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3)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37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3)
물론 말은 그렇게 했지만 크게 기대를 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한소희의 얘기를 듣고 나니 아버님이 정말로 자신을 보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았다.
“소희 씨. 아버님이 뭘 좋아하세요?”
“우리 아빠요? 왜요? 우리 아빠한테 점수 따고 싶어요?”
“당연하죠.”
“우리 아빠 술 센 사람 좋아하는데?”
“아! 아버님이 술을 좋아하시는구나.”
“상진 씨는 술 잘 먹어요?”
“술을 잘 먹는 편은 아니지만 어쩌겠어요, 아내가 좋으면 처갓집 말뚝만 봐도 절한다고 하잖아요. 죽기 살기로 버텨 봐야죠.”
“칫! 말은 참 잘해요.”
한소희가 살짝 콧방귀를 꼈지만 싫지는 않았다. 그러고 있는데 오상진의 휴대폰이 울렸다.
“누구지? 이 시간에 전화 올 사람이 없는데······.”
오상진이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그런데 모르는 번호였다. 전화번호도 딱히 눈에 익지 않았다.
그래서 오상진은 핸드폰을 부재중으로 돌리고 다시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누군데요?”
한소희가 눈을 반짝였다. 그녀는 혹여 다른 여자가 전화 온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었던 모양이다.
“모르는 번호예요.”
“정말 모르는 번호예요?”
“네? 무슨······.”
오상진이 의아한 얼굴로 한소희를 바라봤다. 그런데 한소희의 눈빛이 무척이나 의심을 하고 있었다. 그 눈빛에 오상진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 소희 씨 설마······.”
“설마 뭐요?”
“에이, 아니에요. 진짜 모르는 번호 맞아요.”
“근데 왜 잠깐 망설였는데요?”
“혹시 아는 번호인가 싶어서 잠깐 생각했어요. 전출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부대에서 전화 왔을 수도 있거든요.”
“또 모르죠. 상진 씨를 열렬히 사모하는 누군가가 몰래 전화를 걸었을지도요”
“진짜예요. 전 소희 씨밖에······.”
그렇게 변명을 하고 있는데 또다시 오상진의 휴대폰 울렸다. 오상진은 다시 휴대폰을 살폈다. 이번에도 같은 번호였다.
“누군데요?”
“아까 그 번호예요.”
“정말 부대에서 연락 온 거 아니에요? 얼른 받아봐요.”
한소희의 재촉에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알겠어요. 지금 받아볼게요.”
“대신 내 앞에서요.”
“네네.”
오상진이 곧바로 폴더를 열어 통화버튼을 눌렀다.
“네, 오상진 대위입니다.”
혹시나 여자 목소리가 새어 나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중년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대위. 잠깐 통화 괜찮아요?
“아······. 네에. 실례지만 어디십니까?”
오상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 대대 작전과장 홍민우 소령이오.
“홍 소령님이요? 충성!”
오상진이 바로 경례를 했다. 그제야 오상진의 머릿속에 홍민우 소령이 떠올랐다.
-그래, 우리 지난번에 봤지?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난 줄 몰랐나?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오상진은 미안한 얼굴로 말끝을 흐렸다.
-아니야, 아니야. 내가 전화번호를 따로 준 것도 아니고······. 그날 딱 한 번 보고 여태까지 제대로 말도 섞지 못했지 않나.
“지금 바로 등록하겠습니다.”
-그래, 그래. 그보다 지금 뭐 하고 있나?
“현재 약혼자가 집에 내려와서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 약혼자. 결혼할 사람이 있었어?
“네.”
-그렇구나······. 으음, 내가 쉬고 있는데 방해한 것은 아닌지 몰라.
“괜찮습니다.”
-그럼 말이야. 괜찮다면 지금 잠깐 나 좀 볼 수 있을까?
“지금 말입니까?”
-그래. 내가 오 대위에게 긴히 할 얘기도 있고 말이지.
보통 이런 상황이면 군말 없이 나가는 것이 맞았다. 한 부대에서 생활하며 계속 얼굴을 부딪쳐야 하는데 윗선에 잘 못 보여 좋을 건 없었다.
하지만 오상진은 저쪽 라인을 타고 갈 생각이 없는 데다가 4중대는 대대와 따로 분리되어 있어서 홍민우 소령과 부딪힐 일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이 시간에 홍민우 소령을 따로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그것도 오랜만에 본 한소희를 집에 혼자 두고서 말이다.
“왜요? 지금 나가야 해요?”
오상진의 통화를 엿듣던 한소희도 정말 서운한 표정으로 물었다. 기껏 시간 내서 내려왔는데 오상진이 부대 일로 나가버리면 엄청 속상할 것 같았다.
오상진이 잠깐 생각했다.
‘소희 씨도 오랜만에 내려왔는데 혼자 있게 할 수는 없지.’
오상진이 최대한 정중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과장님. 지금은 제가 좀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 크흠, 그렇지. 내가 눈치가 참 없었지. 오랜만에 약혼자가 내려왔다는데. 알았네, 그럼 내일 아침에 보도록 하지.
“네, 제가 내일 아침에 출근하는 대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알았네.
“그럼 들어가십시오, 충성!”
오상진은 잠깐 기다렸다가 휴대폰을 내려 폴더를 닫았다. 한소희가 바로 물었다.
“누구예요?”
“으응, 대대 작전과장님.”
“작전과장님이면 자기보다 윗사람?”
“그렇죠. 잠깐 얼굴 볼 수 있냐고 전화하셨어요.”
“그럼 나가봐야 하지 않아요?”
한소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나 나가면 우리 소희 씨는 누구랑 놀아요?”
“그건 그렇지만······. 진짜 나 때문에 안 나간 거예요?”
“그럼 누구 때문에 안 나가요.”
“그럼 내가 너무 미안한데······.”
한소희 얼굴은 미안해하고 있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그려지고 있었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그런 한소희 곁으로 다가가 안았다.
“그렇게 미안해하면 오늘 밤 나랑 재미나게 놀아주면 되죠.”
“으그. 또 그 생각이에요?”
“음?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그래서, 소희 씨는 나랑 재밌게 노는 거 싫어요?”
“누가 싫대요?”
“그럼 우리 빨리 치워요.”
“어휴. 알았어요.”
갑자기 빈 그릇을 집어 드는 오상진의 팔뚝을 치며 한소희가 눈을 흘겼다.
다음 날 오상진은 한소희를 집에 두고 출근을 했다.
4중대에 들러 잠깐 보고를 받고, 바로 대대로 갈 생각이었다.
오상진은 사무실에 들러 잠깐 볼일을 본 후 다시 밖으로 나왔다. 복도를 따라 걸어가는데 맞은편에서 1소대장이 걸어오고 있었다.
“충성. 중대장님 어디 가십니까?”
“어, 1소대장. 지금 대대에 들어가 봐야 해서. 안 그래도 말할 것이 있었는데.”
“말씀하십시오.”
“오늘 회의는 간략하게 하고, 특별히 할 것은 있나?”
“아뇨, 없습니다.”
“그럼 어제 말했던 훈련 스케줄대로 소화하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그래. 수고해.”
“네. 충성.”
오상진이 손을 흔들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1소대장 김진수 중위는 멀어지는 오상진을 보며 중얼거렸다.
“갑자기 대대에 가신다고? 무슨 일이지?”
김진수 1소대장이 고개를 갸웃하고는 다시 몸을 돌려 행정반으로 향했다.
오상진은 4중대에서 차로 20여 분 떨어진 3대대로 들어갔다. 위병소에서 간단히 신분확인을 마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오상진은 곧바로 홍민우 작전과장을 찾아갔다.
“충성.”
오상진의 경례에 홍민우 소령이 고개를 들어 확인했다.
“어, 왔나?”
“네.”
“잠깐만 이거 결재 좀 하고······.”
“네.”
“그러지 말고 저 안에 상황실로 들어가 있지. 지금 거기 아무도 없으니까.”
“네.”
오상진은 홍민우 소령의 권유대로 상황실에 들어가 자리했다. 잠시 후 홍민우 소령이 들어왔다. 오상진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야, 아니야. 어서 앉아.”
홍민우 소령이 괜찮다고 말했지만 괜히 책 잡히기 싫은 오상진은 홍민우 소령이 자리에 앉을 때까지 서 있었다. 홍민우 소령이 앉자 오상진도 자리했다.
“그래, 어제는 잘 지냈나?”
“네. 어제는 죄송했습니다.”
오상진이 바로 사과를 했다.
“아니야, 아니야. 내가 눈치가 없었던 거지. 약혼자가 있다는 얘긴 미처 못 들었네.”
“아닙니다.”
“그건 그렇고 지금은 얘기할 시간이 되는 거지?”
“네.”
“좋아요. 으음······. 그것보다 담배는 피워?”
“아뇨, 잘 안 피웁니다.”
“아예, 안 피우는 것은 아니고?”
“네.”
“그러면 지금 한 대 피울까?”
“······네에.”
“강요하는 것은 아니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분위기로 봐서는 함께 담배를 피우길 원하는 것 같았다.
“아닙니다. 흡연실로 가시죠.”
오상진은 눈치껏 자리에서 일어났다. 홍민우 소령이 피식 웃으며 흡연실로 갔다.
그곳에는 몇몇 병사들이 있었지만 두 사람이 나타나자 서둘러 담배를 끄고 나갔다.
오상진이 바로 담배를 꺼냈다.
“여기 있습니다.”
“고맙네.”
홍민우 소령이 담배를 입에 물자 오상진이 바로 라이터를 켰다. 홍민우 소령이 미소를 지으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오상진도 바로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후우······.”
홍민우 소령이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그러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참. 지금 조인범 상병 사건을 조사 중이라면서?”
“네. 그렇게 됐습니다.”
“흐음······, 그런데 그 일 전임 중대장인 이민식 대위가 다 처리했다는 것은 알아?”
“네. 그렇게 얘기는 들었습니다.”
“그것을 지금 오 대위가 판다는 것은 현재 2중대장인 이 대위의 일 처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하는데 그것도 알고 진행하는 건가?”
홍민우 소령은 앞뒤 잴 것도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며 압박을 가했다. 막말로 군대라는 조직은 상명하복이었다. 윗사람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그걸 함부로 건드리는 건 하극상처럼 비칠 수 있었다.
하지만 회귀를 한 이후 지금껏 오상진은 지금까지 정의로운 군인이 되기 위해 노력을 해왔다. 그렇다 보니 홍민우 소령의 압박이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다만 제가 다시 확인을 해보니 일이 깔끔하게 처리되지 않은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기어이 그 일을 파겠다는 건가?”
“4중대장으로 온 만큼 이 일을 제대로 처리했으면 합니다.”
“흠. 그래? 뭐, 오 대위의 생각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홍민우 소령이 고개를 주억거리자 오상진이 당황했다. 솔직히 더욱 압박할 것이라 예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홍민우 소령도 굳이 무리하지 않았다.
홍민우 소령은 이미 김호동 하사를 설득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오상진이 뭘 하더라도 헌병대 조사를 무마시킬 자신이 있었다.
“그 일은 일단 알겠고. 오늘 저녁에 시간 괜찮나?”
“오늘 저녁 말입니까?”
“별건 아니고 술 한잔했으면 하고 말이야.”
“아······ 네.”
“오 대위가 왔는데 환영식도 제대로 못 했잖아. 대대 장교들 모아서 간단하게 환영식이라도 해야지. 그동안은 오 대위가 바쁠 것 같아서 조용히 있었거든. 이제 적응도 끝난 것 같고. 어때?”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괜찮습니다.”
단순히 환영식만은 아닌 거 같아서 오상진이 정중히 고사했다. 하지만 홍민우 소령은 이번만큼은 양보할 마음이 없었다.
“오 대위.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거절할 거야? 이러면 나 정말 섭섭해. 오 대위를 내가 참 좋게 보고 있는데.”
홍민우 소령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솔직히 오상진도 비빌 언덕 없이 여기까지 왔다. 그래서 작전과장인 홍민우 소령과 척을 질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 아직까지는 적을 많이 만들 필요는 없지.’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그래. 우리 서로 좋게좋게 지내자고. 윗분들끼리는 어쩌더라도 우리까지 그럴 필요는 없잖아. 안 그래?”
“네.”
“그래. 저녁에 보자고.”
홍민우 소령은 자신의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담배를 끄고 오상진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후 올라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