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 대대로 가겠습니다(32)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32화
01. 대대로 가겠습니다(32)
솔직히 조인범 상병이 본 이민식 대위는 별거 아니었다. 4중대에서 크고 작은 사고를 칠 때마다 이민식 대위에게 불려갔지만 혼자만 열을 내고 말았다.
독립부대인 4중대에서 대대장의 권한이 절대적이었지만 그런 이민식 대위도 자신을 어쩌지 못했다. 자신의 뒤에 누가 있는지 알았기 때문에 그걸로 끝이었다.
그래서 이민식 대위에게 불려 가면 짜증이 나더라도 잠깐 잔소리를 듣고 마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앞에 있는 오상진은 그게 아니었다. 조용히 분을 억누르듯이 매서운 눈으로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을 마주하자 천하의 조인범 상병도 괜히 주눅이 들었다.
‘하아, 시발······. 화를 내려면 낼 것이지 왜 저러는 거야?’
오상진의 눈치를 보던 조인범 상병이 슬그머니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제야 오상진이 입을 열었다.
“조인범!”
“네.”
“방금 중대장이 불렀는데 네? 넌 관등성명도 모르나.”
“상병 조인범.”
오상진은 빤히 보다가 조인범 상병이 쓴 경위서를 툭 내밀었다.
“이거 네가 쓴 경위서지.”
조인범 상병이 확인했다.
“네. 제가 썼습니다.”
오상진이 도로 경위서를 챙기며 말했다.
“중대장이 네가 쓴 경위서를 읽어 봤는데 적은 내용이 사실이야?”
“네? 아, 네.”
“다시 한번 묻는다. 중대장이 네가 쓴 경위서를 확인해 봤는데 정말 사실이야?”
오상진은 같은 질문을 반복했을 뿐이지만 조인범 상병은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시작했다.
“저어······ 그것이······.”
조인범 상병이 우물쭈물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오상진이 호통을 쳤다.
“너 말이야. 지금 네가 쓴 경위서랑 김호동 하사의 경위서랑 상당 부분이 달라. 이러면 난 어쩔 수 없이 헌병대에 이 사건을 넘길 수밖에 없어. 마지막으로 물어본다. 조인범! 정말 이 경위서가 맞아?”
“······.”
조인범 상병이 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와, 시발. 뭐야?’
조인범 상병이 당황했다. 설마하니 오상진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몰아붙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조인범 상병의 머릿속으로 윤태민 2소대장이 떠올랐다.
‘윤태민 이 개자식은 일을 어떻게 한 거야? 자기가 다 알아서 처리했다며? 다 처리했다고 해놓고서 이게 뭐야?’
조인범 상병은 지난번 윤태민 2소대장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런데 오상진의 표정을 보니 좋게 넘어가려는 기색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윤태민 2소대장을 들먹일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윤태민 2소대장에게 술을 얻어먹은 것도 있지만 이번 일을 윤태민 2소대장에게 사주받았다는 증거를 댈 수 없었다.
‘시발. 괜히 여기서 윤태민을 물고 늘어져 봤자 나만 더 이상한 놈으로 몰리겠는데.’
조인범 상병의 눈동자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런 조인범 상병을 보며 오상진이 빠르게 물었다.
“조인범. 지금부터 내가 몇 가지 물어볼 테니까. 거짓 없이 대답해. 알았어?”
“네.”
“외부에서 술을 반입한 사실이 있나?”
“네?”
조인범 상병의 눈이 크게 떠졌다. 오상진이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외부에서 술을 반입한 사실이 있느냔 말이야.”
“어, 그게······.”
“있어, 없어! 있는 그대로 대답하라고 했잖아!”
오상진이 바로 윽박질렀다. 조인범 상병이 고개를 푹 숙이며 작게 말했다.
“이, 있습니다.”
원래라면 없다고 대답을 했어야 했다. 그런데 윽박지르는 오상진에게 쫄아서 자신도 모르게 사실을 말해버렸다.
‘아, 젠장. 없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조인범 상병이 속으로 후회를 했지만 이미 늦었다. 오상진이 바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너 술병으로 부사관 뒷머리를 가격한 사실이 있어, 없어?”
“어, 그건······.”
조인범 상병의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렸다. 오상진의 눈빛이 매섭게 떠졌다.
“없어?”
“어어······ 그게······.”
“김호동 하사 주치의에게 물어보니까, 병 같은 둔기로 뒷머리를 얻어맞았다고 그러던데, 내무실에 병은 없었을 것이고 넌 술을 반입했잖아. 소주병을 반입해서 그걸로 김호동 하사를 가격한 거 아니야?”
오상진의 물음에 조인범 상병이 당황한 나머지 거짓말을 말했다.
“아, 아닙니다.”
“그래? 그럼 그 소주병은 어디 있어?”
“버, 버렸습니다.”
“버려? 쓰레기통에 버렸다면 문제가 생겼을 것이고, 얻다가 버렸어?”
“아, 그것이······.”
조인범 상병의 눈동자가 빠르게 돌아갔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오상진은 조인범 상병이 잔머리를 굴리지 못하게 다그쳤다.
“똑바로 말 안 해! 어디서 눈동자를 굴려!”
쾅!
급기야 오상진이 책상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조인범 상병이 움찔했다.
“저, 저는 모릅니다.”
고작 한다는 소리가 모른다고 발뺌하는 거였다.
“몰라? 뭘 몰라? 조인범 너 계속 이런 식이며 진짜 헌병대에 넘기는 수밖에 없어. 알아?”
오상진의 거듭되는 겁박에 심리적으로 궁지에 몰린 조인범 상병도 이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말했다.
“아이씨. 넘기려면 넘기십시오.”
“뭐?”
“아, 진짜 왜 이제 와서 저한테 그러시냐 말입니다. 혼내려면 진즉에 혼내시지, 아이씨······.”
조인범 상병이 인상을 썼다. 사실 조인범 상병의 입장에서는 좀 억울했다.
이미 다 끝난 것이라 생각했는데 자꾸 걸고넘어지니 말이다.
그런 조인범 상병을 본 오상진이 고개를 흔들었다.
‘역시 이 자식은 인간이 되기는 글렀네.’
오상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조인범 상병을 보며 말했다.
“조인범, 너 아무것도 하지 말고 여기서 대기해. 화장실도 중대장 허락받고 가. 밥 먹을 때도 허락받고 먹는다. 알겠어!”
“······.”
조인범 상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오상진은 그런 조인범 상병을 날카롭게 노려보고는 상담실을 나갔다.
그 순간 조인범은 책상 위로 두 손을 올리며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시발······.”
오상진은 그대로 상담실을 나와 중대장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박윤지 3소대장이 다가왔다.
“주, 중대장님.”
“어, 3소대장.”
“상담은 잘 끝나셨습니까?”
“저 자식 상담실에 대기시켜. 화장실이든 밥 먹으러 가든 무조건 허락받고 움직이라고 해. 알았어?”
“네?”
“저 자식 헌병대에 넘길 거야. 자넨 그런 줄 알고 있어.”
“허, 헌병대에 말입니까?”
박윤지 3소대장이 당황했다. 설마하니 정말로 헌병까지 소환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오상진은 그런 박윤지 3소대장을 가볍게 무시했다. 그러면서 주머니 속에 있던 휴대폰을 꺼냈다.
오상진은 전화번호부를 꺼내 빠르게 훑었다. 그곳에서 예전 사단 헌병대에서 알았던 임규태 중령을 찾았다.
기무사로 넘어갔던 임규태 중령은 최근에 다시 헌병대대장으로 오게 되었다.
오상진이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뚜르르. 뚜르르.
통화연결음이 울리고 잠시 후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어이구 이게 누군가. 오 대위 아닌가.
오랜만의 통화였지만 임규태 중령은 바로 어제 전화를 한 것처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덩달아 오상진도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 헌병대대장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나야 항상 똑같지. 그런데 어쩐 일이야? 인사차 전화를 한 것 같지는 않은데.
역시 눈치가 빠른 임규태 중령이었다. 오상진은 말을 돌리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사실 저희 중대에 일이 좀 생겨서 말입니다.”
-중대에 일? 아참, 자네 평택 쪽으로 내려갔다는 소식은 들었네. 그런데 벌써부터 문제가 생겼어?
“죄송합니다. 일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죄송은. 그래서 내가 뭘 도와주면 되겠나?
“실은 말입니다.”
오상진이 임규태에게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했다.
29.
임규태 중령이 전화를 끊고, 잠시 생각을 하다 수화기를 들었다.
“헌병과장. 잠시 내 사무실로 오게.”
잠시 후 대대장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강준수 대위가 나타났다.
“충성.”
“그래. 어서 와라.”
강준수 헌병과장이 다가갔다. 임규태 헌병대대장이 깍지를 끼며 물었다.
“혹시 말이야. 평택에 17연대 쪽에 아는 사람 있어?”
“17연대 말입니까? 아, 있습니다. 혹시 시키실 일이 있습니까?”
“거기 3대대 4중대에 관련해서 좀 알아봐.”
“3대대 4중대 말입니까?”
“그래. 거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다고 하는데 다들 쉬쉬한다는 분위기라네. 그것이 뭔지 알아봐.”
“알아보기만 하면 되는 겁니까?”
“이번 기회에 제대로 파헤쳐 볼 생각이야.”
“아, 넵! 알겠습니다.”
강준수 헌병과장이 헌병대대장실을 나갔다. 임규태 헌병대대장이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으음······. 이러려고 장기준 사단장이 오상진을 평택으로 보낸 건가?”
사실 임규태 헌병대대장은 오상진의 부임지가 평택 17연대라고 들었을 때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때만 해도 오상진은 승승장구였기 때문이다.
오상진은 장기준 사단장의 라인을 타고 있었다. 장기준 사단장이 대놓고 총애를 해서 이번에 육본에 올라갈 때 다들 오상진도 함께 갈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평택 17연대 쪽으로 근무지가 결정되었다.
임규태 헌병대대장은 이건 뭔가 잘못된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오상진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을 해보려고도 했었다. 하지만 오지랖이라는 생각에 잠시 내버려 뒀는데 때마침 오늘 전화가 온 것이었다.
“뭔가 있을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혹시 이거 트로이의 목마인가?”
아직 정확한 건 없지만 임규태 헌병대대장은 어쩌면 오상진이 적들의 소굴에 위장 침투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규태 헌병대대장의 얼굴에 슬쩍 미소가 떠올랐다.
“그렇지 않아도 뭔가 심심하던 차였는데. 잘 되었어. 모처럼 재미있는 일이 생기겠어.”
한편, 그 시각.
병원에 입원해 있던 김호동 하사는 퇴원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옆에 김태호 상사가 퇴원 준비를 도와주고 있었다.
“뭐 하러 오셨습니까. 저 혼자 해도 되는데······.”
김태호 상사는 김호동 하사의 퇴원소식을 듣고, 외출증을 끊어서 바로 병원으로 온 것이었다.
“자식이 좋으면서······. 그건 그렇고 다른 사람들은 안 왔어?”
“누굴 부릅니까. 제가 애도 아니고 말입니다.”
“이놈 봐라, 너 찾아올 여자 친구 없다는 것을 잘도 돌려서 말한다?”
“저 여자 친구 있지 말입니다.”
“그래? 있어? 누군데?”
“그건 말씀드릴 수 없지 말입니다.”
“이거 하나만 말해봐.”
“뭘 말입니까?”
“이 세상에 존재는 해? 이름은 있고?”
“아, 진짜! 왜 그러십니까. 저 진짜 여자 친구 있습니다.”
김호동 하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알았어. 알았어. 여자 친구 있는 것으로 하자. 그러면 너 이번에 다른 부대 여자 부사관들하고 미팅하기로 한 거 너는 참여 안 해도 되겠네.”
순간 김호동 하사가 바로 당황하며 눈동자가 흔들렸다. 솔직히 여자 친구는 없지만 놀림 받기 싫어서 있다고 말했는데 이제 와서 여자 친구 없다고 말하면 김태호 상사 성격에 엄청 놀릴 것 같았다.
‘하아······. 미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