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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696화 (696/1,018)

< 01. 대대로 가겠습니다(26)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26화

01. 대대로 가겠습니다(26)

김태호 상사는 귀찮았지만 그래도 아끼는 후배 놈이라 차를 몰고 찾아갔다.

밖으로 나와 근처 포장마차에 앉았다.

김태호 상사가 김호동 하사의 잔에 먼저 술을 따라주었다. 김호동 하사가 술병을 건네받고 잔에 따르려는데 김태호 상사가 손으로 막았다.

“됐어. 차 가져왔어.”

“에이, 선배님. 그럼 전 무슨 맛으로 술을 마십니까. 혼자 마시면 맛 없습니다.”

“새끼가······. 여기까지 온 것이 어디야. 그보다 병원에 입원했으면 그냥 잘 치료받고 퇴원이나 할 것이지. 뜬금없이 술을 사달라고 해.”

“아까 낮에 중대장님 왔다 갔습니다.”

“중대장? 누구? 이민식 대위?”

“에이, 그 인간이 오겠습니까.”

“그럼? 오상진 대위?”

“네.”

“오, 벌써부터 중대장이라고 부르는 거야?”

“중대장님을 중대장이라고 불러야지, 그럼 뭐라고 부릅니까.”

김태호 상사가 피식 웃었다. 사실 오상진을 처음 봤을 때 약간 독특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새 김호동 하사의 마음을 움직인 모양이었다.

“그래서 뭐? 날 불러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그 뭐냐. 전역 안 하고 나랑 같이 계속하겠다는 거야?”

“미쳤습니까. 여길 어떻게 들어왔는데 옷을 벗긴 왜 벗습니까. 그 미친 새끼들 때문에 내가 옷을 벗는 건 아니지 말입니다.”

“그래, 잘 생각했어. 내가 뭐라고 그랬어. 네 군 생활은 군 생활이고, 그런 쓰레기 같은 놈들은 앞으로 살다 보면 수없이 만나게 될 거야. 그때마다 옷 벗네, 마네 그럴 거야? 네 인생은 네가 챙겨야지.”

“끔직한 소리 하십니다. 다시는 이런 부대에서 일하고 싶지 않습니까.”

“그게 어디 네 맘대로 되냐. 그것 보다 오 대위가 와서 뭐라고 해?”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아무 말도 안 하기는······. 무슨 말이 있었으니까 네가 달라진 걸 거 아니야.”

“진짜 별말씀 없으셨습니다.”

“그래?”

“자, 여기 오돌뼈요!”

그때 마침 포장마차 아주머니가 안주를 건넸다. 그것을 받은 후 입에 넣고 오드득 오드득 씹었다. 김호동 하사가 젓가락을 놓으며 말했다.

“그냥 이번 중대장님은 다를 것 같습니다. 그냥 이번 중대장님께 마지막 희망을 걸어볼까 합니다.”

김호동 하사와 나누었던 그 얘기를 떠올린 김태호 상사가 쓴웃음을 짓고는 조인범 상병에게 말했다.

“어쨌거나 내가 본 이상 그냥 둘 수는 없어. 지금 당장 내무실로 돌아가.”

“아, 그냥 봐주십시오.”

“셋 셀 때까지 복귀한다. 안 그러면 나도 절차대로 할 수밖에 없어.”

조인범 상병이 잔뜩 인상을 쓰며 일어났다.

“하아. 진짜······.”

“진짜?”

“아닙니다. 네, 갑니다.”

조인범 상병이 투덜투덜거리며 전자레인지 돌려놓은 냉동만두를 건빵 주머니에 고이 챙겨 넣었다. 그리고 내무반에서 챙겨 온 맛스타를 한입에 털어 넣고는 탁자에 탁 하고 내려놓았다.

“야 인마! 맛스타 뭐야?”

“다 마신 겁니다.”

“그럼 이거 치우고 가야지!”

“언제는 빨리 들어가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빨리 와서 이거 치워!”

“저 들어갈 겁니다. 알아서 하십시오.”

조인범 상병이 몸을 홱 돌려 부대 안으로 들어갔다. 김태호 상사가 인상을 쓰고는 빈 맛스타 깡통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하아. 진짜 저 자식을 어떻게 해야 하나.”

무겁게 한숨을 내쉬던 김태호 상사가 오상진을 떠올렸다.

“중대장님. 뭐라도 좋으니까 한번 해보십시오.”

김태호 상사도 오상진에게 작게나마 희망을 가져보기로 했다.

26.

오후 일과가 끝이 나고 3소대 인원이 하나둘 내무실로 복귀를 했다.

“왔냐?”

조인범 상병은 침상에 누운 채로 어딘가에서 꺼낸 과자를 오물거리며 소대원들을 맞이했다.

“와, 진짜 조 상병님 뭐 하십니까.”

“왜 인마.”

“완전 꿀 빨고 있습니다. 꿀벌이십니까?”

“뭐 이 새끼야. 꼬우면 너도 영내대기 하든가.”

몇몇 병사들이 부러워하자 조인범 상병이 과자를 툭툭 던지며 장난을 쳤다.

그때 조인범 상병의 오른팔 왼팔이라고 불리는 임상기 일병과 추영호 일병이 나타났다.

“야! 오늘 뭐 했냐?”

임영기 일병이 장구류를 풀며 말했다.

“말도 마십시오. 무슨 말도 안 되는 훈련했습니다.”

“훈련? 진짜 훈련 했다고? 우리 중대가?”

“네. 아무래도 신임 중대장이 미쳤나봅니다. 갑자기 훈련을 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새끼야. 어떤 훈련이냐고!”

“모르겠습니다. 그냥 수색훈련 비슷한 것을 시켰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추영호 일병이 입을 열었다.

“그게 아니라 산만 죽어라 탔습니다.”

“산을? 갑자기?”

조인범 상병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추영호 일병이 어깨를 으쓱했다.

“모르지 말입니다. 아무래도 우리를 뺑뺑이 돌리고 싶었나 봅니다.”

“아무튼 고생했네.”

조인범 상병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임영기 일병이 슬쩍 물었다.

“그런데 조 상병님은 언제까지 꿀 빠실 겁니까?”

“뭐 인마. 나라고 꿀을 빨고 싶어서 빨겠냐? 영내 대기잖아! 내무실 대기! 짜식이 알지도 못하면서.”

“와, 이게 무슨 내무실 대기입니까.”

그때 뒤늦게 박민태 병장이 쓰윽 내무실 들어왔다. 조인범 상병이 바로 경례를 했다.

“충성. 수고하셨습니다.”

“어어, 그래.”

조인범 상병의 성의 없는 경례에 박민태 병장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자신의 장구류를 정리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3중대지만 박민태 병장은 평범한 성격이었다. 4중대라고 해서 모두가 꼴통 병사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꼴통 병사들로만 채울 수도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반 병사들이 섞이게 되는데 박민태 병장도 그런 부류 중 한 명이었다.

평범한 병사들이 4중대에 오면 보통은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박민태 병장은 4중대의 분위기에 빠르게 적응했다. 그래서 바로 밑 후임인 조인범 상병이 난리를 쳐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고참이랍시고 이런저런 간섭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조인범 상병도 박민태 병장은 제법 고참 대접을 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뒤이어 들어온 홍인규 병장의 사정은 달랐다.

“홍 병장님 고생하셨습니다.”

조인범 상병이 약간 비아냥거리듯 말을 하자 홍인규 병장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어어, 그, 그래······.”

홍인규 병장이 자신의 자리로 후다닥 뛰어가 장구류를 벗었다. 그 모습을 보며 조인범 상병이 피식 웃었다.

“어이구 저 병신······.”

홍인규 병장이 보란 듯이 비웃었지만 홍인규 병장은 애써 못들은 척 굴었다.

그러자 임상기 일병이 주변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에이, 또 왜 그러십니까. 우리 차기 분대장님한테 말입니다.”

“차기 분대장은 븅신아! 김 병장하고 홍 병장하고 한 달 차이밖에 안 나는데 무슨 분대장을 달아. 최소 두세 달은 차이가 나야지.”

“아, 그런 겁니까? 원래 차례로 다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라더라.”

“그럼 다음 분대장은 누구입니까?”

“그다음? 흠······. 글쎄. 순서상 내가 해야 하나?”

조인범 상병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임상기 일병이 바로 알랑방귀를 꼈다.

“오오, 그럼 조 상병님께 잘 보여야 하는 겁니까?”

“그러니까 새끼야. 내 말 잘 들으라고.”

그때 내무실로 김성민 병장이 들어왔다. 김성민 병장은 어수선한 내무반을 훑고는 한마디 했다.

“자, 잡담 그만하고. 빨리 정리하고 저녁 먹을 준비 하자.”

“네. 알겠습니다.”

갑자기 들어와 군기를 잡는 김성민 병장이 못마땅했던지 조인범 상병이 나직이 코웃음을 쳤다. 그러자 김성민 병장이 조인범 상병을 보며 물었다.

“조인범. 왜? 할 말 있어?”

“아닙니다.”

“할 말 있으면 해.”

“없는데 말입니다.”

빈정거리는 듯한 조인범 상병의 태도에 김성민 병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조인범 상병은 그런 김성민 병장은 신경 쓰지 않고 임상기 일병과 다시 시시덕거렸다.

“그런데 조 상병님은 김 병장한테 왜 그럽니까?”

“내가 뭐?”

“뭔가 좀 띠꺼운 것 같지 말입니다.”

“띠꺼운 거 맞지. 몇 개월 일찍 들어온 거 가지고 유세 떠는데, 기분 좋겠냐?”

3소대 최고참인 김성민 병장과 조인범 상병은 반년 정도 차이가 났다. 손자 군번이라는 1년 차이까진 아니지만 철저하게 선을 지키는 박민태 병장이나 자신이 한번 손을 봐줬던 홍인규 병장처럼 편한 상대는 아니었다.

그때 내무실 문이 열리고 박윤지 3소대장이 들어왔다. 김성민 병장이 바로 일어나 경례했다.

“충성. 3소대 정비 중.”

“쉬어.”

“쉬어.”

박윤지 3소대장이 일단 내무실을 쭉 훑어봤다. 그러곤 입을 열었다.

“오늘 훈련받느라 고생했다.”

박윤지 3소대장이 대답을 하고는 시선이 조인범 상병에게 향했다.

“인범아.”

“상병 조인범.”

박윤지 3소대장의 표정이 굳어지며 나직이 말했다.

“나 좀 보자.”

“지금 말입니까?”

“그래.”

“무슨 일이십니까?”

조인범 상병 역시 인상을 굳히며 물었다. 박윤지 3소대장이 말했다.

“일단 나와봐.”

박윤지 3소대장이 먼저 몸을 돌려서 나갔다. 그러자 조인범 상병이 짜증 섞인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임상기 일병이 눈치 없이 말했다.

“뭡니까? 우리 소대장님 혹시 조 상병님한테 데이트 신청한 겁니까?”

“새끼야. 장난치지 마.”

조인범 상병이 한마디 하고는 내무실을 나가려다 문 옆에 걸어놓은 거울을 봤다. 그러고는 입가에 묻은 과자부스러기를 털어낸 뒤 오른손으로 짧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X발, 확실히 잘 생겼단 말이지.”

그 말에 임상기 일병이 헛구역질을 하는 시늉을 했지만 조인범 상병은 당당히 내무실을 나갔다.

저 만치서 박윤지 3소대장이 팔짱을 낀 채 기다리고 있었다.

“소대장님. 무슨 일입니까?”

혹시나 임상기 일병의 말처럼 오붓한 시간을 보내려는 건가 싶어서 조인범 상병이 기대 어린 얼굴로 물었다.

하지만 박윤지 3소대장이 조인범 상병을 부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인범아. 미안한데 너 경위서 한 장 써야 할 것 같아.”

“네? 경위서 말입니까?”

“그래.”

“아니, 그걸 왜······.”

조인범 상병의 살짝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갑자기 경위서라니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이었다.

“이번에 중대장님 새로 오신 거 들었지?”

“네.”

“중대장님께서 받아오라고 해서 말이야.”

“하아······ 그거 소대장님께서 써주시면 안 됩니까?”

조금 전까지 실실거리던 조인범 상병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러자 박윤지 3소대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인범아. 지난번에도 소대장이 써줬잖아.”

“그러니까 한 번 더 써주십시오. 어차피 똑같이 적어야 하지 않습니까.”

“지난번 경위서는 파기해서 없어. 그리고 이번에는 네가 직접 써야 할 거 같아.”

박윤지 3소대장이 제법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조인범 상병은 그 말이 우습게 들렸다.

“그러지 말고 그냥 써주십시오.”

“인범아. 방금 소대장이 말 했잖아. 이번에는 네가 써야 할 거 같아.”

“아, 진짜! 소대장님께서는 그런 것도 안 해주십니까?”

조인범 상병이 짜증을 냈지만 박윤지 3소대장은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이번에는 진짜 안 돼! 미안하지만 네가 써야 할 것 같아.”

조인범 상병이 인상을 쓰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이, 시발······. 이 정도 하면 알아들었는데······.’

조인범 상병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써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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