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7)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41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7)
“왜요? 우리 인범이 잘 챙겨 주신다면서요.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챙겨 주는 건데?”
멋대로 오해한 조수진이 웃으며 다시 권했다. 하지만 오상진은 고작 이 정도 뇌물로 조인범 상병을 용서해 줄 생각이 없었다.
“네, 조인범 상병. 이번 일로 처벌받고 나오면 중대장으로서 차별 없이 잘 챙기겠습니다.”
오상진의 말에 조수진의 눈이 커졌다.
“네? 처벌 받고 나오면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이죠?”
송일중 중령의 얼굴이 붉어졌다.
“어허, 오 대위! 사람이 진짜 왜 이래! 조 여사님이 이만큼 했으면 좀 알아듣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부모를 앞에 두고 뭐하는 짓이야!”
“그래, 오 대위. 자네가 잘못했어. 어서 사과드리게.”
송일중 중령에 이어 홍민우 소령까지 가세하며 말했다. 조수진이 이만큼 성의를 보이는데 이러는 건 도리가 아니라며 질책했다.
조수진도 잔뜩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오상진이 오히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 무슨 실수를 했단 말입니까?”
“아니, 이 사람아. 조 여사님께서 조 상병이 걱정되어서 이렇게까지 자리를 마련했는데 아무리 자네가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식이 없다고 해도 그렇지. 이렇듯 부모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서야 되겠나. 이래서야 대한민국 부모들이 우리들을 믿고 군대에 보내겠나.”
어떻게 보면 궤변이나 다름이 없었다. 군대를 믿고 자식들을 보낸 수많은 부모님들을 위해서라도 조인범 상병 같은 녀석들은 엄벌을 내려야했다.
그런데 정작 송일중 중령과 홍민우 소령은 마치 오상진이 잘못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오상진은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화를 누그러뜨렸다. 그리고 임규태 중령이 올 때까지 시간을 끌기 위해서 단호하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그렇게 말씀을 하셔도 제 결정은 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허, 오 대위. 정말 그런식으로 나올 건가?”
송일중 중령이 무서운 눈빛으로 오상진을 노려봤다. 그러자 조수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만들 싸우세요. 에효, 죄송해요. 자식 잘못 둔 제 잘못이죠. 그런데 오 대위님. 올곧으신 것은 좋은데 너무 그렇게 뻣뻣하시면 쉽게 부러져요. 제가 인범이 어머니가 아니라 인생 선배이자 누나로서 걱정이 되어서 하는 말이니까 너무 고깝게 듣진 마세요.”
“네.”
“오 대위님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 가게에 장군님들도 오고 가고 그래요. 정치인들도 많이 왔다 갔다 하고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제가 그 분들에게 부탁하면 우리 인범이 문제도 쉽게 해결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안 했어요. 제가 그러면 여기 계신 송 중령님부터 시작해 오 대위님까지 난처해질 테니까요. 저 그렇게 몰상식한 여자 아니에요. 저도 배운 만큼 배운 여자에요. 인범이가 잘못했으니까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머리로는 이해를 했어요. 그래도 자식을 가진 부모로서 그냥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송 중령님께 부탁을 해서 이런 자리를 마련한 거예요.”
“네. 조인범 상병을 걱정하는 어머니 말씀은 충분히 이해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헌병대 조사를 없던 일로 할 수 없습니다. 이미 제 손을 떠난 일입니다.”
“알죠. 그 얘기는 들었어요. 그래도 우리 새로 오신 오 대위님께서 조사받을 때 잘 말씀해 주시면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요? 꼭 그렇게 제 아들을 크게 혼내실 필요는 없잖아요. 아직 어린아이고, 잘 품으면 될 것 같은데요.”
그 얘기를 듣는데 오상진이 한숨이 나왔다. 조수진의 아들인 조인범 상병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고를 쳤는데 품고 다독이라니. 조수진이 저렇게 감싸고 도니 조인범 상병도 제멋대로 구는 것 같았다.
오상진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어머님······.”
오상진이 더는 참지 않고 말을 하려는데 갑자기 문이 드르륵 하고 열렸다. 그리고 임규태 중령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갑작스러운 임규태 중령의 등장에 송일중 중령과 홍민우 소령은 흠칫 놀랐고 오상진의 얼굴에는 안도의 미소가 번졌다.
“아니, 자네는······.”
뒤늦게 정신을 차린 송일중 중령이 말을 더듬었다. 설마하니 이곳에 임규태 중령이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선배님, 여기 계셨습니까? 이렇게 좋은 곳에서 식사하실 거였으면 저도 좀 불러주지 그러셨습니까?”
임규태 중령이 넉살 좋게 웃어댔다. 그러고는 홍민우 소령을 바라봤다.
“자네는 낯이 익는데?”
홍민우 소령이 바로 경례를 했다.
“충성.”
“어, 그래. 자네가 홍 소령인가?”
“네. 소령 홍민우.”
“일전에 한 번 우리 본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네. 지난번 서울 수도방위 사령부에서 한 번 뵌 적이 있습니다.”
“아, 그래. 그렇군.”
임규태 중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오상진 옆으로 와서 어깨를 한 번 툭 치고는 자리에 앉았다. 마치 오상진의 경례는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무슨 얘기를 이렇게 재미나게 하고 있었습니까?”
임규태 중령의 물음에 송일중 중령과 홍민우 소령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그렇다고 조인범 상병의 어머니인 조수진에게 접대를 받고 있었다고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분위기 파악을 못한 조수진이 슬쩍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분은······.”
그러자 임규태 중령이 바로 인사했다.
“아, 네에. 헌병대장 임규태 중령입니다. 조인범 상병 어머니 되시죠?”
임규태 중령이 자신을 한번에 알아보자 조수진의 표정이 달라졌다.
“아! 그러니까, 헌병대에서 제일 높으신 분이신 거죠?”
“네. 제가 그렇습니다.”
“어멋! 송 중령님은 이런 분이 오신다고 하셨으면 미리 말씀 좀 해주시지 그랬어요. 음식을 다시 해와야겠네. 호호호.”
“아닙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일단 이곳에 앉으십시오.”
임규태 중령이 말에 조수진은 의아해하며 송일중 중령을 봤다. 송일중 중령은 잔뜩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임규태 중령이 오상진 옆쪽에 놓인 금색 비단으로 감싼 상자를 봤다.
“이건가?”
“네.”
임규태 중령이 조수진을 보며 말했다.
“이거 제가 한번 봐도 되겠습니까?”
“네? 네에. 그러세요.”
조수진은 임규태 중령도 같은 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임규태 중령이 오상진의 선물을 보고 마음에 들어한다면 똑같은 걸 하나 더 준비할 생각을 가졌다.
반면 그 모습을 지켜보는 송일중 중령과 홍민우 소령의 낯빛이 어둡게 물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안 된다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여기서 더 나섰다간 일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임규태 중령이 금색 비단으로 감싼 상자를 집어서 끈을 풀었다. 뚜껑을 여니 진짜 홍삼으로 된 팩이 올라 있었다. 임규태 중령이 가볍게 홍삼 팩을 들었다. 예상처럼 그 밑에는 만 원짜리 돈 다발이 들어 있었다.
“어이구야. 이거 선물로 받기에는 금액이 제법 크네요.”
“아이고, 이 정도 가지고 그러세요. 제가 우리 헌병대장님 것은 제대로 챙겨 드릴게요.”
조수진은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서슴없이 내뱉었다. 임규태 중령이 피식 웃었다.
“어머니, 저에게 그런 말씀하시면 큰일 납니다. 진짜!”
“네?”
“아니, 지금 하신 말씀을 헌병대장인 저를 돈으로 매수하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면 조인범 상병에게 더 불리하게 진술이 들어갈 건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어? 예? 그게 무슨······.”
조수진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시선을 송일중 중령에게 뒀다. 송일중 중령은 이제 끝났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홍민우 소령도 마찬가지였다.
그 모습을 본 조수진이 그제야 이해가 되는 듯 깜짝 놀랐다.
“어멋! 내 정신 좀 봐. 저는 이만 나가봐야겠어요.”
조수진은 도망치듯 후다닥 방을 나갔다. 조수진이 나가고 그 모습을 보던 송일중 중령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그리고 오상진을 매섭게 노려봤다. 임규태 중령이 입을 열었다.
“오 대위 그렇게 보실 것 없습니다. 제가 알아서 찾아온 것입니다.”
“임 중령이 무슨 수로······.”
“이거 왜 이러십니까? 이 사건 수사하고 있는 것 모르십니까? 저 지금 선배님 따라온 겁니다.”
“나를?”
“네. 선배님이 이번 사건 무마시키려고 조인범 상병 어머니를 만난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자리에 왔습니다.”
“그게 무슨 터무니없는······.”
“선배님. 설마 얘기가 전혀 안 샐 것이라 생각하셨습니까?”
순간 송일중 중령이 당황했다. 막말로 자신이 여기로 온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는 일은 아니었다.
몇몇 간부들은 알고 있었다. 부대 C.P병과 운전병도 들었을지 몰랐다.
만약 그들 중에서 정보가 샜다면 임규태 중령이 여기에 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임규태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송 중령님. 제가 이 일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송일중 중령이 살짝 신음을 내뱉고는 입을 열었다.
“으음, 그러니까 자네는 헌병대 조사를 하겠다는 거지?”
“그것까지 막으신다면 저도 오늘 일을 눈감아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럼 뭐? 내가 더 이상 조사에 간섭하지 않겠다면 오늘 일은 넘어가겠다는 건가?”
“네. 그렇게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임규태 중령의 말은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해보도록 노력을 하겠다는 말이었다.
만약 수틀리면 그냥 까발려 버리겠다는 숨은 의도로 있었다.
그 얘기를 들은 송일중 중령은 이미 코가 꿰인 상태라 어쩔 수가 없었다.
“······알겠네. 자네 맘대로 해보게.”
송일중 중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홍민우 소령도 따라 일어났다. 두 사람이 나가자 오상진과 임규태 중령만 남았다.
“어이구, 내가 좀 빨리 올 걸 그랬어. 이게 다 뭐야. 완전 맛있겠네.”
임규태 중령이 젓가락을 들어 남은 음식들을 입에 넣었다.
“맛있네.”
“네. 정말 맛있긴 합니다.”
“그건 그렇고······. 자네 괜찮겠어?”
“뭐가 말입니까?”
“아니, 이렇게 들이박아서는······. 자네 군 생활 완전히 꼬이는 거 아니야?”
“괜찮습니다. 솔직히 조금만 늦게 오셨으면 저 공범 될 뻔했습니다.”
오상진이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임규태 중령이 피식 웃었다.
“그래. 잘했어. 그보다 여기에 손 대고 그러지는 않았지?”
“네. 계속 저에게 권하는 거 끝까지 만지지 않고 거부했습니다.”
“잘했어. 그럴 리가 없겠지만 괜히 받는 척했다가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네.”
“그건 그렇고 오 대위 자네는 어떻게 부대를 옮겨도 매번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 같아.”
“하하하, 그렇습니까?”
“그렇다고 너무 기죽지 말고. 난 오히려 자네 같은 군인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니까.”
“감사합니다.”
“그래! 자, 우리도 그만 일어나 볼까?”
오상진과 임규태 중령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다. 그런 두 사람을 멀찍이서 훔쳐보던 조수진이 엄지손톱을 물어뜯었다.
“대체 일이 어떻게 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