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9) >
인생 리셋 오 소위! 043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9)
임규태 중령이 소주잔을 비웠다. 오상진이 바로 소주병을 들어 잔을 채웠다.
“여러모로 이런 귀찮은 일에 연락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런 소리 말게. 다른 것도 아니고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것인데 그런 걸로 몸 사리고 그런 내가 아니야.”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라······. 내 참······.”
임규태 중령이 피식 웃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오상진에게 낚인 기분이었다. 하지만 기분 나쁜 낚임은 아니었다.
“참! 자네 요즘도 최익현 의원님하고 연락하나?”
“네. 종종 인사는 드립니다.”
“내일 날 밝는 대로 최익현 의원에게 연락하게.”
“네?”
“솔직히 말해서 무슨 부사관 폭행 때문에 이렇게까지 호들갑을 떠나 싶었는데······. 자네 말이 사실이라면 저쪽에서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거야. 모든 인맥을 총동원해서 이 사건을 덮으려고 하겠지. 어쩌면 내일 위에서 압력이 내려올 수도 있어. 그럴 때 우리에게 힘이 되어줄 사람이 필요하잖아.”
“그렇긴 한데 이런 일로 연락을 드리기가······.”
오상진이 살짝 꺼렸다. 그 모습에 임규태 중령이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내참······ 먼저 시작한 것은 자네야. 저쪽에서 대포를 꺼내는데 소총을 쏘고 있을 거야? 우리도 맞불을 놓고 그래야지. 안 그런가?”
“······.”
“그리고 최 의원님이 나서줘야 저쪽에서 몸을 사리는 시늉이라도 하지.”
임규태 중령의 말에 오상진이 쓰게 웃었다. 솔직히 부정하고 싶진 않지만 만약에 저쪽에서 윗선을 움직인다면 비호세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었다.
오상진이 속으로 생각했다.
‘임 중령님까지 나섰는데 혼자 부담을 짊어지게 할 수는 없지. 염치없지만 최 의원님께 도움을 청해야겠어.’
오상진은 생각을 마무리했다. 어쨌든 지금 상황에서는 최익현 의원의 도움이 절실했다. 오상진이 소주 한 잔을 쭉 들이켰다. 그리고 잘 구워진 돼지껍데기 하나를 입안에 넣고 오물거렸다.
그런 오상진을 보며 임규태 중령이 소주병을 내밀었고, 그렇게 두 사람은 밤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였다.
다음 날 오상진이 최익현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이쿠, 이게 누군가? 오 대위 아닌가.
최익현 의원이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지난 몇 년간 최익현 의원과는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네. 의원님! 그동안 잘 지내셨죠?”
-나야 잘 있지. 우리 오 대위가 나라를 잘 지켜준 덕분이지.
“아닙니다.”
-그보다 얘기를 듣기로는 이번에 평택으로 내려갔다고 들었는데.
“네.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아. 서울에 있지 뭐하러 평택에 내려가.
“저도 진급을 하려면 여러 가지 경험도 쌓아야 하고 중대장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그런가? 하긴 여러 경험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 게다가 자네가 아무 계획 없이 움직일 사람도 아니고······. 그건 그렇고 무슨 일이야?
“아, 다른 것이 아니라······.”
오상진이 최익현 의원에게 중대에서 일어난 일을 설명해 줬다. 처음에는 무슨 일인가 잠자코 듣던 최익현 의원도 수향옥이라는 얘기가 나오자 눈을 번쩍였다.
-잠깐 수향옥이라면 혹시 강남 세무서 뒤쪽에 있는 그곳을 말하는 건가?
“네, 맞습니다. 의원님께서도 아시는 곳입니까?”
-아, 나도 거긴 한두 번 가 봤네. 거기 주인장이 보통이 아니던데.
“네. 그분이 아까 말씀드렸던 조인범 상병의 어머니입니다.”
-오호라, 그래? 이거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되겠는데?
“네. 제가 걱정하는 부분이 그 부분입니다.”
-오케이,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어! 그럴 일이 없어야겠지만 혹시라도 이 일을 가지고 정치권에서 움직이거나 그렇다면 내가 이쪽은 잘 단속할 테니 자네는 걱정하지 말게.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의원님.”
-감사는 무슨. 자네가 이렇듯 나라를 위해 고생한다는 것을 잘 아는데. 그래. 그 외 다른 일은 없는가?
“네. 없습니다. 모처럼 전화해서 이런 염치없는 부탁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그러나. 자네 덕분에 내가 이렇게 발 뻗고 잘 지내고 있지 않은가. 그런 생각 말고 언제 한번 나오면 술이나 한잔하세.
“네, 의원님. 연락드리겠습니다.”
-말만 그러지 말고, 이 친구야!
“하하, 네 의원님.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알겠네.
그렇게 전화를 끊은 최익현 의원이 피식 웃었다.
“아무튼 보면 볼수록 맘에 드는 친구야. 오 대위가 나이만 좀 더 있었어도 우리 강희 짝으로 딱인데······.”
최익현 의원이 피식 웃음을 짓는데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비서가 들어왔다.
“어, 그래. 무슨 일이야?”
“의원님. 도상욱 의원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도 의원이? 알겠네. 들어오시라고 해.”
“네.”
비서가 인사를 하고 잠시 후 다시 문이 열리며 도상욱 의원이 들어왔다. 같은 당인 민국당의 도상욱 의원은 2선 의원이었다.
“도 의원. 여긴 어쩐 일인가?”
“최 의원님. 잠깐 시간 괜찮으십니까?”
“무슨 일인데 그래?”
“다른 것이 아니라. 제가 아는 분에게 연락이 와서 말입니다.”
“아는 사람? 누구?”
“그것까지는 말씀 드리기는 좀 그렇고······. 그냥 아는 사람의 손자가 평택에 있는 군부대에 있는데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서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최 의원님을 좀 찾아왔습니다.”
도상욱 의원이 씨익 웃었다. 최익현 의원은 평택이라는 도시를 듣는 순간부터 오상진과 관련된 일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으음, 평택이라······. 그래 무슨 일인가?”
“얘기를 들어보니 철없는 손자 녀석이 사고를 친 모양입니다. 홧김에 부사관을 때렸다던가? 그런데 부사관이 깽값이라도 받아낼 요량으로 병원에 입원을 한 모양입니다. 또 거기로 간 중대장이 앞뒤 분간하지 못하고 일을 키워서 골치 아픈 모양입니다.”
“그래? 그 중대장 이름이 뭔데?”
도상욱 의원은 최익현 의원이 자신의 부탁을 들어줄 요량으로 물어본 것이라 착각했는지 바로 얘기를 했다.
“아, 그게 말이죠. 오······ 뭐였는데······.”
“오상진!”
“네, 맞습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후후, 재미있네.”
“네?”
“내가 방금 오상진과 통화를 했거든.”
“네에?”
도상욱 의원이 눈을 크게 떴다. 최익현 의원이 소파에 몸을 깊게 눕히며 말했다.
“내가 방금 오상진과 통화를 했단 말이야.”
“······아니, 그 사람이 왜 의원님하고······.”
“왜일 것 같아?”
“······.”
도상욱 의원은 도무지 알지 못했다. 최익현 의원이 피식 웃으며 손에 깍지를 꼈다.
“잘 생각해 봐. 내가 자네 얘기를 듣고 오상진 대위라는 것을 바로 알아들었을까? 도 의원 내가 어떻게 알았을 것 같아?”
최익현 의원이 옆 테이블 위에 놓인 담배를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인 후 천천히 담배를 태웠다. 좌우로 눈알을 굴린 도상욱 의원이 뭔가 아차 싶었다.
‘아, 맞아. 최 의원님이 아끼는 군인이 한 명 있다고 했어. 설마 그 친구가 오상진?’
그제야 도상욱 의원이 번지수를 잘못 찾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상욱 의원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이쿠, 최 의원님. 제가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사람아. 갑자기 무슨 급한 일? 그냥 앉게.”
“저, 의원님. 진짜 급한 일이······.”
“어허, 앉으라고!”
최익현 의원의 목소리에 우뚝 멈춘 도상욱 의원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앉았다.
“자네 내 말이 우습나?”
“아,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최익현 의원이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도 의원.”
“네.”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를 똑바로 들어. 만약에 다시 한번 누군가의 입에서 그 사건과 관련된 청탁이 나오면 도 의원 자네부터 가만두지 않을 거야.”
“아이고, 최 의원님 저는 단순히 아는 사람이······.”
“그러니까, 이 사람아! 국회의원이 그런 일을 하라고 국민들이 뽑아준 줄 알아! 국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라고 했더니 뒤에서 청탁이나 받고! 그게 국회의원으로서 할 소리야!”
“어, 그게······.”
솔직히 도상욱 의원은 억울했다. 막말로 국회의원이 되면서 이러저리 도움을 안 받은 것도 아니고, 도움 받은 사람들이 도움을 청하는데 어떻게 그걸 무시하나. 최익현 의원은 처가가 잘 사니까 그럴 수 있었다.
그런 도상욱 의원의 속내를 읽은 최익현 의원이 얘기를 꺼냈다.
“자네 말이야. 지금 무슨 일을 하려고 했는 줄 아나?”
“······?”
“뭐? 홧김에 부사관을 때려? 이 친구야. 사병이 몰래 소주병을 반입해서 부사관을 폭행했어. 그것도 뒤통수를 가격했단 말이야. 소주병으로 뒤통수를 가격하면 특수폭행인 거 알아 몰라?”
“어······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만약 이 사건이 기사로 나오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어, 그게······.”
“그때 자네 이름이 거론되면 참 재미있겠어. 아니, 당에서 참 좋아하겠어.”
“아이고, 의원님······.”
도상욱 의원이 냅다 고개를 숙였다. 최익현 의원이 그를 보며 혀를 찼다.
“쯧쯧, 이제 알겠나? 자네가 얼마나 앞뒤 분간하지 못하고 철없는 짓을 하려고 했는지 말이야. 이제 좀 이해가 돼?”
“죄송합니다.”
도상욱 의원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솔직히 최익현 의원도 이제 3선 의원이지만 시 의원이던 시절부터 이미 입김이 상당했다. 정치에 도전하던 그때부터 체급 자체가 달랐다는 거다.
도상욱 의원처럼 비례대표로 당선되고 재선한 것과 달리 최익현 의원은 내리 3선을 지역구에서만 했다. 아니, 초선부터 지역구에 뛰어들어서 3선의원이 되었다. 한마디로 중량 자체가 달랐다.
게다가 최익현 의원은 처가가 선진그룹이었다. 대한민국 10대 재벌 중 하나인 선진그룹이 말이다.
최익현 의원의 파워는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시 한번 경고하는데 이 일에 끼지 마. 혹시 주변에서 이 일에 끼어드는 사람이 있다면 자네가 나서서 말려. 아니면 자네가 다칠 거야.”
“네, 알겠습니다. 제가 어떻게든 쓸데없는 소리 안 나오게끔 잘 조치하겠습니다.”
“자네나 잘해. 자네나!”
“네, 알겠습니다.”
도상욱 의원이 후다닥 최익현 의원의 사무실을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최익현 의원이 혀를 찼다.
“쯧쯧쯧, 참 모자란 사람······.”
잠시 후 조지태 보좌관이 들어왔다.
“의원님. 도 의원이 뭐라고 합니까?”
“흥, 지 주제도 모르고 청탁을 하더라고.”
“청탁을 말입니까?”
조지태 보좌관이 살짝 놀랐다.
“아니, 오상진 대위 부대에 일이 있는데 그걸 좀 무마시켜 달라더군.”
“허, 도상욱 의원도 참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조지태 보좌관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최익현 의원이 슬쩍 그를 봤다.
“참! 자네 내 밑에서 보좌관으로 수행한 지 얼마나 되었지?”
“의원님 모신 지 7년 다 되어갑니다.”
“그래? 그럼 자네도 슬슬 금 배지 달 준비를 해야지.”
조지태 보좌관의 눈빛이 반짝였다.
“의원님께서 그리 말씀을 하시니 저는 그저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잘할 수 있겠나?”
“맡겨만 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도상욱 의원 지역구는 어때? 저 정도면 자네가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의원님께서 밀어주시면 충분히 자신 있습니다.”
“그래! 선거가 얼마 안 남았으니까, 잘 준비하고 있어.”
“네. 의원님!”
조지태 보좌관이 환하게 웃으며 몸을 돌려 사무실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