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 대대로 가겠습니다(12)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12화
01. 대대로 가겠습니다(12)
오상진의 반응에 김철환 소령이 약간 서운한 기색을 내비쳤다. 오상진이 바로 변명을 했다.
“아니, 태명이 좋아서 그렇습니다. 왠지 좀 어색하기도 하고 말입니다.”
“아······. 하긴 그렇지? 나도 만날 금동아, 금동아 하다가 주호야 하고 부르려니 좀 어색하고 입에 안 붙긴 한다.”
김철환 소령은 둘째 태명을 금동이로 지었다. 어머니가 태몽을 꿨는데 금반지를 주워 손가락에 끼우는 꿈을 꾼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주호라는 이름이 조금 심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상진이 다시 반쯤 찬 술잔을 들어 비워냈다. 쓴 소주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크으. 역시 쓰네.”
오상진이 바로 삼겹살을 집어서 입으로 가져가 오물거렸다.
“소은이는 요새 잘 지내죠?”
오상진의 물음에 김철환 소령이 바로 인상을 썼다.
“말도 마라. 미운 일곱 살, 미운 여덟 살이라더니 어찌나 말을 안 듣는지.”
“그래요?”
“아주 요즘은 내가 안아주려고만 해도 싫다고 난리야. 그러면서 엄마한테서는 떨어질 줄도 모르고. 이러다 둘째 태어나면 막 질투하고 그러는거 아닌가 모르겠다.”
“에이. 우리 소은이는 착해서 안 그럴 겁니다.”
“방금 내가 하는 소리 못 들었어? 미운 여덟 살이라니깐.”
김철환 소령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딸 바보라는 사실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바로 표정을 바꾸며 휴대폰을 꺼냈다.
“소은이 사진 보여줄까?”
“네. 보여 주십시오.”
김철환 소령이 신이 나서 휴대폰에 저장된 최근 사진들을 쭉 나열해 보여줬다.
“봐봐. 예쁘지? 내 자식이지만 진짜 예쁘지 않냐?”
“소은이 예쁜게 하루 이틀인가요.”
“자세히 보면 크면서 점점 더 엄마를 닮아가는 것 같아. 역시 우수한 유전자는 변하지가 않아. 지금 생각해 보면 말이지. 진짜 천만다행이야. 내 유전자를 가져갔다면 얼마나 원망의 말을 들었겠냐.”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그건 일리가 있습니다. 정말 다행이죠. 소은이가 형수님을 완전 빼다 박은 사실이 말입니다.”
오상진도 바로 인정을 했다. 그러자 김철환 소령이 눈살을 찌푸리며 오상진을 노려봤다.
“야! 가만히 들어보니까. 너의 말에 뭔가 뼈가 있는 것 같다.”
“뼈는 무슨 뼈입니까. 형님께서 민감하게 반응하시는 겁니다. 형수님 미인이라고 칭찬하는 거잖습니까.”
“그런거지?”
“그렇습니다. 자자, 소은이 사진 보십시오. 와, 이거 더 예쁘게 나왔습니다. 리본이 참 어울립니다.”
오상진의 말에 김철환 소령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고개를 홱 돌려 사진을 봤다.
“그렇지? 이 리본을 너희 형수가 만들었잖아. 너도 알다시피 네 형수 손재주가 좀 좋냐.”
“진짜 형수님은 못하시는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소은이도 유치원에서 뭐 만들거나 하면 소질이 남달라. 피는 못 속이는 거 같더라.”
“그것도 인정! 암만 봐도 역시 형수님 닮은 것이 천만다행입니다.”
오상진은 또 한 번 맞장구를 쳤다. 그러자 김철환 소령이 오상진을 똑바로 봤다.
“이 자식이 아까부터 자꾸 날 먹이네?”
김철환 소령이 버럭 했다. 오상진은 그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말이. 어쨌든 예쁘면 된 거 아닙니까.”
“이 자식이······.”
김철환 소령이 수저를 들어 내밀었다. 그러자 오상진이 곧바로 젓가락을 엑스 자로 들어 막았다.
“어쭈, 막아?”
“어! 저 이제 곧 대위입니다. 예전의 어리버리했던 소위가 아니란 말입니다.”
“이 자식 봐라? 예전의 소대장 시절로 한번 돌아가봐?”
“에헤이. 또 왜 이러십니까. 소은이 보십시오. 소은이!”
오상진의 말에 김철환 소령은 다시 소은이의 사진으로 향했다.
“히히히. 너 인마. 우리 소은이가 예뻐서 그냥 넘어가는 줄 알았다.
“네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김철환 소령은 휴대폰 속 소은이를 보며 어느 새 입이 찢어질 듯 히죽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며 오상진은 역시 딸 바보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오상진이 수저를 들어 바닥을 보인 된장찌개를 긁어 입에 넣었다.
“참, 올해 소은이 초등학교 들어가는 거죠?”
“그렇지 않아도 학교 들어갈 준비해야 한다고 이것저것 걱정이 많은 모양이더라. 그런데 무슨 애들 입학하는데 돈이 이렇게 많이 들어.”
김철환 소령이 또 한 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엄살이 아니라 소은이가 첫 아이이다 보니 이것저것 준비해야 할 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그런 김철환 소령을 보며 오상진이 피식 웃고는 미리 준비한 봉투를 건넸다.
“이게 뭐야?”
“소은이 입학 선물입니다.”
“야이씨······ 안 집어넣어?”
“에헤이. 그냥 넣어두십시오.”
오상진이 억지로 김철환 소령 손에 쥐여줬다. 김철환 소령이 잔뜩 인상을 구기며 봉투를 바라봤다.
“이 자식이 오랜만에 만나서는······.”
그리고 슬쩍 봉투를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으며 환하게 웃었다.
“······이렇게 말이야. 기특한 짓을 하고 그래도 되는 거야. 응?”
김철환 소령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 자존심 때문에 대대 시절에 출세길이 막힐 뻔하기도 했었다.
만약 오상진이 자신보다 나은 처지가 아니었다면 이 돈을 받지 않았겠지만 이미 영화투자를 통해 큰돈을 벌었다는 것을 아는 데다가 오상진이 돈 많다고 유세를 떨거나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꺼운 마음으로 봉투를 받았다.
“야. 그건 그렇고. 다음 영화는 언제쯤 들어가?”
“또 그 말씀입니까?”
“야! 너만 재미 보지 말고, 나도 재미 좀 보자. 지금 소은이 동생도 태어날 건데 나도 뭐 비상금이라도 있어야지.”
자식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 되다 보니 김철환 소령은 작년부터 오상진에게 영화 투자할 때 자기도 껴 달라고 자주 얘기를 했었다.
물론 김철환 소령을 투자에 끼워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오상진은 김철환 소령이 군대에서 자신의 길을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괜히 투자에 맛을 들이면 돈 때문에 군인의 길을 포기할 것 같아 그것이 걱정이었다.
게다가 지난번 김선아 형수가 했던 말도 있었다.
‘혹시라도 그이가 투자를 한다거나 하는 이상한 말을 하면 도련님이 딱 잘라서 거절해 줘요. 만약에 그거 받아주면 저 도련님 안 봐요.’
오상진에게 김철환 소령이 친형 같은 존재였지만 김선아도 친형수보다 더한 존재였다.
김선아는 오상진 이상으로 남편 김철환 소령이 군인으로서 성공하길 바랐다. 그래서 오상진도 김선아의 말을 들어주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렇다고 미래를 걱정하는 김철환 소령의 심정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노릇.
“그러지 말고 형수님 음식 솜씨 좋은데 부업하나 하시는 것은 어때요?”
“부업?”
“네. 제가 옛날에 형수님 반찬 엄청 가져다가 먹었잖아요.”
“그래서? 반찬 가게라도 하라고?”
“못 할 건 없지 않아요? 요새 보니까, 반찬을 집에서 해 먹지 않고 사 먹는 사람이 많아지더라고요. 아시잖아요. 점점 맞벌이 부부들이 많아지면서 밑반찬도 사 먹는 추세인 거요.”
김철환 소령이 오상진의 말을 듣고 손으로 턱을 긁적긁적 거렸다.
“으음······.”
솔직히 김철환 소령은 자신이 돈을 벌고, 아내는 어지간하면 고생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김선아의 요리 솜씨를 썩히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것보다 네 형수 고생시키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에이. 지금도 고생하시는데······.”
“뭐, 이 자식아!”
김철환 소령이 또 한 번 버럭 하며 수저를 들었다. 오상진도 곧바로 방어하듯 젓가락을 들었다.
“자꾸 이러지 마십시오.”
“너 내려놔. 얼른 내려놔.”
“먼저 내려놓으십시오.”
두 사람은 수저와 젓가락을 든 채 서로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때 이모님이 보글보글 거리는 계란찜을 가져와 내려놨다.
“으구, 둘이 애들도 아니고 뭐 하는 거야?”
“그보다 이모님! 우리 고기 시킨 지가 언제인데. 고기는 안 오고 계란찜입니까.”
“있어봐, 가져다 줄 테니까.”
이모가 몸을 돌려 미리 꺼내놨던 고기와 소주를 가지고 와 테이블에 놨다.
쾅!
“자, 됐지?”
“네. 후후후. 잘 먹겠습니다.”
오상진은 식어버린 불판에 다시 불을 피우고, 어느 정도 데워졌을 때 다시 고기를 올려 구웠다. 그사이 술을 따른 오상진과 김철환 소령은 다시금 술잔을 부딪쳤다.
“크으! 갑자기 술이 다네.”
“천천히 드세요. 그러다 갑자기 취합니다.”
“알았어, 인마. 잔소리는······. 그보다 네 생각은 어때? 진짜 너희 형수 반찬 가게 하면 잘할 것 같아?”
“솔직히 말씀드리면 어느 곳에서 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죠. 목을 잘만 잡으면 충분히 잘 될 것 같습니다.”
“목이라······. 목 좋은 곳은 비싸겠지?”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뭘 그런 걸로 고민을 하십니까. 소은이 삼촌 빌딩이 몇 채인데. 별걱정을 다하십니다.”
“잉? 소은이 삼촌?”
김철환 소령이 고개를 갸웃하다가 앞에 앉은 오상진을 봤다.
“아······ 너?”
“네.”
“그래서 임대료를 싸게 해준다고?”
“어이구, 형과 형수님 없었다면 저 사람 구실도 못했을 겁니다. 그 은혜를 이렇게라도 갚아야죠.”
“됐다, 인마. 넌 이미 충분히 갚고도 넘쳐. 나야말로 너 아니었다면 옷을 벗느니 마니 그런 고민을 했겠지.”
“요새는 그런 고민 안 하시는 것 같습니다.”
“어라? 너 몰라? 내가 동기들 중에서 다시 앞줄로 가 있는 거?”
“아. 그렇습니까?”
“내가 일전에 말했잖아. 줄도 없어서 솔직히 이대로 가 봤자 승진은 텄으니 옷 벗을 일만 남았다고. 그런데 요새는 안 그래. 나 무시하던 놈들도 나에게 전화를 해서 밥 먹자고 한다. 요즘 나 동기들이랑 밥 먹는 재미로 살아.”
“언제는 저 아니면 술 마실 사람도 없다고 하셨으면서.”
“그러니까. 동기들 만나면 술을 못 마셔. 너희 형수가 허락을 안 해.”
“아, 또 그런 겁니까?”
“그래. 그러니까, 자주 좀 보자. 자주.”
“네. 알겠습니다.”
“짜식이 대답은. 그나저나 평택으로 내려가면 얼굴 더 보기 힘들어 질 텐데······.”
“걱정 하지 마십시오. 저도 소희 씨도 보고 자주 올라 올 겁니다.”
김철환 소령이 피식 웃었다.
“인마. 누가 네 데이트 걱정하냐. 나랑 술 마실 걱정 하지.”
“네?”
오상진이 무슨 말인지 의문부호를 그렸다.
“너 인마. 지난번처럼 제수씨 만난다고 술은 입에도 안 대고 횅하니 가버릴 거잖아.”
“제가 또 언제 그랬습니까.”
“너 요새 종종 그랬거든.”
“으흠. 전 기억이 잘······.”
“짜식이?”
“자, 자. 술이나 한 잔 드시죠.”
오상진은 짐짓 모르는 척 술잔을 들었다. 김철환 소령도 피식 웃고는 술잔을 들어 부딪쳤다.
두 사람은 다시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눴다.
“지금 지내는 집은 어떻습니까? 이제 좀 적응이 되셨습니까?”
“이사 간 지가 언제인데. 이젠 괜찮아. 그런데 네 형수는 주호 생각해서 좀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갔으면 하는 바람이긴 한데. 우리 형편에 그 정도면 딱 좋아.”
김철환 소령과 김선아는 옛날에 살던 아파트에서 이사를 해 사단에서 가까운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대출을 받았는데 그것 때문에 김선아가 또 한 번 허리띠를 졸라 매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