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 대대로 가겠습니다(5)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05화
01. 대대로 가겠습니다(5)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늦었습니다.”
“야, 은호야. 왜 이렇게 늦어.”
그러자 이은호가 능청스럽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여자 친구 데려다주고 오느라 말입니다.”
순간 강태산이 발끈했다.
“야, 이은호! 너무한 거 아니냐?”
군 생활 때는 강태산이 이은호보다 후임이었다. 하지만 나이는 같아서 제대 후 두 사람은 친구처럼 지내기로 했다.
이은호가 떨떠름하게 말했다.
“왜, 인마.”
“나 솔로인 거 뻔히 알면서 이 와중에 연애하는 걸 그렇게 꼭 자랑하고 싶냐?”
이은호가 어이없다는 듯 바라봤다.
“야! 너야말로 나한테 왜 그러냐. 재벌이 솔로라고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대학생에게 여자를 소개시켜 달라고 그래.”
“그게 친구가 되어서 할 소리냐?”
“그러니까 클럽 같은 곳에서 원나잇 하지 말고. 제대로 된 여자를 만나.”
강태산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오상진을 바라보며 하소연했다.
“소대장님. 이게 진정, 진저어어어엉! 군대에서 말한 전우애입니까!”
그러자 최강철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어, 넌 해당 사항 없음!”
그러자 옆에서 바로 말이 나왔다.
“동감!”
“나도 동감!”
“동감이오!”
강태산이 바로 인상을 찡그렸다.
“아씨, 왜 다들 나에게만 그럽니까.”
강태산이 투덜거렸고, 오상진은 피식 웃으며 자리에 앉은 이은호를 바라봤다.
“은호는 학교 잘 다니고 있지? 졸업반이라고 했나?”
“네.”
“얘기 듣기로는 너 학교에서 교내 신문기자로 활동한다며.”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어떻게 알기는 다 아는 수가 있지.”
오상진을 말을 하면서 슬쩍 최강철을 바라봤다. 최강철이 피식 웃었다.
사실 최강철이 중대원들의 소식통이었다. 그래서 이은호가 신문기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것도 알았다.
“아무튼 은호야. 소대장 아는 사람 중에 좋은 기자님이 계셔. 그러니까 진짜 기자 하고 싶으면 나중에 말해. 연락처 알려줄 테니까.”
“정말입니까?”
“그래!”
“와, 이것이 진정 학연 지연······ 뭐 군대 인맥 질의 현장입니까?”
강태산의 말에 물 마시던 최강철이 푸웁 하고 내뿜었다.
“뭐? 너 방금 뭐라고 했냐?”
“아니, 이런 식으로 뒤에서 막······. 이래도 되는 겁니까.”
최강철이 강태산을 어이없게 바라봤다.
“야! 강태산아.”
“네.”
“네가 기억력이 나빠서 까먹었나 본데. 그렇게 말하는 너는 그래서 그 인맥 질로 군대에서 그렇게 꿀을 빨았어?”
“제가 언제 말입니까? 저 나름 군 생활 열심히 했습니다.”
“풉!”
“하하하······.”
얘들이 웃었다. 특히 크게 웃은 이세강을 보며 강태산이 눈을 부릅떴다.
“이세강. 넌 웃으면 안 되지, 인마.”
“저 안 웃었습니다.”
그러자 이대강이 바로 이세강을 감쌌다.
“인마. 넌 왜 내 동생에게 뭐라고 해.”
“와. 방금 세강이가 웃었지 않습니까.”
“그리고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랬다고 네가 무슨 군 생활을 바르게 했다고 그래? 너 진짜 나 믿고 군 생활 제대로 안 했잖아.”
“아, 또 무슨 이대강 병장님 믿고 그랬겠습니까. 최강철 병장님 믿고 그랬죠.”
“어이쿠······.”
최강철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상진이 그런 강태산을 보며 말했다.
“태산아. 그러니까 우리 모임의 의도가 불순해서 별로라는 거야?”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아니, 네가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절이 싫다면 중이 떠나야지.”
오상진의 그 한마디에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저도 동감입니다.”
“네. 당연히 그렇죠. 떠나야죠.”
최강철이 강태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태산아. 그래 오늘이 아무래도 마지막인 것 같다. 많이 먹어.”
“와, 진짜 너무들 하십니다. 저에게 왜 그러십니까.”
강태산이 바로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그 모습을 보며 다들 피식피식 웃었다.
이렇듯 강태산 놀리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러다가 오상진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뭔가 좀 허전한데?”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김우진이 나타났다.
“흐흐흐, 다들 날 기다렸나?”
오상진은 김우진을 보며 말했다.
“아. 누가 빠졌나 했더니 우진이가 빠졌었구나.”
“뭡니까? 저 없는 줄도 몰랐던 겁니까?”
“이제 알았으니까 됐지. 그만 앉아라. 그보다 그 옷차림은 뭐냐?”
“이거요? 엄청 따뜻합니다.”
김우진은 오상진에게 자랑이라도 하는 듯 발목까지 내려오는 자신의 롱 패딩을 보여줬다.
“형님은 현장에 안 나가봐서 모르는데. 진짜 추워 죽습니다. 이거라도 없으면 진짜 큰일 납니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야, 너는 현역 군인 앞에서 현장 얘기를 하냐.”
“소대장님. 솔직히 사단 작전처에서 꿀 빠셨지 않습니까.”
“작전처도 가끔 현장에 나가거든?”
“와아. 진짜 가끔 작전에 나간다고 했습니까. 와, 진짜 극혐!”
김우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상진이 눈을 가늘게 떴다.
“너 인마. 그런 식으로 나와 봐. 내가 소희 씨에게 말해서 너 자르라고 할 거야. 맨날 뺀질거린다고.”
김우진이 갑자기 표정을 바꿨다.
“에이, 왜 그러십니까.”
그러더니 괜히 테이블을 과장스레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술! 술 없어? 제가 술 한 잔 따라 드리겠습니다.”
“됐어, 인마. 엎드려 절 받기 싫다.”
“헤헤헤······.”
오상진의 장난 섞인 타박에 김우진이 실없이 웃었다.
“그보다 우리 소중이는 별일 없지?”
오상진의 물음에 김우진이 인상을 팍 썼다.
“아, 진짜. 회사 이름 좀 그렇게 부르지 마십시오.”
“왜 인마. 회사 이름이 소중 픽처스인데 그럼 뭐라고 불러.”
“그러니까, 끝까지 말씀하시란 말입니다. 소중 픽처스라고 말입니다. 자꾸 소중이, 소중이 하니까 남들이 오해하지 않습니까.”
한중만의 영화사에서 투자 제작한 연산의 남자가 대박 히트를 친 후로 오상진은 작년에도 몇 건의 영화를 더 추천해 성공을 이끌었다. 덕분에 한중만은 회사를 더 키울 수 있었다.
한중만은 고마운 마음에 오상진에게 지분을 넘겨주겠다고 했는데 오상진은 군인 신분이라 지분을 받기가 곤란했다.
그래서 그 지분을 한소희가 대신 받기로 했고 사내 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한소희는 회사 이름도 바꾸자고 제안을 했는데 한소희의 ‘소’ 자와 한중만의 ‘중’ 자를 합쳐서 소중 픽처스로 만든 것이었다.
물론 한중만은 오빠의 이름이 앞에 와야 한다며 중소 픽처스로 가자고 했다. 그런데 중소 픽처스는 너무 중소기업 같은 느낌이 난다며 탈락되었다.
그 와중에 한대만이 자신도 껴 달라며 대중소 픽처스로 하자고 말했지만 그것은 다들 반대를 했다.
영화 화면에 제작사 이름이 올라갈 때 사방에서 폭소가 터질 거라 예상한 것이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회사 이름은 소중 픽처스로 결론이 났다. 그래서 오상진은 김우진을 만나면 ‘소중이, 소중이’ 하면서 장난을 쳤다.
“이번 영화는 어때? 잘될 것 같아?”
“아, 잘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형님이 추천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야. 내가 무슨 노스트라다무스야? 다 알아서 맞추게. 그리고 제작사라면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는 거지.”
김우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왠지 헛다리 짚은 것 같습니다.”
“그 소리 중만이 형님에게도 한 건 아니지?”
“에이, 제가 어떻게 대표님께 그 말을 합니까. 우리 회사 직원들 엄청 기대하고 있습니다. 특히 대표님은 더 그렇고 말이죠. 아무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손익분기점만 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되는 거야.”
오상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가 잘 되면서 한중만은 다양한 영화에 투자를 하고 싶어 했다.
본래 꿈이 영화 산업에 이바지하는 것이고 어려운 환경에 처한 동료 영화인들을 모른 척하지 못하다 보니 상업 영화뿐만 아니라 저예산 영화나 예술 영화까지 좋은 영화라면 일단 도움을 주려 했다.
그러다 보니 오상진도 영화 제작에서 한발 물러선 상태였다. 물론 너무 손해나지 않게 반기별로 한 작품씩 추천을 해주고 있는 상태이긴 하지만 사단 작전처로 올라가면서 대박 영화에 대한 조언을 줄인 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오상진은 돈이 안 되는 영화에 투자하지 말라고 말할 수 없었다. 물론 직원인 김우진의 불안한 심정도 이해는 가지만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 아니다 보니 투자에 따른 손실은 어느 정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우진이까지 왔으니까. 이제 주문하자!”
“그런데 왜 돼지갈비집입니까. 소갈비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강태산의 구시렁거림에 최강철이 입을 열었다.
“네가 살 거야? 네가 사?”
강태산 바로 안주머니로 손을 집어넣었다.
“진짜 제가 삽니까? 제가 사요?”
“오오오, 강태산이 지갑 꺼내나?”
“카드 꺼내?”
“태산이한테 정말 얻어먹는 건가?”
주위의 사람들이 흥미진진한 얼굴로 바라봤다. 이은호도 깐족거리는 것을 본 강태산이 눈을 부라렸다.
“야! 너 두고 봐.”
강태산이 안 주머니 깊숙이 손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손에 잡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 뭐지? 지갑이 어디 갔지? 아, 맞다. 차에 두고 왔네.”
“그럼 그렇지.”
“역시 강태산. 잠깐이라도 기대한 내가 바보다.”
“하아, 진짜. 운전기사 자를까?”
“쯧쯧, 또 시작이다. 또 시작이야. 지가 차에 두고 내려놓고선.”
최강철이 고개를 흔들며 혀를 찼다. 강태산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아니, 제가 내리면 지갑 챙기라고 당연히 말을 해야죠. 그런 것도 하나하나 딱딱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어휴. 왜 인마. 너 아예 화장실 가면 본부장님 바지 내리셔야 합니다 말해주고 그래라.”
“그것만 하면 안 되죠. 똥 싸러 가면 휴지까지 내밀며 본부장님 똥 싸러 가는 거면 휴지도 가져가셔야죠~ 라고도 해야죠.”
고참들의 놀림에 강태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 진짜! 나 이 모임 안 나올래.”
오상진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했다. 그렇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와, 소대장님!”
“하하하핫!”
“크크크크크!”
그렇게 충성회의 모임에 웃음꽃이 피었다.
4.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고 식사를 마친 충성회 멤버들이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갔다.
오상진은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러자 술이 얼큰하게 오른 강태산이 말했다.
“소대장님 제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아니, 나 차 가지고 왔어. 대리 부를 거야.”
“대리요? 그러면 우리 기사보고 데려다드리라고 하겠습니다.”
“야, 됐어. 뭘 그런 것까지 해.”
“괜찮습니까?”
“괜찮아. 어서 넌 차 타고 가.”
“알겠습니다, 소대장님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형님도 들어가십시오.”
“그래. 잘 가, 태산아!”
최강철이 손을 흔들었다. 최강철이 손을 흔들었다. 오상진이 최강철을 바라봤다.
“너도 가야지.”
“네. 택시 타고 가면 됩니다.”
“차 안 가져왔어?”
“네.”
“그럼 내 차로 같이 가자.”
“아뇨. 택시 불렀습니다.”
“그러냐?”
“네. 소대장님 대대 내려가시면 그때 다시 한번 보죠.”
“알았다. 그런데 너 언제까지 군대 말투 쓸 거냐.”
“진짜 잘 모르겠습니다. 소대장님만 만나면 이럽니다.”
“그래도 너 군 생활이 재미있었나 보다.”
최강철이 피식 웃었다.
“솔직히 말해서 저 군대 가라고 했을 때 아버지를 좀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소대장님 만나고 좋은 친구들도 만나고 좋았습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네.”
“제가 더 고맙죠.”
“자식······. 어, 저기 택시 온다.”
“넵!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래 강철아. 들어가라.”
“넵! 충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