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6)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40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6)
“응? 내가 들은 거랑은 다른데요. 우리 아들 헌병대 조사를 받는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난리도 아니어서 제가 이렇게 자리를 마련한 것인데······. 별일 없었다면 제가 괜한 짓을 한 것 같네요.”
순간 오상진이 속으로 웃었다. 조수진의 마지막 말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인범이 어머니도 보통이 아니시네. 그런 식으로 꼬투리를 잡아서 아무 일 없는 것으로 하자 이거지?’
오상진은 조수진의 속셈이 뻔히 보였지만 겉으로는 애써 당황한 모습을 지었다.
“어, 그게······.”
그러자 바로 홍민우 소령이 대신해서 나섰다.
“아무래도 이 친구가 조 여사님께서 걱정할 것 같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제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농락당한 기분이 들지 않을까요?”
“아, 그렇게 받아들이셨다면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오상진이 바로 사과를 했다. 적당히 둘러댄 말에 책임을 지겠다고 조인범 상병을 봐주느니 사과를 하는 편이 백번 나았다.
그러자 조수진도 냉큼 말을 바꿨다.
“아니에요. 저도 오 대위님이 만나서 반가워서 그랬어요. 그런데 무슨 군인이 이렇게 멋져요? 얼굴도 잘 생기셨고······.”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오 대위님은 여자 친구 있으세요?”
“네. 있습니다.”
“어쩐지······. 이렇듯 인물이 훤한 사람들은 다 임자가 있다니까.”
조수진은 박수를 치며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오상진은 그런 리액션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어멋, 음식이 나와 있는데 제가 계속 말을 걸었네요.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
조수진의 말에 오상진도 마지못해 젓가락을 들었다. 이만큼 장단을 맞췄으니 일단은 먹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준비된 음식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문이 열리고 종업원들이 가져온 요리들이 계속해서 식탁 위를 채워 나갔다. 하나같이 밖에서는 쉽게 보지 못하는 요리들이었다.
‘뭐? 이런 요리를 보고 차린 것이 없다고?’
오상진은 솔직히 기가 막혔다. 부자들은 돈으로 상대를 찍어누른다더니 조수진이 딱 그 꼴이었다.
그 예상이 맞는 듯 생긋 웃는 조수진의 표정에 자신감이 가득했다.
“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오상진이 대답을 하고는 송일중 중령을 슬쩍 바라봤다. 그러자 송일중 중령이 먼저 젓가락을 움직였다.
“먹어, 먹자고.”
오상진도 그제야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오상진 역시도 알고 있었다. 여기서 젓가락을 드는 자체가 이 자리에 동참을 했다고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너무 꼿꼿하게 굴어봐야 의미가 없었다.
‘임 중령님이 빨리 와야 할 텐데······.’
오상진은 긴장한 상태로 음식을 먹었다. 너무 긴장을 해서 입맛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너무 맛이 있었다.
고급스러운 재료들로 만든 요리라 그런지 입이 호강하는 기분이었다. 그런 오상진을 보며 조수진이 물었다.
“맛은 어때요?”
“맛있습니다.”
“그렇죠. 우리 가게 이래 봬도 5성급 호텔에서만 일한다는 주방장들만 써요. 그 이하는 안 써요.”
조수진이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런데 오상진이 듣기에 조수진의 말투 속에 숨길 수 없는 천박함이 느껴졌다.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졸부처럼 말이다.
오상진이 대답 대신 멋쩍게 웃어 보였다. 그러자 조수진이 갑자기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제가 오 대위님 볼 면목이 없어요.”
“네?”
“우리 아들이 큰 사고를 쳐서······. 얘가 원래 참 착하고 그랬는데. 어쩌다가 친구를 잘못 만나서는······. 군대 보내면 괜찮아지려나 했는데, 여전히 말썽이네요. 자식이 제 맘대로 잘 안 되네요.”
조수진이 한탄하며 말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그럴듯하던지 하마터면 오상진도 깜빡 넘어갈 뻔했다.
그러자 송일중 중령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조 여사님.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자식을 키우는 입장 아닙니까. 아들 하나에 딸 하나인데 그 두 녀석 부모 마음을 절대 모릅니다. 어찌나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만 하려는데.”
“그렇죠? 애들 키우는 것이 다 똑같죠? 저만 그런 것이 아니죠?”
“그럼요.”
홍민우 소령도 잠시 식사를 멈추고는 말을 받았다.
“조인범 상병,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군대 보냈으니까 다 키우신 겁니다. 군대 제대하고 나면 조 여사님께 효도할 겁니다. 군대 다녀오고 나면 철든다고 하지 않습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오 대위님 생각은 어떠세요? 우리 아들이 철들 것 같으세요?”
조수진이 오상진을 바라봤다. 오상진이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면담을 통해 확인한 조인범 상병은 개과천선 할 성격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조수진 앞에서 대놓고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조 상병이 맘 잡고 군 생활 할 수 있도록 제가 옆에서 잘 돌보겠습니다.”
오상진은 이번 조인범 상병이 사고 친 것으로 선입견을 갖지 않겠다는 뜻으로 말했다.
하지만 조수진은 그 말을 다르게 생각했다.
‘뭐야, 하도 꼿꼿하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이 사람도 별것 없네.’
조수진은 오상진이 융성한 대접을 받다 보니 생각이 달라진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오상진이 알아서 조인범 상병을 잘 보살피겠다고 말한 것으로 오해를 했다.
‘그래 이 정도면 됐어.’
조수진은 충분히 얘기를 했다고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고, 제가 너무 눈치 없이 자리를 차지했네요. 그럼 식사를 맛있게 하세요.”
조수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송일중 중령과 눈이 마주쳤다. 송일중 중령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오상진에게 말했다.
“오 대위. 술 한잔할 텐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이 사람아. 뭘 그리 딱딱하게 구나. 여기까지 왔는데······. 술 한잔해.”
“저······.”
오상진은 심히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옆에서 홍민우 소령도 거들었다.
“그렇게 하자. 오 대위. 어차피 운전은 내가 하지 않았나.”
그제야 오상진은 홍민우 소령이 자차를 끌고 온 이유를 알았다.
부대 차량을 끌고 왔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개인차를 끌고 왔으니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오상진도 두 사람이 저런 식으로 말을 하니 더 이상 뺄 수도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래, 그래. 자, 받게.”
송일중 중령이 고급사기로 된 술 주전자를 들었다. 오상진이 두 손으로 술을 받았다.
“자, 마시자고.”
“네.”
세 사람이 동시에 술잔을 부딪쳤다. 송일중 중령이 입 안에 술을 털어 넣고는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크으, 술 맛있다.”
안주를 입에 넣고는 다시 술잔을 들어 오상진에게 보였다.
“오 대위. 나도 술 한 잔 따라주지.”
“넵!”
오상진이 공손하게 송일중 중령의 잔에 술을 따랐다. 곧바로 홍민우 소령에게도 따라줬다.
홍민우 소령이 술 주전자를 받아서 오상진에게도 따라줬다.
“자! 그럼 우리 다시 건배 할까?”
“네.”
“건배!”
“건배!”
세 사람이 동시에 잔을 부딪친 후 입으로 가져갔다. 오상진은 고개를 돌려 술을 마셨다.
“크으······.”
높은 도수의 술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원래 딱히 술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술이 상당히 독했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말이다.
홍민우 소령과 송일중 중령은 술 맛이 좋다며 감탄하고 있었다.
“오늘 술이 참 달아.”
“네. 저도 자리가 좋아서 그런지 술이 잘 들어갑니다.”
“그런가? 하하하.”
이번에는 오상진에게 시선이 갔다. 송일중 중령이 물었다.
“오 대위는 어떤가?”
“저도 좋습니다.”
오상진이 약간 긴장한 채 딱딱하게 말했다.
“사람이 참······. 편안하게 좀 있어. 누가 자넬 잡아먹나.”
막말로 어떻게 이 자리를 편안하게 있을 수 있나.
오상진은 대위고, 옆에 앉은 사람은 소령에, 앞에는 중령이었다.
오상진이 아닌 다른 대위가 와도 편히 있을 수 없는 자리였다.
단순히 군대 계급상으로 보자면 중령과 소령, 대위는 한 계급 차이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계급 하나 차이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보통 대위에서 소령으로 진급하기 위해서는 6년에서 11년 정도가 걸렸다.
아무리 빨리 진급을 할 수 있어도 최소 대위로 6년을 복무해야 소령 진급을 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여기서 11년 안에 진급을 하지 못하면 자동으로 전역을 하게 되어 있었다.
또한 소령에서 중령이 되는 데 걸리는 기간도 최소 5년에서 최대 17년이었다. 소령으로 5년을 복무해야만 중령으로 진급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물론 공을 세운다면 빠르게 진급을 할 수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례적인 경우였다.
이렇듯 계급으로는 두 계급 차이가 나지만 오상진과 송일중 중령의 사이에는 최소 10년 이상의 간극이 있었다. 그렇다 보니 송일중 중령의 주문대로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지잉, 지이잉.
오상진은 티 나지 않게 테이블 아래에서 문자를 확인했다. 바로 임규태 중령이 보낸 문자였다.
-십 분 안에 도착 예정.
오상진이 조용히 휴대폰을 닫았다.
‘십 분, 십 분이라······.’
오상진이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며 조수진이 다시 들어왔다.
“어떻게, 식사는 입에 맞으세요?”
“네. 너무 맛있습니다.”
“아후, 더 대접을 해드렸어야 하는데······. 죄송해요. 신경을 더 못 써드렸네요.”
조수진이 가식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이 정도가 신경을 못 쓴 거라니. 제대로 신경을 쓰면 얼마나 더 대단한 것이 나온다는 거야?’
오상진은 갑자기 제대로 차린 상이 궁금해졌다. 그런 줄도 모르고 송일중 중령과 조수진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아이고, 조 여사님. 아닙니다. 오늘 음식 정말 맛있었습니다. 큰 대접을 받은 기분입니다.”
“그리 생각해 주시면 다행이고요.”
그러면서 조수진이 뒤쪽으로 시선을 뒀다. 뒤에 대기하고 있던 종업원이 금색으로 된 보따리를 가져와 조수진의 옆쪽에 내려놓았다.
“별것은 아니고······. 홍삼 좀 담아 봤습니다.”
조수진은 세 개의 보따리 중에 가장 큼직한 것을 송일중 중령 쪽으로 건넸다. 다른 하나는 홍민우 소령에게.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상진에게도 홍민우 소령과 같은 크기의 보따리를 건넸다.
이것으로 모든 일을 마무리지으려는 속셈이었지만 오상진이 두 손을 들어 거부했다.
“죄송하지만 이건 받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지 말고 받아주세요. 자식 보낸 부모의 마음도 이해해 주세요.”
송일중 중령이 슬쩍 말했다.
“그래, 오 대위. 너무 그러지 말고 받게. 자네가 그러면 우리 조 여사님 손이 부끄럽지 않나.”
“어, 그렇지만······.”
조수진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전혀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정말 홍삼이에요. 집에 뒀다가 기력이 좀 빠졌을 때 드시면 될 듯해요.”
물론 홍삼이라고 가장한 금색 비단 안에는 돈이 들어 있을 것이 분명했다.
오상진은 그 금색 비단을 잡지 않았다. 만약에 모두가 보는 앞에서 보따리를 받았다간 꼬투리를 잡힐 것 같았다. 그래서 오상진은 일부러 시간을 끌었다.
“말씀은 감사한데요. 진짜 이건 받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