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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689화 (689/1,018)

< 01. 대대로 가겠습니다(19)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19화

01. 대대로 가겠습니다(19)

“후우······. 내가 생각한 군대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언제까지 버텨야 하지?”

박윤지 소위는 군대에 대한 막연한 동경 때문에 ROTC에 지원해서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지금은 군대 생활이 하루하루 너무 지치고 힘들었다.

특히나 자신이 맡고 있는 3소대는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이러니 자신이 얼마나 군대에서 버틸 수 있을지 회의감도 들었다.

그나마 중대장인 이민석 대위는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사람이었다.

물론 가끔 밤늦게 전화도 하고 사적으로 치근덕댔지만 기댈 곳 하나 없는 그녀에게 버팀목이 되어 줬으니 그걸로 됐다며 위안을 삼곤 했다.

그런데 그 이민석 대위마저 대대로 가버렸다.

“후우······. 미치겠네. 새로 오신 중대장님이 나 싫어하면 어떻게 하지?”

복도를 걸어가는 박윤지 소위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 시각 오상진은 자신의 사무실도, 행정반도 아닌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바로 행보관을 찾아 나선 것이었다.

그러다가 병사들과 연병장 한쪽 수로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김태호 상사를 찾았다.

“오, 저기 계시구나.”

오상진이 환한 얼굴로 그곳으로 갔다. 한참 작업을 하던 병사들이 먼저 오상진을 발견했다.

“어? 누구지?”

“글쎄다. 잘 모르겠네.”

“계급 보이냐?”

“대위입니다.”

“대위? 그럼 이번에 새로 오신다는 중대장님?”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자 병사 하나가 삽질을 하고 있는 김태호 상사에게 갔다.

“행보관님.”

“왜?”

“누가 오는데 말입니다.”

“누구?”

김태호 상사가 고개를 홱 돌렸다. 다가오는 오상진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대위? 신입 중대장님이시네.”

“역시!”

“그럴 줄 알았다니까.”

“오오. 새로 오신 중대장님······.”

“또 한 놈 죽어 나가겠구나.”

병사들의 중얼거림을 들은 김태호 상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것들이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작업 제대로 못 해!”

“넵! 지금 합니다.”

“네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전 한 번도 쉬지 않았지 말입니다.”

김태호 상사의 호통에 병사들은 재빨리 작업 도구를 챙겨서 작업을 하는 시늉을 했다. 김태호 상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목에 두른 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그리고 한 곳에 벗어 둔 전투모를 탁탁 털고는 머리에 썼다.

“얘들아, 나 없다고 뺑이 치지 말고. 이거 마무리 다 해놔. 알았냐!”

“네, 알겠습니다.”

김태호 상사는 작업 지시를 내려놓고 걸어오는 오상진에게 걸어갔다.

“충성.”

김태호 상사가 먼저 경례를 했다. 오상진이 바로 경례를 받아줬다.

“충성.”

김태호 상사가 손을 내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이번에 새로 오신 중대장님이십니까?”

오상진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네. 오상진 대위라고 합니다. 혹시 행보관님 되시죠?”

“네.”

오상진이 힐끔 작업하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

“행보관님께서 직접 작업을 하시는 모양입니다.”

“네, 뭐······.”

“이 시간까지 고생이 많으십니다.”

오상진의 서글서글한 모습을 보는 김태호 상사는 고개를 갸웃하며 바라볼 뿐이었다. 오상진이 다시 김태호 상사를 보며 말했다.

“행보관님 괜찮으시면 저랑 잠깐 대화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

22.

자리를 옮긴 오상진이 김태호 상사 옆에 앉았다. 그리고 주머니에 있던 캔 커피를 꺼내 내밀었다.

“커피 좋아하세요?”

“네? 아, 예.”

“드세요. 오면서 사 왔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두 사람은 캔 커피를 따서 입으로 가져갔다. 그렇게 잠시 커피 맛을 음미하던 김태호 상사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런데 저에게 따로 하실 말씀이라도······.”

“다른 것은 아니고 저희 중대 행보관님이시고, 인사도 드리고 조언도 들을 겸 해서 찾아왔습니다.”

“무슨 조언입니까. 제가 아는 것이 뭐가 있다고.”

김태호 상사가 피식 웃었다. 그러다가 오상진이 김태호 상사를 빤히 바라봤다.

정말 인사차 들른 건지 오상진은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하지만 오상진의 머릿속에 정말 아무런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곳 연대로 내려오기 전 오상진은 사단에서 장석태 대위를 만났다.

“충성.”

“이제 내려가는 거야?”

“네.”

“그래. 내려가서도 몸 건강하고······.”

“장 대위님도 건강하십시오.”

“하아. 이렇게 내려가니까 또 섭섭해지려고 하네.”

“또 왜 이러십니까. 그보다 저 보러 오신 겁니까?”

“겸사겸사. 자!”

장석태 대위가 파일 하나를 내밀었다. 오상진은 그 파일을 받아 들고 물었다.

“이게 뭡니까?”

“내가 알아보니까, 오 대위가 4중대로 간다고 하더라고. 근데 거기 4중대가 좀 말이 많더라. 왜 그런 곳으로 보내는지······.”

장석태 대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곤 안타까운 시선으로 말했다.

“오 대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아버지에게, 아니, 사단장님께 말하자.”

“에이, 됐습니다. 이미 결정 난 것입니다. 가서 열심히 하면 됩니다. 그보다 진짜 이게 뭡니까?”

오상진은 손에 든 서류를 들어 보였다. 장석태 대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별거 아니고 우리 오 대위 타지 가서 고생하는 게 마음에 걸려서 거기 근무하는 사람들한테 소스 좀 얻어본 거야.”

“어이구 또 언제 이런 걸 만들었습니까?”

“알잖아. 내가 마당발인 거. 대한민국 군대에 내 안테나가 없는 곳이 없다니까?”

“대단하십니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슬쩍 파일을 열어보려고 했다. 그러자 장석태 대위가 막았다.

“여기서 말고 가면서 봐. 가면서.”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은 평택으로 내려오는 길에 그 파일을 꺼내 확인했다. 잠깐 훑어봤는데 안에 담긴 내용은 장난이 아니었다.

1소대장부터 4소대장까지의 인적 사항은 물론이고 4중대 소속 부사관들의 기본적인 정보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하물며 사진까지 붙어 있어 일일이 찾아다니며 이름을 외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완벽한 인적사항 기록부였다.

그중에서 오상진이 눈여겨본 사람이 바로 행정보급관 김태호 상사였다.

행정보급관은 부대 살림을 맡아서 하는 사람이었다. 중대장이 된 오상진 입장에서 행정보급관과 사이가 좋아야 했다.

김태호 상사는 5년 전쯤에 이곳 평택 17보병연대로 전입을 왔다. 가장 먼저 대대 행보관을 맡았는데 김태호 상사는 대대 행보관으로서 소임을 다하기 위해 의욕을 불태웠다.

하지만 당시 대대의 사정은 좋지 않았다. 김태호 상사가 자체 조사를 통해 확인해 본 결과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대대가 엉망이었다.

그 전 대대 행보관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운영을 했던지 수치가 맞는 게 없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새롭게 맞춰야 했다.

“도대체 이 꼴로 어떻게 버틴 거지? 이대로 가다간 대대가 파산 날 거야.”

김태호 상사는 다른 중대를 일일이 돌아다니며 장부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재고 물품이나, 현재 운용되고 있는 것까지 자신의 눈으로 일일이 확인을 했다.

당연하게도 그 와중에 이런저런 마찰이 있었지만 김태호 상사는 이 모든 일이 부대를 위한 일이라 여기며 대대 행보관으로 소임을 다한다는 각오로 계속해서 파고들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주임원사까지 이르렀다.

주임원사가 부대 살림을 파탄 낸 주범이라는 걸 알게 됐을 때 김태호 상사는 큰 충격에 빠졌다.

주임원사는 항상 김태호 상사가 부대에 대해 어려움을 토로할 때 위로해 줬던 사람이었다. 가끔 하극상을 부린 부사관들은 주임원사가 대신 불러 야단을 치기도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모든 일의 배후에 주임원사였다니.

너무 화가 난 김태호 상사는 직접 주임원사를 찾아가 따져 물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주임원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봐 김 상사. 그러니까 내가 말 했잖아. 적당히 하라고. 그럼 알아들을 때도 되었잖아. 내가 지난번에 말했을 텐데, 너무 깊게 파고들어봤자 득 될 것이 없다고 말이야. 그리고 자네, 지금 나 찾아와서 이러는 거 크게 실수한 거야.”

“그게 무슨······.”

“나중에 되면 알게 될 거야.”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후 김태호 상사는 대대 행정보급관에서 4중대 행보관으로 좌천이 되었다.

이유도 없었다. 그냥 보직 이동이었다.

게다가 4중대는 폐급 병사만 따로 모아놓은 독립 중대나 다름이 없었다. 주로 경계나 다른 대대의 일을 대신하는 일종의 땜방용 중대였다.

사격 훈련도 분기별로 한 번 할까 말까고, ATT 같은 경우는 거의 꼴등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사건 사고도 끊임없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4중대였다. 그래서 4중대는 아예 본대대와 좀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김태호 상사는 이런 부당한 보직이동에 바로 주임원사를 찾아가 따졌다.

“제가 왜 4중대로 가야 합니까?”

“자네 일하는 거 좋아하잖아. 4중대 엉망이야. 꼴이 말이 아니라고. 자네가 일을 그렇게 일을 하고 싶다고 하니, 그런 부대로 가서 열심히 일하라는 뜻이야. 자네가 4중대에 가서도 처음과 달리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하면 자네를 인정하지.”

그 얘기를 들은 김태호 상사는 더 따지지도 못했다. 이미 대대장의 인가가 떨어졌고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태호 상사는 곧바로 짐을 싼 후 4중대로 내려왔다. 4중대에 내려와서도 대대에 있었던 만큼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전임 4중대장과는 손발이 맞지 않았다.

전임 중대장 입장에서는 대대에서 사고치고 내려온 행보관인 김태호 상사가 맘에 들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중대장이 이만식 대위로 바뀌고 이만식 대위가 개선의 의지를 보여 잠깐 기대했지만 그마저도 오래 가지 않았다.

“그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김태호 상사가 뭘 하려고 하면 이민식 대위는 내켜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의기투합해서 열심히 하자고 하더니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몰라도 김태호 상사를 껄끄러워하는 반응을 보였다.

게다가 부사관들에게 김태호 상사의 말을 듣지 말라는 알력까지 행사했다.

그래서 현재 김태호 상사는 다수의 부사관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중이었다.

말이 좋아 행보관이지 실질적인 권한은 없었다.

그런 실정이다 보니 김태호 상사도 자꾸 밖으로만 돌았다. 외부 공사를 전담하면서 부대 내부의 일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상진은 이런 김태호 상사가 꼭 필요했다. 인적 기록부에 나온 것처럼 기본적으로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전 부대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아 빨리 진급도 했다. 무엇보다 특정한 라인을 타지 않고, 오롯이 부대만 위한 참군인이었다.

‘그래. 이런 분을 그냥 방치할 수는 없지.’

오상진의 시선이 다시 커피 캔을 마시고 있는 김태호 상사에게 향했다.

“제가 듣기로는 대대 행보관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김태호 상사가 쓴웃음을 지었다.

“네. 그랬었죠.”

“무슨 일이셨는지 혹시 여쭤봐도 됩니까?”

“별거 없었습니다. 대대 행보관이 되면서 뭔가 의욕적으로 해보려고 했던 것이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모양입니다. 그 때문에 여차여차해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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