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 대대로 가겠습니다(6)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06화
01. 대대로 가겠습니다(6)
최강철이 군대에서처럼 손날을 세워 경례를 했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답 경례를 해줬다.
그렇게 최강철마저 택시를 타고 떠나갔다.
오상진은 멀어지는 택시를 보다가 휴대폰을 꺼냈다.
“대리 부르기는 그렇고. 정진이 이 녀석은 뭐 하려나?”
* * *
오상진은 동생인 오정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상진이 사단에서 근무하는 동안 오정진은 서울대 법대에 수석으로 입학해 재학 중이었다.
몇 차례 통화 연결음이 울리기에 전화를 받기 어렵나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오정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형. 왜?
“바쁘냐?”
-도서관에서 공부 중인데 왜?
“나 너희 학교 근처거든? 와서 운전 좀 해라.”
-아, 진짜.
“용돈 줄게.”
-어딘데?
간단히 통화를 마친 오상진은 느긋하게 담배 한 대를 태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만치서 누군가 터벅터벅 걸어왔다.
“어. 빨리 왔네.”
익숙한 누군가를 향해 오상진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오정진이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
“차 키 줘.”
“자, 받아라.”
오상진이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내 던졌다.
한국 대학교 입학을 확 정지은 이후 오정진은 곧바로 운전면허를 땄는데, 운전병으로 입대해도 될 만큼 운전을 잘했다.
“나 참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공부하는 동생한테 운전을 시키냐.”
“인마. 어차피 집에 가려고 한 거 아니야? 같이 들어가면 좋잖아.”
“됐어. 내가 말을 말지.”
오상진과 오정진은 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 운전석에 오른 오정진이 조수석 문을 여는 오상진을 보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형. 담배 피웠지?”
“너 기다리느라 한 대 피웠지. 왜? 냄새나냐?”
“당연한 걸 뭐하러 물어? 그리고 이제 담배 좀 끊으면 안 돼?”
“와, 이 자식 보게. 형이 담배 피우고 싶어서 피우냐?”
“어휴, 소희 누나가 아무 말도 안 해?”
“소희 씨 만날 때는 담배 안 피우지.”
“그럼 나 만날 때만 피우는 거야?”
“인마. 술도 한잔하고, 좋은 사람 만나다 보니까 한 대씩 피우고 그러는 거지. 너는 사내자식이 되어서 담배 피우는 거 가지고 뭐라고 그러냐.”
“형도 참······.”
“뭐?”
“꼰대가 되어간다고.”
“이 자식이 형에게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지.”
“아이 씨. 뭐 틀린 말은 아니잖아.”
차 안에서 두 사람이 장난을 쳤다. 솔직히 회귀 전에는 오정진하고 이렇듯 살갑게 지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티격태격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술 많이 마셨어?”
“아니.”
“그렇지 않아도 오늘 형 온다고 해서 이모부가 잔뜩 기대하고 있던데.”
“뭐, 들어가서 한 잔 더 하면 되지.”
“괜찮겠어?”
“괜찮아. 어차피 술은 이모부가 다 마시는 건데 뭘.”
“하긴······.”
오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공부 잘되어가냐?”
이번에는 오상진이 오정진에게 물었다.
“공부야 똑같지 뭐.”
“올해 시험 볼 거야?”
“응, 한번 보려고.”
“오오, 오정진! 3년 차에 사시 1차 패스하는 건가?”
“아, 진짜. 그렇게 부담 주지 마.”
“왜 인마. 그렇게 열심히 했으면 1차에 당연히 붙어야지.”
수석으로 한국대 법대에 입학한 오정진은 이후로도 과 수석을 한 번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교수들의 기대가 엄청났는데 주변에서도 사시 패스를 떼놓은 당상처럼 여겼다.
“암튼 고맙다, 정진아.”
“뭐가?”
“이 형의 꿈을 이뤄줘서.”
“뭐야, 그게. 형 술 취했어?”
“뭔 소리야.”
“왜 안 하던 소릴 하고 그래?”
“자식이 형이 기특해서 한마디 했는데······.”
“됐어.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오정진이 빨개진 얼굴로 시동을 걸었다. 그 모습이 귀여웠던지 오상진이 다시 짓궂게 물었다.
“그건 그렇고, 너 연애는 잘되고 있냐?”
“무슨 소리야. 내가 여자 친구가 어디 있어?”
“이게 형 앞에서 거짓말을 치려고 그러네?”
“진짜 없다니까.”
“없긴 왜 없어? 아랫집 사는 수현이 있잖아.”
“아, 진짜. 아직도 그 소리야? 수현이랑 사귀는 거 아니거든? 그냥 친구야, 친한 친구!”
오상진의 장난에 오정진이 여느 때처럼 발뺌을 했다. 그러자 오상진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수현이는 너를 몇 년이나 바라보고 있는데 사귀는 것이 아니라니. 너 그거 여자한테 엄청 실례다.”
“그런 거 아니라고 했지.”
“아니긴. 너 혹시 나쁜 남자 콘셉트 잡는 거냐.”
“아니라고 몇 번 말해? 그리고 수현이랑 나랑 학교도 달라. 수현이는 세연대라 서로 얼굴 보기도 힘들어.”
“오오, 그래도 연락은 하고 지내나 보네.”
“아, 진짜! 뭐래.”
오정진이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은 하지만 오상진은 둘이 사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정수현과 종종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만, 지금쯤 연락이 왔을 텐데······.’
오상진은 운전하는 오정진의 눈치를 살피다가 슬쩍 휴대폰을 봤다. 아니나 다를까.
정수현으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와 있었다.
-오빠! 정진이 만났어요?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후후후. 네 남친이랑 만나서 집에 가는 중.
-정말요?
-그런데 수현아. 어떻게 하냐. 네 남친 너랑 안 사귄다고 하던데. 크크크.
-아, 진짜. 정진이 곤란하게 하지 말아요. 그렇지 않아도 오빠 때문에 비밀로 하는 거란 말이에요.
오상진은 살짝 어이없어했다.
‘뭐야. 내가 둘이 연애한다고 뭐라고 했어? 웃긴 녀석들이네.’
오상진이 슬쩍 오정진을 봤다. 그 시선을 느꼈던지 오정진도 오상진을 봤다.
“아, 또 왜?”
“너 수현이하고 진짜 안 사귀어?”
“진짜 안 사귄다니까.”
“너 미래의 법관이 될 놈이 거짓말하면 안 돼.”
오정진은 바로 말을 하지 못하고 잠깐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나 아직 법관 아니거든.”
“와, 이 자식 봐라? 이렇게 피해 간단 말이지.”
“그러니까 그만 좀 해. 계속 그러면 다시는 형 데리러 안 온다.”
“알았어, 알았어. 으구······.”
그때 오상진의 휴대폰이 지잉지잉 하고 울렸다.
발신자는 한소희였다.
“소희 씨. 내가 보고 싶어 하는 거 어떻게 알고 전화했어요?”
오상진이 살짝 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로 한소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어디예요?
“지금 정진이랑 집에 가고 있어요. 왜요? 내가 많이 보고 싶어요?”
그러자 옆에 있던 오정진이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댔다. 방금 전까지 자신을 놀려대던 오상진이 맞나 싶은 것이었다.
오상진은 그러거나 말거나 한소희와 통화를 이어갔다.
-빨리 와요. 상진 씨 기다리다 목 빠지겠어요.
“음? 지금 어디인데요?”
-저 지금 집인데.
“집? 소희 씨 집이요?”
-상진 씨 집이요. 지금 어머니랑 같이 있는데 언제 오는 거예요오!
“우리 집에 가 있었어요? 말을 하지.”
-뭐야. 상진 씨 얼굴 보려고 왔는데······. 이렇게 늦게 오면 어떻게 해요. 어머니! 어머니가 대신 야단 좀 쳐주세요.
잠시 후 신순애 여사의 음성이 들려왔다.
-너는 왜 소희를 기다리게 하니?
“엄마, 소희 씨가 집에 왔으면 나한테 미리 얘기 좀 해주지.”
-네가 빨리 올 줄 알았지. 둘이 약속한 거 아니었어?
“아니.”
-아무튼 빨리 와! 소희 아까부터 기다렸어.
“네. 알겠어요.”
오상진은 전화를 끊고 오정진에게 말했다.
“정진아, 빨리 가자. 네 형수 기다린단다.”
“와, 진짜······. 못 말린다.”
오정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고는 힘껏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5.
오정진은 서두른다고 했지만 밤 11시가 넘어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서둘러 집에 들어가자 한소희가 눈을 흘기며 반겨주었다.
“이제 왔어요?”
“소희 씨, 미안해요. 밥은 먹었어요?”
“밥이야 진즉에 먹었죠. 지금 몇 시인데요.”
그때 신순애가 얼굴을 내밀며 말했다.
“왔니?”
“엄마, 이모는요?”
오상진이 집 안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평소라면 어머니와 함께 맞아줘야 할 이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모? 이모부하고 영화 보러 갔어.”
“영화요? 갑자기?”
“이모부한테 공짜 표가 생겼다고 해서 같이 가자는 거 됐다고 했어.”
“왜요. 모처럼 영화 한 편 보시지.”
“됐어, 피곤한데 영화는 무슨. 일단 옷 갈아입고 나와.”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은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편안한 옷차림으로 갈아입으려는데 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
오상진은 움찔하고 놀라며 몸을 가렸다. 들어온 사람은 한소희였다.
“아, 소희 씨. 뭐예요, 놀랐잖아요.”
“뭐, 어때요? 우리 사이에.”
한소희가 방에 들어와 침대 쪽에 자리 잡고 앉았다. 팬티 차림이던 오상진은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한소희는 오상진이 옷을 다 갈아입자 슬그머니 다가와 그를 뒤쪽에서 안았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미안해요. 일찍 오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나 안 보고 싶었어요?”
“당연히 보고 싶었죠. 소희 씨가 집에 있는 줄 알았으면 일찍 왔을 텐데 말이에요.”
“칫! 내가 아까 문자 보냈는데 확인도 안 하고······.”
한소희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랬어요? 미안해요.”
모처럼 만난 소대원들과 이런저런 얘기에 푹 빠져 있던 터라 오상진은 핸드폰을 제때 확인하지 못했다.
그때 한소희가 갑자기 킁킁하고 냄새를 맡았다.
“어? 담배 피웠어요?”
“어 그게 내가 피운 게 아니고······.”
“거짓말하지 말아요.”
한소희가 눈을 흘기고는 오상진의 옆구리를 꾹 하고 찔렀다. 오상진은 움찔하며 몸을 비틀었다.
한소희는 팔짱을 끼며 눈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담배 끊는다면서요. 끊는다고 했잖아요.”
“아.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아요. 아무래도 애들이 다 같이 담배를 피우자고 그러는데 나만 안 피울 수가 없었어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도대체 담배는 언제 끊을 거예요. 만날 말만······.”
“미안해요.”
오상진이 사과를 했지만 화가 난 한소희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는 오상진은 미안하면서도 귀여웠던지 한소희의 머리를 손으로 헝클었다.
한소희도 싫지 않은지 입술만 삐죽거렸다.
“그건 그렇고······. 대대로 가기로 한 것은 어떻게 됐어요?”
오상진이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내려가야 할 거 같아요.”
연초에 오상진은 대대로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 일로 한소희와 살짝 다퉜다.
한소희는 계속해서 오상진이 서울 근처 부대에서 근무하기를 바랐다. 서울에서 군 생활 하는데도 얼굴 보기 힘든데 어딘지도 모를 지방으로 내려가는 건 싫었다.
하지만 오상진도 진급을 하기 위해서는 지방을 돌아야 했다. 규정상 서울에서만 근무할 수는 없었다.
“진짜 완전 지방으로 내려가면 어떻게 해요?”
“그것까지는 나도 어쩔 수가 없어요. 그래도 사단장님께서 날 예뻐해 주시니까 가능하면 수도권 쪽으로 배치를 받을 수 있게 얘기를 해볼 생각이에요.”
“수도권이면 경기도요?”
“그래도 지방보다는 나을 거예요.”
“그렇다 해도 자주 못 보는 것은 마찬가지잖아요.”
오상진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대신에 지방으로 내려가면 관사 생활은 안 하려고요. 따로 아파트를 구입해서 생활할 겁니다. 소희 씨가 편히 내려와 쉴 수 있도록요.”
“그야 당연하죠!”
한소희가 대답을 하면서 눈을 살짝 흘겼다. 그러다가 뭔가를 떠올리고는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