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13)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47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13)
“아, 그러셨습니까?”
-그래. 내가 임 중령하고 적당히 전임 중대장이 책임지는 선에서 마무리 짓기로 했네.
“아, 네에. 알겠습니다.”
-서운하지 않나?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것 가지고 서운해하지는 않습니다. 저도 군 생활 오래하지 않았습니까.”
-그래. 나도 이 일을 이대로 끝내는 것이 찝찝하고, 자네 일을 제대로 도와주지 못해 미안해. 그런데 조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일을 크게 벌일 만한 상황이 안 돼. 고작 이 문제로 저쪽을 건드리는 것은 전쟁을 하자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아직 내가 그만큼 자리 잡은 것도 아니고.
“네.”
-그렇다고 너무 기죽지 말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벌어지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긴 했어.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조만간 얼굴 한번 보도록 하지.
“네. 연락드리겠습니다.”
오상진은 장기준 소장이 전화를 끊는 것을 확인한 후 자신도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오상진은 의자에 몸을 깊숙이 눕혔다. 솔직히 오상진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임규태 중령이 나서긴 했지만 어디까지 올라갈지 걱정을 했었다.
최익현 의원에게 도움을 청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너무 일이 커지지 않게, 외압이 들어오지 않게 해 달라는 의도였다.
그런데 장기준 소장이 나서서 잘 처리를 해준 것 같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래, 일은 여기서 마무리 짓자.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으니까.”
오상진이 심란한 마음을 다잡았다. 사실 4중대로 온 지 며칠 만에 이런 큰 사건을 터뜨렸지만, 아직 4중대에 대한 파악도 끝내놓지 않은 상태였다. 지금 이 사건은 이 정도로 마무리를 하고, 4중대를 먼저 파악하고 잘 끌어안고 가는 것이 우선이었다.
“여기까지 하자.”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인 후 수화기를 들었다.
“네. 행보관님. 김 하사랑 제 방에 좀 오시죠. 그래요, 기다리겠습니다.”
오상진이 전화를 끊고, 약 10여 분 후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김태호 상사와, 김호동 하사가 들어왔다. 오상진은 두 사람을 아주 반갑게 맞이했다.
“중대장님? 저희 부르셨습니까?”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자리에 앉으세요.”
“네.”
두 사람이 자리에 앉았다. 오상진은 커피포트를 켜서 물을 끓였다.
“제가 커피 타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중대장님께서 직접 타주시는 커피도 다 마시고, 좋습니다.”
김태호 상사가 웃으며 말했다. 오상진이 김호동 하사를 보며 물었다.
“김 하사는 어떻습니까? 요즘 좀 괜찮습니까?”
“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뭐라고 안 그래요?”
“제가 신경 안 쓰면 됩니다.”
“고생하십니다.”
오상진이 커피를 타서 두 사람에게 내밀었다.
“자, 일단 커피부터······.”
“감사합니다. 중대장님.”
“잘 마시겠습니다, 중대장님.”
오상진도 커피 한 잔을 타서 자리로 왔다.
“제가 두 분을 부른 것은 이번 사건에 대한 결론이 나와서 알려드리고자 불렀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알려주십시오.”
“조인범 상병은 영창을 간 뒤에 다른 곳으로 전출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리되었습니까?”
“네.”
“잘되었습니다.”
김호동 하사가 반색했다. 여차하면 자기가 옮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였다. 만약에 조인범 상병이 가벼운 징계로 끝이 난다면 진짜 부대를 옮길 생각이었다.
그런데 조인범 상병이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반면에 김태호 상사는 살짝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번 기회에 이 일을 문제 삼아 엄히 다스렸으면 했다.
“그게 끝입니까?”
김태호 상사가 물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으로서는 그리될 것 같습니다. 아! 전임 중대장이었던 이민식 대위도 아마 처분이 내려질 것 같습니다.”
“음······. 약간 아쉽습니다.”
“저도 아쉽긴 마찬가지인데, 지금으로서는 이게 최선인 것 같습니다.”
김태호 상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긴 아무리 중대장님이라고 해도 아직은 일을 크게 벌이는 것에는 한 계가 있겠지.’
김태호 상사가 생각을 정리한 후 말했다.
“그럼 저희는 어떻게······.”
“아! 저 오고 나서 제대로 환영식도 못했습니다. 김호동 하사도 복귀했는데 겸사겸사해서 우리 4중대 회식이나 할까 해서요.”
“아, 회식 말입니까? 좋죠.”
“그런데 김 상사님.”
“네?”
“소대장들과 회식하면 혹시 불편하겠습니까?”
김태호 상사가 살짝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아······ 중대장님께서 원하신다면 자리 잡는 거야 문제없겠습니다만······. 좋아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4중대는 독립부대이다 보니 장교들의 힘이 그 어느 때보다 셌다. 그리고 4중대를 유배지처럼 생각하고 있는데 자기들끼리 모여서 으쌰으쌰 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다고 오상진은 이런 식으로 있는 것 역시 원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회식을 각각 따로 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번 기회에 서로 얼굴 좀 맞대고 이야기 좀 하시죠.”
오상진의 말에 김태호 상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중대장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행보관님.”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두 사람이 나간 후 오상진은 잠깐 생각을 하다가 수화기를 들었다.
“1소대장? 나다. 중대장실로 오도록.”
잠시 후 중대장실 문을 두드린 후 1소대장인 김진수 중위가 나타났다.
“중대장님 저 부르셨습니까?”
“그래, 잠깐 앉지.”
“네.”
김진수 1소대장이 자리에 앉았다. 오상진이 김진수 1소대장을 보며 말했다.
“내가 자네를 부른 이유는 이번 기회에 우리 4중대 간부들 전원 회식을 할까 하는데 말이야.”
“중대장님 환영식 말입니까?”
“환영식은 아니고. 무슨 대단한 사람이 왔다고 환영식이야. 그냥 최근에 이런저런 일도 많았고, 겸사겸사 서로 얼굴들도 한자리에서 한번 보고 술이나 한잔하려고 그러는 거지.”
김진수 1소대장은 오상진을 빤히 바라봤다.
그는 지금 오상진이 무슨 의도로 이런 회식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임 이민식 대위는 마음에 없는 말을 잘하고, 알아서 충성을 해주길 바라는 식이었다. 그래서 2소대장인 윤태민 소위랑 죽이 잘 맞았다.
윤태민 2소대장은 이민식 대위의 간지러움을 잘 긁어줬다. 솔직히 김진수 1소대장은 그럴 자신이 없었다.
오상진이 일이 있을 때마다 자신을 먼저 불러주는 것은 고맙지만 말이다.
“진심으로 그리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그럼! 왜? 1소대장 눈에는 내가 다른 뜻이 있어서 그러는 것 같아?”
“아닙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나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아니야. 괜한 오해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군.”
“네. 알겠습니다.”
“그래, 그럼 행정반에 가서 미리 얘기를 해놔.”
“네.”
“이제 가 봐.”
김진수 1소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중대장실을 나갔다. 바로 행정반으로 들어간 김진수 1소대장을 보고 윤태민 2소대장이 물었다.
“1소대장님. 중대장님께서 왜 부르신 겁니까?”
“아, 회식을 하자고 하네.”
“이제 환영식을 하는 겁니까? 좋습니다. 이번 환영식은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제가 아주 그냥 중대장님 좋아할 만한 풀코스로 안내하겠습니다.”
윤태민 2소대장이 신나 하며 얘기했다. 그러자 김진수 1소대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내가 할게.”
“네? 왜 그러십니까? 그냥 제가 하겠습니다.”
윤태민 2소대장이 의아해하며 말했다. 원래 이런 회식 장소 섭외는 원래부터 윤태민 2소대장이 맡아서 했다. 그런데 갑자기 김진수 1소대장이 하겠다고 나오니 윤태민 2소대장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야? 이번에 네가 점수를 좀 따고 싶다는 거야?’
윤태민 2소대장이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면서 슬쩍 말했다.
“그런데 1소대장님은 원래 이런 거 잘 안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그런데 중대장님께서 나에게 맡기셨네. 그러니 내가 해야지.”
“에이, 그냥 제게 맡기면 되는데······.”
윤태민 2소대장이 살짝 인상을 쓰며 구시렁거렸다. 그러곤 자리에서 일어나 행정반을 나섰다.
“저 소대 좀 다녀오겠습니다.”
행정반을 나온 윤태민 2소대장이 슬쩍 행정반 쪽을 봤다.
“아이씨. 알지도 못하면서 지가 한다고 해. 왜? 중대장이 바뀌었으니까, 이제 지가 딸랑거리겠다는 거야, 뭐야. 그건 그렇고 진짜 미치겠네. 왜 연락이 없어!”
윤태민 2소대장이 휴대폰을 꺼내 바라봤다. 윤태민 2소대장이 기다리고 있는 전화는 바로 홍민우 소령이었다.
“아니지, 마냥 기다리기보다는 먼저 연락을 해봐야지.”
윤태민 2소대장이 홍민우 소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왜?
“충성. 중대장님에 대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중대장? 뭔데?
“중대장이 회식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이봐. 윤 소위.
“네?”
-지금 나랑 장난해? 그런 시시콜콜한 것까지 나에게 보고해? 회식이 그렇게 중요해? 그래, 얼마나 중요한 회식이기에 그래?
“아, 그게······. 죄송합니다.”
-사람 바빠 죽겠는데. 끊어!
뚜뚜뚜뚜뚜.
끊어진 휴대폰을 바라보며 윤태민 2소대장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언제는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고하라면서······. 괜히 나에게 성질이야. 짜증 나 죽겠네.”
윤태민 2소대장이 투덜거리며 걸어갔다. 그 시각 박윤지 3소대장도 슬쩍 눈치를 살피더니 깨톡을 보냈다.
-조만간 회식한다고 합니다.
박윤지 3소대장으로부터 날아온 깨톡을 확인한 이민식 대위가 눈살을 찌푸렸다.
“뭐? 회식? 나는 지금 보직 해임당하고 대기 중인데······.”
이민식 대위는 답톡을 보내주지도 않고 폴더를 닫아버렸다.
“그보다 간신히 본대 중대장으로 왔는데 이제 어디로 가는 거지?”
이민식 대위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대기만 했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홍민우 소령이 들어왔다. 이민식 대위가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과, 과장님.”
“앉게.”
홍민우 소령이 다가와 자리에 앉았다. 이민식 대위는 초조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자네 말이야. 대대장님하고 얘기를 해 봤는데 아무래도 자네는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가야 할 것 같아.”
“네? 다른 부대 말입니까?”
“그럼 여기서 뭘 할 수 있지?”
“과장님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십시오. 저 잘할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이민식 대위도 희생자라고 볼 수 있었다. 사고가 터지고 그 당시 중대장이 이민식 대위였다.
모든 것은 위에서 내린 지시인데 독박을 쓴 사람이 바로 이민식 대위였다. 그래서 억울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홍민우 소령은 단호하게 말했다.
“이미 차고 넘칠 만큼 줬어. 아니면 다시 4중대라도 맡을 건가?”
그러자 이민식 대위가 바로 말했다.
“네, 차라리 4중대장이라도 하겠습니다. 다시 4중대로 보내주십시오.”
그런 이민식 대위를 보면서 홍민우 소령이 속으로 혀를 찼다.
‘쯧쯧, 고작 이런 놈 하나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