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14)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48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14)
홍민우 소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잔말 말고 조용히 대기해. 조만간 전출지 나오면 알려줄 테니까.”
“과장님!”
“어허, 이 사람이. 자네 말이야. 옷 안 벗은 거라도 다행이라 생각해. 그래도 대대장님께서 자네 옷 안 벗기게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단 말이야. 그러니 더 이상 토 달지 말게.”
홍민우 소령이 말을 하고는 중대장실을 나갔다. 이민식 대위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의자에 털썩 앉았다.
“마, 말도 안 돼······.”
그러다가 점점 얼굴이 일그러지며 무섭게 변했다.
“이 모든 것이 오상진 너 때문이야. 내가 널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어!”
책상 위에 올려놓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부르르 떨었다. 이렇듯 이민식 대위가 쓸데없는 독기를 품었다.
이틀 후 4중대는 근처 식당에서 조촐한 회식을 가졌다. 1소대장인 김진수 중위는 삼겹살집을 4중대 회식 장소로 잡았다. 윤태민 2소대장은 괜히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1소대장님. 무슨 삼겹살집입니까.”
“왜? 삼겹살집이 어때서?”
“그래도 중대장님께서 새로 부임하셨는데 근사한 곳으로 가야 하지 않습니까.”
“돈이 남아돌아?”
“네?”
“2소대장이 쏠 거면 그리로 가고······.”
“아니, 왜 또 그런 소리를 하십니까.”
윤태민 2소대장이 시선을 피하며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그 모습을 보며 김진우 1소대장이 말했다.
“그러니까, 그런 소리 하지 말고 자리에 앉아.”
“네.”
윤태민 2소대장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때 박윤지 3소대장이 나타났다. 윤태민 2소대장이 바로 손을 들었다.
“어! 3소대장 왔어요.”
“네.”
“자자, 3소대장은 이쪽으로 와서 앉아야죠.”
“네?”
박윤지 3소대장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윤태민 2소대장이 앉히려고 하는 곳은 오상진이 앉을 자리 바로 오른쪽이었다.
김진수 1소대장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윤태민 2소대장을 봤다.
“2소대장 지금 뭐 하는 거지?”
“에이, 1소대장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뭘?”
“그 뭐냐. 여자인 3소대장이 중대장님께 술을 따라드려야죠. 그럼 1소대장님이 중대장님 수발드실 겁니까?”
“뭐? 수발? 이봐, 2소대장. 여기가 지금 조선시대인가? 수발을 들게? 그리고 중대장님께서 다 같이 회식하자고 한 것이지 이러려고 회식을 하자고 한 것이겠어?”
김진수 1소대장의 말에 윤태민 2소대장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진짜······. 1소대장님 아직도 그러시면 어떻게 하십니까.”
“뭐?”
“빨리 4중대 탈출하셔야죠. 계속 그런 식이니 4중대에서 벗어나지 못하시는 것 아닙니까.”
김진수 1소대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2소대장 말 좀 가려서 하지.”
“두고 보십시오. 나중에 중대장님 오시면 함박웃음을 지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1소대장님은 이쪽에 앉으시면 되지 않습니까.”
박윤지 3소대장 바로 건너편에 김진수 1소대장의 자리를 가리켰다. 윤태민 2소대장은 박윤지 3소대장 오른편에 앉았다. 그다음 홍일동 4소대장이 들어왔다.
“어? 벌써들 오셨습니까?”
윤태민 2소대장이 바로 홍일동 4소대장에게 말했다.
“어서 와. 4소대장은 이쪽으로 앉아.”
“네네.”
그렇게 각 소대장들이 상석에 자리를 차지했다. 뒤늦게 자리한 부사관들은 한 칸 띄고 뒷자리에 앉았다. 아무도 그 부분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았다.
항상 회식하면 이런 식의 자리를 배치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오상진이 김태호 상사와 함께 들어왔다.
“중대장님 오셨습니까.”
오상진의 등장에 소대장들부터 비롯해 각 부사관들까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상진이 손을 들어 말했다.
“다들 왜 자리에서 일어납니까. 그냥 앉으세요. 뭐, 대단한 사람이 왔다고 그럽니까.”
오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오상진은 하나하나 눈빛을 마주치며 인사를 했다. 물론 부사관들 자리까지 가서 인사를 했다.
“반가워요. 잘해봅시다.”
“네. 중대장님.”
그러다가 오상진이 자리로 돌아왔다. 김진수 1소대장을 보며 말했다.
“1소대장이 회식 준비 다 했다면서? 고생했다.”
“아닙니다.”
그러자 윤태민 2소대장이 나섰다.
“저한테 맡기셨다면 근사한 곳으로 자리를 잡았을 텐데······. 정말 안타깝습니다.”
김진수 1소대장이 윤태민 2소대장을 노려봤다. 오상진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다음번에는 2소대장에게 맡길 테니까. 그때 하면 되지.”
“네! 맡겨만 주십시오.”
“알았어. 기대할게.”
오상진이 웃으며 자리에 앉으려는데 오른쪽에 박윤지 3소대장이 앉아 있었다.
“응? 그런데 자리 배치가 왜 이래?”
“네?”
오상진이 말을 하며 뒤쪽 부사관 쪽도 바라봤다.
“부사관들은 왜 다들 뒤쪽으로 가 있어?”
“어, 그게······.”
윤태민 2소대장이 당황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오상진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자, 지금까지는 어땠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있는 동안은 이런 식이면 안 돼. 다 같은 4중대야. 뭐야, 이게!”
오상진이 한마디 하고는 주위를 잠시 확인했다. 그러면서 박수를 치며 말했다.
“자자, 다들 일어나봐.”
오상진의 말에 다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쪽으로는 소대장 순서대로 앉고. 반대편으로는 부사관들이 순서대로 앉아.”
부사관들이 살짝 당황한 눈빛이 되었다. 이민식 대위가 있을 때는 이런 식의 대접을 받은 적이 없었다. 아니, 이런 식의 단체 회식은 손에 꼽힐 정도였다. 그때마다 항상 불편했기 때문에 부사관들도 안 오려고 했다. 그런데 오상진이 저런 식으로 나오니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때 김태호 상사가 입을 열었다.
“어이, 거기들 뭐 해. 어서 이리와 앉아! 중대장님께서 친히 자리를 배치하셨는데. 어서 이리 와서 앉자고.”
“네네.”
부사관들이 쭈뼛쭈뼛 자리를 옮겼다. 소대장들도 순서대로 자리에 앉았다.
자리를 앉은 형국이 한쪽으로는 장교들, 다른 한쪽으로 부사관들이 마주 보고 앉는 모습이었다. 치 장교와 부사관들이 소개팅을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부사관들의 인원이 더 많았다.
오상진은 지금의 자리 배치에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자, 이제부터 우리 4중대 회식은 항상 이런 식으로 합니다. 1소대장.”
“네.”
“뭐 하고 있나. 어서 고기와 술 내오지 않고.”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삼겹살이 푸짐하게 나왔다. 술과 맥주도 많이 나왔다. 오상진이 자신의 잔에 술을 따랐다.
“자, 고기가 익어가기 전에 전체적으로 건배 한번 할까?”
“네!”
오상진이 술잔을 들었다. 그러자 4중대 간부 전부 술잔을 들었다. 김태호 상사가 입을 열었다.
“중대장님 한 말씀 하시죠.”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입을 열기 전 고개를 돌려 모든 간부들과 눈을 마주쳤다. 그러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4중대로 온 지 좀 되었는데 이제야 이런 자리를 마련해 미안합니다. 비록 우리 4중대가 독립중대고, 이런저런 일들로 많이 힘든 상황입니다. 여러분께서 많이 도와주시면 저도 열심히 한번 해보겠습니다. 제가 ‘4중대를’이라고 선창하면 여러분들은 ‘위하여!’라고 해주십시오.”
오상진은 다시 한번 그들을 쭉 훑었다. 그리고 술잔을 높이 들며 외쳤다.
“4중대를!”
“위하여!”
그렇게 술을 마셨다. 옆에 있던 김진수 1소대장이 바로 소주병을 들었다.
“중대장님, 제가 한 잔 따라 드리겠습니다.”
“어, 그래. 김 중위. 아니, 1소대장. 고마워.”
오상진이 술잔을 들어 받았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김진수 1소대장 손에 있던 소주병을 빼앗았다.
“자, 1소대장은 내가 따라주지.”
“아닙니다.”
“어허, 이 사람이 내 손 민망하게······.”
오상진의 말에 김진수 1소대장이 두 손으로 빈 소주잔을 내밀었다. 그 잔에 오상진이 술을 따라줬다. 맞은 편에 앉아 있던 김태호 상사에게도 술을 따라줬다.
“행보관님은 맥주입니까?”
“아뇨. 밍밍해서 못 먹습니다. 저는 소맥입니다. 하하하.”
“아하!”
오상진이 환하게 웃었다. 김태호 상사가 소맥을 타고는 슬쩍 부사관들 쪽을 바라봤다. 확실히 장교들과 마주 앉아서 먹고 있으니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 보였지만
얼굴 표정은 한결 밝아 보였다. 김진수 1소대장도 이민식 대위가 있을 때는 항상 박윤지 3소대장에게 밀려 자리했다.
그런데 지금은 바로 중대장 옆자리에 앉았다. 이제야 1소대장으로서의 자리를 찾은 기분이었다.
반면 윤태민 2소대장은 뭔가 불편한 얼굴이었다.
‘4중대를 위하여는 무슨 4중대를 위하여야. 여기서 4중대에 있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된다고······.’
윤태민 2소대장은 혼자 소주를 홀짝홀짝 마시며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그때 고기가 바짝 잘 익은 것 같았다.
“자, 고기가 다 익은 것 같은데 일단 우리 배부터 채우고 얘기들 나누도록 하죠.”
“네.”
그렇게 4중대는 간부들이 오랜만에 삼겹살로 포식을 하게 되었다. 오상진은 잘 구워진 삼겹살 하나를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이야, 여기 삼겹살 괜찮네요. 아무래도 여기 단골 될 것 같은데······.”
오상진의 한마디에 김진수 1소대장이 바로 말했다.
“이 근방에서 여기 이 집 고기가 가장 맛있다고 했습니다.”
바로 김태호 상사가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여기가 냉장고기입니다.”
“아, 그래요?”
“네. 보통 이 근방 대부분의 삼겹살집은 냉동을 씁니다. 하지만 이곳만 유독 냉장고기를 씁니다. 고기도 바로바로 수급하고 말이죠.”
“아하······.”
오상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면서 젓가락은 바삐 움직여 고기를 입으로 가져갔다.
‘확실히 고기가 맛있네.’
그러는 사이 김태호 상사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아, 그리고 이 근처 저기 농협 있죠? 거기부터 여기까지 회식은 다 여기로 잡고 있습니다.”
“아, 그렇구나. 어쩐지······.”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있는데 가게 사장님이 슬쩍 나왔다. 여자 사장은 슬쩍 오상진을 보며 말했다.
“어머, 중대장님 새로 오셨나 보네.”
김태호 상사가 바로 입을 열었다.
“어이구, 대번에 알아보시네.”
“그럼요. 그런 것도 모르고 어떻게 군부대 근처에서 장사를 해요.”
가게 사장은 오상진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중대장님. 앞으로 우리 가게 자주 좀 오세요.”
“네네. 고기 맛이 좋아서 아무래도 저 단골 될 것 같습니다.”
“어멋! 진짜요? 그래요. 너무 오랜만에 오셔서 저희 집 고기 맛을 잊어버린 줄 알았죠. 중대장님 제가 이런 말은 잘 안 하는데요. 우리 집 고기가 다른 집보다 맛있어요. 제가 직접 고기를 고르거든요. 그 점에서는 확실히 보장해요. 호호호!”
“네, 알겠습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어머나, 우리 중대장님 센스 있으시다. 내가 서비스로 음료수를 팍팍 드릴게.”
그러면서 냉장고로 가서 콜라와 사이다를 왕창 꺼내왔다.
“아이고 사장님 안 그러셔도 됩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우리 중대장님이 맘에 들어서 그래요. 왠지 자주 오실 것 같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