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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695화 (695/1,018)

< 01. 대대로 가겠습니다(25)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25화

01. 대대로 가겠습니다(25)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때 잠을 자서 못 봤습니다.”

“뭔가 소리는 있었지만 어두워서 안 보였습니다.”

“제가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김호동 하사가 그냥 비틀거리다가 픽 하고 쓰러졌습니다.”

소대원들은 자신이 보고 들은 걸 단편적으로만 전달했다. 그중에 일부는 노골적으로 조인범 상병의 편을 들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조인범 상병이 어딘가로부터 반입한 소주병으로 김호동 하사의 뒤통수를 가격했다고 이실직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아, 시발 미치겠네.”

그런 정황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이민식 대위는 이맛살만 찌푸렸다. 그렇게 잠깐 고민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알았어. 일단 이 일은 중대장이 해결할 테니까. 다른 사람한테 말하지 마.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김호동 하사가 입원한 병원이 어디야?”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알아서 확인하고 별일 아니라면 빨리 들어오라고 해. 김 하사도 그래. 도대체 생각이 없어, 생각이. 가뜩이나 꼴통 중대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데 부사관까지 나서서 일을 키우면 어쩌자는 거야!”

그날 오후. 박윤지 3소대장은 김호동 하사를 찾아가 대략적인 상황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담백하게 경위서를 작성해서 이민식 대위에게 가져갔다.

그것을 확인한 이민식 대위는 박윤지 3소대장이 보는 앞에서 경위서를 쫙쫙 찢었다.

“어제 내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말이야. 이 일은 조용히 없는 걸로 하는 것이 좋겠어.”

“네? 그건······.”

박윤지 3소대장이 당황하며 말했다. 김호동 하사가 쓰러진 이후로 조인범 상병으로부터 구타를 당했다는 사실을 첨부했는데도 이민식 대위가 저렇게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자 이민식 대위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왜? 김 하사 때문에 그래?”

“······.”

“김 하사는 걱정하지 마. 내가 잘 타이를 테니까. 그리고 막말로 김 하사도 이번 일로 옷을 벗고 싶지는 않겠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박윤지 3소대장이 잔뜩 의문을 가지며 물었다. 이민식 대위가 아무렇지 입을 열었다.

“나도 따로 알아봤는데 김 하사가 먼저 사병 멱살을 잡았다더만. 당직 서면서 새벽까지 TV만 봤고. 그게 지금 부사관이 할 짓이야? 애당초 김호동 하사도 원인제공을 했잖아. 그래서 쌍방폭행이 나왔고.”

“······.”

“이 일이 커져 봐야 김호동 하사에게도 좋을 거 없어. 괜히 김호동 하사도 진급만 늦어진다 말이야.”

이민식 대위는 마치 김호동 하사를 위하는 것처럼 말을 했다.

“그리고 자네는 어떤 것 같아?”

“네? 저 말입니까?”

박윤지 3소대장은 갑자기 자기가 거론되자 눈을 크게 했다.

이민식 대위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당연하지. 자네 소대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야. 잘 생각해 봐. 이 일이 알려지면 자네라고 해서 달라질 것 같아? 자네도 출셋길 막히는 것은 똑같아. 왜? ROTC출신이라 출세에 대한 미련이 없어?”

이민식 대위는 박윤지 3소대장의 약점을 후벼 팠다. 박윤지 3소대장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

“왜? 할 말이 없어? 말해봐. 미련이 없는 거야?”

이민식 대위가 재차 물었다. 박윤지 3소대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민식 대위가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박윤지 3소대장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박윤지 3소대장의 몸이 움찔했다.

“박 소위. 일이 커져봐. 박 소위도 박 소위지만 내 입장은 뭐가 돼.”

“어, 그게······.”

“설마 자네 내 앞길을 막고 싶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지?”

“그건 아닙니다.”

“그래. 그러니까, 웬만하면 좋게 좋게 넘어가자. 알았지?”

박윤지 3소대장의 어깨를 감싼 이민식 대위의 손에 지그시 힘이 들어갔다. 그 압력 앞에 박윤지 3소대장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김호동 하사는 자네가 적당히 잘 말해봐. 이대로 잘 넘어가자고.”

이민식 대위는 얘기가 잘 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박윤지 3소대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조인범 상병은······.”

“누구? 아, 그 새끼?”

“네.”

“어후, 마음 같아서는 영창에 처넣고 싶은데······. 그 새끼는 일단 영내 대기시키고 아무것도 시키지 마. 화장실 밥 먹을 때 빼고는 내무실에서 나오지 말라고 해.”

“알겠습니다.”

옛 기억을 떠올리며 박윤지 3소대장이 가만히 서 있자 오상진이 재차 물었다.

“3소대장, 박 소위!”

“네? 네네.”

상념에서 깬 박윤지 3소대장이 바로 답했다. 오상진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보고서! 보고서 어디 있냐고 물었어.”

“······.”

박윤지 3소대장이 당황했다. 차마 보고서를 이민식 대위가 찢어버렸다고 말을 할 수 없었다.

“그, 그것이······ 제가 올렸는데 사라진 모양입니다.”

“올린 건 맞아?”

“네, 확실히 올렸습니다.”

박윤지 3소대장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표정을 보니 딱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사라지다니. 그게 무슨 소리지?’

오상진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한 가지를 유추해 봤다.

4중대가 말이 많기 때문에 중간에서 누군가 처리를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여기 없으면 없는 거니까. 번거롭더라도 3소대장이 다시 작성해서 보고서를 올리도록.”

“네?”

박윤지 3소대장의 눈이 커졌다. 오상진이 그런 박윤지 3소대장을 똑바로 응시했다.

“왜? 힘들어?”

“그건 아닙니다.”

“사후 보고서에는 김호동 하사의 경위서와 조인범 상병의 경위서까지 포함되어 있어야 해. 알았어?”

“네?”

오상진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진짜 왜 같은 말 두 번 하게 만들어. 내 말이 안 들려?”

“아, 아닙니다.”

박윤지 3소대장이 당황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오상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 건 기본으로 하는 거야. 기본! 그만 나가봐.”

“네.”

박윤지 3소대장이 중대장실을 나왔다. 그러곤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갑자기 일이 왜 이렇게 되었지?”

25.

그 시각 조인범 상병은 침상에 드러누워 있었다.

모두 훈련과 일과를 하러 나간 상태였다. 오직 영내대기를 명받은 조인범 상병만이 텅 빈 내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잠시 주변이 조용해지길 기다렸던 조인범 상병은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내무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좌우를 확인한 후 씨익 웃었다.

“아무도 없지?”

조인범 상병이 중얼거리고는 내무실을 빠져나와 어딘가로 빠르게 이동했다.

조인범 상병이 향한 곳은 바로 PX였다.

“아침도 걸렀으니 PX에서 맛난 거라도 사 먹어야지.”

조인범 상병은 전투복 하의에 손을 집어넣고 PX로 들어갔다.

“아휴, 이놈의 국방부 시계는 어찌나 느리게 돌아가는지.”

조인범 상병은 냉동만두 하나를 집어 들고 전자렌지에 넣었다. PX병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조 상병님 계산부터 하시고······.”

“야이, 새끼야. 배고파서 그래. 배고파서.”

“그래도 계산은······.”

“외상이야.”

“네?”

“지금 돈 없어. 외상으로 해.”

“안 됩니다. 조 상병님 앞으로 외상값이 3만 원이나 됩니다.”

“시발! 내가 안 주냐? 안 줘?”

“진짜 안 되는데······.”

PX관리병이 울상이 되었다.

“그럼 조금이라도 갚으십시오.”

“이 자식이······.”

“복지관 관리관님 오시면 진짜 난리 납니다. 아마 조 상병님에게 찾아갈지도 모릅니다.”

PX 관리병의 말에 조인범 상병이 움찔하더니 주머니를 뒤져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던져줬다.

“야, 이거 먹고 떨어져.”

“하아······. 이걸로도 안 되는데. 냉동만두 값도 안나오겠구만.”

PX병이 투덜거렸지만 그나마 천 원이라도 받은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PX병이 장부에 기입하며 말했다.

“아무튼 이번에는 이렇게 넘어가지만 다음번에는 외상값 갚아줘야 합니다. 이번 달 말일이라 복지관 관리관님이 장부 확인하십니다. 그때는 저도 어떻게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알았어, 새끼야! 진짜 더럽게 투덜거리네. 누가 돈 떼어먹어!? 아무튼 만두 맛 떨어지게 말이야.”

조인범 상병이 잔뜩 인상을 쓰며 말했다. PX관리병 눈치 볼 것 같아서 안에서 먹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초봄이라 아직 밖은 쌀쌀했다. 조인범 상병은 냉동만두 하나를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벤치로 가서 앉았다.

“와, 시발. 날씨 좋네.”

그렇게 팔자 좋게 시간을 때우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왔다.

“조인범 여기서 뭐 해?”

조인범 상병이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그곳에 김태호 상사가 서 있었다.

조인범 상병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했다.

“충성.”

경례하는 조인범 상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시발, 좆 됐네. 왜 하필 여기서 행보관을 만나냐.’

김태호 상사가 조인범 상병에게 다가갔다.

“너 여기서 뭐해?”

“영내 대기 중입니다.”

“영내 대기? 너 내무실 대기 아니었냐?”

“맞습니다.”

“맞아? 그런데 여기가 내무실이야? PX가 내무실이냐고.”

김대호 상사가 따지듯이 물었다. 조인범 상병은 눈 하나 까닥이지 않고 말했다.

“넌 내무실 대기가 무슨 뜻인지 몰라?”

“무슨 뜻입니까?”

“네가 잘못을 했으니 내무실에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대기하라는 거잖아. 이렇듯 싸돌아다니지 말고 말이야. 너 그냥 영창 가고 싶어서 안 달이 났구나.”

“왜 저한테 그러십니까. 저도 어떻게 보면 피해자입니다.”

“피해자? 네가 어떻게 피해자야.”

“김 하사가 먼저 저를 쳤습니다.”

“어이가 없네. 네가 술 먹고 깽판 친 것은 생각 안 나고?”

“물론 내가 잘못은 했지만 좋게 말씀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먼저 손찌검부터 합니까.”

“그래서 넌 새끼야. 부사관을, 그것도 간부를 말이야. 잘근잘근 밝았냐? 너 말이야, 전시였으면 총살감이야!”

“에이, 무슨 말씀을 또 과격하게 하십니까. 그리고 제가 언제 잘근잘근 밟았다고 그러십니까. 김호동 하사가 그럽니까?”

조인범 상병이 능글맞게 말했다. 그런 조인범 상병의 행동이 맘에 들지 않은 김태호 상사였다.

“뭐라고?”

“아놔, 진짜······. 김 하사 은근히 입이 쌉니다.”

“하아, 이 새끼가 진짜······.”

김태호 상사의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섣불리 손 댈 수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완전군장으로 연병장을 뺑뺑이 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괜히 나섰다가 구설수에 오를까 겁이 났다.

‘이 자식이······.’

김태호 상사는 일단 크게 숨을 내쉬며 참았다. 4중대 병사들 중에 멀쩡한 병사는 손에 꼽힌다지만 조인범 상병은 그중에서도 인간말종이었다. 여기서 뭐라고 또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를 녀석이었다.

‘아무튼 사이코 새끼······. 대대장님도 포기한 새끼니 말 다 했지.’

김태호 상사의 말마따나 송일중 대대장 역시도 조인범 상병의 얘기만 나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지경이었다. 그래서 웬만하면 조인범 상병을 자극하지 말라는 지시까지 내려와 있었다.

‘진짜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김태호 상사는 조인범 상병을 노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어제 김호동 하사에게 밤 늦게 전화가 왔던 것이 떠올랐다.

“어? 왜? 늦은 시각 아니야?”

-저 술 한잔 사 주십시오.

“너 괜찮아. 술 마셔도?”

-저 나이론 환자입니다.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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