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 대대로 가겠습니다(28)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28화
01. 대대로 가겠습니다(28)
이민식 대위가 심각한 얼굴로 전화를 받고 있었다.
“어, 그래. 알았어. 무슨 일 있으면 또 전화하고. 어, 그래.”
이민식 대위가 전화를 끊고는 인상을 썼다.
“하아, 진짜 미치겠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민식 대위가 짜증을 냈다. 2중대장으로 발령을 받게 됐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인범 상병이 사고를 쳤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민식 대위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덮자!’
만에 하나 이번 일로 인사이동이 취소라도 되었다가는 평생 4중대에서 못 벗어날 것 같았다.
그래서 이민식 대위는 박윤지 3소대장에게 일을 잘 수습하라고 지시했다. 그 과정에서 2중대로 간다는 생각에 살짝 들떠서는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한 건 사실이지만 박윤지 3소대장이 알아서 잘 수습할 것이라 여겼다.
이번 일이 시끄러워져서 박윤지 3소대장도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로 온 중대장이라는 녀석이 갑자기 모든 것을 다시 조사한다고 하니 이민식 대위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때 1소대장 김명훈 중위가 문을 두드린 후 들어왔다.
“충성. 중대장님.”
“왜? 뭐야?”
“오늘 저녁 시간 어떻게 되십니까?”
“오늘 저녁?”
“네. 중대장님 오신 기념으로 소대장들이 조촐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시간 괜찮으십니까?”
“······.”
만약에 박윤지 3소대장의 전화를 받기 전에 이 소식을 접했다면 이민식 대위는 웃음을 참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이민식 대위는 원래부터 술을 좋아했다. 술자리에서도 빼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가로이 술을 마실 상황이 아니었다.
“마음은 고마운데 다음에 하지.”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래, 내 개인적인 일이 있어.”
“다음이라면 언제쯤······.”
“이 친구가······. 지금 술이 중요해!? 다음에 하자니까, 다음에!”
이민식 대위가 버럭 화를 냈다. 그러자 김명훈 1소대장이 움찔했다.
“아, 알겠습니다. 실례했습니다. 충성.”
괜히 한 소리를 들은 김명훈 1소대장이 슬그머니 밖으로 나갔다.
잠시 중대장실을 서성이며 생각을 정리한 이민식 대위는 곧장 송일중 대대장실로 향했다.
똑똑.
C.P병(당번)이 있는 사무실을 열었다. 그러자 C.P병이 화들짝 놀라며 경례를 했다.
“충성.”
“그래. 대대장님 계시냐?”
“대대장님 잠깐 나가셨습니다.”
“어디 가셨는데?”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언제 들어오셔?”
“그것도 잘······.”
“야, 인마. 당번병이 그것도 모르면 어떻게 해.”
“죄송합니다.”
C.P병이 굳어진 표정이 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젠장, 왜 나한테 지랄이야.’
그러고 있는데 다시 문이 열리며 작전과 홍민우 소령이 들어왔다.
“어? 2중대장이 여긴 어쩐 일이야?”
“아, 저기······.”
“왜? 무슨 일인데?”
“대대장님을 뵈러 왔습니다.”
“대대장님? 대대장님을 왜?”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
“아, 그러니까······.”
이민식 2중대장이 말을 하지 못하고 힐끔 C.P병을 봤다. 홍민우 작전과장이 바로 눈치를 채고 말했다.
“2중대장 잠깐 나 좀 보지.”
“네.”
두 사람이 나가고 홍민우 작전과장은 아무도 없는 곳으로 이민식 2중대장을 데리고 갔다.
“무슨 일이야?”
홍민우 작전과장이 물었고, 이민식 2중대장이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과장님. 지난번에 제가 2중대로 오기 전에 4중대에서 일이 하나 있었다고 말씀드렸는데 기억하십니까?”
“아, 그거? 그거 자네가 잘 처리했다며?”
“그, 그것이······.”
이민식 2중대장은 박윤지 3소대장에게 들었던 것을 그대로 홍민우 작전과장에게 전했다.
“자네는 도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를 하는 거야. 제대로 마무리를 했어야지! 아니, 덮을 거였으면 제대로 덮었어야지. 이게 뭐야! 새로 온 중대장에게 우리 연대가 꼴통이라고 소문낼 일 있어?”
홍민우 작전과장이 이민식 2중대장을 질책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제대로 했다고 했는데······. 새로 온 4중대장이 다시 조사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이민식 2중대장은 바로 오상진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씌웠다. 그렇다고 자신이 수습을 제대로 못 했다고 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또 오상진을 감시하고 있던 홍민우 작전과장은 이민식 2중대장의 말이 그럴듯하게 들렸다. 오상진이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이 부대에 온 것이라면 폭행 사건을 듣고,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사병은 어떻게 되었어?”
“내무실에 대기를 시켜놨습니다.”
“내무실에 대기? 이봐, 2중대장. 아니, 부사관 폭행을 저지른 녀석을 왜 내무실 대기를 시켜! 그 사병 이름이 뭐야?”
“저 그게······.”
이민식 2중대장이 살짝 망설였다. 홍민우 작전과장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혹시 그 친구 내가 아는 사람이야?”
“네. 조인범 상병입니다.”
“조인범······ 혹시 그 조인범?”
“네, 그렇습니다.”
“하아, 젠장! 미치겠군. 왜 하필 그 새끼가······. 또 사고를 치다니.”
“어떻게 합니까?”
이민식 2중대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홍민우 작전과장이 눈을 부릅떴다.
“자네가 일 처리를 제대로 못 해놓고, 지금 나에게 물어보는 건가?”
“······.”
이민식 2중대장은 입을 다물었다. 지금 상황에서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송일중 대대장이나, 앞에 있는 홍민우 작전과장뿐이었다.
홍민우 작전과장도 그것을 알기에 더 이상 탓하지 않았다.
“일단 알았어. 기다려 봐, 내가 대대장님께 연락드려볼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충성.”
이민식 2중대장이 경례를 하고는 사라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홍민우 작전과장이 중얼거렸다.
“어후, 저 꼴통 새끼. 평생 4중대에 썩게 내버려 뒀어야 하는 건데, 저걸······. 어후.”
홍민우 작전과장이 혀를 쯧쯧 차다가 휴대폰을 꺼냈다.
“이 자식은 이런 일이 있었으면 재깍재깍 보고를 해야지.”
홍민우 작전과장은 송일중 대대장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윤태민 소위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각 윤태민 소위는 2소대 부소대장인 이기상 하사와 노가리를 까고 있었다.
“그래서 말이야. 내가 딱 술을 먹이면서 그랬지. 어떻게 이 오빠랑 찐하게 연애할래?”
“그랬더니 뭐라고 합니까?”
이기상 하사가 눈을 반짝였다.
“뭐라고 하긴 뭐래! 알잖아, 군복 벗으면 거의 강남 스타일인 거.”
“확실히 소대장님 외모는 남자가 봐도 멋지지 말입니다.”
“에이, 또 그렇게까지 말해.”
“저는 거짓말 자체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뭐, 이 하사도 나름 잘 생겼어.”
“감사합니다.”
“아무튼 내가 허리를 딱 감싸고 나이트 클럽을 나오는데······.”
그때 지잉지잉 휴대폰이 울렸다. 윤태민 소위는 갑작스러운 전화에 짜증이 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발신자 이름을 확인한 윤태민 소위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누굽니까?”
“자, 잠깐 나 전화 좀 받고.”
그 말과 함께 윤태민 소위가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전화를 받았다.
“충성. 윤 소위입니다.”
-자네 지금 어디야?
“근무 중입니다.”
-근무 중이야? 그럼 통화는 힘든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자네, 내가 시킨 일은 잘하고 있나?
“네. 잘하고 있습니다.”
-잘하고 있다고?
“네!”
수화기 너머 홍민우 작전과장에게서 짧게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하아, 내가 말이야. 자네 중대장 어디서 뭐 하는지 일거수일투족 감시하고 즉각 즉각 보고하라고 했어? 안 했어?
“네. 그렇게 말씀은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보고를 안 해?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걸 왜 나한테 묻나!
윤태민 소위의 머리가 갑자기 멍해졌다. 뭔가 알고 있어야 장단을 맞출 텐데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몰랐다.
‘잠깐 사이에 중대장이 사고라도 친 거야? 뭐지?’
윤태민 소위가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어?
“죄송합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윤태민 소위가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자 홍민우 작전과장이 입을 열었다.
-핫! 됐네. 내가 자네에게 뭔 기대를 했는지······. 끊어!
제 할 말만 쏟아 낸 홍민우 작전과장이 전화를 끊었다.
“과장님? 과장님······.”
윤태민 소위가 재차 불렀지만 이미 전화는 끊어진 상태였다.
그때 이기상 하사가 슬쩍 물었다.
“작전과장님에게 전화가 온 겁니까?”
하지만 윤태민 소위는 신경질을 냈다.
“아, 시발 뭐야!”
윤태민 소위는 휴대폰을 바라보다가 이기상 하사를 봤다.
“이 하사.”
“네.”
“중대장님 뭐 사고 친 거 있어?”
“이번에 새로 오신 중대장님 말씀입니까?”
“그래.”
“저야 잘 모르죠. 그냥 멀리서 얼굴만 봤지. 제대로 대화도 나눠본 적이 없는데 말입니다.”
“야이씨, 자네는 제대로 하는 것이 뭐야?”
괜히 이기상 하사에 불똥이 튀었다. 순간 이기상 하사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 시발. 나한테 왜 이래.’
그러고 있는데 윤태민 소위가 바로 말했다.
“이 하사. 자네는 지금 중대장님 뭐 하고 계시는지 알아봐. 어서!”
“네, 알겠습니다.”
이기상 하사가 뛰어가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윤태민 소위가 중얼거렸다.
“아, 시발. 뭔데? 도대체 뭐냐고!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맘에 들지 않더만······. 진짜 오상진이고 나발이고 나 4중대 탈출하는 거 방해하기만 해봐. 내가 가만 안 둔다.”
윤태민 소위는 괜히 짜증을 내며 이를 빠드득 갈았다.
그 시각 송일중 대대장은 곽종윤 연대장과 함께 골프를 치고 있었다.
평택 17연대 옆에는 오래된 골프장이 있는데 근방에 새로운 골프장이 생기면서 이곳의 발길이 많이 끊어졌다. 그래서 한가한 시간에 가끔씩 우리 17연대 간부들이 와서 골프를 치며 회동을 갖곤 했다.
“연대장님 파이팅!”
뒤에 서 있는 간부들이 소리쳤다. 곽종윤 연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드라이브를 꺼냈다.
“자, 그럼 어디······.”
곽종윤 연대장이 혼잣말을 하며 슬쩍 골프공이 날아갈 방향을 응시했다. 그리고 힘차게 스윙을 돌렸다.
딱!
드라이브가 시원하게 돌아가고 골프공이 쭉 뻗어 나갔다. 원하는 곳에 골프공이 낙하하는 것을 보고 뒤에서 간부들이 박수를 쳤다.
짝짝짝!
“나이스 샷!”
“이야, 연대장님 진짜 골프 잘 치십니다. 그냥 한 번에 쭉쭉 뻗어 나갑니다.”
“허허허.”
“스윙 폼이 예술이십니다. 살아 있습니다.”
“내 폼이 그리 좋나?”
“여부가 있겠습니까?”
다른 이의 칭찬에 연대장이 껄껄 웃었다. 그때 송일중 대대장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울렸다.
“아, 뭐야.”
발신자 번호를 확인해 보니 홍민우 소령이었다.
“작전과장이?”
홍민우 소령에게 전화가 왔다는 것은 부대에 일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아, 뭐지?’
송일중 대대장은 살짝 불안한 얼굴로 연대장을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연대장님 저 잠시 전화 좀 받고 오겠습니다.”
“어어, 그래. 받아.”
“넵!”
송일중 대대장이 한쪽으로 이동해 전화를 받았다.
“어, 나야. 무슨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