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 대대로 가겠습니다(23)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23화
01. 대대로 가겠습니다(23)
“어쩌다가 이리된 겁니까?”
“그게······ 행보관님께 말씀 못 들으셨습니까?”
“자세하게는 못 들었습니다. 그냥 폭행 사건이 있었다는 간략한 말만 들었습니다. 물론 서류를 통해 확인할 수도 있겠지만 가능하면 김 하사에게서 직접 듣고 싶어서 말이죠.”
오상진이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호동 하사는 프로필에 나온 것 이상으로 건장한 체격의 사내였다. 누구에게 맞고 다닐 느낌은 아니었다. 그런 김호동 하사가 폭행 사건으로 병원에 입원을 했다고 하니 솔직히 믿기지가 않았다.
그러자 김호동 하사가 나직이 한 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게······ 사실 어떻게 된 일이냐면······.”
쓴웃음을 짓던 김호동 하사가 그날 저녁의 일을 떠올렸다.
일주일 전.
김호동 하사는 당직사관이 되어 근무를 하고 있었다.
저녁 점호를 마친 김호동 하사는 당직사병인 이진호 병장과 함께 상황실에 들어왔다.
“다 끝났지?”
“네. 이제 대대에 보고만 하면 끝입니다.”
“알았다. 지금 보고해.”
“네. 알겠습니다.”
이진호 병장이 곧바로 수화기를 들었다. 잠시 후 수화기 너머 음성이 들려왔다.
“통신보안 4중대 상황실 이진호 병장입니다. 현재 인원 이상 없고, 환자도 없습니다.”
-이상 없어? 정말?
“네, 없습니다.”
-하긴 이상이 있어도 없다고 그래야지. 알겠다.
“······.”
이진호 병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표정만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더 보고할 것은?
“없습니다.”
-그래 수고해라.
상대방에서 전화를 끊었다. 이진호 병장도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하아······.”
“왜?”
김호동 하사가 물었다. 이진호 병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또 그래?”
“······네에.”
“시발. 도대체 언제까지 그런 소릴 할 거야. 진짜······.”
김호동 하사도 수화기 너머로 무슨 말이 나왔을지 대번에 눈치를 챘다.
“빨리 여길 뜨든가 해야지.”
그러자 이진호 병장이 몸을 돌려 물었다.
“김 하사님 혹시 전역 생각하십니까?”
“전역? 전역은 무슨.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 그건 그렇고 진짜 별일 없는 거지?”
“넵! 별일 없습니다. 제가 다 확인했습니다.”
“확인 다 하긴······. 저기 뒤쪽 창고 쪽도 확인했어? 열쇠 잠근 것도 확인했고?”
“넵!”
“근무자는?”
“위병소와 탄약고까지 확인 완료했습니다.”
“알았다.”
김호동 하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TV 리모컨을 들었다. 이진호 병장도 TV 쪽으로 시선이 가며 말했다.
“정 불안하시면 김 하사님께서 한 바퀴 순찰하고 오셔도 됩니다.”
“됐어. 네가 확인 다 했다며.”
“그건 그렇지만······.”
“그럼 된 거지.”
본래는 당직사관인 김호동 하사가 직접 눈으로 챙기며 확인해야 했지만 김호동 하사는 고생을 자초할 생각이 없었다.
노력해서 뭔가 달라질 수 있는 부대라면 몰라도 이곳 4중대는 뭘 해도 안 되는 곳이었다.
김호동 하사는 의자를 뒤로 눕혀서 아주 편안한 자세로 TV를 봤다. 그렇게 정신없이 TV를 보다 보니 어느새 애국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김호동 하사가 시계를 확인하니 새벽 1시가 넘어간 상태였다.
“벌써 시간이······.”
김호동 하사가 슬그머니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저만치 옆에서 이진호 병장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함께 고생해야 하는 당직사병이라 조는 것까지는 이해가 가는데 대놓고 잠을 자기로 마음먹은 듯 의자까지 끌어당겨서 다리를 걸친 채 잠이 들었다.
“어휴. 이 새끼 빠져가지고는······. 하아, 됐다 됐어. 말을 말자.”
김호동 하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에나 다녀와야지.”
김호동 하사는 상황실을 나가 화장실로 걸어갔다. 복도를 걸어가는데 내무실 쪽에서 약간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잘못 들었나 싶었는데 웃음소리도 섞인 게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다.
“뭐야, 이 소린······?”
김호동 하사가 뚜벅뚜벅 걸어갔다. 3소대 내무실 앞까지 가니까 문제의 소리가 더욱 확실하게 들려왔다.
그때 화장실에서 나오던 불침번이 후다닥 뛰어왔다.
“추, 충성.”
“야, 너 불침번 제대로 서는 거 맞아?”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게 뭐야? 지금 3소대 내무실 안에서 소리 들리잖아.”
“조용히 시키겠습니다.”
불침번이 바로 말했다.
김호동 하사는 슬쩍 불침번 계급을 확인했다. 말하는 게 상병쯤이나 되는 줄 알았는데 일병이었다.
“됐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불침번이나 제대로 서!”
“아, 아닙니다. 제가······.”
불침번이 막았지만 김호동 하사가 손을 저었다.
“됐다니까.”
김호동 하사가 대답을 하고는 문을 열었다. 그런데 내무실 중앙에 여러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각자 손전등이 들려 있었다.
“이놈의 새끼들! 안 자고 뭐 하는 거야!”
김호동 하사가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자 모여 있던 3소대 인원들이 화들짝 놀라며 이쪽을 바라봤다.
그중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인물은 바로 조인범 상병이었다.
“야, 조인범. 너 지금 뭐 하냐?”
“······.”
조인범 상병이 입을 다물었다. 사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깜짝 놀라는 것과 동시에 허겁지겁 치우는 게 정상이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은 눈이 마주쳤는데도 그 자리에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그때 임상기 일병이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를 했다.
“충성.”
그러자 옆에 있던 조인범 상병이 한마디 툭 던졌다.
“야, 시발. 이 와중에 뭔 충성이야.”
추영호 일병도 실실 쪼개며 말했다.
“충성은 에바입니다.”
세 사람은 자기들끼리 킥킥 웃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당황한 김호동 하사가 말했다.
“너희들 뭐 하냐?”
그러자 조인범 상병이 슬쩍 일어나더니 말했다.
“근무가 너무 힘들어서 말입니다. 그래서 저희끼리 오랜만에 한잔하고 있었습니다.”
김호동 하사의 눈이 커졌다.
“뭐? 한잔?”
김호동 하사의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그저 부식이나 까 먹고 있을 줄 알았던 그곳에는 진짜 소주병과 안주로 과자가 널브러져 있었다.
게다가 조인범 상병을 보니 눈빛에 취기가 올라와 있었다.
“이런 미친 새끼들을 봤나! 너희들 정신 나갔어! 야, 조인범 이거 어디서 났어?”
그러자 조인범 상병이 인상을 썼다.
“아. 진짜 또 왜 이러십니까. 같이 뺑이치는 처지에 존나 빡빡하게 하시네. 김 하사님을 챙기지 않아서 그럽니까? 자, 여기 한 잔 드립니까?”
조인범 상병이 살짝 몸을 비틀거리며 말했다. 그럴수록 김호동 하사의 얼굴은 점점 더 일그러졌다.
아무리 4중대가 꼴통 집단이라고 해도 부대 안에서 그것도 병사들끼리 술을 마시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이 자식들이 진짜······. 이거 빨리 안 치워!”
김호통 하사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런데 김호동 하사의 말에도 병사들이 움직이지 않았다. 모두의 시선이 조인범 상병에게 향해 있었다.
마치 진짜 이거 치웁니까, 라며 조인범 상병에게 묻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에 정말 화가 난 김호동 하사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이 새끼들이 진짜! 다 뒤져볼래!”
김호동 하사가 바닥에 널브러진 과자와 종이컵들을 전투화로 차버렸다. 그러자 과자와 잔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자 이 소란 중에도 잠을 자고 있던 소대원들이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일어났다.
“뭐, 뭐야?”
“누구야!”
3소대 인원 전부다 잠에서 하나둘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소주병까지 넘어져 소주가 흘러내렸다.
“아이 씨발! 내 소주!”
조인범 상병은 냉큼 소주병을 바로 했다. 그리고 김호동 하사를 날카롭게 쳐다봤다.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뭐 인마? 지금 뭐라고 했어.”
“아니. 이 소주가 어떤 소주인 줄 몰라서 그럽니까? 아놔······.”
조인범 상병이 잔뜩 짜증을 내며 소리쳤다. 이 소주를 얻기 위해 윤태민 소위에게 당했던 굴욕을 떠올리니 눈이 뒤집혔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모르는 김호동 하사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
“이 미친놈아! 지금 군대에 술을 반입한 것도 큰 잘못인데 술을 처먹고 있어? 정말 다 같이 영창에 가봐야 정신 차릴 거야!”
김호동 하사가 소리쳤다. 그런데 겁을 먹기는커녕 오히려 당당하게 나가는 조인번 상병이었다.
“아, 네네. 맘대로 하십시오. 우리 대대에서 4중대가 골통인 것을 모르는 사람도 없고. 진짜 맘대로 하십시오. 우린 상관없습니다.”
“와, 진짜······. 너희들 답이 없구나. 너희들 말이야. 3소대 소대장이 불쌍하지도 않냐? 최소한의 양심도 없냐 말이야.”
여기서 조인범 상병도 약간 발끈했다.
“여기서 우리 소대장님은 왜 거론됩니까. 뭔데 우리 소대장 가지고 지랄합니까.”
“뭐? 지랄?”
김호동 하사의 눈이 커졌다. 그러다 말이 통할 것 같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부사관인 자신이 사병들과 이런 언쟁을 펼친다는 자체가 우스웠다. 게다가 조인범 상병은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제대로 된 생각을 하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하아······. 됐다, 됐어! 이거 빨리 정리하기나 해. 너희는 그냥 안 넘어갈 거니까 각오하고.”
김호동 하사는 일단 이 상황을 마무리 지은 뒤 날이 밝는 대로 처리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그러다가도 한편으로는 이런 식으로밖에 할 수 없는 스스로의 초라한 모습에 화가 났다.
‘젠장. 내가 이러려고 부사관이 된 것이 아니었는데. 아니야, 그만하자. 내가 여기서 평생 썩을 것도 아니고, 뭐한다고 열을 내고 그래.’
김호동 하사가 찬찬히 조인범 상병을 봤다.
“조인범.”
“······.”
“너 마지막 경고야. 지금 치우면 내가 못 본 걸로 해주겠다. 그러니 지금 당장 치워!”
하지만 조인범 상병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조인범 상병은 김호동 하사를 열 받게 해 한판 붙어서 박살을 내버리라는 지시를 받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김호동 하사를 자극하고 있는데 당사자는 참으려고 하자 살짝 당황했다.
‘뭐야. 이 새끼! 덩치는 산만 해서는 쫄고 지랄이야.’
조인범 상병은 이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대놓고 빈정거렸다.
“시발······. 어차피 아무것도 못 할 거면서 괜히 분위기만 망치고 지랄이야.”
그 말을 들은 김호동 하사가 끝내 간신히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
“뭐라고 새끼야! 너 지금 뭐라고 그랬냐.”
김호동 하사가 눈을 부라리며 조인범 상병을 윽박질렀다. 하지만 조인범 상병은 하나도 겁을 먹지 않았다.
“뭡니까? 지금 한 대 치겠습니다.”
“아놔, 이 새끼가 진짜······.”
김호동 하사는 조인범 상병의 멱살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러자 조인범 상병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오호라, 진짜 치겠다는 건데. 그래 쳐! 쳐봐, 쳐! 쳐! 한 대 쳐보란 말이야. 나도 시발, 군대에서 깽값 좀 벌어보자.”
“이런 미친 똘아이 새끼!”
김호동 하사가 잡고 있던 멱살을 바로 뒤로 밀어버렸다. 조인범 하사가 뒤로 밀리며 침상에 걸려 뒤로 벌러덩 넘어져 버렸다. 술도 알딸딸하게 어느 정도 취한 상태여서 그런지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는데 중심을 잡지 못했다.
“어? 어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