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생 리셋 오 소위-692화 (692/1,018)

< 01. 대대로 가겠습니다(22)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22화

01. 대대로 가겠습니다(22)

“이봐, 2소대장.”

“네.”

“자네 어딜 그리 갔다 오나.”

“아, 대대에 잠시 다녀왔습니다.”

“대대? 무슨 일로?”

“작전과장님께서 부르셔서······.”

“작전과장님께서? 아니, 왜?”

김진수 중위의 물음에 윤태민 소위가 정색했다.

“그런 것까지 보고를 해야 합니까?”

“그건 아니지만······.”

“그럼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

그러고는 윤태민 소위가 고개를 숙여 업무를 보는 시늉을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진수 중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아무리 대대에서 밀린 처지라지만 1소대장인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나 무례하게 느껴진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윤태민 소위는 조금 전 홍민우 소령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어서 오게.”

“충성.”

“그래,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앉아.”

“넵!”

홍민우 소령의 손짓에 윤태민 소위가 자리에 앉았다. 그 맞은편에 홍민우 소령이 앉았다.

“커피라도 한잔할 텐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괜찮으니까 커피 한잔해.”

“그럼 제가 타겠습니다.”

“앉아 있어. 손님을 고생시킬 수야 없지.”

홍민우 소령은 직접 믹스커피 두 잔을 타서 윤태민 소위 앞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윤태민 소위가 커피잔을 소중히 감싸 쥐고는 긴장한 얼굴로 홍민우 소령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저를 부르신 이유가······.”

“아, 뭐 별건 아니고 오늘 그쪽으로 새로 부임 온 중대장이 넘어갔다는데 봤나?”

“아뇨, 아직 만나지 못했습니다.”

“아직 못 만났어?”

“네.”

“그래? 으음······.”

홍민우 소령이 낮은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말이야. 자네 4중대를 벗어나고 싶지 않나?”

“당연히 벗어나고 싶습니다.”

“그래? 그럼 내가 미션 하나를 줄 테니까, 그걸 한번 잘해봐.”

“어떤 미션입니까?”

윤태민 소위의 표정 역시 진지해졌다. 홍민우 소령이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다른 것 없어. 이번에 새로 부임한 중대장 있지? 아마 오상진 대위일 거야.”

“네.”

“오상진 대위를 감시하고 주기적으로 동태를 보고할 사람이 필요한데, 어때? 자네가 할 수 있겠어?”

“······!”

“가능하면 오상진 대위의 심복이 되는 것도 좋은 방법일 테고.”

윤태민 소위의 눈이 번쩍하고 뜨였다. 그의 머릿속에서 뭔가가 빠르게 계산되었다.

‘가만! 그러니까, 새로 온 중대장을 위에서 찍었다는 건데······. 이런 거야 뭐 어려운 일은 아니지.’

윤태민 소위가 씨익 웃었다. 지금껏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며 이익을 좇아온 그에게는 딱히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 윤태민 소위는 자신의 책상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다.

‘오상진 대위. 새로 온 중대장이라······.’

23

다음 날 오상진은 중대장실로 정식 출근을 했다.

업무를 보기 전에 행정실에 들른 오상진은 소대장들을 불러 간단히 인사를 나눴다.

“1소대장을 맡고 있는 김진수 중위입니다.”

“그래, 1소대장. 앞으로 잘 부탁한다.”

“네, 중대장님.”

1소대장 김진수 중위가 떨떠름한 얼굴로 대답했다. 기수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데 벌써 대위를 달고 중대장으로 부임한 오상진을 보니까 착잡한 마음이 든 것이다.

반면 2소대장 윤태민 소위는 여느 때처럼 아부를 떨어댔다.

“중대장님, 만나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무슨 영광씩이나.”

“저희 육사 출신들에게 중대장님은 우상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니까 고맙네. 더 열심히 해야겠는걸?”

3소대장인 박윤지 소위는 살짝 수줍어했다. 오상진이 손을 내밀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4소대장 홍일동 소위는 가장 정석적으로 인사를 했다.

“4소대장을 맡고 있는 홍일동 소위입니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래, 홍 소위. 앞으로 잘 부탁해.”

앞으로 함께할 소대장들과 악수를 나누며 오상진은 장석태 대위가 만들어준 프로필을 떠올렸다.

‘김진수 중위는 나보다 육사 3년 후배이고, 윤태민 소위는 4년 후배라고 했지? 박윤지 소위는 ROTC 출신에 소심한 성격. 홍일동 소위는 3사 출신.’

그러면서 시선이 김진수 중위에게 향했다.

‘그나저나 3년 후배면 육사에서 오다가다 마주쳤을 수도 있는데 영 기억이 안 나네. 하긴, 졸업한 지 워낙 오래됐으니까.’

이미 한 번의 인생을 살다가 과거로 회귀한 오상진에게 육군사관학교 시절은 너무나 먼 이야기였다.

‘김 중위는 3년 차 소대장이고, 나머지는 이제 2년 차에 접어들었다니까 잘하겠지.’

오상진은 대충 머릿속으로 정리를 한 후 입을 열었다.

“다들 반갑다. 오상진이다. 중대장은 이번이 처음이라 아마 서툰 것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 있는 소대장들이 잘 도와준다면 충분히 잘 이끌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넵,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다들 의례적으로 대답을 하는데 2소대장 윤태민 소위가 불쑥 튀어나왔다.

“자, 자, 다시 한번 우리 중대장님께 박수!”

짝짝짝짝짝!

윤태민 소위의 주도로 큰 박수가 이어졌다. 그러고는 윤태민 소위가 오상진에게 바짝 다가갔다.

“그런데 중대장님.”

“왜?”

“1소대장하고 안면 없습니까? 시기로 보면 육사에서 만났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오상진의 시선이 김진수 중위에게 향했다.

“내가 4학년 때 1학년으로 들어왔을걸? 맞나?”

“네, 맞습니다.”

김진수 중위가 대답했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윤 소위도 알겠지만 4학년하고 1학년은 딱히 부딪칠 일이 없잖아?”

물론 김진수 중위의 체면을 살려주려면 얼굴을 본 기억이 있다고 거짓말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상진은 소대장들을 그런 가식으로 대하고 싶지 않았다.

“김 중사.”

“네, 중대장님.”

“알아보지 못해서 미안하다.”

“괜찮습니다. 제가 1학년이었는데 기억 못 하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해해 줘서 고맙군.”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그러자 윤태민 소위가 바로 말했다.

“아쉽습니다. 그래도 만난 적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윤태민 소위가 약간 빈정거리듯이 말했다. 그런 윤태민 소위를 김진수 중위가 못마땅하듯이 바라봤다.

오상진의 시선도 살짝 굳어졌다. 그러자 윤태민 소위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보다 중대장님, 오늘 저녁에 회식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래도 중대장님께서 새로 오셨는데 말입니다.”

“회식?”

“네. 당연히 중대장님이 새로 오셨으니 환영회 해야죠. 제가 제대로 준비하겠습니다.”

신임 상관이 부임하면 아래에서 환영회를 준비하는 게 일반적이긴 했다. 하지만 오상진은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회식은 다음에 하자. 일단은 중대 파악부터 빨리하고 나서 말이야. 나중에 중대장이 정식으로 회식 자리를 마련할 테니까 그때 하자고.”

윤태민 소위가 약간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에이, 중대장님! 중대 파악할 것이 뭐가 있습니까. 회식하면서 서로 얼굴도 익히고 얘기를 나눠야 친해지지 않겠습니까.”

윤태민 소위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오상진도 못 이기는 척 승낙을 할 거라 여겼다.

하지만 오상진은 결정을 바꾸지 않았다.

“아니, 회식은 다음에 하도록 해. 오늘은 중대장이 가 볼 곳이 있으니까.”

오상진은 그 말을 끝으로 행정실을 나갔다. 그러자 윤태민 소위의 표정이 바로 바뀌었다.

“뭐야? 왜 저래? 뭔 일이 있나?”

“혹시 따로 하시는 일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홍일동 소위가 바로 말을 받아줬다. 윤태민 소위가 고개를 흔들었다.

“에이, 부대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무슨 일이 있겠어.”

그 말에 김진수 중위가 고개를 들어 물었다.

“그보다 2소대장, 아까 그 얘기는 뭐야?”

“네?”

“아니, 육사 얘기는 왜 해. 나하고 3년이나 차이가 나는데 무슨 수로 후배를 다 기억해.”

“아, 그거 말씀이십니까? 혹시나 해서 물어봤습니다.”

“쓸데없는 소리 마! 그리고 자네하고 나하고도 1년 차이인데 우리가 육사에서 얼굴 부딪치고 그런 적 있어?”

“저는 먼발치에서 봤지 말입니다.”

“거짓말하지 마. 난 자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어흠! 1소대장님은 못 봤지만 저는 봤습니다. 진짜로 말입니다. 그리고 같은 육사 출신인데 좀 알면 잘 이끌어주고 밀어주고 그러지 않겠습니까.”

윤태민 소위의 말에 박윤지 소위와 홍일동 소위가 살짝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 눈치챈 김진수 중위가 한마디 했다.

“2소대장! 자네도 참······. 여기에 육사 출신만 있나? 왜 만날 육사 출신을 강조해.”

윤태민 소위는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뭐 어떻습니까. 그리고 제가 어디 거짓말이라도 했습니까? 사실을 말한 것인데. 박 소위, 기분 나빴어?”

“아, 아닙니다.”

박윤지 소위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번에는 홍일동 소위에게 물었다.

“홍 소위는? 기분 나쁜 거 아니지?”

“아, 예에······.”

“거 보십시오. 우리가 뭐 육사 나온 것이 죄도 아니고, 나온 걸 나왔다고 하지 그 말도 못 합니까?”

김진수 중위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하아······. 말을 말아야지.”

김진수 중위가 행정반을 나갔다. 그 뒤로 다른 사람들도 윤태민 소위를 피하듯 자리를 떴다.

그들을 보며 윤태민 소위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무튼 새끼가······. 자기만 잘난 줄 알지, 자기만. 두고 봐. 나 여기 꼭 탈출한다. 김 중위, 너는 평생 여기서 썩어라.”

그렇게 악담을 퍼부은 윤태민 소위도 전투모를 챙겨서 행정실을 나섰다.

한편, 중대장실에서 간단하게 업무를 본 오상진은 오후에 차를 몰고 국군병원을 찾았다.

그곳에 입원해 있는 김호동 하사를 찾아간 것이었다.

“응?”

침대에 누워 TV를 보고 있던 김호동 하사는 병실로 들어온 오상진을 단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누구십니까?”

오상진이 김호동 하사에게 다가갔다.

“김호동 하사?”

“네. 그렇습니다만.”

김호동 하사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오상진을 바라봤다. 오상진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 4중대장으로 오게 된 오상진 대위입니다.”

“아!”

김호동 하사가 바로 자세를 바로잡았다. 오상진은 그러지 말라고 가볍게 손사래를 치고는 김호동 하사의 뒷머리 쪽을 봤다. 하얀 거즈가 딱 달라붙어 있었다.

그런 오상진을 보며 김호동 하사는 바짝 긴장을 했다.

어제저녁, 김호동 하사는 김태호 상사를 통해 오상진이 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자네 얘기는 했네. 혹시 찾아갈지도 모르니까 그때 잘 얘기해 봐.

입으로는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김호동 하사는 설마 오상진이 병원까지 찾아올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진짜 오상진이 찾아온 것이었다.

“아, 앉으십시오.”

김호동 하사가 의자를 빼서 건넸다. 오상진이 자리에 앉아 물었다.

“몸은 좀 어떻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두통이 조금 있는 것을 빼고는 말입니다.”

“아. 뇌진탕 증세가 좀 있다고 들었습니다.”

“네.”

김호동 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상진이 눈을 돌리다 살짝 벌어진 환자복 너머로 멍 자국을 발견했다. 폭행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생각보다 심각했던 것 같았다.

게다가 김호동 하사는 입술도 터져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