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1)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35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1)
1.
조수진은 헌병대라는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헌병대라니 무슨 소리야. 알아듣게 말을 해봐.”
-나도 몰라! 엄마가 어떻게든 좀 해봐.
수화기 너머 조인범 상병의 목소리는 매우 다급했다. 그런데 수화기를 통해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조인범. 너 거기서 뭐 해.
-엄마, 엄마! 소대장님 오셨다. 나 지금 끊어야 해. 아무튼 엄마 어떻게든 해줘. 알았지?
뚜뚜뚜뚜.
조수진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갑작스럽게 전화를 해서는 자기 할 말만 하고 끊어버렸다.
“내 참······. 얘는 바빠 죽겠는데 무슨 소리야.”
그때 직원이 입을 열었다.
“사장님, 최 사장님 오셨는데요.”
“어머! 그래? 인사드려야지.”
조수진은 앞에 놓인 거울을 보며 얼굴과 옷맵시를 확인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조수진이 조인범 상병을 떠올린 것은 그로부터 4시간이 지난 뒤였다.
“참! 인범이······.”
조수진은 고개를 들어 저만치 서 있는 김 부장을 불렀다.
“김 부장.”
“네. 사장님.”
“김 부장은 군대 다녀왔지?”
“하하하, 당연하죠. 해병대 출신입니다.”
김 부장은 해병대라는 말에 뿌듯함을 가지고 있었다. 어깨까지 잔뜩 펴져 있었다. 하지만 정작 조수진은 해병대가 뭐 하는 데인지 잘 몰랐다.
“해병대? 어······ 헌병대랑 비슷한 곳이야?”
“네에? 해병대가 헌병대랑 같다고요? 말도 안 되죠. 전혀 다른 곳입니다.”
“그래? 뭐가 어떻게 다른 건데?”
“그보다 헌병대는 갑자기 왜 찾으십니까?”
김 부장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조수진이 살짝 귀찮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인범이가 헌병대에 가게 생겼다는데 무슨 소리인가 해서. 뭐가 좋은 거야?”
“어? 헌병대는 가서 좋을 곳이 아닙니다.”
“헌병대가 좋은 곳이 아니야? 그럼 거긴 뭐 하는 곳이야?”
“헌병대는 소위 바깥에서 말하는 경찰서와 같은 곳입니다. 군대에서 큰 잘못을 저지르면 끌려가는 곳이 바로 헌병대입니다.”
김 부장의 설명에 조수진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한마디로 헌병대에 간다는 건 부대 내에서 큰 사고를 쳤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아······.”
“왜 헌병대에 가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영창이나, 더 심하면 군사재판까지 넘어가 감옥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뭐?”
조수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인범이 이 녀석은 도대체 뭔 사고를 치고 다니는 거야.”
조수진이 잠깐 생각을 하다가 다시 김 부장에게 물었다.
“김 부장. 만약에 군사재판을 받으면 진짜 감방에 들어가는 거야?”
“아까는 최악의 상황을 말씀드린 겁니다. 살인과 같은 중대한 범죄가 아닌 이상은 그냥 영창으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 그런 거지?”
“네.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김 부장이 애써 웃는 얼굴로 조수진을 달랬다. 하지만 조수진은 조인범 상병의 성격을 너무 잘 알았다.
군대에 들어가기 전에도 이리저리 사고를 쳐댔고 그걸 수습하느라 애를 먹어야 했다. 그런데 군대에서도 사고를 치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래, 알았어.”
조수진이 몸을 돌려 사무실로 왔다. 자리에 앉아 잠깐 생각을 하다가 휴대폰을 들었다.
제법 긴 통화 연결음이 울리고서야 어렵게 연결이 되었다.
-그래, 나다. 무슨 일이야.
“아버지! 지금 시간 돼요?”
-지금? 어험, 지금은 좀 곤란하구나.
순간 조수진의 눈이 번쩍였다.
“아버지, 설마······. 또 어린년들이랑 뒹굴고 있는 거예요?”
-이 녀석이! 뒹굴다니 무슨 그런 쌍스러운 하고 있어.
“아니에요? 맞잖아요.”
-크흠! 그냥 요즘 젊은 애들은 어떻게 놀고 있는지 대화를 하는 것이지. 어험······.
“됐고요. 저 지금 급해요.”
-급해? 뭐가?
“인범이 일이에요.”
-뭐? 인범이? 후우······. 알았다. 그럼 한 시간 후에 와라.
“알았어요.”
조수진이 휴대폰을 끊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놈의 영감은 뭘 혼자 좋은 것 쳐드시기에 정력이 아직도 남아돌아!”
조수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휴대폰을 탁자 위에 놓았다.
“아니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야겠는데······.”
조수진은 다시 휴대폰을 들어 전화번호부를 검색했다.
“송 중령? 아니야, 이 사람은 뻔하지. 자기가 알아서 처리하겠다는 둥. 그런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를 거야. 그러면 홍 소령? 이 사람도 아니고······.”
조수진은 전화번호부를 확인하다가 누구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아, 인사장교. 이 사람이 사람 관리를 하니까 알지도 모르겠네.”
조수진은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가고 전화를 받았다.
-아이고, 조 여사님. 어쩐 일로 전화를 다 주셨습니까.
“어머! 절 기억하시네요.”
-그럼요. 제가 지난번에 명함 받고 바로 기록해 뒀습니다.
“그랬구나. 호호호. 저는 혹시나 저를 못 알아보면 어쩌나 걱정했거든요.”
-하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수화기 너머 황명수 대위의 목소리는 장성들의 사모를 대하는 것처럼 조심스러웠다.
황명수 대위도 조수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여기저기 정치인들이며 장성급들과도 친분이 두텁다는 사실을 말이다.
황명수 대위는 조수진과 친해지면 언제고 그쪽과 연결을 시켜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래서 바로 전화번호부에 등록을 해놨던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다 찾으셨습니까?
황명수 대위는 살짝 기대감에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황 대위님.”
-네.
“제가 개인적으로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솔직하게 대답해 주실 거죠?”
-네, 말씀하십시오.
“다른 것은 아니고 우리 아들 말이에요.”
-아들이라 하시면······. 아! 4중대 조인범 상병 말입니까?
“4중대는 모르겠고, 조인범이 내 아들은 맞아요.”
-아, 그런데 조 상병은 왜······.
“황 대위님은 혹시 알고 계시죠? 우리 인범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요.”
-어······ 그것이······.
황명수 대위는 한 참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조 여사님, 혹시 모르고 계셨습니까?
순간 조수진은 인상을 찌푸렸다.
‘뭔가 있긴 있네.’
조수진은 일단 대충 들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인범이에게 대충 듣긴 들었는데요. 그런데 뭔가 급하게 말을 해서 앞뒤가 없어요. 아까는 무슨 헌병대에 간다는 소리를 하던데······.”
조수진은 끝말을 흐리며 황명수 대위의 말을 기다렸다.
-아, 네에······. 저도 비슷한 얘기를 듣긴 들었습니다.
“정확하게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들으셨겠지만 이번에 조 상병이 큰 사고를 쳤습니다. 그래서 대대장님하고 이 일을 무마시키려고 하고 있는데 새로운 신임 4중대장이 좀 꼴통입니다. 바로 헌병대에 신고를 하는 바람에······.
“그래서 어떻게 되는 거예요?”
-지금 대대장님께서 아는 사람을 총동원해서 헌병대 사람들이 못 내려오게 막으시려는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해서 제 생각으로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헌병대라는 조직이 간단하게 막을 수 있는 곳도 아니고, 무엇보다 첩보가 어느 라인을 통해 올라갔는지조차 파악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상황에서는 헌병대 조사는 받아야 한다는 거네요.”
-네네.
“그럼 우리 아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건 확실치 않은데, 누가 내려오는 것에 따라 다릅니다. 그래도 대대장님께서 최대한 손을 써보시겠다고 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보시죠.
누가 같은 군인 아니랄까 봐 제 식구 감싸는 얘기만 늘어놓고 있었다.
그런데 진짜 만에 하나 조인범 상병이 헌병대에 갔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조수진 본인도 무사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일단 알겠어요. 그런데 우리 아들이 정확하게 무슨 사고를 친 거죠?”
-어? 그 건은······ 들으시지 않으셨습니까?
“듣긴 했는데 좀 자세히 말을 해 봐요. 나도 뭔가를 확실하게 알아야지 우리 쪽에서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거 아니에요.”
-아······.
황명수 대위는 조수진이 협조를 한다는 의미로 알아들었다.
-그게 말이죠. 어떻게 된 거냐면······.
황명수 대위는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을 모두 전했다. 사실 황명수 대위는 작전과장인 홍민우 소령과 친하다 보니 모든 정황을 다 알고 있었다. 그 얘기를 쭉 듣던 조수진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알겠어요.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 좀 주세요. 내가 송 중령님을 믿고 있을 수가 있어야지.”
-네, 알겠습니다. 조 여사님.
조수진은 바로 휴대폰 폴더를 닫았다. 그러곤 짜증이 잔뜩 묻어난 얼굴로 중얼거렸다.
“조인범 이 미친 새끼! 소주병으로 누굴 내려쳐?”
2.
시원하게 샤워를 마치고 가운을 걸친 조명달이 거실로 나왔다. 의자에 앉아 있던 젊은 아가씨 둘이 일어났다.
“어어, 앉아. 앉아.”
조명달이 두 아가씨를 빤히 바라봤다. 조명달의 시선을 받은 두 아가씨는 눈을 피하며 살짝 얼굴을 붉혔다.
“허허, 고것들. 참 곱다, 고워. 뭘 먹어서 이리도 고울까.”
그러자 아가씨 둘 중 하나가 용기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회장님도 아직 정정하세요.”
조명달이 그 얘기를 듣고 껄껄 웃었다.
“아이고, 그래? 내가 좀 맘에 들었어?”
그 아가씨가 살짝 얼굴을 붉혔다. 조명달이 문 앞에 서 있는 한 비서를 바라봤다.
“한 비서야.”
“네. 회장님.”
“오늘 애들 참 괜찮다. 특별히 한 장씩 더 챙겨 줘라.”
“알겠습니다. 회장님.”
반면 한 장 더라는 말에 두 아가씨의 표정이 달라졌다.
“어멋! 회장님 감사해요.”
“너무 감사해요.”
두 아가씨는 서로 번갈아 가며 조명달에게 인사를 했다. 조명달은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만 가 봐라. 그리고 너는······.”
조명달은 처음 용기 낸 아가씨를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다음에 또 보자!”
“네, 회장님.”
그 아가씨가 힘차게 대답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아가씨가 나가는 것을 보고 조명달이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러자 한 비서가 조용히 다가와 라이터를 켰다.
“회장님, 오늘은 어떻게 괜찮으셨습니까?”
“뭐, 나쁘지는 않았어. 지난번처럼 뭐만 하면 인상 팍팍 쓰는 그런 애들보다는 조금 외모가 떨어지더라도 저런 애들이 낫지. 앞으로도 저런 애들로 준비시켜.”
“네, 회장님.”
“후우, 그나저나 얘가 올 때가 되었는데······.”
말이 떨이지기 무섭게 조수진이 문을 벌컥 열며 들어왔다.
“허허, 아무튼 양반은 못 되는 녀석이야.”
조수진이 터벅터벅 걸어와 자리에 털썩 앉았다. 조명달이 재떨이에 담배를 끄며 물었다.
“그래, 무슨 일로 왔어.”
“아버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쟤들은 너무 어린 거 아니에요?”
“쓰읍! 또 쓸데없는 소리 한다. 넌 무슨 내 일에 그리도 관심이 많아!”
“아버지 일이니까, 관심이 많죠!”
“어이구 퍽이나! 왜? 내가 복상사라도 당할까 봐, 걱정이냐?”
“당연하죠. 아버지, 제발 이제 나이를 생각하셔야죠. 건강 좀 챙기세요. 아버지 이렇게 가시면 진짜 난리 나요.”
“아무튼 딸년이라는 것이 말하는 싸가지 하고는······. 걱정 마라, 내 건강은 내가 더 잘 알아. 아직 끄떡없다.”
“걱정되어서 한 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