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15)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49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15)
“이야, 우리 사장님 안목 있으시네요.”
“그렇죠? 호호호. 그럼 맛나게들 먹어요.”
“네.”
그렇게 여사장이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오상진은 피식 웃으며 상추에 삼겹살을 싸서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다가 방금 가게 사장님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오랜만?’
오상진이 술잔을 비운 후 앞에 앉아 있는 김태호 상사를 보며 물었다.
“행보관님. 평소 회식은 다른 곳에서 하는가 봅니다.”
“아, 그게 말이죠. 사실 회식을 잡으려면 인원수가 맞아야 합니다. 한두 테이블로는 예약이 안 됩니다.”
“아, 그래요? 우리 이 인원이면 대략 10명은 넘지 않나요? 이 정도면 3~4테이블은 차지할 텐데.”
오상진이 쭉 훑어보니 지금 있는 인원도 제법 되었다. 그러자 김태호 상사가 슬쩍 말했다.
“아, 그것이 저희가 이렇듯 다 같이 식사를 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자 윤태민 2소대장이 바로 입을 열었다.
“아이, 행보관님 별소리를 다 하십니다. 중대장님에게 말입니다.”
그러자 김진수 1소대장이 입을 열었다.
“뭐, 행보관님께서 틀린 말씀 하신 것도 아니잖아.”
윤태민 2소대장이 바로 말했다.
“원래 장교는 장교들끼리 어울리고, 부사관들은 부사관들끼리 어울리는 거죠. 그게 다들 편하지 않습니까?”
부사관들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윤태민 2소대장이 피식 웃으며 오상진에게도 말했다.
“안 그렇습니까. 중대장님?”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오상진 역시 표정이 잔뜩 굳은 상태였다. 오상진이 윤태민 2소대장에게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2소대장.”
“네!”
“내가 아까 한 말 못 알아들었나?”
“······.”
윤태민 2소대장은 당장 오상진이 한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같은 4중대라고 말을 했지. 지금 선을 그으면 어떻게 하나. 앞으로 자네는 군 생활 할 동안 부사관들은 장교가 아니라고 외면할 생각인가?”
“아, 그런 뜻을 한 말이 아닙니다.”
“혹시라도 그런 생각을 했다면 지금부터라도 그 생각을 거둬. 만약에 나중에 올라가면 자네 진짜 큰일 나!”
윤태민 2소대장은 오상진의 핀잔에 인상을 썼다.
‘시발,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도대체 자기는 몇 살이나 되었다고 그딴 소리를 하고 있어.’
윤태민 2소대장이 속으로 투덜거렸다. 하지만 회귀 전 대대장까지 했던 그는 윤태민 2소대장처럼 비뚤어진 생각을 하는 장교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부사관들을 깔보고, 공생관계가 아니라 그저 자기보다 밑이라고 생각하는 장교들 말이다.
이런 장교들이 위로 올라가면 꼭 사고를 쳤다. 뭔 일만 생기면 부사관 탓, 자기 잘못인데도 부사관의 잘못으로 돌리는 일.
하지만 이런 것들이 나중에 다 자신의 업보로 돌아오곤 했다.
더군다나 평판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군대에는, 장교보다는 부사관들의 비중이 더 많았다. 이들이 하는 일 역시 많았고 말이다.
부사관의 일 업무적으로 볼 때 그들과 관계가 좋아야 일하기 편하다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었다.
오상진은 그런 윤태민 2소대장을 바라본 후 앞에 있는 김태호 상사에게 말했다.
“행보관님 아직 어린 친구니까, 이해해 주십시오.”
“하하하, 네. 알겠습니다.”
김태호 상사가 대답을 하고는 오상진을 바라봤다. 막말로 따지면 오상진 역시도 윤태민 2소대장보다 4살 정도밖에 많지 않은 사람이었다.
‘거참······ 대위를 일찍 달아서 그러나? 느껴지는 분위기는 영 다른데. 아니지, 전 중대장인 이민식 대위하고도 달라.’
김태호 상사가 현재 가지고 있는 느낌이 그랬다.
‘좀 더 지켜봐야 할 사람이야.’
김태호 상사가 생각을 마무리하고 슬쩍 다른 얘기를 꺼냈다.
“참, 현 2중대장인 이민식 대위님 말입니다. 듣기로는 보직 해임이라고 하던데 혹시 아는 얘기 있습니까?”
오상진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네, 저도 그렇게 듣긴 했는데. 제가 대대에 올라갈 일이 없어서요. 자세히 알지는 못합니다. 혹시 행보관님은 알고 있습니까?”
“저도 대대에 올라가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대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행보관님께서 확인하셔서 저에게 좀 알려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김태호 상사가 환하게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 오상진도 술잔을 들어 둘이 부딪쳤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윤태민 2소대장의 이맛살을 찌푸렸다.
‘뭐야, 저 두 사람······.’
그때 자신의 술잔이 빈 것을 보며 괜히 옆에 있는 박윤지 3소대장에게 말했다.
“3소대장 뭐 해?”
“네?”
“지금 내 앞에 잔이 비었잖아. 술 안 따라주고 뭐 해?”
“아, 네에······.”
박윤지 3소대장이 바로 소주병을 들려고 하는데 홍일동 4소대장이 바로 소주병을 낚아챘다.
“제가 따라 드리겠습니다.”
“4소대장님.”
“네?”
“아니, 낄끼빠빠도 모르십니까?”
“······.”
홍일동 4소대장은 잔뜩 의문을 가지며 바라봤다. 윤태민 2소대장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아, 제가 설마 남자에게 술을 받고 싶겠습니까.”
그런데 하필 그 소리가 오상진의 귓가에 선명히 들려왔다. 오상진의 이맛살이 다시 한번 확 찌푸려졌다.
“2소대장.”
“네?”
“방금 뭐라고 했지?”
“뭐가 말입니까?”
“그러니까, 지금 3소대장이 여자니까 여자에게 술을 받아먹겠다는 거야?”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닙니다.”
윤태민 2소대장이 바로 말을 바꿨다. 그러자 오상진의 표정은 더욱 일그러졌다.
“그것이 아니면 뭐지?”
“······.”
윤태민 2소대장은 바로 답을 내지 못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아니, 저 새끼는 왜 자꾸 날 가지고 저래. 짜증 나네.’
그러고 있는데 옆에 있던 김진수 1소대장이 말했다.
“2소대장 빨리 죄송하다고 그래. 지금 자네가 실수한 거 맞아.”
윤태민 2소대장의 얼굴이 굳어지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이봐, 2소대장. 나에게 사과를 하지 말고, 3소대장에게 사과를 해!”
윤태민 2소대장이 박윤지 3소대장을 힐끔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3소대장 미안합니다.”
“아, 아닙니다.”
박윤지 3소대장도 얼떨결에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보며 오상진이 한마디 했다.
“요새 사람들이 왜 저러는지 모르겠어.”
그 말을 들은 윤태민 2소대장은 도저히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자신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부사관들의 눈빛도 영 못마땅했다.
“저,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윤태민 2소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 그런 윤태민 2소대장을 보며 오상진이 혀를 찼다.
“쯧쯧, 그보다 1소대장.”
“네.”
“2소대장 좀 잘 챙겨야 할 것 같다.”
“죄송합니다.”
“1소대장이 잘못한 것이 뭐가 있나. 하긴 내가 이 얘기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오상진은 자신도 소대장 시절 충성대대에 있었던 얘기를 해줬다.
“내가 충성대대에서 소대장 하던 시기였어.”
그사이 윤태민 2소대장은 가게 밖으로 나와 담배를 물었다.
“와, 시발. 중대장 왜 저래, 나한테? 무슨 나에게 억하심정이라도 있나? 아니, 설마 내가 홍민우 소령에게 일일이 보고하는 것을 아는 건가? 그래서 그런 건가?”
그때 윤태민 2소대장의 휴대폰이 지잉지잉 울렸다.
“네, 과장님.”
-오늘 회식이라면서.
“네, 맞습니다.”
-그런데 왜 내게 보고 안 했어?
“지난번에 쓸데없는 거로 보고하지 말라고 하셔서······.”
-이 친구가 진짜! 그렇게 앞뒤 구분이 안 돼?
“죄송합니다.”
윤태민 2소대장의 얼굴이 또 한 번 일그러졌다.
‘아니, 이 새끼도 나에게 왜 이래? 언제는 쓸데없는 보고는 하지 말라고 지랄하더니 이제는 보고 안 했다고 지랄하네.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 거야.’
윤태민 2소대장은 억울해 미칠 것 같았다. 하지만 홍민우 소령도 괜히 전화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회식 분위기 어때?
“분위기 말입니까? 그저 그렇습니다.”
-거기가 지금 1차지?
“네.”
-2차는 어디로 잡았어?
“2차는 아직 예정에 없는데 말입니다.”
-그래! 우리 부대 앞 큰 사거리 알지? 거기 비너스라고 있어. 거기로 와.
“거기 술값 엄청 나오는데 말입니다.”
-그런 것은 신경 쓰지 말고 데리고 와. 뒤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사실 비너스에서 술값 눈탱이로 맞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데 홍민우 소령이 저런 식으로 말을 하는 것이 좀 이상했다.
“뭐지? 설마 중대장 엿 먹이려고 그러나?”
윤태민 2소대장도 바보는 아니었다. 주위에서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이번 조인범 상병 일로 오상진과 송일중 대대장, 홍민우 소령의 사이가 틀어졌다는 것을 말이다.
“진짜 그런가? 아이씨, 어떡하지?”
윤태민 2소대장은 담배를 피우며 슬쩍 시선을 가게 안으로 향했다. 오상진에게 시선이 고정된 채 윤태민 2소대장이 고민했다. 하지만 그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에이씨, 몰라!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했으니까.”
윤태민 2소대장은 담배꽁초를 바닥에 던졌다. 군홧발로 쓰윽, 쓰윽 비빈 후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가게 안 분위기가 자신이 나갈 때와는 사뭇 달랐다. 뭔가 재미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윤태민 2소대장이 자기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무슨 말씀을 그리 재미나게 하십니까?”
옆에 있던 김진수 1소대장이 말했다.
“어, 중대장님 소대장 시절 얘기를 해주고 계셨어.”
“아, 그러십니까? 그럼 저도 계속 있을 걸 그랬습니다.”
“그러게 왜 자리를 비워, 이 친구야.”
“화장실도 가고, 담배도 피우고 왔습니다.”
윤태민 2소대장이 말했다. 오상진이 소주병을 들었다.
“2소대장.”
“네.”
“내 잔 한번 받아!”
“감사합니다.”
윤태민 2소대장이 바로 두 손으로 잔을 들었다. 오상진이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아까 내가 뭐라고 했다고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마.”
“괜찮습니다.”
“다, 2소대장이 위해서 하는 말이야.”
“네.”
윤태민 2소대장은 오상진이 따라 준 술을 바로 들이켰다. 그러곤 김진수 1소대장을 불렀다.
“1소대장님.”
“응?”
“저희 2차는 어디로 갑니까?”
“2차는 무슨! 중대장님께서 간단하게 하고 끝내자고 했다니까.”
“에이, 아무리 그래도 2차는 가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뭐? 자네 아는 곳이라도 있어?”
“있죠. 요 앞 사거리 있지 않습니까. 거기 비너스라고 말입니다.”
“비너스? 거기 소문 별로잖아. 술값도 비싸고.”
“거기 아는 사람이 있어서, 싸게 마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위기는 최고지 않습니까.”
“그래?”
김진수 1소대장도 알고 있었다. 솔직히 이 근처에 2차로 마땅히 갈 곳도 없었다. 기껏 해봐야 노래방이었다.
게다가 김진수 1소대장도 오상진과 이렇듯 대화가 잘 맞을 줄 몰랐다. 오늘 같은 날은 따로 남자답게 진솔한 대화를 하며 가까워지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물론 윤태민 2소대장의 꿍꿍이를 몰랐지만 자신도 따라간다고 하니 일단 고개는 끄덕였다.
“알았어, 상황 봐서 내가 말씀드려 볼게.”
“네. 그렇게 해주십시오.”
윤태민 2소대장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흥, 김진수. 너무 좋아하지 마. 어차피 대대로 올라가는 것은 네가 아니라, 내가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