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 대대로 가겠습니다(11)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11화
01. 대대로 가겠습니다(11)
“크으. 좋다. 좋아.”
“저도 좋습니다.”
“상진아. 아무리 생각해도 작년이 좋았던 것 같다. 그래도 작년에는 너와 자주 술 마실 수 있었는데······. 요새는 얼굴 보기도 힘드니, 원!”
“왜 그러십니까? 요즘 힘드십니까?”
“힘들 게 있나. 여기가 거기나 사람 사는 곳은 똑같지.”
김철환 소령이 젓가락으로 잘 익은 삼겹살을 들어 입으로 가져가 오물오물거렸다.
“음, 역시 맛있네.”
김철환 소령은 삼겹살 맛이 흡족한지 고개를 끄덕이며 본격적으로 상추쌈을 싸기 시작했다. 오상진도 김철환 소령을 따라 고기를 집어 들었다.
몇 년째 얼굴을 보다 보니 이제는 식사 패턴이 바뀌었다. 어지간한 레퍼토리들도 떨어진 터라 서로를 보면 일단 배부터 채웠다.
오상진과 김철환 소령은 앉은 자리에서 삼겹살 4인분을 깨끗하게 해치웠다. 그렇게 적당히 포만감이 들자 김철환 소령이 젓가락을 내려놨다.
“참! 너 부임지 전해졌더라.”
“어디입니까?”
“어디였으면 좋겠냐?”
“수도권 근처였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김철환 소령이 피식 웃었다.
“수도권 근처는 맞아.”
오상진의 눈이 반짝였다.
“서울은 아니죠?”
“평택. 17보병연대라고 들어봤냐?”
“아. 거기 좀 빡세다고 하던데.”
“그럼 인마. 육본에 같이 가자는 사단장님 말을 무시했으니, 개고생은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 아니냐.”
그 얘기를 들은 오상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김철환 소령이 소주잔에 담긴 술을 반 모금 정도 마신 후 말했다.
“왜? 후회돼? 이제라도 사단장님 따라가고 싶어?”
“됐습니다. 그러는 형님이나 따라가 보시지 그러십니까.”
“나도 됐다. 팔자에도 없는 사단장님 라인 타고 가 봤는데 그것도 못할 짓이더라. 사단장님 주변에 얼마나 쟁쟁한 사람들이 많은지······. 내가 이 줄을 계속 잡고 있어야 하는지 회의감이 들더라니까.”
오상진이 사단으로 올라가면서 김철환 소령도 함께 사단장의 부름을 받았다. 김철환 소령이 잘하기도 했지만 오상진 혼자서는 지나치게 견제를 받을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김철환 소령은 그래도 오상진 덕분에 쌓아놓은 실적이 있으니 사단장님께서 자신을 인정해 주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현실을 깨달았다. 다들 후배 덕분에 사단장 라인을 탄 거라고 눈치를 주는데 한동안 맘고생을 심하게 해야 했다.
그렇게 냉혹한 현실을 겪고 난 뒤 김철환 소령은 오상진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다. 그래서 작년에 자청해서 연대로 내려가 지금은 인사참모로 근무 중이었다.
“연대 내려가신 거 후회 안 하십니까?”
“후회는 무슨. 그리고 인마. 나도 염치라는 것이 있지. 네 덕분에 여기까지 올라왔으면 내 살길은 내가 알아서 개척해야지. 어떻게 계속 빌붙어 있어. 그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지.”
“에이. 그건 아니라니까 그러시네. 자! 제 술 한 잔 받으십시오.”
“나 술 아직 남았거든.”
김철환 소령이 자신의 술잔에 반쯤 찰랑거리는 술을 보여줬다.
“그거 마시고 받으십시오.”
“거참······.”
김철환 소령이 남은 반을 입안에 털어 넣고 술잔을 내밀었다. 오상진이 바로 그 술잔에 소주를 채웠다.
“그래서 너 평택 17연대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도 있어?”
“아뇨. 대충 소문만 들었습니다. 보병연대에 중에서 제법 힘들다고 하던데요?”
“군대가 다 거기서 거기지. 최전방 아닌 게 어디냐. 안 그래?”
“그렇긴 합니다.”
“근데 말이다. 거기 연대장이 곽종윤 준장이야.”
“곽종윤 준장?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말입니다.”
“곽종윤 준장이 최우일 소장 라인이더라.”
“아. 그럼······.”
“그래. 박찬중 국방부장관 쪽이야.”
순간 오상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대외적으로는 파벌 없는 군대, 하나 된 군대를 주창하고 있다지만 현재 군대는 기수나 학연, 지연에 따라서 크고 작은 파벌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강성한 라인이 박찬중 국방부장관 라인이었다. 전 육군참모총장이었던 박찬중이 연초에 국방부장관으로 임명되면서 그 라인이 다시 두각을 나타냈다.
그런 박찬중 국방부장관 라인의 핵심 멤버가 바로 육군본부 최우일 감찰부장이었다.
그리고 오상진이 부임하기로 한 평택 17보병연대장 곽종윤 준장 역시 박찬중 국방부장관 라인이었던 모양이었다.
“처음에 이 이야기를 듣고 솔직히 머릿속이 복잡했어. 사단장님이 널 왜 이곳으로 보냈을까 하고.”
“왜 보내셨을까요?”
“설마하니 사단장님께서 괘씸해서 널 보냈을까?”
“에이. 사단장님께서 그럴 분은 아니시죠.”
“그래. 나도 알아. 그래도 이상하잖아. 그래서 좀 따졌지.”
“네? 누구에게 말입니까?”
“심도윤 소령을 만나서 직접 물어봤지. 왜 이렇게 되었냐고 말이야. 그러자 심도윤 소령이 그러더라. 명검은 담금질이 필요하다고.”
오상진이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그럼 제가 명검이라는 말씀입니까?”
“그럼 인마. 육사 애들 중에서 너같이 대단한 놈이 어디 있다고.”
“에이. 저는 운이 좋은 케이스죠.”
“또또. 그런 소리를 한다. 네가 자꾸 그러니까 동기들이 너 싫어하는 거 아냐.”
“갑자기 왜 이야기가 그쪽으로 흐릅니까.”
“아무튼 심도윤 소령 말로는 사단장님께서 올라가셔서 자리 잡을 때까지 네가 평택가서 고생 좀 하길 바라시더라.”
“그렇습니까?”
“솔직히 나도 그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야. 내가 말했잖아. 네 덕분에 사단 올라가고 보니까 낙하산을 탄 기분이라고 말이야.”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러십니다.”
오상진이 한마디 했다. 자책도 하루 이틀이지 매번 저러니까 동생으로서 속이 쓰렸다.
그러자 김철환 소령이 손을 들어 제지한 후 말했다.
“내 말 끝까지 들어봐. 솔직히 나도 그랬는데 너도 지금까지 잘 하긴 했어도 경력이 짧잖아.”
“그렇죠. 사단장님 주변 사람들 중에서 뭔가 내세울 것은 많지 않죠.”
“내 생각에 동의하는 거지?”
“네, 솔직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심도윤 소령이 겸사겸사해서 평택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하더라. 심도윤 소령 말로는 네가 평택에 가면 뭔가 할 일이 있을 것 같다고 하던데.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위에서 다 생각이 있으니까 너 고생시키는 거 아닐까 싶더라. 아무튼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래. 술 한잔하자.”
“네.”
두 사람의 술잔이 다시 공중에서 부딪쳤다.
오상진은 단숨에 술잔을 비워 넘겼다. 그런데 김철환 소령은 다시 반쯤만 비우고는 소주 한 병을 원샷한 것처럼 이맛살을 찌푸리며 살짝 탄 고기 한 점을 집어 물었다.
“그러고 보니 요새 형님 술이 좀 약해지셨습니다. 언제부터 술을 그렇게 꺾어 드셨습니까?”
김철환 소령이 술을 잘하는 건 아니지만 충성대대 시절에 술자리에서 약한 모습을 보인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러자 김철환 소령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와. 이 자식 봐라. 아주 그냥 나를 못 보내서 안달이지.”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이제 우리 형님도 나이가 들었구나 하는 생각에······.”
“닥쳐, 인마. 나이가 들긴 뭐가 들어? 아직 한창인데.”
“그렇습니까?”
“쓸데없는 소리 말고 마시기나 해.”
“네네.”
오상진과 김철환 소령의 술잔이 다시금 공중에서 부딪쳤다. 그리고 두 사람은 기분 좋게 술을 넘겼다.
“크으. 쓰다, 써! 네 말마따나 요새 나이가 들긴 들었는가 봐. 술이 잘 안 받는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술이 달달하다고 했는데······.”
“그거 내가 한 말이냐?”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는데 형님도 술이 쓰신 걸 보면 형님은 아닌 거 같습니다.”
“짜식이.”
오상진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술병을 들었다. 김철환 소령이 자연스럽게 빈 소주잔을 들었다.
“상진아. 기왕 이렇게 된 거 우리 소주 그만 마시고 맥주 마실까?”
김철환 소령이 들었던 소주잔을 내려놨다. 그러자 오상진이 고개를 흔들었다.
“맥주는 배부르지 않습니까. 이미 삼겹살로 배가 꽉 찼습니다. 그리고 섞어 마시면 더 취합니다.”
“그런가?”
“그냥 오늘 술은 여기까지만 마시죠. 우리가 뭐 술 마시려고 만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랬더니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는 너 술 마시려고 만나는 건데.”
“네?”
“그러고 보니 오늘 모처럼 만에 너희 형수에게 허락을 받았는데······. 아니야. 안 돼! 술 더 먹어야 해.”
김철환 소령이 내렸던 술잔을 다시 들었다.
“상진아. 가득 따라봐. 어서.”
“아. 네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소주를 따랐다. 그리고 자신의 잔에 소주를 따르려는데 잔에 반만 채워졌다.
“어? 술이 떨어졌네.”
그 소리를 들은 김철환 소령이 소리쳤다.
“이모님. 여기 소주 두 병 더요.”
“형님. 한 병만 시키십시오.”
“야! 한 병 가지고 누구 코에 붙여. 두 병 마셔, 두 병!”
잠시 후 이모가 소주 두 병을 가지고 나왔다. 그러곤 불판에 있는 고기를 보더니 슬쩍 물었다.
“어떻게 고기 더 시킬 거야? 아니면 불 빼줘?”
“에이. 벌써 불을 빼다니요. 고기 더 주세요.”
“알았어.”
이모님이 피식 웃으며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그 뒷모습을 향해 오상진이 소리쳤다.
“이모님. 된장찌개도 주십시오.”
“그래.”
“된장찌개는 서비스?”
“무슨 찌개를 서비스로 달라고 그래?”
“어? 이모님 왜 그러실까? 우리 여기 단골인데.”
“단골은 무슨······. 거의 두 달 만에 와 놓구선.”
“바빠서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지 말고 해주십시오.”
김철환 소령의 넉살에 이모님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내참······.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이모가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던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그보다 형님.”
“응?”
“형수님은 좀 어떠세요?”
“너희 형수?”
그러자 김철환 소령이 입꼬리를 슬며시 올렸다.
“너희 형수가 항상 똑같지. 산달이 코앞이라서 거의 집 안에서 요양 중이시다.”
“출산일이 언제라고 했죠?”
“3월! 봄에 태어나.”
“이야, 봄에 태어나는 아이들은 엄청 순하다고 하던데.”
“그런 것이 어디 있어. 그냥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다른 거지.”
김철환 소령이 피식 웃었다.
본래 김철환 소령과 김선아는 둘째 계획이 없었다. 오상진의 도움으로 로또 2등에 당첨되기 전까지는 힘들게 살았다. 그래서 가능하면 큰 딸인 김소은 하나만 잘 키우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획과 달리 아이가 생겨 버렸다.
물론 김철환 소령은 둘째를 은근히 바라고 있긴 했었다. 하지만 계획에 없던 아이가 생긴 터라 형수인 김선아에게 한동안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래도 둘째가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 좋은지 형수와 아이 이야기만 나오면 김철환 소령은 늘 싱글벙글이었다.
“이름은 정하셨습니까?”
“응, 정했다.”
“뭐로 정했습니까?”
“주호 어때?”
“주호라······. 김주호. 으음, 나쁘지는 않습니다.”
“뭐야. 뜨근미지근한 반응은. 내가 인마 작명소까지 가서 무려 20만 원을 주고 받아온 이름이란 말이야.”
“아, 그러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