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8)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42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8)
먼저 수향옥을 빠져나온 송일중 중령과 홍민우 소령은 급한 대로 근처 노래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잠시 졸고 있던 주인아주머니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어서 오세요.”
“네. 방 하나 주세요.”
“어떻게, 아가씨 불러드릴까?”
“아가씨는 됐고, 술이나 가져다줘요.”
“알겠어요. 방은 저기 안쪽에 있는 6번 방 사용하세요.”
“그래요.”
홍민우 소령이 대답을 하고 송일중 중령과 함께 6번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아주머니가 시원한 맥주를 가지고 왔다.
“재미있게 노세요.”
아주머니가 두 사람을 힐끔 쳐다보고는 나갔다. 송일중 중령은 목이 탔던지 맥주를 타서 컵에 따라 벌컥벌컥 마셨다. 홍민우 소령이 말했다.
“대대장님 천천히 드십시오. 그러다가 탈 나십니다.”
송일중 중령이 홍민우 소령을 노려봤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얘기가 나와!”
“······.”
솔직히 이 일이 이렇게 된 것은 홍민우 소령의 잘못은 아니었다. 막말로 임규태 중령이 이 자리에 올 것이라고 생각지도 않았고, 모든 판은 송일중 중령이 짜놓았다. 홍민우 소령은 그저 오상진을 데리고 온 것이 다였다. 하지만 계급이 깡패라고 송일중 중령의 짜증을 홍민우 소령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다 저의 불찰입니다. 죄송합니다.”
“도대체 자네는······. 하아, 됐네. 내가 자네를 데리고 무슨 일을 하겠다고······.”
송일중 중령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맥주를 따라 마셨다. 홍민우 소령이 다시 한번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송일중 중령은 맥주 한 병을 다 마신 후 다른 말 없이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이 자리가 홍민우 소령에게는 가시방석이나 마찬가지였다.
‘후, 그래도 어쩌겠어. 윗사람의 푸념을 들어주는 것도 아랫사람의 도리인 것을······.’
홍민우 소령이 속으로 생각하며 송일중 중령이 입을 열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10여 분쯤 말없이 시간이 지나자 송일중 중령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해?”
“일단 임규태 중령님을 따로 한번 만나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임 중령을? 또?”
“오늘 있었던 일을 어떻게든 함구하겠다는 다짐을 받아놓으셔야 합니다.”
“이봐, 작전과장.”
“네.”
“아까 임 중령이 말했잖아.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겠다고.”
“그 말은 여러모로 좀 불안하지 않습니까.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이고, 그 자리를 무마시키기 위해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대대장님께서 직접 한번 만나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젠장할! 도대체 일이 왜 이렇게 꼬이는 거야.”
송일중 중령이 다시 맥주병을 따려고 했다. 그런데 잘 되지 않았다.
“왜 이렇게 안 따지는 거야!”
“제가 하겠습니다.”
홍민우 소령이 받아서 맥주병의 뚜껑을 땄다. 그것을 다시 맥주잔에 따른 송일중 중령이 벌컥벌컥 마셨다. 맥주잔을 내려놓은 송일중 중령이 트림을 꺼억 했다.
“이제야 좀 속이 시원하네. 자네도 마셔!”
“아, 네에.”
송일중 중령이 따라주는 맥주를 두 손으로 받은 후 몸을 돌려 한 번에 마셨다. 올라오려는 트림을 간신히 억누르며 맥주잔을 내려놓았다.
“한 잔 더 할 텐가?”
“아, 아닙니다.”
“······.”
송일중 중령은 말없이 자신의 잔에 맥주를 따랐다. 그러면서 슬쩍 홍민우 소령을 보며 말했다.
“자네 말이야. 겁나나?”
“네?”
“이번 일 때문에 자네 진급에 차질이 생길까 봐 겁이 나냐 말이야.”
“그건 아니지만······.”
“이 친구야. 나 송일중이야. 이대로는 안 죽어!”
송일중 중령이 남은 맥주를 꿀꺽꿀꺽 들이켰다. 그 모습을 보며 홍민우 소령의 눈빛은 불안하기만 했다.
그 시각 오상진과 임규태 중령도 자리를 옮겼다. 임규태 중령이 잘 안다는 돼지껍데기 집이었다.
“어후, 우리 이렇게 한잔하는 것도 오랜만이지?”
“네. 대대장님. 그동안 못 뵌 사이에 얼굴에 살이 좀 붙으셨습니다.”
“그래? 이 친구 나 너무 놀고 먹는다고 놀리는 거 아니야?”
“그런 뜻이 아니라, 좋아 보인다는 뜻입니다.”
“솔직히 헌병대에 오니까, 좀 편안하긴 해. 기무사에서는 너무 정치적이라 좀 그랬어.”
“헌병대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헌병대는 나의 고향이나 다름이 없지. 게다가 아는 사람도 많고 말이야. 나에게 힘이 되어 줄 사람들도 많고. 만약에 말이야. 이 사건이 내가 기무사에 있을 때 올라왔었다면, 지금처럼 큰 힘을 못 줄 수도 있었어.”
“아, 다행입니다.”
“다행이긴, 이 친구야. 자네는 도대체 왜 이런 일에 휘말리는 거야.”
오상진이 소주병을 들어 빈 잔에 소주를 따라줬다. 임규태 중령도 소주병을 다시 받아 따라줬다.
서로 잔을 부딪친 후 다시 마셨다. 임규태 중령이 오이를 들어 쌈장에 찍어 한 입 베어 물었다.
아작아작.
“그건 그렇고 거긴 왜 내려간 거야?”
“제가 대대로 내려가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갑자기 왜? 특별한 일이 있었던 거야?”
“그건 아닙니다. 막말로 진급하려면 중대장 생활은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동안 사단에서 편안하게 군생활 했으니까, 대대로 내려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허허, 이 친구 진짜 팔자 좋은 소리 하네. 하긴 뭐, 자네나 되니까 그런 소리를 하지. 다른 사람 같았으면 어떻게 하면 좋은 보직에 올라가서 편하게 군 생활을 할까. 하고 빠지려고 용을 쓰는데 말이야.”
“대한민국 모든 군인이 다 그렇지는 않지 않습니다.”
임규태 중령이 피식 웃었다.
“그래! 그래서 자네를 내가 좋아하지.”
그때 돼지껍데기가 나왔다. 잘 양념 된 돼지껍데기가 숯불 위로 올라갔다.
치이이익.
“나는 말이야.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하고 돼지껍데기를 먹으며 소주 한잔하는 것이 참 좋아. 자네는 어떤가?”
“저도 오붓하게 술 한잔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런 사람이 한 번도 연락도 없고 말이야.”
임규태 중령이 살짝 서운하다는 기색을 내비쳤다.
“그러게 왜 헌병대에 계셨습니까? 다른 곳에 계셨다면 제가 편안하게 연락을 드렸을 텐데······.”
“헛! 이 친구 보게······. 대위 되었다고 말도 늘었어.”
“저도 그동안 놀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허허허. 그래, 알았네. 자, 마시자고.”
“네.”
두 사람은 또 술잔을 부딪치며 소주를 넘겼다. 잘 익은 돼지껍데기를 입으로 가져가 오물거렸다.
임규태 중령이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보다 자네 괜찮겠어?”
“뭐가 말입니까?”
“조인범 상병 어머니란 분 말이야.”
“네.”
“알아보니 그 양반 집안이 보통이 아니야. 나도 처음에는 일반적인 졸부 집안인 줄 알았는데 부동산으로 꽤나 돈을 벌어서 정재계 인맥이 많아.”
“그렇습니까?”
“허허, 이 친구 보게. 그렇게 말하면 겁을 내거나 그래야 하는데 전혀 그런 것이 없어. 뭐? 남들 몰래 꼬불쳐 둔 돈이라도 있는 거야?”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임규태 중령의 말처럼 로또 당첨금도 있고, 빌딩 4채를 보유한 건물주이지만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그보다 조사는 언제부터 하실 겁니까?”
“언제부터 하긴. 이미 시작되었지.”
“그럼 어디까지 하실 겁니까?”
“왜? 내가 어디까지 치고 올라갈지 궁금해?”
“솔직히 궁금하긴 합니다.”
오상진의 말에 임규태 중령이 피식 웃었다.
“그럼 자네는 내가 어디까지 치고 올라갔으면 좋겠나?”
“제가 4중대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맡은 4중대는 독립중대 그런 곳입니다. 어차피 아시겠지만 우리 중대가 말썽 피운 병사들을 모아놓은 곳이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얘기를 들었어. 송일중 중령이 예전부터 입을 잘 놀리던 양반이야. 그 입놀림으로 진급도 빨리 하고 그랬지. 그런데 설마하니 대대에서 그런 짓을 벌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네. 지금이 무슨 쌍팔년도 아니고 말이야.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부대를 만들고 있어.”
송일중 중령은 군 부대의 효율성을 위해서 문제아들을 따로 모았다고 하지만 그것은 군 인권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 말인즉, 학교에서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선생의 눈 밖에 난 애들을 한 반에 모아두고 서로 감시하게 하는 것밖에 안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상진의 말처럼 11연대를 뒤집어엎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것은 아닌데. 고작 이 일을 가지고 크게 벌일 수는 없어. 어쩌면 일개 사병의 일탈 정도로 끝날 수도 있어.”
“조인범 상병이 어떻게 사고를 쳤는지 알고 계십니까?”
오상진의 물음에 임규태 중령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대충 얘기는 들었어. 뭐, 부사관을 폭행했다면서.”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냥 폭행이 아니라, 둔기로 부사관의 뒷머리를 가격했습니다.”
“둔기?”
임규태 중령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보고를 들은 상태였다. 정확한 것은 어차피 연대에 내려와서 직접 조사를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굳이 자세히 캐내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아직은 정확한 사건 경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임규태 중령이 계속 얘기를 해보라는 듯 눈을 반짝였다. 오상진이 말을 이어갔다.
“피해자가 김호동 하사인데. 뒷머리를 소주병으로 가격당했습니다.”
“뭐? 소주병? 아니, 군부대에 무슨 소주병이 있어! 설마 장교들이 빈병 관리를 잘못한 거야?
임규태 중령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오상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차라리 그런 거라면 다행입니다. 그 소주병은 외부에서 반입된 것입니다.”
“설마······ 그 소주를 조인범 상병이 마시고, 그 병으로 김호동 하사를 내려친 거야?”
“일단 정황은 그렇습니다.”
“이런 미친······. 어디 그런 당나라부대가 다 있어.”
임규태 중령이 버럭 화를 냈다. 솔직히 말해서 장병이 부사관을 구타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군 기강이 많이 해이해진 것을 여실히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그런데 외부에서 소주를 반입하고, 그걸로 부사관의 뒤통수를 내려쳤다?
이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임규태 중령은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송일중 중령이 자초한 일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애당초 그런 중대를 만든 것이 문제였어. 다 문제아들인데 그런 애들만 모아 두면 서로서로 물들지. 도대체 그게 무슨 짓이야!”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4중대의 모든 인원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인 병사들을 한곳으로 모아두고 내부적으로 쉬쉬해 버리면 자신들이 특별대우를 받는다고 착각하고 지휘에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을 송일중 중령이 몰랐을까? 다 알면서 일부러 그랬겠지. 그놈의 진급이 뭔지······.”
임규태 중령이 혀를 쯧쯧 찼다. 그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가만 그렇다면 말이야. 그런 일이 몇 번 더 있었을 것 아니야. 그동안 그 일들 다 그냥 넘어갔던 거야?”
“일단 전임 중대장이었던 이민식 대위가 2중대장으로 보직 변경이 되었습니다. 전해 듣기로는 보직 변경 전 이 사건은 분명 보고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임 중대장이, 아니, 2중대장이 어떻게 보고를 했는지 몰라도 제대로 처리가 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가만 4중대에서 2중대로 보직 변경되었다? 한마디로 문제아 중대를 맡고 있다가 본대로 복귀해 버린 거 아니야.”
“네, 맞습니다.”
“설마 그 일을 무마시켜주는 조건으로 부른 거 아니야?”
“그것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흠, 이것 참······.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일이 복잡해지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