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 대대로 가겠습니다(14)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14화
01. 대대로 가겠습니다(14)
9.
주말에 오상진은 한소희와 함께 한소희의 어머니인 이선주를 만나러 나왔다.
이선주가 고급 한정식집 방에 단아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네. 어머님.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못 본 사이에 좀 피부가 좋아졌네요.”
오상진이 멋쩍게 웃었다. 사실 군인에게 피부가 좋아졌다는 것이 칭찬은 아니지만 사단 생활을 많이 하다 보니 피부가 하얗게 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자 한소희가 오상진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엄마는 군인에게 무슨 그런 소리를 해.”
“얘는. 엄마가 못 할 소릴 했니? 그리고 엄마 눈에는 지금이 좀 더 보기 좋은데 안 그래?”
“그건 그렇지만······.”
오상진이 바로 고개를 숙이며 먼저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어머님. 제가 조만간에 대대에 내려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때 되면 다시 피부가 탈 것 같습니다.”
“호호. 아니에요. 죄송할 것까지는 없고. 그냥 나는 지금 모습이 딱 보기 좋아서 한 말이에요.”
오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어머니. 썬크림 열심히 바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요. 내가 썬크림 좀 보내줘야겠다.”
그 말에 한소희가 발끈했다.
“웃겨. 엄마가 왜 우리 상진 씨한테 썬크림을 보내? 내가 어련히 알아서 챙겨줄 건데.”
“그러게 평소에 좀 잘 챙겨주지. 오죽했으면 엄마가 이래.”
“언제는 남자는 외모가 전부가 아니라고 그러더니 왜 상진 씨에게만 그래?”
“기왕이면 예쁜 게 좋잖아. 그렇다고 상진 씨 인물이 별로라는 말은 아니에요. 오해하지 말아요.”
오상진이 바로 웃으며 말했다.
“네. 어머님.”
이선주가 피식 웃었다.
처음 한소희가 남자 친구라며 오상진을 데리고 왔을 때 정말 실망을 많이 했었다.
그전에 강경자를 통해 경매로 빌딩을 세 채나 매입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이선주는 적어도 한소희를 굶기지는 않을 거라고 여겼다. 그래서 호감을 가지고 나왔는데 오상진의 첫인상이 솔직히 너무 별로였다.
일단 짧은 스포츠형 머리에 피부도 새까맸다. 한소희는 그런 오상진을 남자답다고 표현했지만 이선주의 눈에는 군인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과하게 태운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사단에 올라간 이후로 피부색이 점점 밝아졌다. 그래서 딱 보기가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대대로 내려간다고 하니 이선주의 얼굴에 안쓰러움이 맺혔다.
“그건 그렇고 또 얼마 전에 빌딩하나 매입했다면서요.”
“네. 어머니.”
“소희에게 들어보니 소망 빌딩이라고 하던데. 사랑 빌딩도 매입할 건가요?”
이선주의 말에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이모부가 했던 말과 똑같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소희가 대신 말했다.
“엄마. 말이 나와서 그러는데. 만복 빌딩 언제 나에게 줄 거야?”
“어휴. 엄마가 어련히 알아서 잘 관리했다가 시집 갈 때 줄까 봐. 내가 그것 가지고 뭐 하니?”
“아니, 엄마가 방금 그랬잖아. 사랑 빌딩 말이야. 엄마가 만복 빌딩을 주면 그 이름을 사랑 빌딩을 바꿀 생각이거든.”
한소희의 말에 이선주가 진지한 얼굴로 오상진을 바라봤고, 오상진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네, 어머님. 처음에 믿음 빌딩 이름을 지을 때 소희 씨하고 얘기를 했었습니다. 소망 빌딩을 매입하고 사랑 빌딩은 소희 씨 빌딩 이름에 붙이자고요.”
“그래요? 이름이야 내가 바꿔도 되는데······.”
한소희가 바로 끼어들었다.
“그러지 말고 나한테 달라니까. 어차피 줄 건데 뭐 하러 엄마가 바꿔?”
“너는 꼭 상진 씨 앞에서 이러더라.”
이선주가 한소희에게 핀잔을 줬다. 집에서는 고분고분한 척이라도 굴던 한소희가 오상진만 옆에 있으면 저렇게 까불어댔다.
“엄마! 그런데 언제까지 상진 씨한테 상진 씨라고 할 거야.”
“상진 씨한테 상진 씨라고 하는게 뭐가 문제야?”
“너무 정 없잖아.”
“그러는 너도 상진 씨라고 그러는데?”
“나는 나고! 지금 몇 번을 봤는데 이쯤 되면 오 서방이라고 해야 하는 거 아냐?”
한소희의 말에 오상진이 살짝 당황한 눈빛이 되었다. 이선주의 눈이 커졌다.
“뭐? 오 서방?”
이선주의 시선이 오상진에게 향했다. 그러자 오상진이 애써 미소를 지었다.
‘하긴 요즘 저 나이에 저렇게 성공한 사람도 없지. 소희 짝으로도 저 만한 사람도 흔하지 않고. 군인이라는 것이 좀 걸리긴 하지만 재력도 있어 보이고. 또 우리 소희를 저렇게나 좋아해 주니.’
단순히 오상진이 돈만 많은 군인이었다면 이선주도 좀 더 지켜보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상진은 본인이 군인이라는 이유로 빌딩 수입에 관한 모든 것을 한소희에게 맡겼다.
말은 한소희가 경영학과를 나와서 전문가에 맡긴다는 표현을 썼지만 따져보면 한소희에 대한 신뢰와 미래를 함께하겠다는 결심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게다가 한소희의 얘기를 들어보면 주변 친척들에게도 잘한다고 했다.
나중에 자신들이 죽고 나서 장남인 한 대만과 차남인 한중만, 그리고 한소희가 서로 사이좋게 지내길 바랐는데 오상진이 한소희의 짝이 된다면 형제들끼리 싸울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이선주가 애써 인자한 미소를 보이며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앞으로 오 서방이라고 불러줄까요?”
오상진이 뜸들이지 않고 대답했다.
“네, 어머니. 그리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말요? 의외네요. 사양할 줄 알았더니.”
“저는 어머님을 장모님으로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호호. 넉살도 좋네요.”
그러자 바로 한소희가 거들었다.
“그럼 엄마! 우리 상진씨가 고스톱쳐서 대위까지 올라간 줄 알아? 군대 생활이 사회생활보다 더 힘들다니까. 그렇죠, 상진 씨?”
“네? 아, 하하하······.”
오상진이 멋쩍게 웃었다. 한소희도 군인 여자 친구를 몇 년 하다 보니 완전 군인 아내가 다 된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소희 말로는 지방으로 내려갈지 모른다고 하던데요.”
“네, 어머님. 아마 평택 쪽으로 내려갈 것 같습니다.”
“평택이면 그렇게 멀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거기서 몇 년 정도 근무 할 것 같아요?”
“정확한 것은 잘 모르겠지만 아마 짧으면 3년 정도고 좀 길면 5년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3년이라······. 그때 근무 끝나고 나면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건가요?”
“네. 군인도 순환 근무를 해야 합니다. 그때 다시 제가 서울로 올라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래요.”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한소희의 휴대폰이 울렸다.
“어?”
한소희가 휴대폰을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엄마, 잠깐만······.”
한소희에게 전화 온 사람은 주선혜란 친구였다.
“어, 선혜야. 왜?”
한소희가 전화를 받으며 방을 나섰다.
자연스럽게 방 안에는 오상진과 이선주만 남게 됐다.
오상진은 처음 이선주를 만났을 때는 많이 어색했다. 회귀 전에도 장모에게 그리 살갑게 구는 사람은 아니었던 데다, 이선주는 느낌부터가 남달랐다. 정겨운 장모님보다는 잘사는 사모님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몇 번 만나다 보니 이선주가 더 이상 불편하지 않았다.
“참, 소희 이번에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은 알고 있죠?”
“네. 어머니. 들었습니다.”
“소희가 원래부터 공부 욕심이 좀 많아요. 두 사람이 졸업하면 결혼하겠다고 약속을 한 것 같은데 애 아빠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너무 일찍 시집보내는 것 같아서 좀 걱정이 되었어요.”
“네. 어머님. 사실 결혼이야 저희 둘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할 수 있는 거죠. 저는 괜찮습니다.”
“그렇게 말해주니까 참 듬직하네요. 그런데 얘기 듣기론 군인들은 일찍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는 것이 좋다고 하던데 그런가요?”
“네. 물론 일찍 결혼해서 내조를 받으면 좋긴 합니다. 그런데 제 자랑 같지만 제가 동기들보다 진급이 좀 빠른 편입니다. 절 좋게 봐주시는 윗분들도 많고요. 소희 씨의 내조가 없더라도 진급하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을 테니까 결혼을 조금 늦게 해도 괜찮습니다.”
이선주가 피식 웃었다.
“하긴 우리 소희가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오상진이 바로 손을 흔들었다.
“아닙니다. 어머님.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것이 아니라, 사실 군인 와이프가 되면 여러모로 신경 쓸 것이 많습니다. 장교들이 결혼하면 와이프끼리 사모회가 따로 있습니다. 거기 가입하면 고생해야 하는데 여자 친구일 때는 빠져도 되지만 결혼을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참여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벌써부터 소희 씨에게 그런 고생을 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 그래요?”
이선주가 또 한 번 기특하다는 듯이 오상진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불현듯 어제 남편인 한만식과 나눴던 얘기가 떠올랐다.
“참, 여보! 내일 나 상진 씨 만나기로 했어요.”
“상진 씨가 누구야?”
“으이그. 내가 몇 번을 말해요. 소희 남자 친구 이름이 오상진이라고요.”
“아! 그 상진이······. 난 왜 이렇게 이름이 입에 안 붙지?”
“당신은 상진 씨 보지도 않았으면서 상진이가 뭐예요.”
“그럼 남의 집 귀한 딸하고 몇 년째 연애 중인데 내가 이름도 못 불러?”
“그런 생색은 만나고 나서 내요. 만나고 나서! 언제는 집안에 군인 출신은 하나면 족하고 맘에 안 든다고 하더니.”
“어험! 그것은 상진이가 그 정도로 준비가 잘되어 있을 줄은 몰라서 그랬던 거지.”
한만식은 자신의 딸인 한소희가 군인과 오상진과 교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딱 한마디를 했다.
“연애는 네 맘대로 해도 되는데 결혼은 안 된다.”
딸인 한소희의 성격을 알기에 연애까지 뜯어 말릴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고 결혼시킬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오상진이 하필이면 군인이고 군인 와이프가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 이리저리 주워들은 것이 있었다.
게다가 군인 월급도 박봉인데, 비싼 돈 들여 좋은 대학에 보낸 딸을 고작 군인 와이프를 만들 생각은 죽어도 없었다.
나중에 진급도 잘되고, 장군까지 단 후에 정치 쪽으로 생각이 있다면 또 모를까. 그런 것이 아니라 평생 군인으로서만 살 거라면 딱히 딸을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선주를 통해서 빌딩을 3채나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들으니 생각이 좀 달라졌다.
“아니, 무슨 젊은 나이에 빌딩을 그리 갖고 있어?”
“그건 나도 모르죠. 아무튼 경자가 직접 경매를 도와줬다니까 확실해요.”
“그래서, 그게 다 얼마야?”
“글쎄요. 지금 빌딩 값이 좀 올랐으니까. 모르긴 몰라도 200억 가까이 하지 않을까요?”
“200억?”
한만식의 눈이 엄청 커졌다. 이선주가 일부러 약간 살을 붙이긴 했지만 한만식은 200억이라는 말에 홀딱 넘어갔다.
사실 한만식 주변에 한소희를 탐내는 집안들이 많았다. 국회의원도 있고 대학교수도 있는데 하나같이 집안들이 잘살았다. 하지만 그중에서 아들에게 200억을 물려줄 수 있는 집안은 흔치 않았다.
물론 그보다 더 많은 돈을 가진 집안도 있지만 준재벌가 집안에 시집 보내면 천둥벌거숭이 같은 딸이 고생만 할 것 같아 싫었다.
“흐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