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 대대로 가겠습니다(18)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18화
01. 대대로 가겠습니다(18)
순간 홍일동 소위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 윤태민 소위의 입에서 또 육사 타령이 나왔기 때문이다.
‘하아······ 또 시작이네. 내가 말을 말아야지.’
홍일동 소위가 입을 다물었다. 그런 홍일동 소위의 표정을 본 김진수 중위가 윤태민 소위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다.
“윤 소위. 나중에 얘기하지. 나중에!”
김진수 중위가 앞서 행정반으로 향했다. 그를 따라 박윤지 소위와 홍일동 소위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세 사람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던 윤태민 소위가 인상을 팍 찡그렸다.
“시발! 혼자 멋있는 척이야. 지도 좆 같으면서······. 아, 젠장할. 나는 이 거지 같은 4중대에서 언제 탈출하냐.”
윤태민 소위가 자신의 뒷머리를 퍽퍽 긁었다. 그때 윤태민 소위의 윗주머니에서 지잉지잉 소리가 들렸다.
윤태민 소위는 다급히 윗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어? 홍 소령님께서······.”
윤태민 소위는 곧바로 주위를 살피고는 낮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충성. 윤 소위입니다. 네, 네? 지, 지금 말입니까? 저만 말입니까? 네, 알겠습니다.”
윤태민 소위는 전화를 끊고 표정이 심각해졌다.
“뭐지? 왜 나만이지? 설마······ 나도 탈출인가?”
윤태민 소위의 입가로 미소가 번졌다.
20.
중대장실을 나온 4명의 소대장들이 복도를 걸어 행정반으로 들어갔다.
“아이고, 오늘도 열심히 일이나 해야겠다.”
홍일동 소위가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으며 중얼거렸다.
행정반에는 두 개의 책상이 서로 마주 보며 놓여 있었다. 그중 가장 안쪽 책상은 1소대장인 김진수 중위가 사용하고 그 옆으로 2소대장 윤태민 소위의 자리가 놓여 있었다.
그 맞은편에 박윤지 소위와 홍일동 소위가 자리했다.
김진수 중위가 전투모를 벗어서 자리에 놓고는 주위를 확인했다.
“어? 2소대장은?”
행정반에 들어오고서야 김진수 중위는 2소대장 윤태민 소위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아챘다.
박윤지 소위도 고개를 들어 행정반 문 쪽을 바라봤다.
“같이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홍일동 소위가 대신 말했다.
“2소대장 말입니다. 아까 누구랑 통화를 하고는 어디 가는 것 같던데 말입니다.”
그 말에 김진수 중위가 인상을 찡그렸다.
“이 친구 참······ 이럴 때일수록 자리도 지키고 그래야지.”
김진수 중위의 한마디에 홍일동 소위가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말했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었겠죠.”
홍일동 소위는 은근히 윤태민 소위의 편을 들어줬다.
“급한 일? 아무리 급한 일이라고 해도 보고를 하고 움직여야죠.”
“······그건 그렇지만.”
홍일동 소위가 바로 꼬리를 내렸다. 하지만 김진수 중위는 저런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막말로 홍일동 소위는 이래저래 부딪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어지간한 일은 대부분 좋게 넘어가자는 식이었다. 아무래도 3사 출신이라 보니 가급적이면 둥글둥글하게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물론 김진수 중위도 그런 홍일동 소위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매사에 저러는 건 솔직히 별로였다.
그렇다고 박윤지 소위가 있는 자리에서 한마디 할 수도 없었다. 가뜩이나 윤태민 소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텐데 3사 출신이라고 차별받는다는 느낌을 주고 싶지 않았다.
결국 김진수 중위는 고개를 흔들고는 시선을 박윤지 소위에게 돌렸다.
“참, 박 소위. 지난번 3소대 그 일은 어떻게 됐어?”
“무슨 일 말씀이신지······.”
“그 폭행 사건 있잖아.”
“아······ 그건 계속 조사 중입니다.”
“뭐? 아직도 조사가 안 끝났어? 일주일이나 지난 일인데 아직까지 조사만 하고 있으면 어떻게 해?”
“죄, 죄송합니다.”
“그런 소리 들으려고 하는 말이 아냐. 만에 하나 새로 오신 중대장님이 물어보시면 어쩌려고 그래?”
“죄송합니다. 최대한 빨리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박윤지 소위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김진수 중위는 그것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아······. 알았어. 빨리 마무리 지어.”
“넵!”
박윤지 소위의 표정이 침울하게 변했고 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홍일동 소위의 얼굴에도 안쓰러움이 번졌다.
한편, 오상진은 자신의 차를 타고 4중대로 출근을 했다. 이민석 대위는 어느새 자신의 짐을 싸서는 이미 대대로 출발한 후였다.
차 문을 열고 산들바람을 맞으며 위병소 앞에 도착을 하자 병사가 막아섰다.
“충성. 신분증 좀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상진의 자신의 명찰을 보였다.
“오상진 대위다.”
“충성. 확인되었습니다. 들어가십시오.”
“그래, 수고가 많다.”
오상진이 검문하는 일병을 한 차례 훑고는 저 뒤에 서 있는 병장도 봤다. 앞으로 부대낄 사이이다 보니 미리미리 자신의 얼굴을 익히게 해두려는 요량이었다.
“수고해라.”
“충성.”
오상진이 차를 몰고 중대 안으로 들어갔다. 그사이 일병이 병장에게 다가갔다.
“오상진 대위 말입니다. 이번에 새로 오신다는 4중대장 아닙니까?”
“뭐, 그렇겠지.”
병장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저 지금 근무 서는 것 자체가 짜증이 날 뿐이었다.
“야, 근무 잘 서. 난 안에서 좀 쉴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병장이 어슬렁어슬렁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사이 오상진이 탄 차는 위병소를 통과한 후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에서 내린 오상진은 잠시 주위를 둘러봤다.
“여기가 내가 근무할 곳인가?”
오상진이 손에 든 전투모를 머리에 썼다. 은빛으로 된 다이아 세 개가 반짝였다.
듣기로 4중대는 대대와 따로 떨어져 있다고 했다. 살짝 방치된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오상진은 괘념치 않았다. 오히려 대대와 떨어져 있으니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관리하기가 쉬울 수도 있었다.
“일단 이곳을 한번 둘러볼까?”
오상진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21.
“하아······.”
김진수 중위가 잠시 행정실을 나서자 박윤지 소위가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박윤지 소위는 3소대 조인범 상병의 사건에 대해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대대 귀에 들어가지 않게 하라는 지난 중대장의 지시에 따라 가능하면 좋게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중인데 피해자인 임 하사와의 합의가 쉽지 않았다.
“조 상병은 진짜 어떻게 됐습니까?”
홍일동 소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러자 박윤지 소위가 힘없이 대답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아직 조사 중입니다.”
“아직도 말입니까?”
“그게······ 중대장님이 좋게 덮고 넘어가자고 해서 말입니다.”
“중대장님께서 말입니까?”
그때 화장실이라도 간 줄 알았던 김진수 중위가 행정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순간 박윤지 소위가 토끼 눈이 되어 김진수 중위를 바라봤다. 홍일동 소위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시치미를 뗐다.
하지만 귀가 밝은 김진수 중위는 방금 전에 나온 대화를 얼핏 들은 상태였다.
“갑자기 중대장님이 왜 나옵니까?”
“네? 그, 그게······.”
“혹시 중대장님이 따로 지시하신 게 있습니까?”
“그게······ 소란스럽지 않게 조용히 덮고 넘어가자고 하셔서······.”
“아까는 그런 말씀 없었지 않습니까.”
“그, 그건······.”
박윤지 소위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김진수 중위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하아······.”
마음 같아선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이내 포기했다.
‘하긴 박 소위가 뭔 잘못이 있겠어. 그보다 중대장님 너무하시네. 무슨 중대를 바로잡자며 큰소리치시더니. 이게 뭐야! 이런 것까지 그냥 넘어가면 부대를 언제 다잡겠다는 거야.’
김진수 중위는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처음에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큰소리를 쳐 놓고 박윤지 소위에게는 저런 지시를 내렸다는 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
사실 김진수 중위도 처음 이곳 평택 부대에 왔을 때만 해도 장래가 촉망되는 장교였다. 육사 졸업 성적도 우수해서 곧바로 1중대의 소대장으로 부임을 했다.
그런데 1중대 소대장들이 부사관들을 너무 막 대하고 1중대장이 행보관을 무시하는 모습을 보면서 고민에 빠졌다. 계급을 떠나 장교와 부사관은 서로 협력해야 하는 관계인데 단순히 계급이 낮다는 이유로 하대하면 부대 관리가 제대로 될 수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김진수 중위는 장교 회식 자리에서 중대장과 소대장들에게 건의 삼아 자신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중대장의 뜻에 따라 움직여 왔던 이들이 김진수 중위의 조언을 받을 리 없었다.
결국 김진수 중위는 이듬해에 꼴통 중대라 불리는 4중대로 쫓겨나 버렸다. 한마디로 4중대에 유배를 오게 된 것이다. 그렇게 4중대 1소대를 맡은 지 2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김진수 중위도 솔직히 군 생활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작년에 새로 부임한 이민석 대위가 뭔가 바꿔보자고 독려를 했을 때 내심 기대를 가졌다. 꼴통 중대를 방치하다시피 하던 전임 중대장과는 달리 이민석 대위는 의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민석 대위는 김진수 중위의 힘든 사정을 알고 아낌없이 보듬어 주기도 했다.
“힘들지, 인마! 조금만 버텨봐. 좋은 일이 생길 거야.”
“네. 중대장님.”
“그래. 잘해보자, 진수야. 지금의 시련에 좌절하지 말고 기회라고 생각하자고. 너나 나나 여기서 잘하면 위로 올라갈 수 있어.”
“네. 중대장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민석 대위가 중대장으로 부임한 이후 김진수 중위는 진짜 열심히 했다. 그런데 대대로 도망가 버린 것으로도 모자라서 이번 3소대 사건이 터졌는데도 덮고 넘어가자고 했다니. 이런 사람을 믿고 1년 동안 열심히 했던 자신이 오히려 부끄럽고 후회가 되었다.
“하아······.”
김진수 중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박윤지 소위를 봤다.
“박 소위! 박 소위가 생각하기에는 옳다고 생각해?”
“네?”
“지금 그 판단이 옳다고 생각하냐고!”
“아, 저는······.”
그러자 옆에 있던 홍일동 소위가 바로 끼어들며 박윤지 소위의 편을 들었다.
“1소대장님, 박 소위님이 일부러 그러겠습니까.”
김진수 중위의 날카로운 시선이 홍일동 소위에게 향했다.
“홍 소위!”
“네?”
“내가 지금 박 소위랑 얘기를 하는데 왜 자꾸 자네가 끼어드나.”
“그것이 같은 동료이기도 하고, 말을 제대로 못 하는 것 같아서······.”
“동료? 지금 자네의 행동이 동료를 도와주는 건가? 그리고 자네는 생각이 없나? 낄 때 안 낄 때 구분도 못 해. 아니면 홍 소위가 박 소위 보호자라도 돼?”
“······.”
“자네가 자꾸 그러니까······.”
3사라는 말이 자꾸 나오는 거 아니야.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참아냈다.
“······아니다. 됐어.”
덩달아 홍일동 소위의 표정도 살짝 굳어졌다. 중간에 낀 박윤지 소위의 얼굴도 난감하게 변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다시 한번 제대로 알아보겠습니다.”
박윤지 소위는 어색한 분위기에 서둘러 다이어리를 챙겨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소대에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그 말을 하고 행정반을 빠져나갔다. 행정반 문을 닫고 박윤지 소위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