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 대대로 가겠습니다(30)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30화
01. 대대로 가겠습니다(30)
“아닙니다.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그래. 어지간한 일들은 자네가 처리해야지. 언제까지 연대장님께서 일일이 신경을 써주나.
“네, 그렇습니다.”
-참, 다른 것은 아니고 이번에 연대장님께서 모임을 한번 갖자고 하시네.
“모임 말입니까?”
-우리 일심회 모임 안 한 지 꽤 됐잖아. 새로 자리를 옮긴 사람들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축하도 해야 하고.
“그렇습니까.”
-그리고 이번 모임에는 연대장님께서 자네도 한번 참석하라고 하시네.
순간 송일중 대대장의 눈이 번쩍하고 떠졌다.
“저, 정말이십니까?”
-그래. 시간 되겠어?
“물론입니다. 없는 시간도 만들어내겠습니다.”
-그래, 그럼. 자네도 참석하는 걸로 알겠네. 그보다 말이야. 이번 모임 장소를 자네가 준비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야.
“제, 제가 말입니까?”
-왜? 힘들 것 같나? 지난번에 자네가 연대장님 모시고 갔던 곳이 괜찮다고 하시던데?
“아,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장소 확정되는 대로 연락하게.
“네. 선배님.”
송일중 대대장이 전화를 끊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드디어 기회가 왔나? 드디어······.”
송일중 대대장은 주먹을 꽉 움켜 쥐었다. 여태껏 곽종윤 연대장의 비위를 맞추며 인고의 시간을 보냈는데 그 보상을 이제야 받게 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치지도 못하는 골프까지 쳐가면서 얼마나 아부를 떨었는데······. 크흐흐흐. 이제 됐어.”
송일중 대대장이 곽종윤 연대장의 라인에 서려 노력한 이유는 간단했다. 곽종윤 연대장의 라인이 바로 박찬중 국방부장관 라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 국방부장관이자 전 육군참모총장인 박찬중 라인에 선 사람들의 사조직이 일심회였다.
송일중 대대장이 알기로 일심회 모임은 크게 두 가지였다. 제일 윗선들만 만나는 비공식 모임과 일심회의 세력을 과시할 겸 새로운 인물들도 참석시키는 전체 모임.
전체 모임은 연대장이나 사단장급에서 알아서 준비를 했는데 이번에는 곽종윤 연대장 차례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곽종윤 연대장은 그걸 다시 송일중 대대장에게 맡긴 것이었다.
송일중 대대장은 두근거리는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전화 통화를 끝낸 지 한참이 지났는데 심장은 아직도 진정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송일중 대대장은 일심회에 가입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곳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군대 내 최고의 사조직이다 보니 하나같이 실력 있고 경력 많은 이들만 부름을 받았다.
그런데 곽종윤 연대장 덕분에 이번에 일심회에 얼굴을 내비칠 수 있는 기회가 찾아 온 것이었다.
물론 그 정도로 일심회의 일원이 됐다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야 없는 법.
오히려 기약도 없이 막막하던 것보다 훨씬 나았다.
“다 왔어. 이제 다 온 거야. 이 기회만 잘 살리면 나도 위로 올라갈 수 있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송일중 대대장이 씩 웃었다. 조금 전까지 쌓여 있던 짜증도 오간 데 없이 싹 사라졌다.
그러다가 송일중 대대장은 자신에게 주어진 미션이 남아 있다는 걸 기억했다.
“맞아. 장소. 장소를 섭외해야지.”
송일중 대대장도 고급 술집을 제법 다녔다. 하지만 그가 알고 있는 가게 중에 곽종윤 연대장뿐만 아니라 일심회 사람들이 전부 만족할 만한 곳은 하나뿐이었다.
지난번 곽종윤 연대장과 함께 방문했던 그곳.
곽종윤 연대장이 참 마음에 든다며 몇 번이고 언급했던 바로 그 곳.
조인범 상병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고급 술집이었다.
송일중 대대장은 휴대폰을 들어 조 여사를 찾았다. 통화 버튼을 누르고 잠깐의 통화음이 간 후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나 이게 누구세요. 송 중령님 아니세요.
“조 여사님. 잘 지냈습니까.”
-저야 물론 잘 지내고 있죠. 그보다 우리 송 중령님은 무슨 일로 전화를 다 했을까? 가만! 설마 또 우리 아들이 사고라도 쳤나요?
“어휴, 사고는요. 별일 없이 인범이 아주 잘 있습니다.”
바로 조금 전에 홍민우 소령으로부터 조인범 상병이 김호동 하사의 뒤통수를 소주병으로 내려친 것 같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송일중 대대장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말을 받았다.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그래도 송 중령님께서 우리 아들을 잘 보살펴주셔서 얼마나 마음이 놓이는지 몰라요.
“하하.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인범이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한창 혈기왕성할 나이인데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럼요. 제가 송 중령님 때문에 맘 편히 있는다니까요.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혹시 뭐 필요한 거라도 있으세요?
조 여사의 물음에 송일중 대대장이 바로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윗분들 모시고 자리를 마련해야 하는데 제가 마땅히 아는 곳이 없어서 말이죠. 그래서 조 여사님께 연락을 드렸습니다.”
-윗분들이라 하시면······?
“혹시 들어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일심회라고······.”
-아, 일심회! 들어봤어요. 박찬중 국방부장관님께서 만드신 그거 맞죠?
“어떻게 아시네요.”
-어휴. 술장사하면서 그런 것도 모르면 쓰나요.
“그래서 말인데 여사님. 어떻게 자리 좀 마련해 주실 수 있습니까?”
송일중 대대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 조 여사의 즉답이 날아왔다.
-그럼요. 당연하죠. 다른 모임도 아니고 나라를 위해서 고생하시는 분들이 모처럼 쉬시겠다는데 덕분에 편히 잘 지내는 저희가 자리를 마련해 드려야죠.
“감사합니다.”
-그보다 날짜는 언제쯤이죠?
“아직 날짜는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조만간에 날짜가 나오면 그때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세요. 그때 몇 분 오시는지 알려주시면 제가 알아서 잘 준비할게요.
“그럼 비용은 대략 어떻게 될까요?”
-어휴. 그런 건 걱정하지 마시고요. 제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송 중령님께 돈을 받을까요.
“하하. 감사합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네. 또 연락 주세요.
송일중 대대장이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다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인범 상범의 어머니인 조여사가 돈을 받지 않을 거라고 기대는 했지만 정말로 알아서 준비를 해주겠다고 하니 긴장감이 탁 하고 풀렸다.
“후우, 일단 자리는 마련했으니까 이번 기회를 통해 일심회에 꼭 들어가야 해. 그때까지는 잘 버텨야지.”
이번 모임에 참석하면 송일중 대대장은 일심회의 실직적인 리더라 불리는 감찰부장 최우일 소장의 눈에 들 생각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때부터는 탄탄대로였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조인범 상병의 일이 달리 느껴졌다.
“오상진. 생각해 보면 이 자식이 문제야.”
솔직히 조인범 상병이 사고를 친 게 한두 번도 아니었다. 그래서 징계의 의미로 4중대에 보낸 것이었다. 물론 이번에 친 사고는 조금 과한 면이 있지만 자신이 부임하기도 전의 일을 파고드는 건 같은 동료를 모욕하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어머니인 조 여사가 이렇게 나라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애를 쓰고 있는데 아들의 흔한 실수 하나를 못 봐줄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오히려 괜히 다른 라인에 있다가 자신의 부대에 와서 미꾸라지처럼 헤집는 오상진이 문제처럼 느껴졌다.
“이런 미꾸라지 녀석을 잡아야 하는데······.”
송일중 대대장은 책상을 손가락을 통통 두드리며 빠드득 이를 갈았다. 이렇게 된 이상 더는 오상진이 설치지 못하도록 제대로 손을 봐야 할 것 같았다.
28.
다음 날 오상진은 아침 일찍 출근을 했다.
아직은 낯설기만 한 중대장 자리에 앉은 오상진은 여느 때처럼 휴대폰을 들어 한소희와 통화를 했다.
-이제 출근했어요?
“네. 방금 자리에 앉았어요.”
-근데 무슨 중대장이 이렇게 출근을 빨리 해요?
“중대장이니까 모범을 보여야죠. 그리고 우리는 독립 중대라서 내가 자리를 비우면 큰일나요.”
-그 반대 아니고요?
“네?”
-보통은 윗사람이 자리를 비워줘야 아랫사람들이 편하잖아요.
“그렇긴 한데······ 여긴 군대니까요.”
오상진은 아직 자신이 맡은 4중대가 꼴통 중대라 불린다는 걸 한소희에게 말하지 못했다. 한소희가 알고 걱정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보다 소희씨. 오늘 내려오는 거 맞죠?”
-네. 아마 오후 중으로 내려갈 것 같아요. 상진 씨 퇴근하기 전에 내가 먼저 도착하겠죠?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근데 집 청소가 잘 안 되었는데······.”
오상진이 우물쭈물 말했다.
-어휴. 하루 이틀도 아닌데요, 뭘. 이제 괜찮아요. 제가 먼저 가서 청소해 놓을게요.
“그래 주면 너무너무 고맙죠. 그래도 따로 어지럽히진 않았으니까 깨끗할 겁니다.”
-그건 가 봐야 알죠. 보나마나 빨래감 쌓아뒀을 텐데.
“어? 그걸 어떻게 알았죠?”
-내가 왜 몰라요. 상진 씨랑 같이한 지가 얼마인데?
“하하하, 그렇죠. 아무튼 우리 소희씨 없으면 어쩔 뻔했는지 모르겠어요.”
-알면 됐어요. 아무튼 퇴근 잘하고 집에서 봐요.
“알겠어요. 조심해서 내려와요.”
-네.
오상진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기분 좋에 업무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문을 두드리며 박윤지 3소대장이 들어왔다.
“충성.”
“3소대장 어서 와. 무슨 일이야?”
“지난번에 경위서 받아오라고 해서 받아왔습니다.”
“아, 그래? 이리 줘봐.”
오상진이 손을 내밀었다. 박윤지 3소대장이 긴장된 얼굴로 경위서를 내밀었다.
오상진은 가장 먼저 김호동 하사의 경위서부터 빠르게 읽었다. 이미 김호동 하사로부터 자세한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뭔가 다른 것이 있는지 확인만 했다. 그다음은 박윤지 3소대장 것이었다.
“으음······.”
오상진이 낮은 신음과 함께 박윤지 3소대장이 적은 경위서를 읽어 내려갔다.
-취침을 준비하고 있던 중 당직사병으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고 부대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3소대 내무반에 도착해 보니 김호동 하사가 충격을 받고 쓰러져 있었습니다.
사병 한 명을 시켜 김호동 하사를 업게 한 후 일단 사단 의무대로 빠르게 이송시켰습니다. 하지만 의무대에서도 김호동 하사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응급 처치가 필요할 수도 있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외부병원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다시 부대에 복귀를 해서 상황 파악을 하려고 했으나 병사들 모두 진술이 달라서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는 데 애로사항이 있었습니다.
오상진이 경위서 내용을 읽은 후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여자 소대장이라도 그렇지. 이건 상황 파악을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했다고 봐야 하는 거 아니야?’
오상진이 힐끔 박윤지 3소대장을 봤다. 박윤지 3소대장이 움찔했다.
만약에 오상진 본인이었다면 다른 사람을 시켜서 김호동 하사를 후송하고, 그 자리에서 어떻게 된 일인지 바로 상황 파악부터 했을 것이다.
관사에 있다가 달려오는 시간에도 얼마든지 사건의 조작과 은폐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윤지 3소대장은 뭐가 뭔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전혀 인지를 못하고 있었다.
‘쯧쯧, 이러면 안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