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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699화 (699/1,018)

< 01. 대대로 가겠습니다(29)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29화

01. 대대로 가겠습니다(29)

-대대장님 지금 어디십니까?

“나 지금 연대장님 모시고 필드 도는데 왜? 무슨 일 있어?”

-그게 잠시 들어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인데?”

송일중 중령은 살짝 짜증이 났다. 사실 곽종윤 연대장과 함께 필드를 도는 건 오랜만이었다. 날도 추웠던 데다가 그동안 이런저런 핑계로 함께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필드 한번 돌자는 말에 연일을 제쳐두고 따라 온 것이었다. 곽종윤 연대장에게 눈도장을 받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부대로 복귀하라니. 송일중 중령은 그저 어이가 없었다.

“작전과장. 내 말 못 들었어? 나 지금 연대장님이랑 필드 돈다고. 이 와중에 부대 들어오라고?”

-죄송합니다. 하지만 4중대 일이라서······.

“뭐? 4중대?”

송일중 대대장이 힐끔 곽종윤 연대장을 응시했다. 목소리가 컸던지 곽종윤 연대장을 비롯해 사람들이 전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송일중 대대장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4중대가 왜? 혹시 오상진이 사고 쳤어?”

-그게······.

“오상진 그 녀석은 4중대에 부임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사고를 쳐!”

송일중 대대장이 버럭 짜증을 냈다. 그러다 돌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에 하나 새로 부임한 오상진의 잘못으로 떠넘길 수만 있다면? 오상진의 군 생활을 꼬이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수화기로 들려오는 홍민우 소령의 말은 그의 예상과는 달랐다.

-저, 그게 오상진 대위가 아니라, 부임하기 전 일이 이제 터진 것 같습니다.

“뭐?”

송일중 대대장의 표정이 한순간에 확 바뀌었다. 만약에 전임 중대장이었던 이민식 대위가 사고 쳤던 것이 오상진에게 들키면 그 망신은 피할 길이 없었다.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전화로 말씀드리기에는 길고, 일단 들어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젠장! 도대체 누가 사고를 친 거야.”

-······조인범 상병입니다.

“누구?”

송일중 대대장은 혹시나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하지만 귓가를 울리는 이름은 달라지지 않았다.

-조인범 상병입니다. 대대장님.

“그 꼴통 조인범?”

-네.

순간 송일중 대대장이 입술을 깨물었다. 조인범 상병에게 그렇게 사고 치지 말라고 말했는데 또다시 사고를 친 모양이었다.

문제는 그 사실을 오상진이 알게 됐다는 점이다.

“알았어! 지금 들어가지.”

송일중 대대장이 전화를 끊고는 거칠게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27.

철컥.

문이 열리고 송일중 대대장이 허겁지겁 들어왔다.

“추, 충성!”

잠시 딴짓을 하던 C.P병이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했다.

“작전과장은?”

“지금 안에서 대기 중이십니다.”

“알았어.”

“차는······.”

“차는 됐고! 지금부터 내가 지시를 내릴 때까지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해.”

“네, 알겠습니다.”

C.P병이 힘차게 대답을 했다.

송일중 대대장이 안으로 들어가자 홍민기 작전과장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송일중 대대장은 굳은 표정으로 소파 상석에 착석했다.

“젠장할, 이게 무슨 일이야!”

“일단 보고부터 올리겠습니다.”

“빨리 올려봐!”

“네.”

홍민기 작전과장이 자세를 바로하고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 4중대에서 작은 문제가 있었다고 보고드리지 않았습니까. 혹시 기억하십니까?”

“4중대? 4중대에서 문제가 한두 번 일어났어야지. 그걸 내가 일일이 다 어떻게 기억해!”

“이민식 대위가 발령 직전에 생긴 작은 폭행사건이 있었다고······.”

“아아아. 그랬지. 이제 기억나는 군. 그런데 그 사건 잘 해결되었다면서?”

“저도 그렇게 보고 받았는데 사안이 생각보다 심각해졌습니다.”

“뭐? 왜 심각해!”

“실은······.”

홍민우 작전과장이 심호흡을 한번 한 후 천천히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민식 대위에게 들었던 사건의 전말을 자세히 설명했다.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송일중 대대장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뭐야! 그러니까 지금 자네 말은 일개 병사가 부사관을 폭행했다는 거야?”

“네.”

“병사와 병사 간의 폭행 사건이 아니었어?”

“저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언제 일어났어? 설마 훈련 중에 일어난 거야?”

송일중 대대장이 숨 한번 안 쉬고 물어보았다.

잠시 뜸을 들이던 홍민우 작전과장은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훈련 중에 일어난 일은 아닙니다.”

“그럼?”

“취침 중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취침 중에? 도대체 취침 중에 왜 그런 일이 벌어진 거지?”

홍민우 작전과장이 처음으로 이마에 주름이 살짝 잡혔다.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찰나의 망설임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잠깐이었다. 필드를 돌고 있던 송일중 대대장을 대대로 복귀시켜놓고 이쯤에서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생각을 굳힌 홍민우 작전과장이 솔직히 털어놓았다.

“사실은 조인범 상병이 술을 반입해서······.”

“뭐? 이런 미친 새끼를 봤나! 전 중대에서도 술을 반입해서 그렇게 혼쭐이 나 놓고서 또 술? 그 새끼 제정신인 거야?”

송일중 대대장이 눈을 부릅뜬 채 홍민우 작전과장을 쏘아봤다.

“홍민우! 넌 뭐 하고 있었어! 일이 이렇게 될 때까지 넌 뭘 하고 있었던 거야!”

갑작스럽게 자신에게 튄 불똥에 홍민우 작전과장은 살짝 억울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리고 제 잘못이라도 되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 불찰입니다.”

“하아······ 이민식! 이민식이 이 미친 새끼 어디 있어!”

“그렇지 않아도 제가 따끔하게 혼을 냈습니다. 그런데 이민식 대위 입장에서도 조인범 상병이 엮인 일이다 보니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일이 있었으면 나에게 제대로 보고를 했어야 할 거 아냐? 그래야 내가 대책을 강구할 거 아니냐고! 그래놓고 오상진에게 들키면 어쩌라는 거야!”

송일중 대대장 버럭 소리를 지르며 신경질을 냈다.

사실 송일중 대대장이 가장 짜증이 나는 것은 조인범 상병이 엮였다는 점이었다. 조인범 상병이 막말로 개새끼라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문제 사병들을 모아 놓은 4중대 전체에서도 조인범 상병이 최고의 꼴통이었다.

조인범 상병은 1중대에서 몰래 술을 반입해 마시고 사고를 쳐서 4중대로 보내졌다. 그렇다고 4중대로 가서 맘 편히 술을 마시라고 보낸 건 결코 아니었다. 사고를 치더라도 티 나지 않게 남들 눈에 안 띄게 하라는 뜻에서다.

본래 4중대가 그렇고 그런 놈들만 모인 곳이기 때문에 사고를 치더라도 내부의 문제가 밖으로 흘러나가지 않았다.

설사 누군가가 잘못 입을 놀려서 헌병대의 조사가 온다고 해도 크게 문제될 게 없었다.

4중대에서 헌병대 조사에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 사병이 없다 보니 헌병대가 제대로 된 진상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결과적으로 4중대 안에서 누가 잘못을 했다는 것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고 친 애들 전부 4중대로 몰아넣은 것이다. 고삐를 조금 풀어주는 대신 더 이상 문제 일으키지 말고 얌전히 제대를 하라는 뜻에서 말이다.

“아니,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으면 그냥 조용히 지낼 것이지. 이 새끼 또 사고를 쳐? 그것도 취침 시간 중에 술을 처먹다가 발각이 된 게 말이나 돼?”

지금껏 4중대에서 별의별 사건들이 일어났지만 이번 일은 진짜 어디 가서 말도 못할 수준이었다. 송일중 대대장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래서? 폭행은 어떻게 된 거야?”

“당직사관이 순찰 중에 발견을 한 후 제지를 하는 과정에서 작은 소란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설마 그 조인범 망할 놈이 취해서 당직사관도 못 알아보고 주먹을 날렸어?”

“아닙니다. 그게······.”

“뭔데! 뭐야? 주먹이 아니면 빗자루라도 휘두른 거야?”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시발 대체 뭐냐고!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봐!”

송일중 대대장이 다시 고함을 질렀다. 홍민우 작전과장이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소, 소주병입니다.”

“뭐?”

송일중 대대장이 혹여 자신이 잘못 들었는지 재차 물었다. 하지만 홍민우 작전과장의 대답은 달라지지 않았다.

“소주병으로 가격했습니다.”

“이런 미친······.”

송일중 대대장이 주먹으로 소파 팔걸이를 내려쳤다.

쾅!

이건 진짜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술에 취해 주먹을 내질렀다고 해도 사안이 심각한데 흉기로 가격했다면 살인미수까지 갈 수도 있었다.

송일중 대대장이 어금니를 꽉 깨물며 말했다.

“자네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도대체 대대 관리를 어떻게 해야 그런 일이 벌어질 수가 있는 거야?”

“죄송합니다.”

작전 과장으로서 송일중 대대장을 잘 보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홍민우 작전과장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조인범이 몇 소대야?”

“3소대입니다.”

“3소대장이 누구야? 그 새끼는 대체 일 처리를 어떻게 한 거야?”

송일중 대대장의 분노가 담당 소대장으로 향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당장에라도 담당 소대장을 불러 따귀라도 후려 칠 기세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쉬워 보이지 않았다.

“그게······ 박윤지 소위입니다.”

“박윤지? 설마 여자야?”

“네. 그렇습니다.”

“어디 출신이야!”

“ROTC를 나왔습니다.”

“허······. 내가 이래서 출신을 안 따질 수가 없어. 도대체 그 녀석들은 뭐한다고 군대에 오는 거야. 이 따위로 일을 할 거면서!”

“죄송합니다.”

“됐고, 그래서 이민식 대위는 뭘 어떻게 처리를 한 거야?”

“조인범 상병은 일단 내무실에 대기를 시키고, 부사관에게는 없던 일로 하자고 잘 타일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오상진 대위가 부사관에게 접근한 모양입니다.”

“부사관? 부사관 이름이 뭐야 그 새끼.”

“김호동 하사입니다.”

“김호동 하사? 그럼 자네가 김호동 하사를 직접 만나봐.”

“제가 말입니까?”

“그럼! 누가 일을 해. 이민식 대위를 또 시킬까?”

“아, 아닙니다.”

“자네가 김호동 하사를 만나서 입단속을 제대로 시키란 말이야. 알겠어?”

“네. 알겠습니다.”

“자네 일 똑바로 처리해. 이 일이 밖으로 새어나가면 나도 죽고, 자네도 죽는 거야.”

“알겠습니다.”

송일중 대대장은 그렇게 모든 일을 홍민우 작전과장에게 떠 넘겼다.

“그래, 이만 나가봐.”

“네.”

홍민우 작전과장이 대대장실을 나가고 송일중 대대장은 소파에 몸을 깊게 눕혔다.

“하아, 조인범, 조인범······. 이 새끼를 어떻게 한다.”

송일중 대대장이 고민을 하고 있을 때 휴대폰이 지잉 지잉 하고 울렸다.

송일중 대대장이 휴대폰을 확인했다. 사단 비서과장 배운혁 중령이었다.

“어? 선배님이 무슨 일로······.”

송일중 대대장이 바로 자세를 잡으며 휴대폰을 들었다.

“충성! 네, 선배님.”

-송 중령. 급한 일 때문에 들어갔다고 하더니 무슨 일이야.

“아, 그게······.”

-왜? 심각한 일이야?

“그런 것은 아니지만 조금 골치 아픈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 아이고, 송 중령에게 무슨 골치 아픈 일일까? 왜? 내가 좀 도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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