알았어?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적당히 취했다고 싶으면 적당히 안겨.
“네?”
박윤지 3소대장이 깜짝 놀란 눈이 되었다.
-어허, 뭘 그리 놀라! 내가 안겨서 모텔이라도 들어가라고 했어?
“주, 중대장님······.”
-됐고, 그냥 안기기만 해. 그런 분위기 있잖아.
“그건 왜······.”
-그래야 나중에 그걸로 오상진 엮여서 옷 벗겨야 할 것 아니야.
“그건 좀······.”
박윤지 3소대장이 좀 꺼려 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 묵직한 이민식 대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 소위! 아니, 박윤지!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박윤지 3소대장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박윤지 3소대장은 난처한 얼굴이 되었다. 지금 이민식 대위가 부탁하는 말은 한마디로 자신이 신임 중대장에게 교태를 부리라는 말과 똑같았다.
“······네, 중대장님.”
-나 중대장일 때는 나 좋다고 그렇게 쫓아다니더니. 이제 와서 중대장 바뀌었다고 못 하겠다 이거야?
“그건 아니지만······.”
-지난번에 나 도와주겠다고 했잖아.
“그, 그건······.”
솔직히 박윤지 3소대장이 직접 도와주겠다고 한 적은 없었다. 이민식 대위가 하도 나 도와줄 거지?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해서 마지못해 대답한 것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민식 대위는 마치 이제 와서 발 빼겠다는 것은 배신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박 소위도 그러겠다고 해놓고선. 이제 와 안 하겠다고 하면 안 되는 거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박 소위와 나와 그런 관계인 것도 알아.
“네? 그, 그런 관계라니 무슨 말씀입니까?”
박윤지 3소대장은 당황하며 말까지 더듬었다.
-와, 박 소위. 그때 그 일은 실수였던 거야? 너무한데. 만약에 이거 소문이 나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중대장님!”
-그러니까, 내 말 잘 들으라고. 그냥 오상진이가 박 소위에게 치근대는 정도만 할 것이니까. 나만 믿어, 나만! 솔직히 박 소위도 오상진 밑에 있는 것보다 나랑 같이 일하는 것이 좋지 않아?
“······네.”
박윤지 3소대장은 마지못해 대답했다. 이민식 대위는 다시 좋은 말로 박윤지 3소대장을 달랬다.
-그래.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그럼 아무 문제 없어. 알았지?
“알겠습니다.”
-그래, 회식 끝나면 전화하고.
“네.”
그렇게 전화를 끊은 박윤지 3소대장은 근심 가득한 얼굴이 된 채 자리로 돌아왔다. 오상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윤지 3소대장을 봤다.
“3소대장.”
“네?”
박윤지 3소대장이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덕분에 오상진 역시 움찔했고, 주위에 있던 다른 소대장 부사관들도 놀란 눈으로 박윤지 3소대장을 봤다.
“아이고 깜짝이야. 왜 그렇게 놀래?”
“아, 아닙니다. 그런데 무슨 일 있습니까?”
“내 잔 한 잔 받지!”
“아! 네에.”
박윤지 3소대장이 바로 술잔을 내밀었다. 오상진이 따라주고, 박윤지 3소대장이 눈을 찔끔 감으며 단번에 술을 마셨다. 그러곤 술잔을 오상진에게 내밀었다.
“중대장님 제가 술 한번 따라드리겠습니다.”
“그래, 고마워.”
오상진은 망설임 없이 술을 받았다. 그렇게 서로 술잔을 부딪치며 마셨다.
그 뒤로 각 소대장, 부사관들이 일일이 찾아와 오상진에게 술을 권했다. 그렇게 여러 잔을 마시다 보니 살짝 취기가 올랐다. 그러다가 살짝 풀린 눈으로 박윤지 3소대장을 봤다.
박윤지 3소대장이 그런 오상진을 보며 살짝 마음을 졸였다. 솔직히 저런 눈빛, 술에 취해 자신을 여자로 보는 듯한 그런 눈빛을 이민식 대위로부터 많이 받았다. 그 눈빛에 박윤지 3소대장이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이 대위님이 맞아. 남자는 다 똑같고, 다를 것이 없어. 그러면 이 대위님이랑 같이 일하는 것이 낫겠지. 지난번에 실수한 것도 있는데 지금 4중대장님께서 날 좋게 봐주실 리도 없고······.’
박윤지 3소대장이 마음을 독하게 먹으려는데 오상진이 슬쩍 말을 건넸다.
“3소대장.”
“네?”
“힘들지?”
“네?”
박윤지 3소대장은 방금 자신이 뭔가 잘못 들은 듯한 느낌에 고개를 갸웃했다.
“힘들지 않아?”
“아! 아닙니다.”
“지난번에 조인범 상병 일로 마음고생 심한 것 알고 있어. 솔직히 그때 내가 많이 나무랐지만 3소대장 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야. 그래도 3소대장 이번 일을 계기로 진정한 군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야. 여자가 아닌, 강단 있는 군인. 중대장은 3소대장을 여자라고 차별하고 싶지도 않아. 여자들 중에서도 충분히 좋은 군인이 나올 수 있다는 선례를 3소대장이 남겨줬으면 좋겠어.”
“주, 중대장님······.”
“그러니 앞으로 우리 잘해보자.”
오상진의 말에 박윤지 3소대장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어느새 이민식 대위의 지시는 까맣게 잊은 뒤였다.
1차 회식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어 갈 때쯤 김진수 1소대장이 슬쩍 말했다.
“중대장님.”
“응?”
“저기 2차는 어떠십니까?”
“2차? 1소대장. 미안한데 내가 지금 술기운이 올라오고 있어. 집에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
“네? 아, 그럼 제가 부축해 드리겠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아닙니다. 제가 택시 타는 곳까지만 부축해 드리겠습니다.”
“그래 줄래?”
오상진은 애써 정신을 붙잡으며 말했다. 사실 오상진은 이렇게 많이 술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 기분이 너무 좋고, 괜찮은 사람들이랑 술을 먹다 보니 솔직히 조절을 잘 못 했다.
“중대장님 저 붙잡으십시오.”
“어, 그래.”
김진수 1소대장이 오상진을 부축해 택시를 붙잡았다. 오상진이 택시 뒷좌석에 탔다.
“그럼 중대장님 들어가십시오. 내일 뵙겠습니다.”
“어어, 그래.”
“충성.”
오상진은 손을 흔들었고, 그 상태로 택시가 출발했다. 그때 윤태민 2소대장이 뛰어나왔다.
“1소대장님. 중대장님은 어디 있습니까?”
“중대장님? 방금 택시 타고 집에 가셨는데?”
“아니, 1소대장님 약속이 다르지 않습니까.”
“약속?”
“2차 가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나도 가려고 했는데 중대장님께서 취하셨는데 어떻게 해. 그럼 취한 중대장님 모시고 2차가? 어떤 일이 벌어질 줄 알고.”
“······.”
윤태민 2소대장이 입을 다물었다. 김진수 1소대장이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자네도 어서 들어와. 이제 끝날 분위기니까.”
그런 김진수 1소대장을 보며 윤태민 2소대장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아이, 시발! 1소대장, 일생에 도움이 안 돼! 중대장 데리고 가야 하는데······.’
윤태민 2소대장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고 있다가 윤태민 2소대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에이, 나도 모르겠다.”
그런데 때마침 홍민우 소령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잠깐 가게 안으로 보던 윤태민 2소대장이 한쪽으로 이동해 전화를 받았다.
“네.”
-어떻게 되었어? 아직 안 끝났나?
“아, 그게 말입니다.”
윤태민 2소대장이 한동안 앓는 소리를 늘어놓아야 했다.
택시에서 내린 오상진은 곧바로 집으로 들어갔다. 번호키를 눌러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불도 켜지 않은 상태로 침대 위로 털썩 쓰러졌다.
“꺄악!”
“꺄악?”
오상진이 깜짝 놀랐다. 그러고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불을 켰다.
“누, 누구야?”
그러자 침대 한쪽에서 꿈틀거리더니 한소희가 얼굴을 쏙 내밀었다.
“상진 씨······.”
“아후, 깜짝이야. 소희 씨.”
“헤헤헤······.”
한소희가 혀를 쭉 내밀며 웃고 있었다. 오상진은 간신히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내일 오기로 하지 않았어요?”
“왜요? 하루 일찍 와서 싫어요?”
“싫기는요. 자, 잠깐만요.”
오상진은 목이 너무 말라 부엌으로 갔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한소희가 안방에서 나와 오상진에게 갔다.
“술 많이 마셨어요?”
“네, 좀······.”
오상진이 몸을 비틀거리며 대답했다. 한소희가 황급히 오상진을 붙잡았다.
“어머. 우리 상진 씨 이런 모습 처음이야.”
“미안합니다. 제가 오늘 좀 마셨어요.”
“그러게요. 우리 만난 지 몇 년 만에 이런 모습 처음 보네요. 상진 씨에게 이런 면도 있었구나.”
한소희는 뭐가 그리 좋은지 계속해서 실실 웃고 있었다.
“뭐에요.”
“귀여워.”
그러면서 한소희가 두 손으로 오상진의 볼을 꼬집었다. 오상진이 조용히 말했다.
“아파요.”
“엇? 아파요? 내가 너무 세게 꼬집었나? 아닌데, 그럼 술이 덜 취했나?”
한소희는 고개를 갸웃하며 혼잣말을 했다. 그러다가 오상진의 상의를 벗겼다.
“옷부터 벗고, 씻고 와요. 아무리 술을 먹었다고 해도 씻고 자야죠.”
“저, 몸을 못 가누겠어요. 그냥 자면 안 돼요?”
“안 돼요. 어서 씻고 와요.”
“소희 씨······.”
“쓰읍! 그렇게 애교 있게 불러도 소용없어요. 어서요. 화장실로 갑니다!”
“네네······.”
오상진이 힘겨운 걸음으로 화장실로 향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한소희는 싱글벙글 웃었다. 샤워기에서 따뜻한 물이 나왔다.
오상진은 알딸딸한 상태에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면 혈액순환이 빨리되어 더 빨리 취했다. 그래서 찬물에 샤워를 했다. 거의 한 겨울에 그것도 찬물에 샤워를 하자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어후후후······.”
숨이 탁 막히는 것 같았지만 술기운은 제법 많이 없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나왔더니 한소희가 꿀물을 타서 오상진에게 건넸다.
“아이고······ 소희 씨 꿀물도 탈 줄 알아요?”
“그럼요. 저를 뭐로 보고······. 저희 아버지가 술을 좋아하시잖아요. 저도 종종 아버지께 꿀물 타드렸어요.”
“아, 그렇구나. 그런데 집에 꿀이 있었나?”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하자, 한소희가 배시시 웃었다.
“저기 밑에 올리고당이 있던데요.”
“아······.”
오상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꿀물을 가장한 올리고당을 쭉 들이켰다.
“어후, 꿀이든 아니든 좋네요.”
오상진이 환하게 웃었다.
“그런데 오늘 왜 온 거예요?”
“왜긴요. 빨리 보고 싶어서 왔죠.”
“다른 일이 있는 것은 아니고요?”
“다른 일은요. 늦었어요. 어서 들어가서 자요.”
한소희가 오상진을 데리고 안방으로 갔다. 침대에 누운 오상진이 팔을 벌렸다. 한소희가 피식 웃으며 오상진 옆에 누워 팔베개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