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12)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46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12)
이민식 대위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느낌상으로 조인범 상병이 다 뒤집어쓰는 것으로 결론이 난 것 같았다.
“왜, 좋아?”
“그건 아니고······.”
“자네는 도대체 중대 관리를 어떻게······. 아니다, 됐네, 됐어! 가서 일 봐.”
“네. 알겠습니다.”
이민식 대위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면서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충성. 박윤지 소위입니다. 중대장님.
“어, 지금 뭐하고 있어?”
-네. 지금 잠깐 일보고 있습니다.
“그래? 다름이 아니라 조인범 상병 일이 나와서 알려주려고.”
-어떻게 되었습니까?
“조인범 상병 영창 간다고 하는군.”
-아, 그렇습니까?
“그래. 영창 갔다가 전출 보낸다고 했으니까. 박 소위 이제 힘들게 하는 일은 없을 거야.”
-다행입니다.
“아무튼 내가 힘써준 것은 알고 있고.”
-네, 감사합니다.
“그건 그렇고 우리 오랜만에 오붓하게 술 한잔이나 할까?”
-네?
“왜? 싫어? 내가 이렇게까지······.”
-아, 아닙니다.
“그럼 조만간 연락할 테니까. 그때 술 한잔하자고.”
-네, 알겠습니다.
이민식 대위는 휴대폰을 끊으며 피식 웃었다.
“후후, 우리 박 소위 오랜만에······. 으흐흐.”
그 시각 송일중 중령과 홍민우 소령이 얘기 중이었다.
“뭐야? 왜 이렇게 시시하게 끝나?”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생각해도 임규태 중령이 이렇게 끝날 성격이 아닌데 말입니다.”
“허허, 거 참······. 사람 찜찜하게 말이야. 직접 전화해서 물어볼 수도 없고 말이지.”
“어떻게, 제가 한번 몰래 알아봅니까?”
“아는 사람 있어?”
“아는 사람이야 만들면 되죠.”
“알았어. 자네가 한번 알아봐, 어떻게 된 일인지.”
“네. 알겠습니다.”
사실 홍민우 소령도 똥줄이 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만에 하나 이 문제로 코가 꿰어버릴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홍민우 소령이 아는 사람을 통해서 어떻게 된 건지 알아봤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홍 소령님 접니다.
“어어, 그래. 최 대위. 알아봤어?”
-어, 그게 고민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고민? 누가?”
-헌병대장님께서 고민 중이신 것 같습니다.
“헌병대장이 무슨 고민을 해?”
-이게 아시다시피 조인범 상병은 처리가 되었는데 소주병이 반입된 것이 문제이지 않습니까. 이걸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럼 뭐? 어떻게 하겠다고?”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참······. 어떻게 올라가야 할지 고민 중이신 것 같습니다.
“책임? 그러니까, 자네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거네.”
-네. 조인범 상병의 일은 그리 처리했지만 아직은 끝난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아, 미치겠군. 그래서 그 일에 대해서 책임져 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지?”
-네.
“으흠······ 일단 알겠네. 고마워. 내가 술 한잔 사겠네.”
홍민우 소령이 전화를 끊고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곧바로 송일중 중령을 찾았다.
“대대장님.”
“어, 그래. 알아봤어?”
“네!”
“그래, 뭐래? 어떻게 된 거래? 아예 끝이 났대?”
“그것이 아니랍니다.”
“아니야? 그럼?”
“어디서 누구에게 책임을 져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합니다.”
“책임? 무슨 책임?”
“소주병 반입 건 말입니다.”
“야이씨, 그건······. 중대장이 책임져야지.”
송일중 중령이 바로 꼬리를 잘랐다.
“중대장이라고 하시면 이민식 대위를 말씀하십니까?”
“그래. 이민식 그 친구가 있을 때 벌어진 일 아니야. 그럼 응당 그 친구가 책임을 져야지. 아니면 자네가 책임 질 건가?”
“그건 아니지만······.”
“그럼 이민식 대위 하나로 끝내. 우리까지 올라오게 만들지 마.”
송일중 중령이 단호하게 말했다.
“네.”
“자네 말이야. 막말로 이런 일은 중대장 허가 없이 불가능한 일이야. 안 그래? 게다가 애당초 4중대는 독립중대잖아. 거기 책임자가 그럼 누구야?”
“이민식 대위입니다.”
“그래! 그럼 책임자인 이민식 대위가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한 거지. 안 그래?”
“네, 맞습니다.”
“그럼 얘기 끝났네! 그리 처리해.”
“알겠습니다. 제가 이민식 대위랑 얘기하겠습니다.”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네.”
홍민우 소령이 고개를 끄덕인 후 대대장실을 나왔다. 그리고 작전과 자신의 사무실로 와서 앉았다. 컴퓨터를 켜고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잠깐 고민을 하던 홍민우 소령은 헌병대로 보내는 공문 하나를 작성했다. 그 내용은 이랬다.
--이민식 대위는 사건 일체를 인지하고 있었으나 별도 보고를 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귀책 사유가 있다고 판단되어 징계 조치 예정
이렇게 작성해서 보냈다. 그것을 받아본 임규태 중령이 헛웃음을 흘렸다.
“허허, 역시 내 예상을 벗어나지 않네. 중대장 선에서 꼬리를 자를 모양이네. 그래, 이번에는 그대들의 뜻대로 해주지.”
임규태 중령이 헌병과장을 불렀다. 그리고 3대대에서 보낸 공문을 보여주며 말했다.
“징계 때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헌병대에서 이민식 대위에 대한 징계를 작성해야 했다. 이민식 대위의 징계는 6개월 감봉이었다. 그 공문을 역으로 3대대 작전과로 보냈다. 그리고 이 일은 빠르게 진행이 되었다.
“이, 이게 뭐야?”
이민식 대위는 공문을 받아 들며 이해할 수 없는 얼굴이 되었다.
-이민식 대위를 감봉 6개월에 처한다. 그에 따른 사유는 다음과 같다. 조인범 상병의 일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한 일. 그 일을 제대로 마무리 짓지 않고, 그냥 넘어가려고 한 일 이에 감봉 6개월 징계를 내린다. 그리고 3대대에서 자체 징계로 2중대장으로 보직해임을 명한다.
이 같은 내용을 받은 이민식 대위는 종이를 와락 구겼다.
“이건 말도 안 돼! 내가 왜?”
이민식 대위는 이에 불복하였다. 곧바로 작전과로 가서 홍민우 소령을 만났다.
“과장님 이게 뭡니까? 왜 제가 보직해임입니까?”
홍민우 소령이 태연하게 이민식 대위를 바라봤다.
“그래서 뭐? 그럼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내가 책임을 질까? 아니면 대대장님?”
“그래도 이건······.”
“이봐, 이 대위! 자네가 중대장으로 있을 때 일어난 일 아닌가. 그럼 자네가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지! 그러라고 중대장 시킨 것이 아닌가. 그런데 중대장이 책임을 안 지겠다면 어떻게 해.”
“과장님 저 좀 살려주십시오. 저 지금 얼마 전에 이사했습니다.”
“그걸 뭐? 내가 자네 이사한 것까지 책임져야 하나?”
“그건 아니지만······.”
“자네 말이야. 내가 똑똑히 말하는데 괜히 이번 일 가지고 여기저기 나불거리지 마. 그냥 조용히 징계받고 있어. 그래야 나중에 연금이라도 받아먹을 수 있어. 그리고 노파심에서 말하는데 처신 똑바로 해.”
이민식 대위는 잔뜩 억울한 표정이 되었다.
“과장니임······.”
“이 대위! 자네 여기서 한마디만 더 입 뻥긋해 봐. 그때는 감봉이 아니라 정직이 될 거야.”
정직이 되면 군대에서는 거의 옷 벗고 나가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민식 대위가 입술을 꾹 깨물며 작전과를 나섰다.
“씨발, 이럴 거면 뭐한다고 날 2중대로 불렀어! 그대로 4중대에 있었으면 내가 알아서 처리 했을 텐데······. 젠장할! 이제 어떻게 하지?”
이민식 대위가 눈알을 굴리며 생각을 했다. 하지만 딱히 방법이 떠오르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욱더 억울하고 열 받았다. 그런데 그 화살이 다른 사람에게 향했다.
“그래, 이게 다 그 녀석 때문이야! 오상진! 왜 기어 와서는 그냥 조용히 지내다 가지, 왜 와서는 날······.”
이민식 대위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팔이 부르르 떨리며 두 눈에 핏발이 섰다.
“오상진 이 새끼 감히 날 물 먹여? 널 가만두지 않겠어!”
이민식 대위는 씩씩거리며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곧바로 박윤지 3소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충성, 박윤지 소위입니다.
“박 소위. 난데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
이민식 대위는 주위를 확인하며 휴대폰을 통해 박윤지 소위와 은밀한 통화를 했다.
오상진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 번호를 확인해 보니 장기준 소장 직통 휴대폰이었다.
“어?”
오상진은 바로 휴대폰을 받았다.
“충성. 오상진 대위입니다.”
-어, 그래. 날세.
“네. 사단장님.”
-이 사람아. 내가 지금 육본 올라온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사단장인가?
“죄송합니다. 제가 입에 붙어서······.”
-뭐, 그건 괜찮아. 어차피 난 자네에게 계속 사단장으로 불리고 싶으니까.
“그래 놓고선, 육본에 가셨지 않습니까.”
-이 친구가. 같이 육본 가자고 할 때는 안 간다고 하더니.
“아, 그건 그렇습니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그보다 잘 지내고 있는 거야?
“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잘 지내고 있기는······. 어때? 오랜만에 찬바람 맞는 기분이.
“가끔은 맞을 만한 것 같습니다.”
-능청은······. 하긴 다른 사람 같았으면 벌써 우는 소리를 하고 그랬겠지. 아무튼 오상진은 오상진이야.
“감사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자네 거길 보내고 잠이 잘 오지 않았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네처럼 군 생활 열심히 하는 친구를 그런 험지로 보내야 했었나 싶었고 말이지. 그런데 어떻게 가자마자 한 건 했어.
“아, 이건······.”
-알아. 자네가 의도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지. 하지만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마도 덮었겠지. 아니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거기까지 가지는 않았겠지. 잘했네, 잘했어. 그런데 말이야. 일이 별거 아닌데 이상하게 일이 커져 버렸어.
“네? 그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자네도 거기 연대장이 일심회 소속인 건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습니다.”
-우리 군대도 조직문화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참······. 어떻게 하겠나.
장기준 소장의 말은 일심회 같이 사조직이 운영되고, 자기들끼리 밀어주고 그런 문화가 아직도 있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오상진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어쨌든 그쪽에서 연락이 먼저 왔네.
“일심회에서 말입니까?”
-그렇다네.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고. 딱 지금 그 짝이야.
오상진이 살짝 생각을 정리를 해봤다. 송일중 중령까지는 이해를 했는데, 그 위까지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사실 내가 알아봤는데 연대 쪽에서 올라간 것이 아니라. 그 사병 이름이 뭐라고 했지?
“조인범 상병입니다.”
-어, 그래. 그 친구 조부가 제법 힘이 있는 모양이야. 여기저기 군대도 그렇고, 다른 정계 쪽으로도 줄을 대고 있는 모양이야.
“아, 네에.”
-그런데 그 조부가 인맥을 총동원해서 그렇게까지 얘기가 나온 모양이야. 그쪽에서도 솔직히 골치 아파 하더라고. 군 기강이 문제이긴 하지만 딴 지역에서 보면 일을 크게 키울 수는 없지 않은가.
“······.”
오상진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그래. 조인범 상병의 일탈은 확실히 문제가 있어. 그런데 이것이 외부로 알려질 경우 군대 전체의 문제가 생긴다네.
사실 오상진이 바른 일을 했지만 군대 전체를 욕보이게 할 수도 없는 문제였다. 아무리 정의로운 일이라고 해도 말이다. 오상진도 단지 중대에서 해결할 문제를 높은 곳까지 올라가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장기준 소장도 사건이 무척이나 중대하고, 환부를 도려내야 할 정도라면 직접 나섰을 것이다. 솔직히 이 문제는 일개 병사의 일탈로 생긴 문제 아닌가.
-그래서 말인데 내가 이 문제로 임 중령을 만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