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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697화 (697/1,018)

< 01. 대대로 가겠습니다(27)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27화

01. 대대로 가겠습니다(27)

“어디서 쓸래? 내무반에서 써도 상관없고.”

“내무실은 쪽팔립니다.”

“그럼 상담실에서 할래?”

“상담실에서 말입니까?”

“지금 상담실에 아무도 없어.”

박윤지 3소대장의 말에 조인범 상범이 씩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습니다.”

“그럼 따라와.”

박윤지 3소대장이 몸을 돌려 상담실로 향했다. 조인범 상병이 적당히 떨어져서 박윤지 3소대장의 뒤를 따라갔다.

‘확실히 몸매는 좋단 말이지.’

조인범 상병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박윤지 3소대장의 골반 쪽으로 향했다.

군복을 입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남자들과는 다른 골반 라인이 조인범 상병을 강하게 자극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상담실 문을 연 박윤지 3소대장이 조인범 상병에게 말했다.

“상담실에 들어가 있어. 내가 종이랑 볼펜 가져올 테니까.”

“예.”

조인범 상병은 먼저 상담실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박윤지 3소대장이 종이와 볼펜을 가져다줬다.

“자, 여기.”

“감사합니다.”

“나가 있을 테니까 천천히 써.”

박윤지 3소대장이 말을 하고는 몸을 돌리는데 조인범 상병이 불렀다.

“소대장님.”

“응?”

“저 경위서 쓰는데 뭐 없습니까?”

“뭐가 없냐니?”

“아니, 소대장님 부탁으로 이렇게까지 적는데 뭐 없냐 말입니다.”

박윤지 3소대장이 살짝 당황했다.

“인범아. 이건 내가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 진짜! 자꾸 그러시면 저 안 쓸 겁니다.”

조인범 상병이 볼펜을 탁자에 탁 내려놨다. 그러자 박윤지 3소대장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뭐가 필요한데.”

“먹을 것 좀 주십시오. 탄산이면 더 좋고 말입니다.”

“그거면 돼?”

“그리고 제가 다 쓸 때까지 앞에 앉아 계십시오. 저 혼자 있으면 꼭 벌 받는 것 같습니다.”

“하아. 알았어. 일단 쓰고 있어.”

박윤지 3소대장은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몇 분 후 초코파이 몇 개와 콜라 캔 하나를 들고 나타났다.

“자, 이거라도 먹어.”

초코파이를 본 조인범 상병이 인상을 썼다.

“초코파이는 물리는데······.”

“미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네.”

“알겠습니다. 제가 소대장님 성의를 봐서 열심히 한번 써보겠습니다.”

조인범 상병은 거들먹거리며 대답을 하고는 볼펜을 잡아 들었다. 경위서를 처음 쓰는 거라면 적잖게 당황했겠지만 지난번에 써본 적이 있기 때문에 기억을 더듬으며 빠르게 써 내려갔다.

그렇게 조인범 상병은 10분 만에 종이를 다 채워 버렸다.

“소대장님 다 끝났습니다.”

“응? 벌써 다 썼어?”

“네. 뭐 더 쓸 것도 없습니다.”

조인범 상병이 당당하게 말했다. 박윤지 3소대장이 경위서를 받아서 읽었다.

요령 피우지 않고 제법 빽빽하게 채워진 글을 보며 박윤지 3소대장이 가볍게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실제와 너무 다른 내용에 갑자기 어이가 없어졌다.

조인범 상병이 쓴 경위서는 거의 소설이나 다름 없었다.

‘이걸 이렇게 쓰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조인범 상병은 김호동 하사의 부상과 자신은 아무 관련이 없는 것처럼 글을 썼다.

<밤에 취침을 위해 누웠는데 잠이 안 와 애들과 가볍게 수다를 떨었습니다. 그런데 당직사관이던 김호동 하사가 들어와 떠든 사람을 잡겠다며 불을 켰습니다.

불을 켜서 잠을 자고 있던 다른 분대원들이 전부 잠에서 깼습니다. 그래서 고참으로서 가볍게 항의를 했는데 김호동 하사가 다짜고짜 멱살을 잡고 밀쳐서 관물대에 부딪혀 타박상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내무반 밖으로 나가던 김호동 하사가 뭐에 미끄러졌는지 뒤로 넘어졌고 바닥에 머리를 강하게 부딪혔습니다. 김호동 하사는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거리며 신음했고 그 모습에 놀라 괜찮냐고 부축하려던 저를 다시 밀쳤습니다.

그때 뒤늦게 달려온 박윤지 3소대장이 김호동 하사를 데리고 나갔고 다시 소등을 하고 잠을 잤습니다.>

박윤지 3소대장이 어이없는 눈으로 조인범 상병을 봤다.

“인범아 이건······.”

“완전 괜찮지 말입니다. 이 정도면 신임 중대장님이라고 해도 아무것도 모를 겁니다.”

박윤지 3소대장이 경위서를 탁자에 내려놓고 다시 조인범 상병에게 밀었다.

“인번아 이렇게 쓰면 안 돼. 이번 사건 중대장님께서 어느 정도 알고 계신 내용이야. 그러니 사실대로······.”

“아, 미치겠네. 사실대로 뭘 어떻게 씁니까? 제가 술 먹고 지랄했다고 다 씁니까? 그렇게 적으면 소대장님은 괜찮은 겁니까?”

“이, 인범아. 그건······.”

“답답합니다. 제가 그렇게 적으면 소대장님께서도 피해를 보는 것 아닙니까? 저는 소대장님 생각해서 이렇게 적었는데 왜 그러십니까.”

박윤지 3소대장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알았어. 네 생각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이제 그만 돌아가 봐. 수고했어.”

“그럼 이제 가도 됩니까?”

“그래 가.”

“충성. 수고하십시오.”

조인범 상병이 상담실 문을 열고 나갔다. 박윤지 3소대장과 단둘이 앉아 있는 것도 좋지만 그렇다고 마음에도 없는 경위서를 계속 쓸 생각은 없었다.

조인범 상병이 나가고 박윤지 3소대장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 꼴통 새끼.”

그리고 조인범 상병이 쓴 경위서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날 저녁 일과를 마친 박윤지 3소대장은 김호동 하사가 입원해 있는 병원을 찾았다.

“김 하사님. 저 왔습니다.”

“어? 3소대장님이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자주 찾아뵀어야 하는데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바쁘신 거 아는데요 뭘.”

“그보다 김 하사. 몸은 좀 어떻습니까?”

“몸이요? 지금은 견딜 만합니다.”

“그럼 언제쯤 퇴원하십니까?”

박윤지 3소대장이 반색하며 물었다. 그러자 김호동 하사의 눈빛이 살짝 바뀌었다.

“3소대장님. 설마 그거 물어보러 이 저녁에 오신 겁니까?”

박윤지 3소대장이 바로 손을 흔들었다.

“아뇨. 그건 아니고······ 김 하사님 얼굴 보려고 온 겁니다.”

“제 얼굴을요?”

“그리고······ 죄송한데 경위서 한번 다시 써주시겠습니까?”

“경위서 말입니까? 그거 지난번에 써서 드렸지 않습니까.”

“아, 그게······ 지난번에 쓴 경위서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없어졌다고 말입니까? 없앤 것이 아니라?”

김호동 하사의 뼈있는 물음에 박윤지 3소대장의 눈빛이 작게 흔들렸다.

“그건······.”

당황하는 박윤지 3소대장을 보며 김호동 하사는 속으로 혀를 찼다. 아직까지 별다른 조치가 내려지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보아 이번 일을 덮으려 하는 거라 짐작은 했지만 경위서까지 없앴다니. 치미는 배신감을 억누르기 어려웠다.

김호동 하사가 박윤지 3소대장을 향해 짜증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주십시오.”

“네?”

“종이와 볼펜 주십시오. 안 가져 오셨습니까?”

“아, 아닙니다. 잠시만요.”

박윤지 3소대장은 서류 가방에서 종이와 볼펜을 꺼내 김호동 하사에게 건넸다. 그것을 받아 든 김호동 하사가 확인하듯 물었다.

“그런데 이거 누가 쓰라고 한 겁니까?”

“중대장님께서 받아오라고 하셨습니다.”

“이 대위님 말씀이십니까? 아니면 신임 중대장님 말슴이십니까?”

“신임 중대장님께서 받아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됐습니다.”

만에 하나 전임 4중대장이었던 이민식 대위가 경위서를 요구한 거라면 김호동 하사는 쓰지 않을 생각이었다.

비교적 상세하게 적었던 지난 경위서를 멋대로 파기하고 새 경위서를 요구했다는 건 자신의 입맛에 맞게 쓰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지난번에 만난 신임 중대장의 요구사항이라면 이야기는 달랐다.

‘그래. 한번 믿어보는 거지.’

마음을 다잡은 김호동 하사는 빠르게 경위서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박윤지 3소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입원실을 나갔다. 잠시 후 돌아온 그녀의 손에는 커피가 들려 있었다.

“이거 마시면서 하십시오.”

“네? 아, 감사합니다.”

박윤지 3소대장이 어렵사리 용기를 낸 거지만 김호동 하사는 커피를 받기만 하고는 다시 경위서를 쓰는 것에 집중했다. 어차피 오상진에게 전후 사정을 전부 얘기했기에 자질구레한 묘사들은 생략했다.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왜 했는지 6하원칙에 의거해 최대한 간단 명료하게 상황을 적었다.

<당직사관으로 근무를 하던 중 새벽에 화장실을 가려고 나오던 중 소란스러움이 느껴졌습니다. 3소대 내무실 문을 여니 조인범 상병을 비롯해 두 명의 병사가 술판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 부분을 지적하며 징계를 주겠다고 하자 조인범 상병이 비아냥거리며 항명을 했고, 조인범 상병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몸싸움이 발생했습니다.

그때 관물대에 넘어진 조인범 상병이 내무실을 나가려던 제 뒷머리를 무언가로 가격해서 쓰러졌습니다.

충격을 받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저를 조인범 상병이 발로 짓밟았고 그 과정에서 온몸에 타박상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박윤지 3소대장이 나타나 의무대로 갔고 의무대에서 치료가 어려워 외부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태입니다.>

이렇게 적은 후 경위서와 볼펜을 다시 박윤지 3소대장에게 건넸다.

“여기 있습니다.”

박윤지 3소대장이 경위서를 보고는 살짝 당황했다.

“어? 기, 김 하사님 이것은······.”

김호동 하사의 눈빛이 차갑게 바뀌었다.

“왜 그러시죠?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니면 좀 더 노골적으로 적어야 합니까?”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적으시면.”

“가져가십시오.”

“그래도 이건 좀······.”

“가져가십시오. 이미 중대장님께 다 말씀드린 내용입니다.”

“네?”

박윤지 3소대장이 무슨 소리인지 잠깐 동안 인지하지 못했다.

“중대장님께서 다 알고 계시는 내용이란 말입니다.”

“그게 무슨······.”

“엇그제 중대장님이 병실로 찾아 오셨습니다. 그래서 중대장님께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짐 없이 전부 말씀드렸습니다.”

“······!”

“3소대장님께는 미안한 말이지만 저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중대장님께서 이미 다 알고 계시는데 이제 와서 거짓말을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도······.”

박윤지 3소대장은 경위서를 쥔 채 어떻게 할 줄을 몰랐다. 김호동 하사가 답답한지 입을 열었다.

“이럴 거면 좀 더 일찍 오셔서 도와 달라고 말씀을 하시지 그랬습니까?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그동안 함께 일한 전우애가 있는데 3소대장님이 진심으로 부탁했다면 저도 아마 들어드렸을 겁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경위서 받아가셔서는 연락 한 번 주셨습니까?”

“······미안합니다.”

박윤지 3소대장이 고개를 푹 숙였다.

“김 하사가 그리 힘든 줄 몰랐습니다.”

“하아. 3소대장님. 힘든 줄 몰랐다는 게 말이 됩니까? 진짜 너무하십니다.”

“······.”

“아무튼 전 다 써드렸고 그거 가지고 돌아가십시오.”

김호동 하사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박윤지 3소대장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왜, 전부 다 나한테만 그래······.”

병실을 나서는 박윤지 3소대장이 울상을 지었다. 조인범 상병은 설득하기 어려워서 김호동 하사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는데 김호동 하사 때문에 일이 커질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진 박윤지 3소대장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어, 박 소위. 잘 지내지?

“중대장님.”

-목소리가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저,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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