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4)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38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4)
오상진이 홍민우 소령과 대화를 나누던 그 시각 3대대장인 송일중 중령이 조수진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송 중령님 섭섭해요. 그런 일이 있었으면 말씀을 해 주시지.
“죄송합니다. 숨기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제가 잘 수습하려고 했던 거죠. 그런데 일이 꼬여 버렸습니다.”
송일중 중령이 민망한 듯 말했다. 그러자 조수진이 이해한다는 듯 웃어버렸다.
-호호호, 알죠. 우리 송 중령님 나라 위해서 고생하시는데 제가 설마 탓하려고 전화했겠어요? 송 중령님도 알아서 잘 신경 써주시는 거 말씀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고 있어요. 막말로 송 중령님 무슨 잘못이 있겠어요. 사고를 친 우리 아들이 문제지.
“아이고 아닙니다. 인범이를 챙기지 못한 제 잘못입니다.”
-그래서 이번 헌병대 일은 어떻게 될 것 같아요?
“하아, 그게 지금 제가 아는 선에서 최대한 막고 있기는 한데······ 이게 조사는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조사를 받으면 어떻게 되는데요?
“거기서부터는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조사가 짧게 끝나는 것도 아니고, 이런 사건 경우는 조사가 길게 이어집니다. 그사이에 손을 쓰면 짧게 영창을 다녀오는 선에서 마무리가 될 것 같습니다.”
-영창요? 영창이 뭐예요?
군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조수진에게 영창의 실체를 알릴 수는 없어서 송일중 중령이 대충 둘러댔다.
“아, 그게요. 군기 교육대라고 개별적으로 군기 교육을 받는 곳입니다.”
-아, 그래요? 심각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죠?
“네. 물론이죠. 제가 또 그쪽으로 아는 사람도 있고 하니까. 영창에 들어가더라도 별문제 없도록 조치를 취해 놓겠습니다.”
솔직히 조인범 상병이 이 얘기를 들었다면 까무러칠 이야기겠지만 송일중 중령도 어느 정도 내려놓은 상태였다.
헌병대가 움직인 이상 조인범 상병의 사건을 완전히 덮는 것은 불가능했다.
여기서 최선은 조인범 상병이 적당히 책임질 것은 책임지고 이번 일을 끝내는 것이었다. 더 이상 왈가불가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다 보니 조수진에게 모든 것을 다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조수진도 조인범 상병이 친아들이 아니다 보니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새로 왔다던 4중대장 말이에요.
“네.”
-제가 보기에는 앞으로도 계속 인범이하고 계속 부딪칠 것 같은데요.
조수진이 하는 말이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막말로 오상진이 4중대로 오지 않았다면, 아니, 이민식 대위가 계속 4중대장으로 있었다면 이번 일이 깔끔하게 처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오상진이 연대로 왔고 송일중 중령은 오상진을 골탕 먹이겠다고 4중대로 보낸 건데 그 와중에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한마디로 송일중 중령이 이런 사태를 예견하지 못한 실수였다. 하지만 정작 송일중 중령은 오상진의 반골 기질이 더 큰 문제라 여겼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그러지 말고, 그 사람 한번 데리고 와보세요.
“4중대장 말입니까?”
-네. 우리 인범이 상관이라는데 겸사겸사 얼굴도 보고, 친해지면 좋잖아요.
“어, 그게······.”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고요. 송 중령님이야, 일개 중대장이 말을 안 들으니 화가 나시겠지만 인범이를 군대 보낸 부모의 입장도 이해해 주셔야죠. 제 입장에서는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요?
“하하하, 그렇죠.”
송일중 중령이 쓴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오상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수진이 직접 처리해 준다고 하니 나쁠 것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여사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고마워요, 송 중령님.
“그럼 언제쯤 시간이 되십니까?”
-아무 때나 상관없어요. 솔직히 인범이 때문에 일이 손에 안 잡혀요. 오늘도 상관없어요.
“그러십니까? 그럼 제가 시간 한번 알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요. 부탁 좀 드릴게요.
그렇게 통화가 끝이 났다. 송일중 중령이 휴대폰을 책상에 내려놓고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나 참 도대체 그 얘기는 어디서 들은 거야?”
송일중 중령은 주변에 이 일에 대해서 함구하라는 지시를 내린 상태였다. 그런데 이 일이 새어 나갔다는 것은 대대의 누군가가 떠벌리고 다녔다는 것이었다.
설마하니 조인범 상병이 부사관을 구워삶아서 정보를 얻어낸 것인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흐흠, 이것 참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지 원······.”
송일중 중령이 쓰게 웃었다. 솔직히 조인범 상병 같은 문제아들의 뒤처리를 한다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 만에 하나 꼬투리를 잡히다 보면 진급에 악영향이 미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일심회의 모임을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주는 조 마담의 부탁을 이제 와서 안 된다고 할 수도 없었다.
“그래, 좋게 생각하자! 이번에 일심회 들어가면 앞으로 자주 모임을 청할 텐데 그때마다 조 마담의 도움을 받으면 좋은 거지.”
송일중 중령은 일단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홍민우 소령이 나타났다.
송일중 중령이 바로 물었다.
“그래, 어떻게 되었어?”
“일단 김호동 하사는 잘 설득했습니다.”
“그래? 뭐래?”
“좀 더 생각해 보겠다고 했지만 표정으로 봐서는 대대장님의 뜻을 잘 따를 것 같습니다.”
“어허, 이 사람. 내 뜻이라니. 자네 생각이지.”
송일중 중령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사실 김호동 하사를 타 부대로 전출 보내자고 한 것은 홍민우 소령의 아이디어였다.
송일중 중령은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사병에게 폭행당하고 입원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김호동 하사의 자존심이 많이 상할 테고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김호동 하사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는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가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겠다는 판단을 내린 것뿐이었다.
“그건 그렇고 오상진, 아니, 4중대장은 뭐래?”
“일단 얘기는 하고 왔는데······.”
말을 하는 홍민우 소령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왜? 안 된대?”
“본인의 말로는 조사를 계속하려고 합니다.”
“거참······ 완전 천둥벌거숭이가 따로 없구만.”
송일중 중령이 혀를 쯧쯧 찼다. 솔직히 말해서 송일중 중령의 눈에는 오상진의 행동이 트집 하나를 잡아서 공을 세우려는 그런 녀석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일단 오늘 술 한잔하면서 얘기를 해볼 생각입니다.”
“그걸로 되겠어?”
“오 대위 입장에서도 저희 부대로 오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윗선에서 뭔가 지령을 받고 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흠······.”
오상진이 단순히 연대로 넘어온 게 아니라는 건 송일중 중령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서 독립 부대나 다름없는 4중대에 보낸 것인데 하필 4중대가 꼴통 부대라는 게 문제였다.
“어쩌면 그 반발 때문에 더 이 사건에 집중하는 것인지도 모를 겁니다.”
“그래서? 자네가 좀 위로를 해주겠단 이 말이야?”
“이런 때일수록 우리 윗선에서 어르고 달래고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오 대위의 기분도 좀 풀릴 것이고, 어쩌면 우리 쪽으로 라인을 바꿔 탈 수도 있지 않습니까.”
“흠! 라인을 바꿔 탄 다라······.”
송일중 중령이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오상진이 장기준 중장 밑에서 어떻게 컸는지 소문이 자자한데 홍민우 소령이 나선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진 않았다.
‘그런 녀석이 이제 와서 우리 쪽으로 넘어온다고? 절대 아니지.’
하지만 홍민우 소령의 생각은 달랐다.
“아직 오상진은 젊습니다. 그리고 우리 부대로 전출 온 이상 적어도 2~3년은 근무를 해야 합니다. 그사이 사람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모릅니다.”
송일중 중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네.”
물론 오상진이 넘어온다고 해서 환영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홍민우 소령의 말대로 오상진이 라인을 갈아탄다면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더 이상의 트러블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럼 그 친구 수향옥으로 한번 데려가.”
“수향옥 말입니까?”
수향옥은 조수진이 운영하는 음식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름만 듣고 평범한 음식점이라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간판만 음식점이고, 고급 룸싸롱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수향옥의 별채에서는 조수진이 운영하는 클럽 S의 아가씨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한마디로 옛날 고급 요정 같은 느낌이었다.
“조 마담이 오상진을 한번 보자고 하네.”
“조 마담이 말입니까?”
이유를 단번에 파악하지 못한 홍민우 소령이 송일중 중령을 바라봤다. 송일중 중령이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뻔하잖아, 뭐. 돈으로 무마시키려고 하겠지.”
“음, 제 생각에는 좀 위험할 것 같습니다.”
“왜? 오상진이 싫어할 것 같아? 아니면 돈을 안 받을 것 같아?”
“어쩌면 반발을 살지도 모릅니다.”
홍민우 소령은 오상진에게 조금씩 접근할 생각이었다. 오상진 같은 꼿꼿한 사람을 회유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다. 그러나 송일중 중령은 그런 것은 귀찮아하는 스타일이었다. 게다가 조수진이 데려오라고 했는데 그 말을 어길 수도 없었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은 수향옥으로 데려가.”
“네. 알겠습니다.”
“나도 미리 가 있을 테니까. 같이 밥이나 먹으면서 얘기를 해보자고. 설마하니 오상진이 내가 앉아 있는데 자리를 박차고 나가겠어?”
‘제가 본 오상진 대위는 어쩌면 그럴지도 모릅니다.’
홍민우 소령은 불안했지만 그 생각을 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참, 헌병대 조사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그게 그렇지 않아도 계속 알아보고 있긴 한데······. 소문에는 헌병대장이 직접 조사를 한다고 합니다.”
“뭐? 헌병대장이? 갑자기 그가 왜?”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으음, 지금 헌병대장이 누구지?”
“임규태 중령입니다.”
“임규태······ 임규태라······. 호! 그 친구가 헌병대장이 되었어? 얘기 듣기로는 기무사에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기무사에서 다시 헌병대장으로 진급해서 온 모양입니다.”
“참······.”
송일중 중령은 입안이 썼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임규태 중령이었다. 솔직히 만만치 않은 사람이었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수많은 라인을 통해서 일을 덮으려던 시도가 무마된 것이 이해가 되었다.
임규태 헌병대장은 본래 뒤가 없는 사람이었다. 여차하면 옷 벗을 각오로 덤비며, 특정한 라인에 서지 않은 올곧은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무식한 녀석이지. 답답하고!’
송일중 중령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었다.
“하아, 그럼 헌병대의 조사를 피할 수는 없다는 것이네.”
“네. 제 생각에는 헌병대 조사를 성실히 받은 다음에 처분을 최대한 낮추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송일중 중령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케이, 알았어. 그만 나가봐.”
“네.”
그렇게 홍민우 소령이 나가고 송일중 중령은 홀로 심각한 얼굴로 고민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