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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701화 (701/1,018)

< 01. 대대로 가겠습니다(31)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31화

01. 대대로 가겠습니다(31)

오상진은 혀를 차며 시선을 다시 경위서 쪽으로 향했다. 박윤지 3소대장 것을 뒤로 넘긴 후 마지막으로 조인범 상병 것을 확인했다.

오상진이 천천히 조인범 상병 경위서를 읽는데 헛웃음이 나왔다.

“허······ 이 자식이 진짜······.”

절반쯤 읽었는데 더 읽지 않아도 될 만큼, 소설이 적혀 있었다.

오상진은 조인범 상병이 쓴 경위서를 펄럭이며 어이없어했다.

“그러니까. 김호동 하사가 갑자기 쓰러졌다 이거야? 뭐 이런 녀석이 다 있지?”

오상진이 경위서를 박윤지 3소대장에게 내밀며 물었다.

“이거 조인범 상병이 쓴 거 맞아?”

“네. 맞습니다.”

“정말 확실히 조인범 상병이 썼다고 했지?”

“······네.”

“조인범 이 녀석 안 되겠네. 지금 이 녀석 어디 있어?”

박윤지 3소대장이 조용히 말했다.

“지금 내무실 대기 중입니다.”

“내무실 대기? 그럼 지금 가서 조인범 이 녀석 데리고 와.”

“지금 말입니까?”

“그래! 내가 직접 그 녀석이랑 얘기를 나눠야겠어.”

“알겠습니다.”

박윤지 3소대장이 중대장실을 나왔다. 그러곤 힐끔 중대장실을 보다가 심각한 얼굴로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바로 이민식 대위에게 전화를 걸기 위함이었다.

-어! 왜? 무슨 일 있어?

“지금 오상진 중대장님께서 조인범 상병 면담을 하겠다고 합니다.”

-뭐라고? 아니 그 인간은 도대체 뭘 더 어떻게 하겠다고 나서는 거야. 그래서 뭐? 다 말했어? 내가 덮으라고 했다는 것까지 다 말했어?

“아닙니다. 그건 물어보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직접 알아보시려는 것 같습니다.”

-아, 진짜······ 사람 귀찮게 하네. 알았어, 일단 끊어.

박윤지 3소대장이 휴대폰을 끊었다. 그러고는 한숨을 푹 내쉰 후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뭐야. 중간에 나만 곤란하게 되었어.”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니야, 아니지.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 아직은 그만둘 수 없어. 아직은······.”

박윤지 3소대장이 어딘가로 빠르게 걸음을 움직였다.

29.

오늘도 내무실에서 시간을 보내던 조인범 상병은 관물대 사이에 숨겨뒀던 야한 잡지를 꺼냈다.

“흐흐, 이럴 때 맘 편히 보는 거지.”

조인범 상병이 여유롭게 내무실 구석으로 이동했다. 그곳에 등을 기댄 채 야한 잡지를 펼쳤다.

평소처럼 화장실에 앉아 봤을 때와는 달리 아무도 없는 내무실에서 봐서 그런지 사진들이 좀 더 자극적으로 다가왔다.

“흐흐, 이게 이렇게 야했나?”

조인범 상병은 손이 자연스럽게 바지춤 안으로 들어갔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슬그머니 바지를 내리려는데 갑자기 철컹하고 문이 열렸다.

“앗, 시X······.”

당황한 조인범 상병이 황급히 하의를 올렸다. 그리고 고개를 드는데 하필이면 박윤지 3소대장이 서 있었다.

조인범 상병이 다급하게 야한 잡지를 뒤쪽으로 숨겼다. 다행인 것은 박윤지 3소대장이 곧바로 조인범 상병을 찾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조인범!”

“사, 상병 조인범.”

박윤지 3소대장은 그제야 조인범 상병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문 쪽 벽에 몸을 숨긴 탓에 조인범 상병을 뒤늦게 발견한 것이다.

“거기서 뭐 해?”

“허리가 안 좋아서 잠깐······.”

조인범 상병이 말을 하면서 슬쩍 손이 허리로 갔다. 박윤지 3소대장이 그 모습을 보고는 물었다.

“많이 안 좋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등 뒤에 있는 것은 뭐야?”

“아. 이거 말입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책입니다. 책!”

순간 박윤지 3소대장은 살짝 풀린 조인범 상병 버클을 확인했다. 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어후. 조인범 이 미친 녀석아. 너는 지금 상황에서 그러고 싶니?’

박윤지 3소대장이 애써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버클 풀렸다.”

그 소리에 조인범 상병이 황급히 버클을 채웠다. 박윤지 3소대장이 다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따라 나와. 중대장님께서 보자고 하신다.”

“중대장님께서 말입니까?”

조인범 상병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뭐야. 갑자기 보자고 하고······.’

조인범 상병이 자리에서 일어나 못마땅한 투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밖에서 기다릴 테니까. 준비하고 나와.”

박윤지 3소대장이 나가고 조인범 상병이 인상을 썼다.

“하, 진짜······ 별것도 아닌 걸로 사람 오라고 하네. 그보다 윤태민 2소대장은 자기가 다 알아서 한다고 해놓고 이게 뭐야. 개빡치네.”

조인범 상병이 야한 잡지를 도로 잘 숨겨놓고 옷을 확인한 후 내무실을 나갔다.

그러자 박윤지 3소대장이 다가와 신신당부를 했다.

“인범아. 이번 중대장님은 저번 중대장님이라 달라. 말씀 잘 듣고, 혹시라도 뭐라고 하시면 잘못했다고 말했다. 무조건!”

박윤지 3소대장은 혹시라도 조인범 상병이 오상진에게 대들다가 일을 키워 괜히 자신에게까지 불똥이 튈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조인범 상병은 이미 자신을 불렀다는 것만으로 잔뜩 기분이 나쁜 상태였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인범아.”

“제가 알아서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게 왜 일을 이렇게 만드십니까?”

“······뭐?”

“소대장님께서 잘 알아서 하셨으면 되지 않습니까.”

조인범 상병은 박윤지 3소대장을 탓했다. 이에 박윤지 3소대장은 어이가 없었다.

‘이 녀석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사고는 지가 쳐놓고, 나보고 뒷수습을 하라고? 내가 진짜······ 이렇게까지 군 생활을 해야 하는 거야?’

박윤지 3소대장은 지금 처한 자신의 상황이 진짜 웃겼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직 제대하려면 1년이 넘게 남아 있었다. 그때까지는 더럽고 치사하더라도 부대에 있어야 했다.

“됐다. 무슨 말을 하겠니. 가자, 그냥.”

박윤지 3소대장이 몸을 홱 돌려 걸어갔다. 조인범 상병도 인상을 쓰며 뒤를 따랐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중대장실에 도착했다.

똑똑!

“들어와.”

문이 열리고 박윤지 3소대장과 조인범 상병이 들어왔다.

“중대장님 조인범 상병 데리고 왔습니다.”

“어, 그래. 여기 말고 옆 상담실로 보내.”

“알겠습니다.”

박윤지 3소대장과 조인범 상병은 다시 몸을 돌려 상담실로 갔다.

그 사이 오상진은 다시 시선을 아래로 내려 조인범 상병의 기록부를 확인했다.

“기록부에 아버지 이름이 없는 건 누락이 된 건가? 아니면 정말 안 계시는 건가?”

조인범 상병 기록부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공란이었다. 아버지의 이름을 적는 공간은 점 하나 찍힌 것 없이 깔끔했다.

게다가 어머니의 이름이 같은 조씨인 조수진이라는 것도 좀 이상했다.

동성동본이 폐지된 건 2005년. 본이 다를 수도 있지만 예전에는 성만 같아도 만남을 꺼려 하는 경우가 많았다.

“혹시 엄마 성을 따른 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오상진은 마저 기록부를 살폈다.

그런 오상진의 예상대로 특이사항란에 추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아버지 없이 어려서부터 홀어머니 밑에서 자람. 어머니 성을 따름. 외할아버지가 강남에서 크게 사업을 하심.

“외할아버지가 강남에서 크게 사업을 한다라······. 후훗, 그래서 이 녀석이 기고만장했구나.”

군대에서는 주기적으로 황제 복무나 특별 대우에 대한 논란이 터진다. 그럴 때마다 군대는 해당 사실을 철저히 숨겼고 언론에 알려지면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다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유력가의 자식들을 특별히 봐주는 행위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이 시기에는 그 정도가 더 심했다.

고위층 자제들의 병력 비리가 터지면서 특혜 같은 것을 주지 말라고 위에서 공문이 내려오지만 실제로 이행되는 곳은 극히 드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력가들과 트러블을 만들어서 좋을 게 없기 때문이었다.

훈련소에 입소하면 첫날 밤 장교가 돌며 호구조사에 들어간다.

가족 중에 장군이 있는지는 아예 물어보지도 않았다. 장군들의 친인척들은 들어오기 전부터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애초에 좋은 쪽, 일명 꿀 보직으로 빠질 수 있게 이미 손을 써놓았다.

그래서 보통은 영관급이나 부사관 중에 원사급 가족이 있는지 파악을 한다.

그다음으로 시청이나 군청 쪽 고위공무원들과 연관이 있는지 조사했다. 물론 시청과 군청에서 일한다고 해서 다 편의를 봐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고위공직자 같은 사람들은 충분히 인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군에 문제가 생기면 골치 아파질 수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따지는 것이 바로 있는 집 자식들이었다.

물론 재벌가 집 자제들은 사전에 알려지지만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부자들도 많았다. 그들은 아예 미국 시민권을 사수해 군을 안 가거나, 아니면 국민들을 의식해 군대에 가는 시늉만 한다. 때로는 방위산업체 쪽으로 빠져서 근무를 한다.

대부분은 출근도 하지 않고, 출근했다고 허위로 작성을 하지만······.

아무튼 군대에 오더라도 알게 모르게 인적인 네트워크가 있어서 특혜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 조인범 상병의 부류가 그런 쪽에 속하는 것 같았다.

특이사항란에 내용이 추가된 것으로 봐서 처음에는 그 사실을 모르고 부대에서 받았다가 나중에 조인범 상병이 사고를 치고 난 다음에 인적 사항이 추가로 드러난 것 같았다.

오상진은 조인범 상병에 대한 파악을 끝내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듣기로 조인범 상병이 입대 후 사고를 친 것이 한두 번도 아니었다.

심지어 이번에는 소주를 몰래 반입해서 그걸 저지하는 부사관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그것도 소주병으로 말이다.

이건 살인미수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녀석이 과연 새로 태어날 수 있을까?”

밖에서 사고 치던 놈들도 사람 만든다는 곳이 군대였다. 그런데 이놈은 군대에 왔어도 사고를 치고 있었다.

인성부터 이미 비뚤어질 때로 비뚤어진 상태였다.

오상진이 잠시 고민했다. 과연 상담을 하고 교화를 시도한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그래도 중대장이 되어서 이번 일을 대충 넘길 수도 없었다.

“그래. 다른 것은 신경 쓰지 말고 원칙대로 하자. 조인범 상병 집안이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오상진은 스스로를 다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중대장실을 나와 상담실로 이동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조인범 상병이 삐딱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것도 오상진이, 중대장이 들어왔는데도 경례는커녕 자세도 바로잡지 않았다. 그 모습이 진짜 가관이었다.

오상진이 문 입구에 서서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봤다. 그러자 함께 상담실 안에 있던 박윤지 3소대장도 뒤늦게 그것을 발견하고 조인범 상병을 툭 쳤다.

“인범아.”

“아, 네에. 충성.”

조인범 상병이 거의 건성으로 일어나 경례를 하고는 도로 앉았다. 오상진의 손이 도로 내려가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이 자식 봐라.’

오상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리고 박윤지 3소대장을 보며 말했다.

“3소대장은 나가 있지.”

“네?”

“나가 있으라고. 괜찮으니까.”

“알겠습니다.”

박윤지 3소대장이 나가고, 오상진은 상담실 문을 닫고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손을 탁자에 올려놓은 상태로 조인범 상병을 빤히 바라봤다. 아무런 말도 없이 말이다.

처음에는 무표정하던 조인범 상병도 오상진이 말이 없이 바라만 보자 당황했다.

‘뭐지? 왜 보고만 있고 말을 안 해? 분위기 잡는 거야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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