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 대대로 가겠습니다(3)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03화
01. 대대로 가겠습니다(3)
“네, 맞습니다. 그런데 들리는 소문으로 17보병연대에서 구린내가 난다고 합니다. 오 중위를 그쪽에 넣으면 뭔가 알아내는 게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지금 적지에 오 중위를 집어넣자는 말이야? 그게 지금 할 소리인가? 아니면 자네, 오 중위에게 무슨 억하심정이라도 있는 거야?”
장기준 소장이 눈을 부릅뜬 채 심도윤 소령을 노려봤다. 그러자 심도윤 소령이 당황하지 않고 변명했다.
“아무래도 사단장님께서 오해를 하신 듯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도 오 중위를 많이 아낍니다. 그런데 지금 사단장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오 중위보다 오래 사단장님을 모시고 있었습니다. 만약에 오 중위가 모두에게 인정받을 만한 공을 세우면 나중에 사단장님께서 크게 쓰더라도 별문제 없을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자네 정말 그 생각인가? 정말?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고?”
장기준 소장이 미심쩍은 눈으로 재차 물었다. 심도윤 소령이 고개를 흔들었다.
“다른 뜻은 전혀 없습니다.”
“흐음······.”
장기준 소장이 낮은 신음을 흘렸다. 처음에는 발끈했지만 듣고 보니 오상진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곳은 따지고 보면 적진이었다. 오상진이 그곳에 가면 고생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러나······.
‘본인이 고생을 자처했으니 이번 기회에 조금 더 담금질을 해놓는 것이 좋긴 하겠지.’
장기준 소장의 눈이 반짝였다.
“크흠! 알겠네.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겠네.”
“네. 사단장님.”
심도윤 소령이 경례를 한 후 사단장실을 나갔다. 홀로 자리에 앉아 있는 장기준 소장의 입가를 타고 무거운 한숨이 흘렀다.
3.
일과를 마치고 사단을 나선 오상진은 차를 몰아 최강철이 알려준 곳으로 향했다.
“저긴가?”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은 구형 내비게이션이 도착을 알렸고 오상진은 주변을 두리번거려 고깃집을 찾았다.
널찍한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오상진은 곧장 약속장소로 들어갔다. 그러자 곧바로 종업원이 나왔다.
“어서 오세요. 혹시 예약하셨습니까?”
“네, 최강철 이름으로 되어 있을 겁니다.”
“아, 네. 저 따라오시면 됩니다.”
오상진은 종업원의 안내를 받고 예약된 방으로 이동했다.
“여기입니다.”
“네. 감사해요.”
오상진이 문을 열자 그 안에는 최강철이 슈트 차림으로 앉아 있었다.
모처럼 보는 최강철이 반가웠던 것도 잠시.
자신이 나타난 줄도 모르고 영자 신문을 보고 있는 최강철을 보니 그저 헛웃음이 났다.
“강철아.”
최강철이 깜짝 놀라며 신문을 접고 고개를 돌렸다. 오상진을 발견하고 환한 미소를 보냈다.
“소대장님.”
오상진은 방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이야, 너 못 본 사이에 왜 그렇게 변한 거야?”
“네?”
최강철은 무슨 뜻인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오상진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인마 아무리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영자 신문을 봐? 재벌 2세라고 너무 티 내는 거 아니야?”
“아니에요. 저 경영수업 착실히 받고 있습니다. 정말 왜 그러십니까.”
“이야. 경영수업 두 번 받았다가는 나 같은 사람이랑은 놀아주지도 않겠네.”
“소대장님. 진짜 왜 오자마자 놀리십니까. 경영수업은 경영수업이고, 소대장님은 소대장님 아닙니까.”
최강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상진이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현재 최강철은 충성대대 제대 후 어머니로부터 경영수업을 받는 중이었다.
본래는 회사 경영에 관심이 없었다. 큰 형이 회사에 자리를 잡았고 누나도 한몫 거들고 있으니 굳이 자신까지 낄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군 생활 후 최강철 본인도 뭔가를 해야겠다고 맘을 먹었다.
“요새는 좀 어때?”
“뭐, 회사 생활이 똑같죠. 소대장님은 어때요?”
“군 생활이 만날 똑같지. 뭔 차이가 있겠냐.”
“하긴 군대에서 뭔 일이 있으면 그게 문제죠.”
“훗, 알긴 아네. 우리 강철이 2년 동안 군대에서 놀다 오진 않았나 봐?”
“왜 그러십니까. 제 주변 병장 만기제대한 사람이 별로 없어요. 사람들이 군대에 대해서 몰라요.”
“그래도 걔 있잖아.”
“누구요?”
“강태산! 태산이를 왜 빼먹어.”
“아, 태산이 얘기는 하지 마십시오. 걔는 말년에 꿀 빨고 나왔지 않습니까. 저랑은 다르죠.”
“으이구, 최강철이. 남들이 들으면 너는 말년 유격 다 뛰고, 할 것 다 하고 나온 줄 알겠네.”
최강철도 말년 병장 시절이 있었고, 나름 적당히 열외를 즐기다 나왔다.
“그래도 전 나름 열심히 하고 나왔습니다. 소대장님께서 그런 말씀 하시면 섭섭합니다.”
“아, 그래. 그래.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고 치는 게 아니라. 진짜 열심히 했습니다.”
“알았다니까. 자식이 말이야. 오랜만에 봤는데 여전히 집요해.”
“집요한 것이 아니라······.”
“어허. 알았다니까.”
최강철이 막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뗐다.
“저 원래 안 이럽니다. 주변에서 막 유머러스하다고 난리입니다.”
“퍽이나.”
“근데 소대장님만 만나면 이럽니다.”
“그래, 그렇다고 치자고. 그보다 아버님은 요즘 어떠셔?”
그 말에 최강철이 살짝 삐진 표정을 지었다.
“소대장님은 저보다 오히려 저희 가족이 더 궁금하신 모양입니다.”
“너야 2년 동안 지겹도록 봤잖아.”
“그건 아니지 말입니다. 저 제대하는 것은 못 봤지 않습니까.”
“야야. 그 정도면 많이 본 거지. 말년 병장을 왜 봐. 그보다 4월에 총선인데 아버님은 어떻게 하시기로 했어? 선거 나가시는 거지?”
“네. 그렇게 될 거 같습니다. 솔직히 자랑은 아니지만 저희 아버지 지역구에서 잘나가지 않습니까. 당해낼 자가 없다고 그러십니다. 상대 당에서도 어떤 후보를 내보낼지 고심하고 있다고 합니다. 뭐, 이변이 없다면 4선 당선은 확실시되고 있습니다.”
최강철 아버지 최익현은 현역 국회의원이었다. 여당 출신 3선 의원인데 차차기 대선후보로 불리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는 지역구에서 4선에 도전 중이었다.
“강철아. 이러다가 너희 아버님 대통령까지 하시겠다.”
오상진의 말에 최강철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이야, 최강철이 예전에 군 생활 했을 때는 아니라고 막 그랬는데. 이제는 막 대수롭지 않게 말해? 이러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냐?”
“제대한 지 한참 되었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그러자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그런데 너 왜 아직도 군대 말투를 쓰냐.”
“아, 젠장. 왜 이러지. 소대장님 때문에 그런 거 아닙니까.”
“인마, 너 진짜 웃기다. 내가 언제 군대 말투 쓰라고 했어?”
“아무튼 모르겠습니다. 소대장님하고만 얘기하면 저도 모르게 말투가 이렇게 됩니다.”
“그래서 습관이 무서운 법이란다.”
“참! 누나가 소대장님께 안부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오, 강희 씨가? 안 그래도 최근에 대표이사 선임되셨다는 소식은 들었다. 축하한다고 전해드려.”
오상진은 최강철의 누나인 최강희가 선진 백화점 대표이사로 취임한 것을 뉴스를 통해 확인했다.
그러자 최강철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게 축하받을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왜?”
“누나가 본사에 있다가 백화점으로 내려간 것이지 않습니까.”
“야. 그래도 백화점이면 어마어마하지. 전국에 있는 선진 백화점만 14개 있지 않냐?”
“정확하게 15개입니다.”
전국에 15개의 백화점을 가지고 있는 선진 백화점은 대한민국 백화점 서열 1, 2위를 다투고 있었다.
오상진 입장에서는 그런 백화점의 대표이사로 취임했으니 승진이라 생각했다. 막말로 최강희의 나이를 생각했을 때 최강희 또래에 최강희보다 잘나가는 경영인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최강철의 생각은 달랐다.
“누나가 백화점으로 간 것은 형이 견제해서입니다.”
“견제?”
“네. 누나가 워낙에 일을 잘하니까요.”
“그래? 너희 형님은 계속 본부장이지?”
“네. 말이 본부장이지. 엄마가 경영에 거의 참견을 안하시니까요. 형이 거의 회장이라고 봐야죠.”
최강철은 최강희가 백화점으로 간 것에 대해 조금은 아쉬워하고 있었다.
“강철이 너는 누나가 백화점 간 것이 많이 아쉬운 것 같다.”
“당연히 아쉽죠. 아무래도 형보다는 누나가 더 편하니까요.”
“하긴······. 네 입장에서는 그렇겠다.”
오상진도 김철환 중대장이 있을 때는 군 생활이 좀 편했었다. 하지만 막상 사단에 올라갔을 때에는 정 붙일 곳이 없어서 단 하루도 맘이 편치 않았다.
“그럼 넌? 너는 어떻게 되는 거야?”
오상진의 진지한 물음에 최강철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는 아직 멀었죠. 이제 일 배우고 있고. 앞으로 몇 년간은 밑바닥에서 굴러야 해서 형이 지금 당장 신경 쓰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형이 저까지 내치면 사촌들 신경 써야 해서 머리 복잡할 겁니다.”
“사촌들?”
“회사는 엄마가 물려받았지만 사촌들도 회사에 들어와 있으니까요. 다들 호시탐탐 한 자리씩 노리고 있는데 형 혼자 견제하는 것은 무리죠.”
최강철이 대충 말했지만 오상진은 선진그룹 사정에 대해 제법 잘 알고 있었다.
선진그룹은 명예회장인 이선진 회장이 창립한 회사였다.
이선진 회장은 슬하에 아들 셋에 딸 하나를 두었다. 순리대로라면 아들 중 하나가 회사를 물려받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첫째 아들이 유학 도중 교통사고로 죽고, 둘째와 셋째 역시 지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후계 구도에 문제가 생겼다.
그때 회사를 안정화시키기 위해서 전도유망한 정치인이었던 최익현 의원하고 결혼한 딸 이명화에게 회사를 물려주기로 했다.
갑작스럽게 재벌가 사위에서 재벌 총수의 남편이 된 최익현도 중립을 지키겠다는 당초 뜻을 꺾고 아내가 회사를 지킬 수 있게 도움을 줬다. 그렇게 후계 구도가 정리되면서 자연스럽게 최익현의 장남인 최강호가 회사의 경영권을 움켜쥔 상태였다.
“그럼 강철이 너는 회장 자리에 욕심 없어?”
“에이, 제가 무슨 회장입니까. 형도 있고, 누나도 있는데. 저는 다 필요 없고 딱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최강철은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스스로도 회장 자리에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나? 그 하나가 뭔데?”
“호텔이요.”
“호텔? 요새 호텔 쪽 불경기 아니냐?”
“그렇긴 합니다. 그래도 호텔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에 붙어 있는 리조트도 있고요. 그리고 영화관 엔터테인먼트 다 그쪽으로 몰려 있습니다.”
“오오. 그렇다면 제법 쏠쏠하겠다.”
“소대장님이 영화로 돈 엄청 버셨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도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오올. 나랑 경쟁해 보겠다, 이건가?”
“에이, 무슨 경쟁입니까. 그러지 말고 저도 소스 좀 알려주십시오. 혼자 다 그렇게 해 드시지 말고 말입니다. 저랑 같이 좀 벌게요. 소대장님.”
“야, 인마. 나 혼자 벌기도 힘든데 재벌이 와서 끼워달래. 넌 양심도 없니?”
“그 돈이 제 돈입니까. 부모님 돈이지.”
“그래서 부모님 재산 안 받을 거야?”
“뭐 주신다면야······. 당연히 받죠.”
“이야, 너 양아치네.”
“헤헤헤. 제가 좀 그렇지 말입니다.”
최강철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오상진이 그런 최강철을 보며 한마디 했다.